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이 글은 비만인의 노래 1: 성장기, 비만인의 노래 2: 청소년기, 비만인의 노래 3: 성인기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box]

1일 1식 시도 이후 저는 보기에는 완전히 보통 체형이 됐습니다. 이후 저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감을 갖고 살았습니다. 해보고 싶던 밴드도 하고, 사람 만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저는 이제 ‘질병’에서 일시적으로 치유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 중 이 질병에 여전히 시달리며 극단적인 선택, ‘위밴드’ 수술을 한 이도 있는데요. 이 두 이야기를 끝으로 ‘비만인의 노래’ 연재물을 마치려고 합니다.
1일 1식 이후
모든 이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다이어트법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1일 1식이 가장 잘 맞았습니다. 저는 이제 외부에서 보기엔 완전히 평범한 몸입니다. 이후의 삶 이야깁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노래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매일 집에서 한두 시간씩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남들 앞에서도 불러보고 싶었지만, 그들이 노래를 듣는 것에 앞서 사람들이 저를 보는 데 먼저 공포를 느꼈고요. 살을 빼고 난 뒤에는 친구들과 밴드를 조직해 몇천 명 앞에서 공연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무대 공포증이 심해서 약이나 술을 먹고 올라가지만 말이지요.
인격이 형성될 시기에 항상 뚱보로 살았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길거리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을 때 힘겨워하며, 타인과 밥을 먹을 때 가진 만큼의 식탐을 부리지 못합니다. 그런 제가 무대에 올랐다니 놀랄 일이었습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대학 시기였지만 부모님께서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살을 빼고 무대에 오르는 이야기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이 고도비만에서 전신성형을 거쳐 인기 가수로 거듭나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다만 아쉽게도 저는 그렇게 미남이 되지는 못했습니다.(ㅠㅠ) 다만 영화의 주인공보다 더 무대가 소중했다고 봅니다.
지금 저는 인터뷰를 꾸준히 해야 하는 에디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기자를 시작했을 땐 글을 열심히 쓰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고 어색한 상태에서 안 어색한 척하며 인터뷰하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어느덧 그 일도 익숙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점점 저는 평범한 척하는 일상에 익숙해져 갑니다.
살 빼려는 노력보다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노력이 먼저
대학 시절, 고도비만인 신입생들이 들어오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요. 이 친구들은 보통 학과 행사나 동아리 등에 잘 참여하지 않고, 결국 한 학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대학 수료만을 위해 수업만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범한 체형들의 친구들은 고도비만인 신입생들에게 말을 걸곤 하는데, 비만인 신입생은 이경우 단답형으로만 대답하고 대화를 스스로 멈출 때가 많습니다. 평범한 체형의 여러분은 이럴 때 고도비만인에게 ‘잘 해줘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곤 하는데요. 실제로는 그저 타인 대하듯 행동하는 게 서로에게 가장 맞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다수가 20대 초반인 이 상황에서는 다른 특성과 마찬가지로 고도비만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서로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비만인 여러분은 이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만큼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하는 게 좋습니다. 딱 그만큼만요. 어려운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들이 말을 걸어왔던 걸 보면 친구들도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성공 아닌 질병의 치유
이것을 개인의 성공 스토리라 칭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인간승리는 더더욱 아니고요. 만성 질병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것을 성공이라 하진 않지요. 저에게 고도비만은 질병이고, 저는 ‘다이어트를 아주 잘했다’는 것보다 ‘오래 앓던 병이 나았다’ 혹은 ‘아주 잠깐 아프지 않다’는 게 더 맞다고 봅니다. 저는 지금 아프지 않습니다. 나중에 또 아파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금 아프지 않은 게 다행인 것 같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며 제가 얻은 것은 결국 ‘자신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이 찐 상태에서도 지금처럼 일하면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고, 지금의 좋은 친구들을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었겠죠. 아마 조금의 차이도 없었을 겁니다. 다만 누르지 않았던 전원 버튼을 누른 것처럼 자신감이 생겼고, 조금 어려운 일들을 약간 더 쉽게 했었던 것뿐이지요. 어려웠던 인터뷰가 익숙해진 것처럼, 살을 빼지 않아도 결국 익숙해졌을 일들. 결국에는 모든 게 이뤄질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여전히 고도비만인입니다. 날씬하게 보이지만 고도비만일때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다만 애써 이뤄놓은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 아직은 다이어트를 지속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계기로 이 모든 편견이 다 사라지는 날이면 그때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때도 여러분이 지금과 똑같이 잘 지내주셨으면 합니다.
위밴드 수술한 비만녀 인터뷰
그녀는 제 7년 지기 친구입니다. 고도비만까진 아니지만 비만인으로 자랐습니다. 그녀 역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옷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10살,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헐렁한 옷만 입는 자신이 너무 보기 싫어 타이트한 옷을 입었더니 조회시간에 ‘돼지가 그런 옷 입으니 더 돼지 같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후 친구들은 ‘XX이 뚱뚱해서 같이 다니기 부끄럽다’는 등의 힐난을 들으며 의기소침하게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렇듯 비만인인 초등학생의 삶은 성인보다 훨씬 잔인하기 마련입니다.
그녀와 제가 달랐던 점은, 그녀는 더 활발하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도 많았고 남자친구도 있었다고 합니다. 첫 남자친구를 사귈 때의 이야깁니다.
뚱뚱하고 못생겨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던 여자아이는 어느 날 주변에서 ‘너에게 관심있는 남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실제로 만나본 그 남자는 ‘참 예쁘다’며 그 친구를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본인이 예쁜 구석이 있음을 자각했습니다. 평범한 남자의 칭찬 한마디가 삶을 확 바꿔놓았던 것이죠.
이후 그녀는 저처럼 의기소침했던 시기와 활발한 시기를 반복해서 겪습니다. 아무래도 뚱뚱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계속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보다 더욱 예민했던 그녀는 먹고 토하고를 반복해서 장기가 많이 망가졌습니다. 근 10년 동안 주기적으로 반복했습니다. 옷가게를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좀 둘러보고 올게요’라는 평범한 말에, 점원은 ‘다른 데 언니 사이즈 없어요’라는 언어폭력을 시전했고 그때마다 목구멍 끝까지 손가락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녀와 제가 만난 건 7년 전입니다. 그녀는 질병처럼 비만을 치료하고 있는 저에게서 많은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다닌 학교는 번화가 중심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길거리엔 마네킹 같은 여성분들이 많았었죠. 그녀는 이 학교와 번화가를 지나다니며 지역 전체가 ‘살 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녀는 저와는 다르게 절식을 해야 된다는 천명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위해 결핍을 선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단식원, 한약 치료, 비만 클리닉을 다녀봤고 운동도 열심히 해봤습니다. 결과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요. 나이가 먹으면서 점점 더 살이 찌는 체질로 바뀌고, 여기에 따라서 험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커뮤니티에 ‘비만인은 게을러서 그렇다’는 글을 보고 ‘선천성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응원과 비난을 동시에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녀의 논조에도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 다만 사람들이 따뜻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커뮤니티에도 잔인한 말들이 나오는 걸 보면, 사람들이 아직 비만인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 같은 것들이 남아있는 거겠죠.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실제로 비만인 여러분 중 방만하기만 한 분들도 있어서 어떤 의견이 맞다고 보기도 애매하네요.
20대 후반인 그녀의 선택은 이제 수술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방흡입술 같은 것은 일시적 방편이어서 지양했고, 남은 건 체질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식염수가 든 관으로 위를 묶어 위장 크기를 줄이는 ‘위밴드’ 수술을 결심합니다.
그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수술을 결심하기로 했다는 날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비만이 뭐길래 저런 수술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군요. 어쨌든 그녀는 수술했습니다.
효과에 대해서 궁금한 분들이 있으시겠네요. 살이 물론 빠지고 있습니다. 위밴드는 변신 버튼 같은 건 아닙니다. 다만 식사량이 줄어들고요. 위장의 통로가 좁아져서 음식을 잘게 씹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 씹는 버릇이 자동으로 들고요. 이 두 가지 요인으로 그녀는 현재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식생활로도 8kg 정도를 감량했습니다.
단점 역시 적지는 않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항상 걱정해야 하고요. 잘게 씹고 천천히 넘기면서 먹으니 같은 음식도 예전보다 맛이 없어졌답니다. 어쨌든 그녀는 본인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뭘 하든 비만으로 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녀는 인터뷰 막바지에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살찐 상태로 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숨지 않고 당당해지고 싶다. 여성 비만인 역시 다들 그렇게 당당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box type=”note”]이제 길게 끌었던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슬로우뉴스 편집진 여러분께 큰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은 아주 오래전에 써놓았던 것이었습니다. 다만 자신 있게 발행할 수 있었던 곳이 없었기 때문에 묵혀놓았었습니다. 용기를 북돋워 주신 모든 분, 특히 이 원고를 수락하고 편집도 잘 해주신 이진혁 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에게 용기 내서 메시지 주셨던 모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도 메시지 주시고 같이 대화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box]
과정이 어떻든 결국 이 사회에 편입해 살아가려면 살을 빼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군요. 비만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편견을 버려 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고, 게으르지 않다고 끝없이 해명해야 하는 건가요? 게으르고 지저분한 사람이 말랐을 수도 뚱뚱할 수도 있는 건데, 편견 때문에 뚱뚱하면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 되고 남보다 더 깨끗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건강 문제를 들더라도,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스트레스도 그만한 만병의 근원이며 흡연, 과로 등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많습니다. 비만으로 죽을 확률과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 중 어느 게 더 클까요?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여성복 66 사이즈 이상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 사회가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66사이즈 옷에 몸을 끼워 넣지 못하는 여성이 비정상인 걸까요? 어찌 보면 성 소수자보다 더 차별받는 게 비만인인 것 같네요. ‘흡연’할 자유가 있다면 ‘비만’할 자유도 있는 게 아닐까요? 심지어 비만하다고 해서 ‘뚱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로운’ 비만 연기를 뿜어내는 것도 아닌데요. 이 땅엔 비만할 권리도 자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 누군가 분명 그렇게 답할 것 같네요. 뚱뚱해서 열폭한다고요.
네, 저는 뚱뚱합니다. 게으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뚱뚱해서 게으르다는 비난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모든 뚱뚱한 사람이 게으른 건 아니라서가 아니라, 모든 게으른 사람이 뚱뚱한 건 아니라서요. 인과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선천적으로 뚱뚱한 것이든 많이 먹고 덜 움직여서 뚱뚱한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비만은 질병이니 비난하지 말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남의 것을 훔쳐먹고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뤄서 뚱뚱해지지 않은 이상 그것도 그 사람 나름대로의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비난이든 동정이든 어떤 방식으로도 그 삶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뚱뚱하면 성격이 둥글둥글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상치 못한 까칠함을 내보이면 금세 뚱뚱해서 열폭하는 거라고 말하는 세상을 보면, 그 편견의 잣대란 참으로 일관성도 없고 논리도 없습니다.
장황하게 글을 쓴 것은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비만인으로서 슬퍼졌기 때문입니다. 그냥 못되고 예민한 뚱땡이로 살면 안 되는 거야? 언제쯤 뚱땡이들이 변명이나 해명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