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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 중꺾정 필자의 견해는 참여연대 공식입장이 아니며 다를 수 있습니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는 단순한 도덕담처럼 보이지만, 공적 권력과 제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신뢰가 단번에 무너진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반복되는 거짓과 그에 대한 무의식적 허용과 방치가 누적되면서, 어느 순간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지점에 이른다는 데 있다.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축적되지만, 일단 붕괴된 이후에는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회복’의 대상이 아니라, 훨씬 더 큰 비용과 노력을 요구하는 ‘재건’의 문제가 된다. 특히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에게 공적 신뢰는 단순한 평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 신뢰를 바탕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기관과 그 구성원들은, 시민이 부여한 신뢰를 소모 가능한 자원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지탱하는 기반으로 인식하고 그 무게를 더욱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문제의식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최근 법원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였다. 나는 지난 12월 9일부터 이 공청회에 패널로 참여해 상고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지켜보았다. 형식적으로는 제도 설계에 관한 토론이었지만, 논의의 밑바탕에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상당히 약화되었다는 공통된 인식이 깔려 있었다. 왜 지금 이 논의가 이토록 거세게 제기되는가를 묻지 않으면, 어떤 개편안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학자가 사법개혁을 고민하는 이유

사법부는 비선출 권력이지만,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권력 분립 구조에서 핵심적인 위치와 위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권위는 선거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정치이론가 로버트 달(Robert Dahl)이 지적했듯이, 사법부의 권위는 민주적 선거가 아니라 국민적 승인, 다시 말해 사회적 수용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법원이 지속적으로 정치·사회적 기대와 어긋나는 방식으로 기능할 경우, 그 법적 권위 역시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판사의 개인적 자질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판단의 일관성, 절차적 공정성, 그리고 ‘왜 이러한 판단이 내려졌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투명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제도적 신뢰가 형성된다. 그러나 최근 여러 조사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에서 법원에 대한 신뢰는 이러한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특정 판결 한두 개에 대한 단발적 불만의 결과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높아진 국민의 권리의식과 복잡해진 사회적 갈등 구조에 비해 현행 사법제도가 전반적으로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보다 구조적인 의문에 가깝다.

‘희대의 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수록, 국회와 대통령 같은 선출 권력은 사법개혁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정치학자 제프리 스테이턴(Jeffrey K. Staton)은 이를 ‘사법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political environment)의 변화’로 설명한다. 그의 멕시코 연구에 따르면, 사법부는 법적으로 독립적일지라도 정치권·언론·여론의 협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판결을 실질적으로 집행하기 어렵다. 그는 이를 집행 가능성(enforcement capacity)이라 부르고, 이를 떠받치는 정치권·언론·시민사회의 결합을 집행 연합(enforcement coalition)이라 명명했다.

멕시코 사례가 보여주듯, 사법 신뢰가 낮아질수록 정부는 법원에 더 많은 개입을 시도했고, 그 결과 사법부는 정치적 압력에 취약해지며 독립성이 흔들리는 악순환에 빠졌다. 사법부 신뢰의 붕괴는 곧 사법부를 보호해 주던 사회적 완충지대를 허무는 결과를 낳는다. 이 점에서 사법개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나 인원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정치적 과제이기도 하다.

‘대법관 증원’에 가려진, 더 근본적인 고민

이러한 맥락에서 상고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 논의가 동시에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분쟁의 유형과 규모가 확대되면서 국민의 법적·정치적 권리의식은 빠르게 성장해 왔지만, 현행 상고 구조는 이러한 변화된 수요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채 대법원 단계에서 심각한 병목 현상을 노출하고 있다. 문제는 이 병목의 원인을 단순히 “대법관 수가 적기 때문”으로 환원하는 진단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이는 현상의 결과를 원인으로 오인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제도적 질문을 비켜갈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의 사법정치 연구자 찰스 엡(Charles Epp)은 『권리혁명』에서 최고법원의 실질적 역량은 법관의 숫자 자체보다는 하급심의 질적 역량, 그리고 변호사·시민단체·공익소송 네트워크로 구성된 ‘지원 구조(support structure)’에 의해 좌우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한 대법관 증원만 이루어진다면, 각 대법관이 개별 사건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분에서 2분으로 늘어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외형상 처리 용량이 확대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상고심의 질적 심사 기능이 실질적으로 강화되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결국 숫자의 증가는 병목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효과를 가질 수는 있어도, 상고 제도의 목적과 기능을 재정의하지 않는 한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대법원의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개별 국민의 권리구제를 담당하는 최종심 법원인가, 법률 해석의 통일을 담당하는 최고법원인가, 아니면 사회적 갈등을 정리하는 정책법원인가. 만약 대법원이 권리구제 중심의 최종심 법원으로 기능하고자 한다면, 사건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대법관 증원은 일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이 경우 제도 설계 역시 폭넓은 사건 접근성을 보장하고, 오판 가능성을 줄이며, 국민 개개인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반면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 기능하고자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책법원은 개별 사건의 해결보다 법질서의 방향 설정과 법률 해석의 통일을 중시한다. 이 경우 사건 선별과 판례 형성 기능에 집중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며, 헌법재판소와의 기능 분화 역시 지금보다 훨씬 명확해져야 한다. 현재처럼 두 최고 사법기관의 역할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대법원이 정책법원적 성격을 강화할 경우, 제도적 긴장은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대법관 증원은 사법부 내부의 효율성 문제를 넘어 헌법적 함의를 갖는다.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제 권력 구조에서 행정부·입법부·사법부는 각각 하나의 축을 이룬다. 대법원의 규모 확대는 곧 사법부 권력의 외연 확장을 의미하며, 이는 권력 분립과 견제·균형의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될 경우, 선출 권력에 대한 견제와 민주적 정당성 사이의 균형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역시 불가피하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그리고 정치

이 지점에서 알렉산더 비클(Alexander Bickel)이 제기한 반다수제적 딜레마(counter-majoritarian difficulty)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는 사법부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체제에서 비선출 권력이 다수의 결정을 제어할 때 요구되는 정치적 절제와 정당화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경고에 가깝다. 사법부는 다수결의 폭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그 판단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설득 가능한 논리와 절차적 정당성을 스스로 축적해 나가야 한다. 이 균형 감각을 상실할 경우, 사법부의 권위는 강화되기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경계선이 등장한다. 공적 신뢰의 위기 속에서 대법원 조직 개편과 상고제도 개혁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해서, 그 추진 과정이 정치적 절제와 제도적 신중함을 결여한 채 속도전으로 전개되어서도 곤란하다. 사법부뿐만 아니라 정치적 외압 논란을 자초하며 개혁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여당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제도 개혁이 신뢰 회복을 목표로 한다면, 그 방식 또한 신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레비츠키와 다니엘 지블랫이 경고한 ‘사법부 억압(judicial repression)’의 위험은 결코 추상적인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강조하듯, 현대 민주주의의 퇴행은 더 이상 노골적인 쿠데타나 헌정 질서의 일거 붕괴라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선출된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민주적 규범을 점진적으로 훼손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합법성을 유지한 채 제도를 내부에서 잠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법부 억압은 법원을 한 번에 해체하거나 노골적으로 장악하는 행위가 아니다. 인사와 조직 개편을 통한 점진적 장악, 이른바 패킹과 퍼징(packing and purging), 비판적 의견을 제시한 법관에 대한 징계나 조기 퇴임 압박, 사법부 예산과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통제, 관할권 조정을 통한 민감한 사안의 사법 심사 배제, 그리고 불리한 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한 정치적 낙인과 대중적 공격이 단계적으로 동원된다. 이 모든 과정은 형식적으로는 법과 절차의 외피를 두른 채 진행되기 때문에, 외형상 민주주의는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이러한 방식의 사법부 개입은 더욱 은밀하고, 동시에 더 큰 제도적 상처를 남길 위험을 내포한다.

이러한 압박이 누적될수록 사법부는 점차 정치적 신호에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외부의 명시적 개입이 없더라도 스스로 판단의 범위를 좁히는 자기검열의 상태로 이동할 위험이 커진다. 권력에 불리한 사안일수록 회피하려는 유인이 작동하고, 그 결과 사법 판단은 점점 더 안전한 선택지로 수렴하게 된다. 이는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지적한 민주주의 퇴행의 가장 위험한 징후 중 하나다. 형식적 독립이 유지되는 것과 실질적 독립이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대법관 증원과 사법제도 개편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을 단정할 사안이 아니라, 어떠한 정치적 맥락과 절차 속에서 추진되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개편 논의가 특정 정권의 이해관계나 첨예한 정치적 갈등 국면과 결합될 경우, 실제 의도와 무관하게 사법부 길들이기 혹은 정치적 목적의 권력 재편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대법관 증원이 정권 교체 직후이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판결 직후에 집중적으로 논의될 경우, 이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조정이 아니라 권력 균형을 재편하려는 시도로 인식될 위험이 커진다.

사법개혁을 실천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조건

따라서 사법제도 개편이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치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첫째, 증원의 규모와 시기에 대해 여야 간 실질적인 초당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2. 둘째, 사법부 자체의 의견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개편안이 설계되어야 한다.
  3. 셋째, 증원 과정과 인선 절차는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여지를 최소화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해야 하며, 인적 다양성 역시 정파적 목적이 아니라 제도적 신뢰 회복의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결국 신뢰의 저하는 사법부와 정치권 모두에게 손해다. 사법부는 신뢰를 잃을수록 외부 개입에 취약해지고, 정치권은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더 큰 정치적 갈등을 떠안게 된다. 상고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 논의는 이 신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지, 또 다른 불신을 낳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뢰를 다시 쌓는 일은 느리고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사법부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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