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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건 기술이지 저널리즘이 아니다

15만 유료독자 ‘메디아파르트’ 창간자 에드위 플레넬 인터뷰 

 

변화하는 것은 기술이지 저널리즘이 아니라는 에드위 플레넬 메디아파르트 대표. 그에게 디지털 기술은 저널리즘의 이상 실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다양한 독자층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르몽드의 창시자인 위베르 뵈브 메리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독자를 만족시키는 정보가 아니라 독자가 알아야만 하는 정보를 제공한다”

25년 동안 르몽드에서 일했던 그인만큼 르몽드에 대한 감정이 남다른 듯 하다. 그래서인지 르몽드 건물 1층에 나란히 걸린 르몽드를 대표하는 두 개의 기사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기사라는 것도 알려준다. 그 기사는 그를 최고의 탐사저널리스트로 인식하게 만든 ‘레인보우 워리어호 침몰’의 배경에 프랑스 정보기관이 개입돼 있다는 기사였다.

1985년 당시 이 기사로 인해 프랑스는 발칵 뒤집혔다. 작전을 지시한 국방장관 샤를 에르뉘는 정부가 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결국 플레넬에 의해 프랑스 잠수부대원들이 사건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여론에 밀려 사임했다.

메디아파르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작년에 만났을 때는 15만 명이 목표라고 하더니, 목표를 달성한 지금 새로운 목표는 무엇인지 물으니 아직은 추이를 지켜볼 뿐이라고 답한다. 한없이 부드러운 말투, 자상한 웃음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러나 눈빛만은 너무나 형형했다. 마치 내 머리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에드위 플레넬과 필자(진민정)

작년(’16년 10월)에 이어 올해도 만난 에드위 플레넬. 일년 사이에 훨씬 핼쑥해 진 것 같아 안타까웠다.

메디아파르트’는? 

메디아파르트(Mediapart)는  프랑스 탐사저널리즘의 상징이다. 나는 앞서도 여러 번 슬로우뉴스를 통해 에디아파르트를 다룬 바 있다.

프랑스 최고의 저널리스트라 칭해지는 알베르 롱드르의 계보를 이어받은 에드위 플레넬(Edwy Plenel)이 세 명의 저널리스트와 함께 메디아파르트를 창간했다. ‘메디아파르트’는 참여 미디어(Media participatif)와 독자적인 미디어(Media a part)를 함께 의미한다. 독자와 전문가, 직업 저널리스트가 함께 만들어가는 뉴스서비스다. 초기 자본금은 3백만 유로로 ‘Societe des amis de Mediapart'(메디아파르트의 친구들)이 투자했다.

메디아파르트의 슬로우건은 ‘ 독립적인 언론, 자유로운 정보’다. 창간한 지 수년 만에 프랑스 탐사저널리즘의 상징으로 떠오른 비결은 소수정예로 구성된 전문 기자들의 탐사보도를 중심으로 정보의 질과 독창성 중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 15만 명의 정기구독자를 보유한 중소 규모(종사자 60명가량)의 인터넷 독립 언론이다. 민주주의의 이상 실현을 목표로 하는 메디아파르트의 야망은 바로 (언론의) 독립, (정보의) 질 그리고 (독자의) 참여다.

한국 기자들과 함께 오랜만에 다시 메디아파르트의 상징 에드위 플레넬를 만났다. 플레넬은 “언론이 광고 수익에 기대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에드위 플레넬(가운데 파란색 옷)과 필자인 진민정 박사(플레넬의 오른쪽)

에드위 플레넬(가운데 파란색 옷)과 필자인 진민정 박사(플레넬의 오른쪽)

  • 인터뷰이: 에드위 플레넬 (메디아파르트 대표) 
  • 인터뷰어: 진민정 외 한국 기자들 
  • 2017년 9월 15일 파리 

 

= 메디아파르트를 창간했을 때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다. 

2006년 메디아파르트를 만들 생각을 했을 때는 내가 25년 동안 일을 했던 르몽드를 그만 두고 나온 상황이었다. 나에게 아이디어를 준 것은 정보 민주주의의 전환기에 만들어진 한국의 오마이뉴스였다.

그 매체의 영향으로 나는 저널리스트들이 만든 저널 섹션과 독자들이 만드는 클럽(여기서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민주주의적 참여 클럽이라는 의미) 섹션이 동시에 존재하는 메디아파르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내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한지는 40년이 조금 넘었다.

메디아파르트 창간에 영감을 준 '오마이뉴스'

메디아파르트 창간에 영감을 준 ‘오마이뉴스’

= 유료 독자가 많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메디아파르트를 창간할 때 모두 우려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온라인 유료매체는 존재하지 않았고, 온라인 정보는 무료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르몽드의 위기로부터 얻은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광고에 의존하는 무료 모델은 저널리즘에는 전략적 실패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광고에 의존하는 모델은 오락에나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다. 이런 모델은 수많은 독자, 수많은 대중을 끌어모으고자 한다. 이런 모델은 독립적인 저널리즘, 공익을 위한 저널리즘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없다.

나에게는 저널리스트가 저널리즘의 가치를 보호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단지 독자만이 우리를 살 수 있다”, “언론의 자유는 저널리스트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다”라는 우리의 슬로건처럼 말이다. 이건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 이전에는 아무도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세 가지 성공 비결 

우리가 어떻게 성공했느냐고? 첫 번째, 처음부터 아주 견고한 편집팀을 구성했다. 처음에는 25명의 저널리스트와 시작했다. 두 번째, 3년은 버틸 만큼 충분한 자본이 필요하다. 당시 여러 매체에서 나와 메디아파르트에 합류한 젊은 저널리스트들에게 나는 3년 동안 제대로 된 월급을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세 번째, 디지털 시대에 저널리즘의 근원, 저널리즘의 정신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로고로 19세기 신문팔이 소년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당시에 신문을 팔던 소년들은 거리에서 “내 신문을 사세요. 여기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소식이 실려있어요”라고 외쳤다. 이러한 관점에서 좋은 저널은 언제나 부가가치가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이미 읽은 혹은 이미 들은 정보를 보기 위해 유료로 구독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메디아파르트의 모험은 르포기사, 탐사보도, 분석, 관점, 인터뷰 등을 언제나 다른 각도에서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프랑스 탐사저널리즘의 상징이자 유료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메디아파르트

프랑스 탐사저널리즘의 상징이자 온라인 매체로서 유료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메디아파르트

 

메디아파르트가 성공한 또 다른 이유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비리를 폭로하는 탐사보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평생 탐사저널리스트로서 이러한 비리를 폭로해왔고, 지금은 내 경험을 젊은 저널리스트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예를 들면, ‘그린피스 스캔들’이라 불리는 1985년 뉴질랜드 항구에서 레인보우워리어호가 침몰한 사건에 대한 보도처럼 주요한 탐사보도의 과정을 들려주곤 한다. 당시 그린피스는 프랑스의 핵실험에 대항해 싸웠고, 이에 프랑스 정부가 정보기관에 레인보우워리어호를 침몰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이 사건을 밝혀냈고, 이로 인해 당시 국방장관과 정보기관 책임자는 사임해야 했다.

메디아파르트의 성공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탐사보도에 있다. 특히 권력자들의 세금 탈루, 조세피난처와 관련된 탐사보도를 통해 다양한 폭로를 해왔고 이는 수많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Rainbow Warrior sunk off New Zealand © Greenpeace / Brian Latham

Rainbow Warrior sunk off New Zealand © Greenpeace / Brian Latham

마지막으로는 메디아파르트가 참여 미디어라는 데 있다. 메디아파르트는 일종의 아고라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래서 구독자가 서로 토론하고 논쟁하고 우리를 비판하고, 우리에게 경고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우리는 영미권 유료저널들처럼 페이월 방식이 아니다. 메디아파르트 유료 구독자가 아니면 헤드라인과 기사의 요약 정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전체를 읽기 위해서는 유료 구독자가 되어야 한다. 독자들이 주로 글을 생산하는 클럽 섹션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 클럽 섹션에는 저널리스트가 개입하지 않는 것인가? 예를 들어 독자의 질문에 답한다거나..

당연히 독자의 질문에 답하고 함께 토론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초기에는 우리도 독자와의 토론 공간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질문에 반응했다. 그러나 문제는 독자 수가 지금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지금 개인 독자만 15만 명에 육박한다. 그리고 방문자 수는 3백만 명이 약간 넘는다.

그래서 독자들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초기만큼 활발하지는 않다. 이러한 대화는 기사 댓글란을 통해, 메디아파르트 블로그를 통해, 채팅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메디아파르트 라이브’라는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독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도 한다.

이 서비스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에는 매주, 그 이후에는 매달 한 번씩 생방송으로 진행하는데 TV 토론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마크롱과 두 번에 걸쳐 3~4시간가량 토론했다. 대선 초기에 한 번, 그리고 2차 투표 바로 이전에 한 번. 긴 시간동안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2017년 5월 8일 프랑스 제2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릭 마크롱(1977년생, 당연히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

2017년 5월 8일 프랑스 제2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릭 마크롱(1977년생, 당연히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 메디아파르트는 마크롱이 후보였던 시절 두 번에 걸쳐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 메디아파르트가 유료화를 선언한 이후 수많은 매체들이 유료를 시도했다. 그 중에는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실패한 사례가 더 많다. 물론 선두주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메디아파르트가 독자를 늘릴 수 있는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저널리즘, 저널리즘, 저널리즘이다.

우리는 우리의 저널리즘 이데올로기를 배포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지난 주 우리는 청년층의 문제에 관해 토론했다. 청년들이 새정부에 바라는 것, 청년실업 문제, 주거 문제, 대학 문제를 비롯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다뤘다. 그리고 그날 밤 600명이 넘은 새로운 유료구독자가 발생했다.

성공의 핵심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서 메디아파르트가 사회, 경제, 복지, 문화 혹은 소외계층, 차별의 문제 등 우리 사회에서 들끓는 수많은 문제에 토론장으로서 역할하고 있다는 것이다.

= 한국에서는 ‘~에 따르면’ 이라고 쓰고서 기사 출처를 인용하고 훔쳐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메디아파르트의 독자들 중 혹시 메디아파르트의 기사를 훔쳐가는 경우는 없나?

디지털은 공유의 공간이다. 물론 우리 유료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무료로 퍼나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둔다. 다만 그들에게 그 기사의 출처를 밝힐 것을 요구할 뿐이다.

나는 다중확산이 중요하다고 본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우리의 기사를 퍼나르는 것만 아니라면, 한 개인이 다른 목적으로 유포하는 것이라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기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둔다.

= 메디아파르트의 미래에 관해. 

질문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질문은 메디아파르트가 프랑스 민주주의의 위기, 언론의 위기 상황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나 한국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 가능한 모델인지다. 두 번째 질문은 메디아파르트가 나를 포함한 창간자들이 떠나더라도 여전히 유지가 될 것인가이다. 메디아파르트 모델은 당연히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이고, 아울러 창간자들이 떠나더라도 메디아파르트는 유지될 것이다.

= 르몽드 역시 상당히 신뢰할만한 언론이라고 생각되는데 당신은 그곳을 나와 새로운 매체를 창간했다. 르몽드에서 어떤 한계를 본 것인가?

나는 그곳에서 25년을 일했다. 4분의 1세기를 보낸 것이다. 나는 경제 위기와 더불어 찾아온 르몽드의 위기 상황, 즉 프랑스 언론의 도덕적, 직업적 위기, 독립성의 위기 상황에서 그곳을 떠났다. 나는 당시 저널리스트들이 주인이었던 르몽드가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당시 경제적으로 르몽드는 어려움에 봉착한 상황이었고 결국 나는 이 싸움에서 패배했다.

르몽드

이러한 경제적 위기의 원인은 르몽드 종이 버전에 실린 기사를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한 데 있었다. 당시 나는 르몽드 종사자들에게 만약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르몽드가 올바른 뉴스 제공이 아닌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손아귀로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은 현실이 되었다. 오늘날 통신사 사장이 르몽드의 거대 주주다. 현재 프랑스 미디어는 뉴스정보와는 아무 상관없는 무기산업, 통신사, 럭셔리산업, 건축 산업 등과 관련된 회사의 소유주들이 소유하고 있다.

르몽드를 나온 것은 언론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결과였다. 그곳을 떠날 때는 메디아파르트를 창간할 생각이 없었다. 당시 나는 책과 관련된 TV 토론 프로그램에 고정패널로 출연 중이었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퀄리티 저널들의 위기 상황이 계속되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내가 메디아파르트를 창간한 건 복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르몽드에 있으면서 알았던 몇몇 시니어 저널리스트들과 다른 해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일종의 저널리즘 실험실을 만들고자 했다. 즉,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순수한 독립 언론으로서 메디아파르트가 거둔 성공은 르몽드나 프랑스의 주요 언론, 다른 매체에 소속된 저널리스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 메디아파르트는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없는 탐사보도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처럼 독점적인 기사들은 어떻게 발굴하는 것인가?

외부에서 중요한 탐사보도, 예를 들어 ‘워터게이트’같은 보도를 접할 때는 뭔가 대단히 복잡할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혹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an’, 1976)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탐사보도는 누군가가 중요한 제보를 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은 실마리를 찾거나 퍼즐을 맞춰나가는 식이다. 그러다가 ‘어라 이거 이상한데?’하는 생각이 들면 확인해보고, 또 다른 퍼즐을 대입해보고 하는 식이다. 정말 구체적인 저널리즘이다.

나에게 탐사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핵심 장르다. 특종을 위해서는 모든 퍼즐들을 하나하나 맞춰봐야 한다.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탐사보도에서 중요한 것은 ‘뭔가를 찾으려면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보통 뭔가 있다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느끼고 찾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의외로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탐사저널리즘의 방법론은 흔히 일종의 퍼즐 맞추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곤 한다.

탐사저널리즘의 방법론은 흔히 일종의 퍼즐 맞추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곤 한다.

사례: 카위작 스캔들 

‘카위작 스캔들’의 사례가 그렇다. 카위작 스캔들은 올랑드 정부에서 예산장관으로 임명된 제롬 카위작이 탈세를 위해 스위스와 싱가포르에 마련한 불법 비밀계좌가 밝혀진 사건이다. 이 스캔들은 2012년 터졌다. 어떻게 이걸 발견했느냐면, 예산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국회의원을 지냈던, 그리고 직업적으로는 의사인 그가 클리닉을 차렸다는 것을 나는 우연히 알게 됐다.

그런데 그 클리닉은 위 전문 의사인 카위작이 돈을 벌기위해 모발을 이식하는 전문 클리닉이었다. 당시 그는 정치를 하면서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는데 이 클리닉의 모발 이식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그리고 예산 장관이 되었을 때 당시 좌파 진영이었던 법무부장관과 클리닉의 재정적인 것과 관련해서 어떤 협의를 한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그래서 메디아파르트의 탐사전문 저널리스트에게 카위작에 대해 살펴볼 것을 권유했다. 우리가 뭘 찾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그와 관련해서 좀 더 깊이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한달 후에 그가 선출된 프로방스 지역에서 스위스에 카위작의 비밀계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래서 모발 클리닉은 잊어버리고 , 불법 비밀계좌를 파고 들었다.

메디아파르트의 보도로 결국 불법 계좌의 정체가 밝혀지자 장관직에서 사임한 제롬 카위작

메디아파르트의 보도로 결국 불법 비밀계좌의 정체가 밝혀지자 장관직에서 사임한 제롬 카위작

세금이 제대로 운용되는지 감시해야하는 예산장관이 그 스스로 세금포탈을 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구체적인 정황 증거들을 모두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히 스위스 은행은 우리에게 카위작의 계좌와 관련된 서류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맞는 퍼즐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 카위작이 누군가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스위스 계좌에 대한 이야기한 녹취 파일을 우리는 입수했다. 이후 우리는 그 녹취가 진짜인지 확인했고, 계좌에 관해 더 자세히 알아봤다.

이 사건에 대한 보도는 4개월 동안 지속됐다. 그리고 이후 4개월 동안 우리는 싸웠다. 프랑스 정부는 우리 보도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카위작은 국회에서 “결단코 나는 한 번도 스위스 계좌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보도를 인정하도록 4개월 동안 싸웠다.

나는 사법기관에 이 사건을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고, 결국 카위작은 비밀계좌가 있다고 시인했다. 이 사건은 세금 탈루에 대한 조사, 부패에 대한 투쟁과 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고 우리의 보도가 사실로 드러나자 카위작은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한국 상황을 보면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이 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라 짐작한다.

= 그러한 사건들의 정확한 보도를 위해 메디아파르트 소속 기자들을 위한 특별 교육 같은 게 존재하나?

대다수 저널리스트가 40세 이하고, 많은 수가 30대다. 그러므로 메디아파르트는 상당히 젊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여기는 수평적인 조직이다. 수직적으로 뭔가를 전달한다거나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동 작업실처럼 함께 실험하는 조직이다. 그러므로 서로 아는 것을 함께 공유하고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함께 뭔가를 만들어간다. 나는 늘 탐사보도는 집단적인 작업이라 생각하고, 이런 방식을 고집해왔다. 만약 혼자서 작업한다면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많다.

= 메디아파르트를 프랑스 주류 매체와 비교하면? 

메디아파르트는 프랑스 주류 매체 입장에서 보면 아웃사이더같은 존재다. 그러나 주류매체들과 메디아파르트를 비교해보면, 실제 판매부수만을 본다면 리베라시옹의 온라인 구독자는 5~6만명가량이다. 르몽드와 르피가로는 온라인과 종이신문을 합쳐서 23~24만명가량이다.

그러니까 메디아파르트는 이 두 신문보다 구독자수 가 반 이상이다. 르몽드의 거대한 건물을 생각하면 이건 엄청난 역설이다. 이들은 종이신문을 발행하기 때문에 이제는 한물 간 인쇄기도 돌려야 하고 신문 배급도 신경써야만 한다. 이것들은 이들 주류매체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

신문

르몽드 1층에 르몽드를 대표하는 특종 두 개를 전시해놓은 공간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스탈린의 죽음에 대한 보도고, 다른 하나는 그린피스 스캔들에 관한 내 보도다. 내가 떠난 이후에 이것을 전시했다. 르몽드는 아마 내가 떠난 것을 후회하고 있을 거다.

= 메디아파르트의 구독자는 누구인가? 구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 기자들에게는 제한적인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40대 남성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기사가 있기 때문에 그 기대에 맞춰서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자본이나 정치권력 이외에도 독자의 기대 역시 지금은 기사생산에 있어 제약요소가 되는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우리는 구독자가 누구인지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디지털 기술과 함께 우리 독자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는 있다. 그러나 독자가 누구인지는 우리가 우선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항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아젠다를 가지고 최상의 보도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 다만 제대로 된 좋은 저널리즘을 실천하려 할 뿐이다.

르몽드나 리베라시옹처럼 파리에 근거지를 둔 주류일간지의 구독자들과 비교했을 때 메디아파르트의 구독자들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지리적으로 훨씬 다양한 층으로 구성돼 있다.

= 탐사보도를 팀을 구성해 작업하다보면 누군가는 계속 ‘서포트’만 하게 되는 것 같다. 메디아파르트는 어떤가? 아이템 선정은 어떻게 하나? 이로 인한 불만은 없나?

메디아파르트는 다른 매체들처럼 수직적인 조직이 아니다. 국제, 정치, 탐사, 경제, 사회, 문화, 사회문제 등 각 섹션 책임자들은 저널리스트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그리고 편집국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등한 지위다. 매일 10시 반이면 편집회의를 하고 서로 자유롭게 토론을 해서 아이템을 결정하다. 메디아파르트는 하루 세 번 업데이트한다. 그러나 속보를 따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메디아파르트의 저널리스트들은 저널리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 함께 대화를 하고 해법을 찾아 나간다.

메디아파르트가 처음 런칭했을 때는 저널리스트 25명 이외에 다른 분야는 두 사람의 종사자만이 있었다. 그들은 재정 전문가와 테크닉 담당자였다. 당시에는 콘텐츠는 우리가 만들고 외부 업체에게 사이트를 맡기는 식이었다. 지금은 메디아파르트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하는 상황이 왔다. 그래서 기술팀, 마케팅팀, 구독자 담당팀 등 다양한 부서가 생겨났다. 올해 연말이 되면 메디아파르트 정식 직원은 85명이 될 것이다.

신문과 사람들

= 만약 새로운 저널리스트를 채용한다면 어떤 분야의 저널리스트가 필요한가?

현재 메디아파르트는 경제와 정치 섹션을 강화하는 중이다. 마크롱 정부가 들어서면서 좌파의 위기, 우파의 위기, 극우세력의 부상이라는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도 새로운 상황에 처해있다. 또한, 노동 문제 개혁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있다.

그러므로 노동문제와 좌파정치, 우파정치를 담당할 저널리스트가 필요하다. 물론, 메디아파르트에 소속된 저널리스트 이외에도 해외통신원이나 프리랜서 기자들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메디아파르트를 위해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 저널리스트가 독립적으로 기사를 생산하는 구조라고 했는데 최종 기사가 나가기 전에 기사를 승인해주는 사람이나 데스크가 존재하나?

종이신문의 시대에는 누군가가 기사를 읽고 기사를 내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기사 발행 과정이 변화했다. 최초 편집인은 당연히 기사를 쓴 저널리스트다. 메디아파르트에는 종사자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일단 메디아파르트의 ‘박스오피스’라고 불리는 게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승인을 기다리는 기사들’이 있다. 대표인 나 역시 기사를 작성하면 내 스스로 ‘승인을 기다리는 기사들’이라는 곳에 기사를 올린다.

모든 종사자들은 승인되기 전의 기사들을 볼 수 있다. 기사를 올리면 일단 그 옆에 ‘hold’라고 찍힌다. 이후 편집팀이 발행 전에 이미지나 제목 등 기사를 좀 더 엄격하게 검토하고, 손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하기도 한다. 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최종 승인을 해주는 사람이다.

이 팀에는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기사를 검토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일하는 구조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기사를 읽고 만약 수정이 필요하다면 코멘트한다. 그리고 문장 스타일을 살피고, 고품격의 프랑스어로 된 기사를 위해 전문 교정자도 여기에 개입한다.

대다수 퀄리티 저널처럼 메디아파르트도 처음부터 전문 교정자가 편집에 참여해왔다. 그리고 메디아파르트는 최근 기사가 아니라 중요한 기사를 가장 위에 배치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래서 사이트에서는 최근 1면들이 늘 저장 된다. 지난주 1면을 다시 볼 수 있는 식이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기억의 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도씨에’(Dossier; 한 사건이나 주제에 관해 관련 기사 전체를 묶어서 보여주는 것)란을 강화했다. 이건 르몽드나 리베라시옹에서는 하지 않는 방식이다. 즉, 디지털 기술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뉴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억’을 보존하고 상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도씨에란을 통해 독자들이 뉴스정보를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관련 보도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두었다.

메디아파르트의 중요 기사들은 프랑스어와 영어, 스페인어로 제공된다. 내 생각에 온라인 신문은 국경이 없는 신문이다. 유일한 국경이 있다면 그건 언어다.

= 디지털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이러한 기술에 적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널리스트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기술이다. 저널리즘이 변화하는 기술을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포맷을 실험하는 것은 오늘날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에 대한 적응은 저널리스트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으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너무 기술의 변화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다보면 저널리즘의 본분, 즉 가장 중요한 것은 포맷이 아닌 콘텐츠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메디아파르트 내부에서도 몇몇 젊은 저널리스트들은 기술의 변화에 사이트가 발맞춰 가는 속도가 너무 느린 건 아닌지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치 유행을 쫓듯 새로운 포맷에 대한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지키면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는 언론 종사자에겐 좀 가혹한 측면이 있다.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포맷을 실험하는 것은 오늘날 저널리즘의 핵심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포맷이 아닌 콘텐츠다.

= 메디아파르트가 공식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프랑스 독자들은 좌파 매체라고 인식하고 있지는 않나? 기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나는 사람들이 메디아파르트의 편집방향에 대해 물으면 우리는 ‘급진적 민주주의자’들이라고 대답한다. 급진적(radical)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에서는 뿌리에서부터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는 의미다.

영미권 개념에서 본다면 메디아파르트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저널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엄격한 저널리즘을 추구한다. 물론 보수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좌파적인 저널이다. 그러나 우리가 좌파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좌파정권이면서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거쳤고, 그들은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메디아파르트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저널이라고 규정한다. 자유 언론을 위한 투쟁, 시민의 알권리, 정보에 대한 접근 등 수많은 투쟁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디지털 기술, 거대 자본, 정치권력의 압박 등 민주주의의 문제는 이미 해결된 지나간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시대에도 유효한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이명박근혜'로 총칭되는 역사적 반동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겪었지만, 그래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거대한 흐름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사진: 민노씨)

민주주의는 지나간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영원한 ‘블루오션’이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사진: 민노씨)

물론 메디아파르트의 독자들 중 댓글이나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비판적인 사람들이고, 그러다보니 대체적으로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5만 명의 독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독자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우리의 정보가 유익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구독한다. 독립 언론의 힘은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흔드는 데 있다. 즉,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민주주의의 가치 수호, 복지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좌파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이때까지 좌파정권이든 우파정권이든 권력의 비리를 폭로해왔고 결과적으로는 좌파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됐다.

독립 언론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기 고유의 독자들까지도 불편하게 만드는 것.

= 그로 인해 곤란함을 느낀 적은 없나? 독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제공했다는 것 때문에 구독을 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당연하다. 나는 엄청나게 비판받는다. 예를 들어 급진 좌파의 수장인 장 뤽 멜랑숑과의 관계를 보면, 우리는 그의 몇몇 주장들에 반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시리아나 베네수엘라 혹은 푸틴에 대한 그의 생각에 메디아파르트의 많은 저널리스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자 우리의 구독자들 중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기구독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권리다. 그들은 맘에 내키지 않는 저널을 떠날 권리가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한다.

“좋은 언론이라는 것이 당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언론이라면 당신들은 잘못 짚었다. 좋은 언론이라는 것은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이다. 그 안에는 당신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정보도 포함된다.”

오랫동안 독립 언론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하다보면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엠마뉘엘 마크롱이 메디아파르트와 두 번에 걸쳐 심층 인터뷰에 응한 것은 대선 기간 동안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 멜랑숑 지지자들은 “만약 마크롱이 당선되면 그것은 메디아파르트의 탓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멜랑숑은 독립 언론에 등을 돌린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멜랑숑 지지자들에게는 우리는 마크롱 지지자들이다. 그러나 마크롱이 당선되자 우리는 우리의 일, 즉 마크롱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했다. 그러자 마크롱 지지자들은 우리가 멜랑숑 지지자들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독립 언론의 숙명이다.

르몽드의 창간자인 위베르 뵈브 메리는 “나는 그들이 내 신문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고 했다. 독립 언론은 독자들이 그 저널의 정치적 입장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한다. 독자가 원하는 정보가 아니라 독자가 알아야만 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끝) 

메디아파르트 사무실 모습

메디아파르트 사무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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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산책과 명상을 좋아합니다. 프랑스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습니다(파리2대학 언론연구소 박사). 제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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