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혼영’[footnote]혼자서 영화[/footnote], ‘혼술’, ‘혼코노’[footnote]혼자서 코인 노래방[/footnote] 등……
무슨 활동이든 혼자 하는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시대다. 대부분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을 매우 익숙하게 느끼고(67.2%), 요즘 혼자서 영화관에 가는 것을 매우 흔한 현상(72%)이라고 바라본다. 또한, 최근 활동 대부분을 예전보다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느끼는 모습이 뚜렷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활동에는 어김없이 ‘혼-’이라는 접두사가 따라붙어 강조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우리사회가 혼자 하는 활동을 조금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으레 밥 먹고, 영화 보고, 술 마시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다.
혼족들의 자기검열
‘나 홀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조차 스스로 검열하곤 한다. 실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활동을 혼자 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말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 영화 혼자 봐도 괜찮나요?”
“혼자 축구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나요?”
“혼자 여행 가면 뻘쭘하지 않나요?”
이런 질문들은 자신이 혼자 하려는 활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타인의 시선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아직 ‘나 홀로 활동’이 그리 익숙하지만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정확하게는 혼자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코인 노래방에 가는 사람이 자신 말고 누가 또 ‘혼자’인지를 확인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혼자 무엇인가를 하면서도 혼자 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나 홀로 활동’이 성행하는 한국사회의 진짜 속내인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일수록 인간관계 부담
그렇다면 이렇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까지 ‘혼자’ 다양한 활동을 즐기려는 태도가 강해진 배경은 무엇일까? 바쁘고 여유 없는 생활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빼놓을 수가 없어 보인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어떤 집단에 속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서로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할 때가 많다. 학창시절만 떠올려 봐도 주로 어울리는 친구들과 다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하지, 일부만 원하는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회생활을 지속할수록 이런 성향은 짙어지는데, 그렇게 관계에 얽매이다 보면 나만의 시간과 활동은 그저 희망사항에 그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기존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나홀로 활동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트렌드모니터에서 조사한 결과를 살펴 보면, 성인 2명 중 1명(49.1%)이 평소 인간관계가 피곤하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고 응답했는데, 이런 피로감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시간을 보장받고 싶어하고, 다양한 활동을 혼자서 즐기고 싶어하는 태도를 강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혼자 하는 활동에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평소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느낀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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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대별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감
- 20대 58.8%
- 30대 52.4%
- 40대 48.4%
- 50대 36.8%
- 40대 48.4%
- 30대 52.4%
출처: 트렌드모니터 2018 ‘나홀로 활동’ 관련 인식 조사(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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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적 인식… 하지만 혼족은 계속 진화 중
더욱이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와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또한 학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전형적인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끼거나,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대체로 학연과 지연보다 취향과 관심사에 의한 관계가 더욱 중요하며(61.1%),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68.7%)는 생각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학연과 지연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81%)은 유효하지만, 느슨한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67.5%)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최근 ‘나홀로 활동’을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는 배경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가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의 관계에 얽매이면서 다른 사람들과 굳이 무엇을 ‘함께’ 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나 연인과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는 생각도, 내가 속한 집단에 자신을 맞추겠다는 생각도 더는 하지 않는다. 그만큼 관계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으로, ‘의식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혼자 하는 활동이 결국 개인의 ‘취미 활동’ 및 ‘여가 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여전히 ‘혼자’ 하는 활동에 어색함과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기존에 맺고 있는 관계에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취미와 관심사가 비슷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원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최근 취향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하는 불특정 다수와의 모임이 증가하고, 이런 모임을 주선하는 ‘모임 앱’이 인기를 모으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나이와 학력, 직업이 아니라, 취향과 취미, 관심사 등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이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 관계에 얽매인 채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기꺼이 ‘혼자’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기 위해서라면 잘 모르는 사람과도 느슨한 형태의 관계를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