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배우 연우진 씨가 이 영화에 참여한 계기를 들려주고, 작품과 자신이 분한 영화 속 인물에 관한 해석을 독자와 나누는 인터뷰입니다. 이 글은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주요 인물의 관계를 설명을 포함해 아주 추상적인 수준의 ‘줄거리’가 언급되지만, 그 정도는 아주 약합니다. 그럼에도 ‘스포일러의 불안’을 염려하는 독자는 이 글을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box]

1361740_n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005년까지 직업군인이었던 중국 작가 옌롄커(1958년생)가 제대하자마자 발표한 작품이다. 책은 출간 즉시 금서로 지정됐다. 금서로 지정된 불운한 작품이었지만, 중국 밖에서의 운명은 달랐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서 출간되었고, 21세기를 대표하는 화제작으로 거론된다. 옌롄커도 중국을 대표하는 ‘문제적 작가’가 성장했고, 이제는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된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에서 (출처: 웅진지식하우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에서 (출처: 웅진지식하우스)
한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0)로 대종상 등 다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장철수 감독은 이 소설을 접한 뒤 데뷔작이 개봉한 바로 다음 해인 2011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장 감독은 차기작을 위해 사방으로 뛰었다. 그 사이 제안받아 작업한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가 흥행을 거두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제작을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020년에 되어서야 정식으로 크랭크인할 수 있었다. 작품을 구상한 지 9년 만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배우 연우진이 있었다.

외딴 섬, 순박한 섬마을 사람들의 이면에 숨겨진 폭력성을 다룬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2010)과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69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외딴 섬, 순박한 섬마을 사람들의 이면에 숨겨진 폭력성을 다룬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2010)과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69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8년의 기다림

배우 연우진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면서, “나도 현재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배우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감독님들의 경우엔 한 작품에 오랜 시간 몰두하며 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작품을 위해 쏟는 매 순간이 특별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고, 장철수 감독이 꽃이라면, 나는 꿀벌처럼 자연스레 이끌렸다. 그의 열정을 보며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며 장 감독과 함께 작업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소개했다.

“2014년 당시 [연애 말고 결혼]이라는 tvN 드라마를 한창 하고 있을 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시놉시스를 받았으니 정말 시간이 오래되었죠. 오랫동안 작품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엔 ‘연기자로서의 연기 변신’ 혹은 ‘파격적인 인간의 사랑’을 표현해보고 싶었던 게 컸는데, 6년, 7년, 8년…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 관한 감정들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 욕망을 좇고 있는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욕망을 좇는 인간들이 변해가는 과정과 본성을 보면서 ‘이게 날것의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과 ‘이 작업을 하며 나 자신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무광'을 연기한 배우 연우진
영화 속 ‘무광’을 연기한 배우 연우진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출세를 꿈꾸는 모범병사이자 사단장 사택의 취사병인 ‘무광’이 사단장(조성하)의 아내 ‘수련’(지안)과의 만남으로 신분의 벽을 넘은 위험한 사랑, 유혹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연우진은 극 중 무광으로 분해 자신의 신념과 빠져보고 싶은 유혹 사이에서 흔들리는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끊임없는 유혹을 받으며 결국 ‘대의’를 위한 슬로건이 ‘개인’을 위한 슬로건으로 바뀌게 되면서 ‘욕망은 무광을 잡아먹는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배경이 지닌 체제 속에서 정말 강인한 군인이지만, 욕망 앞에선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나약한 인간이기에 걷잡을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닫는 선택을 하게 된다 생각했고 그런 무광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선을 잡기 위해 집중했어요.“

배우로서 안정적이고 상업적인 무언가를 추구했다면 다른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우진에겐 작품이 도전으로 다가왔다. 사랑이라는 감투 속에 표현된 한 인간의 욕망, 그 욕망이 인간 본성을 잠식하며 표출되는. 연우진에게 그런 무광은 새로웠고,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처음으로 욕심낸 배역이었다. 그는 무광의 표현 연기를 위해서도 깊은 고민을 했지만 그을린 피부,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탄탄한 몸 등 외적 모습을 구현하는 데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태닝숍도 방문 했었지만, 그것보다는 자연적인 게 좋을 것 같아 고향인 강릉에서 태닝을 했어요. 한여름이었는데 솔밭과 바닷가에서 태닝도 하고, 다이어트도 하며 작품 생각과 캐릭터 구상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메이크업 없이 촬영했는데 지금도 피부색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드라마 [서른, 아홉] 제작발표회가 있어서 오랜만에 다른 배우들을 만났는데 저만 정말 새카맣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저의 그런 노력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잘먹고 잘사는 것”

연우진은 2014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위해 장철수 감독을 만난 처음 순간부터 작품이 끝날 때까지 지난 몇 년의 시간을 “전투적으로 임했다”고 회상한다. 촬영 준비를 시작하며 연우진과 장 감독은 공연도 함께 관람하고, 연기 연습도 함께 했다. 상대역인 ‘수련’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 지안이 합류한 후엔 어떤 작품보다 대본 리딩도 많이 하며 작품을 준비했다. 작품 제작이 중간에 무산되며 제작에 여러 난관을 겪었다. 2020년 본격적으로 크랭크인 했지만, 물리적인 시간의 제약, 환경의 열약함 속에서 진행된 영화 촬영은 ‘전투’였고 작품 촬영이 끝났을 땐 서로가 ‘전우’로 뭉쳐 있었다.

“지안 씨와 베드신을 촬영할 땐 한정된 여건으로 인해 현장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어요. 베드신이 있을 땐 촬영 전날 밤 감독님, 촬영 감독님, 지안 배우님과 촬영 동선을 미리 맞춰보고, 콘티에 대해 충분한 회의를 하고 헤어졌어요. ‘최대한 감독님과 상대 배우를 존중하며 촬영해야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무엇보다 집중해서 임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장면들이 많은 촬영이기 때문에 그 누구 하나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고 끝나길 바라며 아침에 촬영장에 가면 현장에 있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팻말에 쓰인 문구를 되뇌었어요.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복무하자’라면서요. (웃음)“

777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잘먹고 잘사는 것이다”라는 대사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연우진. ‘인간의 본성 앞에 사상이나 이념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그렇게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성들의 로망’으로 성장한 배우가 베드신 연기에 도전했지만, ‘파격 멜로’, ‘청불 멜로’이라는 문구. 그리고 ‘파격 노출’, ‘파격 베드신’으로 영화가 회자 되는 것에 속상함은 없을까.

“속상하다기보다는 파격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에요. 다양한 한국 영화 사이에서 연기를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게 감사할 정도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지닌 특수성과 개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의 연출 방식도 넘쳐서 흘러 흘러 넘치는 걸 꽉꽉 눌러 담는 듯한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고요. 물론 베드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연기하며 인간의 본능적인 이면을 잘 표현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666

현재 방영 중인 JTBC 수목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 ‘다정다감한 성격의 피부과 의사 ‘김선우’ 역을 맡은 연우진은 극 중 ‘차미조'(손예진)와 로맨틱한 만남으로 방영 2회 만에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공교롭게도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드라마 방영 시기에 개봉해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180도 다른 이미지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연우진이 말하는 두 작품의 공통점은 ‘사랑’이다.

“영화에서는 ‘수련’과 함께 쾌락의 끝을 보고, 그 쾌락의 끝 속에서 오는 공허한 기분을 연기할 때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관련된 여러 장면을 촬영하며 ‘사랑과 멜로를 다양하게 표현해내는 방법이 이렇게 있구나’라며 감탄했던 게 이 작품이에요. 관람하는 이들에게 생각할 여지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라 같아 제게 주어졌던 이 도전의 기회와 시간이 너무 소중합니다.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 변신도 중요하지만, 보는 이들에게 더 깊이 있는 연기와 연기자로서 ‘어떠한 신념과 소신 있게 연기에 임했구나’라는 가치관이 잘 전달 되길 바랍니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3일 개봉과 함께 개봉작 예매율 1위에 올랐다. 제작진과 배우진은 언론 시사회와 기자간담회 바로 전 주까지 후시녹음을 하며 마지막까지 모든 걸 쏟아냈다. 연우진에게는 “모든 걸 원 없이 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작업이었고, 작품이다.

연기자로서 그의 철학은 ‘늘 책임감 있게 다가가자’라는 것. 그 좌우명을 영화 작업을 통해 가득 채웠으니 미련은 없다. 언제나 잘 쓰일 수 있는 배우, 감독님의 요구에 따라 풍부하게 표현해 수 있는 배우,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책임감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연우진. 그의 삶에 선물로 다가온 작품의 성원을 기원한다.

(인터뷰어: 글렌다 박 기자, 사진: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