며칠 전(2020. 5. 22.) 한겨레신문이 사과문을 실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별장접대 의혹을 보도한 지난해 10월 11일자 기사 및 주간지 한겨레21의 기사에 대한 것입니다. 대략 7개월만에 나온 후속보도가 사과문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사실확인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도 결정이 내려졌”고,
-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보고서에는 ‘온 적이 있는 것도 같다’라는 진술만 있었지만, “‘수차례’ ‘접대’ 등 보고서에 없는 단어를 기사와 제목에서 사용”하였으며,
- 결국 해당 보도는 “사실 확인이 불충분하고, 과장된 표현을 담은” 보도라는 것입니다.
보도 중 객관적 사실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사실확인을 하지 않았으니, 사실이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의혹제기 수준이더라도 충분한 근거가 미흡했다는 자인입니다.
“표현이 부적절했습니다”라는 사과문의 문구는 ‘부적절’합니다. ‘온 것도 같다’라는 진술내용을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로 보도한 것은 부적절 또는 과장표현의 범주를 뛰어넘습니다. 사실을 왜곡한 허위입니다. 이를 ‘부적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한겨레만의 문법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편집회의 등에서 충분한 토론 없이 당일 오후에 발제된 기사가 다음날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나갔습니다”. 이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언론사의 생리를 잘 모르지만 단독 기획 기사일 경우는 적어도 미리 준비되어 편집국내에서 충분한 토의를 거쳐 1면 머리기사로 결정될 것입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의혹제기 같은 사안은 후속보도까지 기획하고 터뜨리는 사례가 많습니다. 당일 오후에 발제된 기사가 1면 머리기사로 나가려면 최종 사실확인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공익적 가치가 크고, 보도의 신속성 등이 절실히 요구되는 경우에나 가능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보도가치가 있다는 것은 언론사의 주관적 판단이겠지만, 보도의 신속성은 객관적인 영역입니다. 제3자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겨레 보도는 신속성이 절실했던 사안은 아닌 듯 합니다. 더욱이 이후 후속보도도 전혀 없이 1보에 그칠 정도의 사안이었습니다.
한겨레가 언론사로서 치명적인 치부라고 할 ‘게이트키핑의 실종’을 언급한 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앞으로는 말 그대로 언론의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이트키핑 실종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없습니다. ‘그날 그 기사’에 대한 게이트키핑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사실 가장 궁금한 대목인데 진짜 속내는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세간의 일부 평이나 나름 짐작으로는 당시의 ‘조국 사태’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조국 수호=검찰개혁’, 다른 쪽에서는 ‘조국 구속’이란 구호로 여론이 양분화된 시기였으니까요. 게이트키핑의 실종이 아니라 의도적인 작동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드는 까닭입니다.
비슷한 사건 하나를 떠올려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채동욱 검찰총장은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 수사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채 총장은 조선일보의 사생활 보도로 결국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권력과 언론간 유착관계를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사례입니다.
당시 한겨레 신문을 훑어 보았습니다. 2013. 9. 16.자에는 ‘‘채동욱 찍어내기’ 한 배후세력 책임 물어야‘라는 사설이 실렸습니다.
“만약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해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아들설을 확산시켰다면 이는 권력과 언론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언론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혼외아들설 보도 과정에 권력과의 야합이 있었는지 밝히는 게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사설의 한 대목입니다.
특정 권력과 특정 언론이 유착하거나 ‘알아서 처신한’ 결과로 의심받는 보도는 언론계에서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관행이 일시에 바뀌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보도 내용은 객관적 사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익성’, ‘공정성’이란 겉 포장으로 ‘자신의 정파성’도 감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해석의 몫은 독자에게 있다고 핑계대지도 말길 바랍니다. 언론사의 사과문까지 꼬투리를 잡고 있으니 오지랖이 넓다고 하겠지만, 요즘 권언유착관련 사건이 많아서 한번 읊어본 감상입니다.
[divide style=”2″]
[box type=”note”]
이 글의 필자는 김준현 변호사입니다. 언론인권센터에서 언론피해구조본부장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보도 피해자와 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와 시민활동가, 언론개혁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이 참여하여 설립한 단체로 언론보도 피해자 상담 및 구조, 정보공개청구, 미디어 이용자 권익 옹호, 언론관계법 개정 활동과 언론인 인권교육, 청소년 및 일반인 미디어 인권교육을 진행합니다. (편집자)
[/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