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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북 지역에서 코로나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지난 3월의 이야기다. 학교는 문을 닫았다. 개학은 하릴없이 뒤로 연기됐고, 교육 현장은 난생처음 겪어야 하는 비대면 수업과 원격 컨텐츠 제작에 교육부에서부터 일선 교사들까지 모두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청개구리’ 아이들 

그러나 굳게 닫힌 교문 앞에 매일같이 떠돌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행동 양식은 일정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를 찾아왔다가 교문이 닫혀 있으면 그 앞에서 맴돌다 돌아갔고, 혹시 교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와 선생님들을 찾았다.

“얘들아, 오지 말랬잖아. 왜 학교에 왔니?”

아무리 나이 어린 아이들이라 해도 나라에서 등교를 금지한 것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어른 입장에서는 아이들은 그저 학교에 오는 것을 귀찮아하는 존재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정작 정상적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을 당시에는 오히려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다. 아무에게나 싸움을 걸어 ‘학폭위’를 소집하게 하거나 교육 현장의 골칫거리가 되기 일쑤였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사뭇 우리들에게 고민할 거리를 남겼다.

“친구들이 만나고 싶어서 왔어요.”

“어차피 집에 아무도 없어요. 할 것도 없어요.”

혼자 있다 보면 저절로 학교에 오게 돼요. 잠깐만 들어가 보면 안 돼요?”

“학교에 오면 밥 주지 않아요? 선생님들은 급식 안 먹어요?”

평소엔 학교에 잘 오지 않았떤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하니 학교 주변을 서성거린다.
평소엔 학교에 잘 오지 않았떤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하니 학교 주변을 서성거린다.

이 아이들은 왜 평소에는 거리를 두던 학교에 오게 된 것일까? 이는 ‘학교’ 라는 교육 현장의 숨겨졌던 함의를 우리 모두에게 알려 주는 하나의 현상이기도 하다. 학교는 단지 학업을 진행하는 곳이 아닌 미성년자의 부족한 사회적 기능을 때로는 돌보고 때로는 육성하는 종합적인 복지 인프라라는 사실 말이다. 실제로 저 아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평상시에 가정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부모로부터 제공받지 못한 아이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미성년자는 스스로 사회적 기능과 지식을 학습할 경제적 기반이 부족하다. 또한, 가정에서 이 모든 것을 담당하기에는 부모들 역시 하루의 일정 시간을 노동에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라는 ‘공간’ 은 결국 미성년자에게 필수적이다. 실제로 학업을 등한시한 학생이라고 해서 학교를 스스로 찾을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현실의 메커니즘은 사실상 경제적 기반이 부족하여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공간’ 을 확보하기 힘든 계층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카공족’을 위한 변명 

지난 9월 1일부터 정부는 수도권의 모든 커피전문점에 테이크아웃 및 배달만을 허용하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했다. 커피전문점들은 매출에 심대한 타격을 예상하고 있고, 커피전문점들을 애용하던 일부 계층 역시 난리가 났다. 이들은 장시간의 좌석 점유 등으로 애초부터 우리 사회에서 받는 눈길이 곱지 못하던, 그러나 우리 중 상당수가 한 번 정도는 거쳐갔을 존재인 ‘카공족’(카페에서 장시간 머물며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카공족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여기저기 존재했기 때문에 이들의 역사가 짧은 것도 아니다.

카공족들은 왜 커피전문점으로 몰려나와 공부 또는 필요한 일들을 하게 되었을까. 단지 그들이 젊은 허영에 가득 차 인스타 ‘갬성’ 넘치는 카페 또는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소위 시애틀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일까. 과학적 근거도 없는 백색소음에 경도돼서일까. 그렇지 않다. 청년들이 커피전문점에서 장시간 자리를 점유하는 이유는 그들이 마땅히 활용할 만한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이 충분치가 않기 때문이다. 즉, 이는 결국 공간의 활용과 점유에 대한 경제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많은 청년들에게 '카페'는 도서관보다 친근한 공부 공간이다.
많은 청년들에게 ‘카페’는 도서관보다 친근한 공부 공간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 빈곤 해소를 위한 맞춤형 주거지원 정책방안(이태진, 김태완 등 2016.)’ 의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청년 1인 가구의 주거 형태는 단독주택이 52.09%, 반면 청년 부부 가구의 경우 아파트가 57.53% 로 조사되었다. 다만 이 ‘단독주택’ 이라는 것은 소위 ‘양옥’ 한 채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반지하 단칸방이나 옥탑방, 쪽방 등을 모두 포괄하는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 코호트(cohort)[footnote]코호트(cohort): 통계상 특정 기간 동안 동일한 경험이나 특성을 공유하는 집단, 예를 들어 특정 기간에 태어나거나 결혼한 사람들[/footnote] 분류에 오류가 있다. 게다가 오피스텔 등을 포함한 다세대 연립 19% 를 더할 경우 청년층의 공간 활용 실태는 겉보기보다 더욱 좋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고시원이나 단칸방, 쪽방, 원룸 등에 거주한 경험이 있을 경우 해당 공간들이 취업을 준비하거나 공부에 집중하기에 그리 적합한 환경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다. 대학 도서관을 활용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시겠지만 책과 공책, 필기구가 주된 수단인 미성년 학생들에 비해 성인 청년의 경우 학업이나 취업 준비의 수단으로 노트북 등이 활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공공 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은 소음의 문제로 인해 사용이 제한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월세 월룸 사진. 6평에 월세 60만 원. 이 가격은 2018년 기준 타워펠리스의 1평당 월 임대료(13만 원)http://realty.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4/2018062401894.html에 육박한다. (출처: 다방)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고민 상담’으로 올라온 월 60만 원짜리 월세 월룸 사진(2017년). 참고로 2018년 기준 타워펠리스 30평대 아파트 1평당 월 임대료는 13만 원이다. 즉, 대학가 원룸 월세 가격(1평당)은 최고급 아파트 월세와 맞먹는다. (출처: 다방)

게다가 임대료 과부담 비율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각 코호트 별 RIR(가구의 연평균 소득)을 살펴보면, 빈곤 청년층의 경우에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30% 가 넘는 가구가 60.2%에 달한다.[footnote]출처: 2017, 이태진, 우선희, 최준영, 청년층의 주거 실태는 어떠한가[/footnote] 문제는 빈곤 청년층의 소득 수준을 고려했을 때 이들은 소득의 1/3을 지출하고도 사실 원룸 이상의 주거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청년 1인 가구가 서울특별시에서만 10% 내외에 달한다. 그리고 1인 가구의 대부분은 비경제활동인구이다.

물론 ‘카공족’ 일부는 단지 특정한 분위기 등이 마음에 들어 커피전문점에 머무르는 것일 수도 있다(물론 이 역시 ‘비난’ 의 대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카공족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청년층의 생활공간을 사회 인프라 안에 끌어들이지 않고, 커피전문점이라는 민간 영역에 ‘아웃소싱’했기 때문에 ‘탄생’했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 공채조차 대책없이 미뤄지는 지금 같은 상황은 청년들을 더욱 커피전문점에 오래 머물게 하고 있다.

누구도 편들어 주지 않는 자의 설움

맨 앞에 언급했던 학교에 찾아오는 아이들 이야기는 실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아내의 경험담이다. 교사들이 코로나 때문에 세상 팔자 편할 것 같지만, 아내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들을 가르칠 수업 자료를 만들고 나와 ‘ZOOM’으로 수업을 연습한다.

아이들이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출석 체크에만 30분에서 1시간은 기본이며 그 와중에도 교육지원청을 통해 내려오는 각종 업무들을 소화해야 한다. 그는 제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코로나가 빨리 종식돼 학교가 열었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이야기 한다. 그들에게도 ‘공간’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젊은 청년 의사들이 파업을 진행 중이며 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커피전문점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청년 카공족들은 ‘왜 하필 카페에서 공부하냐, 불평 불만 하지 말고 그 정도는 참아라’ 라는 힐난 한두 마디 끝에 결국 또 다시 소외되기 일쑤이다. 경제적 지위도, 가진 직책도 없는 수많은 이름 없는 카공족들은 오늘도 이렇게 그 누구도 편들어주지 않은 채 소외되어 간다.

우리는 이들의 설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위로 손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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