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새필드] 대중 문화를 연구한 필자가 미디어에 비친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추가할 새 필드는…한국 자본주의의 잔여물, 금융화·가부장제·조직 권력의 최종 산물로서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2025,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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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부장은 개인이 아니라 체제의 부산물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은 흔히 개인의 성취처럼 이야기되지만,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결코 ‘성공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한국 자본주의가 구축해온 모든 폭력적 구조가 만들어낸 잔여적 인간 유형이다. 김부장이라는 개인에게는 금융화된 부동산 체제, 국가가 방치한 장시간 노동, 기업 중심의 성장주의, 가부장제, 성과주의라는 구조가 내면화한다.
한국 사회는 김부장을 ‘기득권’으로 소비하며, 세대 갈등의 상징적 적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자본·국가·정책의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설정된 허위 대립이다. 김부장은 구조의 승자가 아니라 구조가 만든 잉여물이며, 이제 필요 없어진 순간 제일 먼저 폐기될 존재다.

2. 서울 자가? ‘자산’이 아니라 ‘금융자본의 인질’이다
부동산은 중산층의 증거가 아니라 자본 축적 체제의 도구다. 서울 자가 소유자는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의 물적 증거이자 근거’로 간주되지만, 급진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부동산 금융화 체제에 포섭된 인질일 뿐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노동 생산성, 임금, GDP 성장률 어느 것과도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행의 대출 확대,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의 반복, 건설 자본의 공급 조절, 재벌·금융의 자산 축적 전략이 만나 만들어낸 금융상품의 가격이다. 그래서 김부장은 집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은행과 금융 자본이 설계한 대규모 장기 부채 체계의 피고용자가 된 것이다.
부동산 폭등의 진짜 이익은 ‘김부장’이 아니라 ‘은행·재벌·건설자본’이 가져갔다. 서울 자가가 10억·20억이 된다고 해서 김부장이 부유해졌는가? 그가 얻는 것은 “장부상의 평가 이익”일 뿐이다. 그러나 금융자본은 실제로 이자·대출·수수료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물론 김부장도 그 과정에서 도구로서 ‘부수적 이익’을 취하기는 하지만).
즉, 가격 상승의 (주된) 위험은 개인에게 귀속하고, (주된) 수익은 금융자본에 귀속되는 구조다. 김부장은 그저 부동산 금융화의 담보물이다.

3. 김부장은 관리자가 아니라 ‘중간 완충제’일 뿐이다
김부장으로 상징되는 대기업 부장은 권력을 가진 관리자가 아니라 자본의 ‘의사 전달자·대리적 징벌자·매개적 통제자’일뿐이다.대기업 부장은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 그는 자본이 만든 통제 장치의 중간 기술자다. 그의 역할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 위로부터의 명령을 아래로 전달하되, 불만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 ‘김부장’은 임원의 명령을 수행하면서도 팀원들의 스트레스를 받아내는 조직 감정의 쓰레기통이다.
- 성과주의를 현장에서 실현시키는 징벌 관리자: 성과가 떨어지면 팀원을 평가해 낮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 이는 ‘정당한 평가’가 아니라 징벌적 성과주의의 실천 행위다.
- 자본주의 조직의 규율력을 유지하는 감시 기술자: 출근·노동시간·성과·태도·보고서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감시 시스템의 일부분이다. 그는 ‘통제의 얼굴’이지만 실제로는 통제의 대상이기도 하다.

4. 대기업 구조조정은 ‘김부장’을 희생시킴으로써 작동한다
한국의 구조조정은 가장 먼저 부장을 겨냥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 임직원 구조에서 가장 비싸고
- 대체 가능성이 높고
- 조직 내 반발력이 약하다.
김부장은 기업이 필요할 땐 부리고, 위기 때는 버릴 수 있는 계급이다. 그는 조직 내 7년 감가상각되는 소비재처럼 취급된다.
5. 가부장제는 김부장을 보호한 적이 없다 — 착취와 통제의 도구였을 뿐!
가부장제는 남성을 권력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제1노동자’로 만들었다. 가부장제는 겉으로는 남성에게 가족 내 권위를 부여하지만, 실제로는 남성을 무한 노동 제공자·가족 생계 책임자·조직 충성의 도구로 만든다. 김부장은 ‘가정의 가장’이 아니었다. 그는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헌신하도록 강요된 장시간 노동 기계였다.
가부장제는 남성을 조직에 종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가부장제의 ‘유명’ 구호는 다음과 같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
“아버지니까 참고 일해야 한다”
“남자는 책임감이 중요하다”
이 모든 구호는 사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구조를 견디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다. 김부장은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핑계로 조직에 자신을 헌납했다.
김부장은 남성 중심 사회의 수혜자가 아니라 ‘가부장제의 희생자’다. 그는 가족을 위해 일했지만, 그 일은 결국 가족 시간의 상실·우울·건강 악화·관계 단절을 낳았다. 그가 얻은 것은 보잘 것 없는 직장 명함, 승진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뿐이다.

6. 세대 갈등은 자본이 설계한 ‘가짜 전쟁’이다
김부장 vs. MZ라는 프레임은 진실을 가린다. 정부·언론·기업은 김부장과 MZ세대의 대립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진짜 권력 관계를 숨기기 위한 전략이다. 실제 대립은 다음과 같다.
- 노동자 v. 자본
- 임금노동자 v. 금융화된 자산 구조
- 조직 구성원 v. 경영진
그러나 이 갈등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자본은 ‘세대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조성하여 노동 내부를 분할통치(divide and rule) 한다. MZ가 김부장을 비판하는 동안, 구조는 멀쩡히 작동한다.
- 임금은 정체
- 주거비는 폭등
- 노동은 불안정화
- 플랫폼 자본은 확대
- 대기업은 인력 구조조정
- 금융자본은 부동산으로 수익 창출
김부장은 MZ의 적이 아니며, MZ도 김부장의 위협이 아니다. 둘 다 자본 중심 구조의 희생자다.

7. 중간계급의 붕괴: 김부장은 ‘중산층’이 아니라 ‘자본주의 잔여물’이다
중산층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 자가 + 대기업 + 부장’은 중산층의 상징처럼 불렸지만, 정치경제학적으로 이는 이미 사라진 계급이다. 중산층이 유지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 어느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 임금 상승
- 주거 안정
- 사회 안전망
- 교육 비용 통제
- 실질적 고용 안정
그래서 중간관리자는 자동화·디지털화 시대에 가장 먼저 폐기될 직군이다. AI 자동화는 보고, 일정 관리, 성과 분석, 의사결정 보조를 점점 더 아주 빠른 속도로 대체한다. 중간관리자의 기능은 ‘인간’이 아닌 ‘알고리즘’이 더 잘 수행한다. 부장은 머지않아 가장 먼저 제거될 직군이다.
그래서 김부장은 자본주의가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 계급의 마지막 잔여물이다. 김부장은 과거 산업 자본주의에서 필요했던 ‘통제·감독·규율·전달’이라는 역할의 중심이었지만, 플랫폼·AI 자본주의는 이 기능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김부장은 자본주의의 하강 국면에서 사라질 예정인 임시 계급이다.

8. ‘권위 해체’와 ‘사회적 고립’은 김부장에게 필연적 과정이다
‘가장의 권위’는 자본이 필요해서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김부장의 권위가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임노동 체계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해 설계된 장치에 불과한 것처럼. 남성이 돈을 벌고, 여성이 돌봄을 담당하는 모델은 사실상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가계가 부담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가족 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김부장의 역할을 붕괴시킨다. 비혼, 맞벌이, 가족 해체, 돌봄의 재배치, 젠더 권력의 재구성…이 모든 변화는 김부장이 수행해온 ‘가장 역할’을 더 이상 의미 없게 만든다. 그리하여 김부장의 고립은 구조적이다. 그의 고립은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 역할이 사라진 계급의 운명이다.
9. 김부장은 한국 사회 정책 실패의 총합이다
그는 다음의 실패로 만들어진 존재다.
- 부동산 금융화 실패
- 사회 안전망의 부재
- 장시간 노동 방치
- 성과주의 도입
- 가족 정책 부재
- 교육비 폭등
- 기업 중심 정책
- 재벌·금융 중심 성장 전략
그는 실패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 실패를 온몸으로 견딘 사람이다.

10. 결론: 김부장은 ‘적’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마지막 경고다
김부장은 기득권이 아니다. 그는 한국식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아래 열거한 그 모든 것이 사라지기 직전에 남겨진 잔여적 인간이다.
- 금융화된 부동산 구조
- 자산 중심 계급체계
- 노동 착취
- 조직 권력
- 가부장제
- 세대 분열 전략
그는 시대의 승자가 아니라 시대가 만든 구조적 실패의 표본이다. 따라서 ‘김부장을 비판한다’는 행위는 그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경제·정치·젠더·조직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급진적 요청이다. 김부장은 자본주의가 더는 인간을 지탱해주지 못한다는 마지막 경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