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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하는 삶

몇 년쯤 전에 한 남성분이 이런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탈브라 선언’ 기사의 링크를 공유하면서, 글의 본문으로 “아, 정말 구리다. 구려.” 이런 멘트를 적어놓은 것이다.

브라를 안 하겠다는 말의 어디가 어떻게 구리다는 것인지 매우 놀랍고 의아했던지라 댓글로 물어보았다.

“죄송하지만 저 기사가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저 역시 브라를 착용하면 너무 불편해서 어지간하면 안 하고 싶은데요.”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제 아내나 다른 여성분들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지내는 것 싫습니다. 편하고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제가 궁금한 건 그냥 혼자서 안 하면 되는 일을 왜 굳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느냐 하는 거예요.”

그의 요지는 말하자면, ‘티 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네가 브라를 하고 다니든 말든 아무 상관없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티 내지 말라.

브라

티내지 마? 

이것은 사실 얼마 전 작고한 연예인 설리가 노브라로 한창 논란이 되던 시절에 나오던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아니, 브라를 하든 말든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그걸 ‘굳이’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이유는 뭐야? 욕해달라는 거야, 뭐야? 관종이 아니고서야 저런 사진을 왜 올려? 브라 하지 마! 실컷 하지 마! 근데 그걸 굳이 내가 알게 하진 말아주었으면 좋겠어!

이와 같은 말, 그러니까 브라를 하고 다니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나랑 상관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 사실을 모르게 하라, 는 얼핏 상대의 자유의사와 개성을 인정하는 관대한 태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무리한 요청이다. 알다시피 브라의 불편함은 ‘안 하면 티가 난다’는 데에 있기 때문에. 안 하면 티가 나는데 안 해도 좋으니까 티는 내지 말라니, 아니 어떻게?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주류 혹은 다수의 관념에서 어긋나는 많은 영역에는 이러한 요구가 존재한다. “지들이 게이든 말든 아무 상관 안 하겠는데, 왜 굳이 거리에서 저 지랄을 하냐고?” “성폭력 피해자면 피해자지 왜 굳이 저런 이야기를 맨날 하고 다니지?” “이혼했다고 난 특별히 편견 없어. 근데 왜 굳이 저런 말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여성인권이 더 열악한 거 잘 알겠고, 잘 알겠는데 그걸 왜 티를 못 내서 안달이야?” 같은 셀 수도 없는 많은 경우들.

조용, 티내지 마!

조용, 티내지 마!

커버링, 티 내지 말라는 요구 

이와 같이 어떤 소수자, 마이너적인 정체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되, 티 내지 말라는 요구‘커버링’이라고 부른다. 커버링은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저서 [낙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요약하자면 “어떤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그 낙인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를 이야기한다.

켄지 요시노의 [커버링]은 이 커버링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의 소수자 집단에게 요구되는 수많은 검열을 다룬다. 커버링의 개념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데, 현존하는 차별이 커버링을 통해 없어진 것처럼 덮이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커버링, 켄지 요시노 저/김현경, 한빛나, 류민희 역 | 민음사 | 2017년 10월 20일

[커버링], 켄지 요시노 저/김현경, 한빛나, 류민희 역 | 민음사 | 2017년 10월 20일

물론 아예 소수자 집단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나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다르다”, “강간은 여성의 잘못이다”)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더 나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오히려 커버링을 통해 차별이 교묘해짐으로써 구체적인 개선을 요구하기 어려워진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은 머리카락을 전부 땋는 콘로(Cornrows) 스타일을 금지당했고, 결국 이 헤어스타일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이 해고 사유가 단순히 직장 내에서 ‘단정한’ 옷차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명될 만큼 충분한지 어떤지, 그렇다면 콘로 헤어스타일은 ‘어째서’ 단정하지 않은지에 대해 그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한 필리핀계 여성 간호사는 직장에서 (필리핀 공용어인) 타갈로그어 사용을 금지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콘로 스타일을 한 여성 (@photosbyphab, CC0)

콘로 스타일을 한 여성 (@photosbyphab, CC0).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은 콘로 헤어스타일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낙인: 사투리, 여성, 김대중 그리고 홍어 

나는 커가면서 어느 순간 사투리를 쓰는 남성에 비해 사투리를 쓰는 여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살펴보니 사투리를 쓰는 사람의 대다수가 남성, 그중 대부분은 영남 지역 출신이었다. 지역을 막론하고 사투리를 쓰는 여성은 거의 없다는 것, 지방을 떠난 뒤에도 계속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 중에는 유독 영남 출신인 경우가 많다는 것, 호남 사투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등이 왠지 의미심장했는데, 우리 사회의 미묘한 지형을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영남지역의 억양이 더 강해서 고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딱 들어맞는 설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말투를 고치기 어려운 것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영남이나 호남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남 출신 남성이 유독 억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반대로 말하면 해당 억양을 계속 지니고 있어도, 본인이 영남 출신이라는 것이 티가 나도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는 포지션에 있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얼마 전에 황현산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청와대에 계실 적에 요리사에게 남몰래 홍어를 요청해서 드신 적이 몇 번 있다고 한다. 홍어를 먹은 게 뭐 어떻다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의 포인트는 ‘남몰래’라는 대목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출처: Kremlin.ru, CC BY 4.0)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출처: Kremlin.ru, CC BY 4.0)

지금이야 홍어가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미식의 한 종류로 인정받고 있으나 과거만 하더라도 호남 지역 사람들만 먹는 ‘이상한’ 음식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까지도 일베를 비롯하여 포털 사이트 댓글에서 호남 지역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홍어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도 대놓고 먹을 수 없는, 즉, 몰래 먹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커버링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위치에 이르러서도 낙인과 전형성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애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영남 출신이었을 경우, 그리고 홍어를 좋아했을 경우에는 오히려 아무런 부담 없이 먹었을 수도 있다. 영남인에게 홍어는 전혀 낙인이 아니므로. 그러나 똑같은 음식과 똑같은 기호식품이 호남인에게는 일종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낙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피로함’ 그것이 포인트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신경 쓰고 피곤해서 어떻게 살아?’라고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피로함’이 포인트이다. 커버링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를 엄청나게 피로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위의 콘로 헤어스타일로 해고되었던 사례처럼 커버링을 하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차별당하고 싶지 않다고?

그럼 네 정체성을 감춰.

헤어스타일을 바꿔.

게이임을 드러내지 마.

사투리 쓰지 마.

브라를 하고 다녀.

히잡을 쓰지 마.

홍어를 먹어서는 안 돼.

장애인이라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

 

문득 브라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의 경우 365일 중 364일 정도 브라를 안 하고 사는데, 그래서 간혹 누군가를 만날 때는 각별히 주의하고는 한다. 노브라가 티가 나지는 않는지 어떤지. 티가 나면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춥지도 않은데 가디건 등을 껴 입기도 한다. 때로 SNS에 사진을 올리려다가도 노브라가 티 나는 모습이 신경 쓰여 그 부분을 잘라내거나 아예 올리는 것을 포기한다.

말하자면 스스로 나 자신을 검열한다는 이야기인데, 알다시피 모든 형태의 검열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 망정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한다. 고작 브라 따위로 검열을 하는 내가 이 정도로 피로한데, 나보다 더 검열해야 할 요소가 많은 사람들은 훨씬 더 심하게 고충을 겪을 것이다.

‘그렇게 피곤하면 검열을 하지 마!’, ‘누가 검열하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겠지만, 그 검열에 저항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손쉽게 낙인찍는 행위, 커버링. (출처: Ira Gelb, CC BY ND https://flic.kr/p/9xSTCc)

누군가에게 손쉽게 낙인찍는 행위, 커버링. (출처: Ira Gelb, CC BY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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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한승혜
초대필자. 에세이스트

다양한 것을 보고 읽고 쓰는 사람. 서울신문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블로그에 비정기적으로 서평을 올립니다.

작성 기사 수 :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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