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윤 정부의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 왜 새 정부에서도 철회되지 않는가? 일단 멈춘 정률제, 전면 철회해야. (김윤영/빈곤사회연대 활동가) (⏳4분)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수급자가 병원에 갈 때 부담하는 비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약국은 500원, 병원은 1~2천 원인 진료 비용을 약국의 경우 최대 5천 원, 병원 진료비의 경우 최대 8%까지 정률제로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첨부된 복지부의 보도자료에는 의례 쓰던 ‘사각지대 해소’나 ‘제도 효능감 개선’ 같은 분칠조차 없어, 오로지 예산 절감만을 위한 개편임이 명확히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의 기습적 의료급여 개악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은 시민사회단체와 빈곤 당사자들의 반대로 2024년 시행이 좌초됐다. 이어 12.3 불법계엄 및 윤석열 정부 탄핵으로 철회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정률제 도입을 담은 의료급여법 개정안이 신임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인 6월 5일 갑자기 입법예고 됐다. 7월 10일 복지부 이스란 차관이 시민단체와 공개 집담회를 한 이후 시행령 개정안에 관한 모든 법적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철회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다. 여전히, 의료급여 개악 가능성은 살아 있는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복지부는 회당 진료비 2만 원, 월 5만 원의 상한선을 두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2만 원은 수급자에게 부담이 크며, 일단 지불하고 초과분을 사후에 돌려주겠다는 대책으로는 당장 의료비가 없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그런 계획이라면 복지부가 주장하는 예산 절감 효과도 사라진다.
이렇듯 복지부의 계획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정률제 도입이 수급자들의 의료비 과다 지출을 어떻게 줄일지, 그 결과 어느 정도의 재정 절감이 이루어질지에 대한 실증적 근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수급자들에게 큰 타격을 미칠 정률제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도 없이 그저 ‘비싸지면 안 가겠지’라는 식의 성급한 판단으로 밀어부친 셈이다. 복지부가 내세우는 “수급자가 너무 많이 병원에 간다”든지, “예산이 폭증했다”는 주장도 그 근거가 빈약하다.
시민사회는 복지부의 현실 진단과 대책의 오류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질문들에 답변하는 대신 ‘보장성이 먼저냐 사각지대 해소가 먼저냐 선택할 문제’라며 아프고 힘든 사람들 사이에 우열을 나누거나, ‘기재부와의 협의 사항’이라며 논의 자체를 가로막기도 했다. 7월 10일 열린 공개집담회가 시민단체들의 퇴장으로 마무리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누가 의료급여 내용을 결정하는가
보건복지부의 주장에는 의료행위는 환자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 빠져있다. 복지부와의 집담회에 참가한 수급자들은 ‘의사가 일주일 뒤에 오라고 하면 일주일 뒤에, 한 달 뒤에 오라고 하면 한 달 뒤에 갈 뿐인데 병원에 가는 횟수를 무슨 수로 정하느냐’며 반문했다. 복지부는 이 질문에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이 강행되는 배경에는 의료급여 심의위원회라는 구조가 있다. 의료급여 심의위원회는 의료급여의 내용을 정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체로, 여기에 참여하는 민간위원은 대부분 공급자단체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이 구조에서 빠져있다.
또 다른 원인으로 관료들의 정책 통제와 우위 구조를 들 수 있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비용을 결정하는 것은 법안이 아니라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달려있는데, 이는 국회가 아니라 복지부가 결정하는 영역이다. 이렇게 제도가 설계된 이유는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애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부처에서 법의 목표를 최소화하거나 효과를 억압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는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결정된 정책과 제도를 무력화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정책이 관료집단의 이해관계와 관성에 의해 좌우될 때 시민들의 합의와 의회의 결정은 빈껍데기로 전락한다. 정부는 바뀌는데 관료들이 추진하는 정책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면, 어떤 개혁적 조치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

의료급여 정률제는 의료급여를 낙후시킨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예산 절감을 이유로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을 발표했다. 유튜브 갈무리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민영화 이론가인 에마뉴엘 사바스(Emanuel S.Savas)는 민영화를 위임, 처분, 대체로 구분했다. 이 중 ‘대체(Displacement)’는 직접적으로 민간에 사업을 위탁하거나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공급 활동이 점차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민간이 자연스럽게 차지하게 되는 간접적 방식을 의미한다. 은밀히 진행되기 때문에 탈국유화 같은 직접적인 방식에 견줘 저항이 크지 않다.
사바스의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정부가 의도적으로 서비스를 철수하거나 불이행하는 것 역시 민영화에 해당한다. 정부가 더는 특정 서비스를 공급하지 않거나, 철수하게 되면 서비스 공급에 공백이 생기고, 그 틈을 ‘미충족 수요’로 인식한 민간 부문이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2023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 연구’를 보면, 기초생활 수급자 중에도 민간보험 가입자는 30%에 이른다. 적은 생계비에도 불구하고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비급여 항목 등 의료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정률제가 도입된다면 이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정부가 의료급여 보장성을 낮추면,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민간보험이 확산해, 결국 건강보험과 복지재정은 더욱 악화할 것이다. 예산 감소를 목표로 한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이 되려 사회의 총비용을 높이고 시민들의 건강권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큰 셈이다.

제도를 훼손하고 얻어지는 ‘지속가능성’은 없다
정률제 도입의 가장 명시적 효과는 아픈 사람들이 더 자주 의료 이용을 포기하는 것이다. 얼마의 비용이 청구될지 몰라 병원 이용을 막연히 미루는 사이 더 큰 병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정부는 비용 절감 효과에만 급급해, 막상 치료받기를 포기한 이들의 질병, 심지어 죽음으로 인한 손실·비용은 외면할 위험성이 크다. 구멍 난 의료급여가 초래하는 불신과 두려움도 우리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다.
보건복지부는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수급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늘려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제도가 지향하는 목적과 역할, 신뢰가 부서질 때 ‘제도’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빈곤층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목표가 견고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성’도 실현될 수 있다.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을 완전히 철회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