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숙영 평화비추는숲 대표, “학교 공동체 전체의 관심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편집자 주.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더 깊숙이 뛰어들고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그 과정을 추적하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제안입니다. 한 칼에 매듭을 자르는 해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많은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와 우선순위, 기회비용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문제 중심의 접근에서 해결 지향의 접근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으로 학교 폭력의 해법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여는 글: 학폭의 함정, ‘더 글로리’를 넘어서
박연진 대학 못 가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결말인가.
못 본 척하는 친구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내 새끼 운명을 건 전쟁”, 학폭위가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
“너는 그래도 우리의 좋은 친구야”- 회복적 정의와 회복적 생활교육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학교 폭력이 발생했습니다. 폭력을 예방하지 못했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었던 한 작은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1974년, 캐나다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난동
197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키치너의 작은 마을 엘마이라, 두 남자 고등학생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렸습니다. 두 학생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22곳의 집 창문을 깨고, 자동차 타이어를 찢었습니다. 결국 이 둘은 체포되어 사법 처리를 기다리고 있었죠. 하지만 당시 보호관찰관 마크 얀츠와 데이브 워스는 이 소년들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는 방안을 판사에게 제시했습니다.
판사는 이 제안을 수용했습니다. 두 소년은 직접 피해 가정에 방문해 피해자에게 직접 그 피해에 관해 듣고 난 뒤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고, 피해 보상에 관해 합의했습니다. 기존 절차와는 달리 피해자들은 두 소년들에게 직접 진심어린 사과를 받았고,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은 심리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었죠.
두 소년도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잘못이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 깨닫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봉사활동과 배상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데 노력함으로써 다시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선물 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당시 난동을 피웠던 학생 중 한 명인 러스 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범죄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지역에서 회복적 정의 실천가로 살면서 청소년 범죄자를 돕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진보적 보호관찰관 마크 얀츠(왼쪽)과 러스 켈리(오른쪽)의 모습입니다.
이 작은 마을, 작은 이야기로부터 ‘회복적 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캐나다 엘마이라 마을이 시도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 프로그램(Victim Offender Reconciliation Program, VORP)은 1978년 미국 인디애나주 엘카트 지역에 소개된 데 이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돼 2012년 기준으로 300개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워드 제어라는 학자가 회복적 정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고 지금은 500개 이상의 다양한 모델로 발전해 하여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 정재준은 “미국의 학교 폭력 방지”라는 논문에서 회복적 사법의 절차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 학교폭력이 어떤 규정(법률)에 위반되고 이로써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확인한다.
-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특정한다.
- 학교폭력으로 인하여 간접적인 피해들은 무엇인지 특정한다.
- 이를 인지시킨 후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석한다.
- 피해자의 기본적 권리가 무엇이고 현재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대화한다.
- 진정한 사과와 용서로서 화해하고 배상의 구체적 방법도 합의한다.
정재준은 “가해자를 엄벌하거나 격리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감정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법원의 일방적 처벌보다 피해자에 대한 효과적이고 실질적 배상에 유리하다는 점이 회복적 사법의 장점”이라면서 “무관용 원칙은 학교폭력 문제에 대하여 응보적 정의는 실현할 수 있겠지만, 이는 일시적인 통제와 감시로 억누를 뿐 근본적으로 해결책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회복적 정의가 더 힘을 받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너는 그래도 우리의 좋은 친구야”
회복적 정의는 우리나라에서는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대응하며,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방법론, 교육적 방법론으로 도입됐고, 비폭력 대화의 방법론 등과 결합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평화비추는숲 박숙영 대표를 만나 회복적 생활교육이 무엇인지 여쭤봤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한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이하 박숙영 대표께서 들려준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초등학교 4학년. 한 남자 아이가 가방을 툭툭 치고, 욕을 하면서 지나가고, 괜히 화풀이하고…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의 행동 때문에 1학기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선생님이 직접 지도에 나섰지만, 아이 행동에는 큰 변화가 없었죠. 반 아이들은 점점 더 이 아이를 멀리 했어요. 왜 안 그랬겠어요. 관계는 더 나빠졌습니다. 계속 욕하고, 툭 치고, 지나가다 발 밟고, 돼지라고 놀리고… 그런 행동이 쌓이면서 여학생 2명이 그 친구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어요. 물론 그 여학생 2명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 아이를 좋아하지는 않았죠.
그 세 명의 아이들을 모아서 회복적 대화모임을 했어요. 당사자들이 모여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거죠.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게 해요. 나는 뭐가 중요한지,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지, 상대방에 뭘 부탁하고 싶은지 등등.
학폭 신고한 여학생들은 돼지라고 놀림 받을 게 얼마나 슬펐는지 울기도 하고, 너 계속 그러면 5학년에도 학폭 신고 될텐데,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널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문제 남학생은 이렇게 말했죠. 자꾸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고, 나도 내 맘대로 안 돼. 싫어서가 아니라 잘 안된다고. 그 상황만 되면 자꾸 그렇게 돼. 대화하면서 가해 학생도 힘들구나 하는 걸 저도 피해 여학생들도 알게 됐죠.
가해 학생이 약속했어요. 가방 치는 것도 안하고, 욕도 안하고, 지금가지 했던 걸 안 하겠다고. 하지만 여학생들은 못 믿죠. 그날은 사과를 받긴 했는데, 믿을 수는 없어 이렇게 남학생에게 이야기했대요. 하지만 결국, 여학생들은 남학생에게 이렇게 말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너는 우리의 좋은 친구야,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네가 행동을 멈춰 줘”, 남학생에게 요청했어요. 연민의 마음이 생긴 거죠.
남학생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라고 한 게 여학생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생기게 한 거죠.
셋은 약속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장점 두 개씩을 서로 말해주기로 했죠. 8시 20시 화요일에 서로의 장점을 말해주기.
3주 후에 확인해보니 남학생이 약속을 전부 지키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여학생들도 실망했죠. 가방을 툭 치고 가고 그런 행동을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횟수는 많이 줄었죠. 전에는 10번했다면 이제는 2번 정도로 줄었다는 했죠. 그러면서 이렇게 여학생들은 자기 속상한 마음을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선생님, 우리가 “너는 그래도 우리의 좋은 친구야”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세요?
학교 폭력을 ‘더 글로리’처럼 생각하면 안 돼요
박숙영 대표에게 드라마 더 글로리에 관해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학교폭력을 글로리의 청소년 범죄로만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리는 학교폭력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글로리의 극단적인 범죄를 떠올리고 있어요. 드라마도 복수가 정의구나,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우려가 있고요. 우리에게 또 혐오를 경험하게 해요. 더 글로리는 현실을 과장하다보니 가해자의 인간성을 비인격화하고, 극단적으로 과장하죠. 그래야 우리의 폭력, 복수가 정당화하니까요. 하지만 학교 현장,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앞서 소개한 세 명의 아이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이 셋만으로는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학급 전체, 학교 공동체 전체의 관심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박 대표는 말하더군요. 저도 아주 공감했습니다.
회복적 대화모임을 한 뒤에 학급 단위에서 공동체 관계 개선을 위해 공동체 형성 ‘써클’(동그랗게 둘러 앉아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처럼 학급 전체를 바꾸기 위해서 즐거운 시간, 짜증났던 아이를 즐겁게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가해 학생도 그 대화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또 낙인을 벗을 수 있도록요.
써클 수업은 학교에 2~3번 갈때마다 2시간 정도 수업한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서로 알아가는 활동도 하고, 재미있는 놀이도 하고, 연결 놀이, 알아가는 놀이, 평화수업을 하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약속들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한다고 하더군요. 어떤 아이가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면, 개인 인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의 문제, 영향을 주는 학급의 문화, 가정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그런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학생들 행동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커죠, 어릴수록 그렇죠. 같이 가야 해요. 갈등을 해결하는 조정 모임, 학급의 생태계 변화를 위한 써클 모임, 이렇게 같이 가야 변할 수 있거든요.”
한 가지 주의할 점.
이 글에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학교폭력(bullying)과 청소년 범죄(Juvenile delinquency)를 구별하는 일입니다. 학교폭력은 학교와 교실이라는 특수한 공간, 특히 학기초라는 특정한 시간, 학생이라는 특정한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의 불균형과 반복성을 요건으로 하는 협의의 청소년 폭력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주로 약자에 대한 괴롭힘, 따돌림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통해 자주 드러납니다.
반면 청소년 범죄는 위 협의의 학교폭력의 발생 조건(학생과 학생 사이의 힘의 불균형과 반복성, 학기초라는 시간적 특수성에 대한 고려)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인범죄과 더 가까운 속성을 가집니다. 다만 그 범죄 주체의 연령이 청소년일 뿐입니다.
이 둘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구별됩니다. 학교폭력은 예방과 선도라는 교육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하고, 청소년범죄는 예방과 선도의 관점도 중요하지만, 재발방지라는 사법적, 경찰정책적 관점에서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양자를 완전히 구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이 청소년 범죄의 성격을 겸유할 수도 있습니다(다만 그 역은 불가능합니다). 청소년 범죄를 다룸에 있어서도 학교폭력을 다루는 방법론을 차용할 수 있고, 청소년 범죄를 다루는 방법론을 학교폭력을 다루는 방법론으로 빌려올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회복적 정의는 학교폭력 예방이나 대응의 관점에서 시도된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정책적 방법론의 차원에서 시도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론은 오늘날 학교폭력을 대상으로 하는 회복과 치유의 방법론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차용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 문헌:
- 정재준(2012), 미국의 학교폭력 방지대책,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연구원(법학박사), 서울대학교 法學 제53권 제1호 2012년 3월 529∼570면
- 에듀피스, ‘회복적 정의의 역사와 발전’ 중에서
바이라인.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 건 이상의 주제를 선정해 집중 취재를 한 뒤 순차적으로 연재합니다. 취재 제안이나 제보, 도움 말씀을 환영합니다. 취재: 민노씨, 이정환. 기획 협력: 김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