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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로 대출 받는 고신용자들에게 0.1%P만이라도 이자 부담을 더 시키고, 금융 접근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좀 더 싸게 돈을 빌려주면 안 되느냐.”

대통령 이재명이 9일 국무회의서 꺼낸 제안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권대영은 서민 금융을 위한 금융권 특별 기금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익이 넘치는 금융사들이 출연하여 공동 기금을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피아의 달콤한 속삭임 경계하라.”

최근 홍익대 교수(경제학)에서 정년 퇴임한 전성인(65)은 “경제 교과서에서 찾을 수 없는 듣도 보도 못한 관치금융”이라고 혹평했다. “관치금융을 하고 싶은 이재명의 속내가 드러났다”고도 비판했다.

전성인은 대표적 개혁 성향 경제학자다. 관치금융과 재벌 중심 경제 정책을 비판해 왔다. 정부·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상법 개정과 주식 시장 개혁은 그가 오랫동안 비판하고 연구해 온 주제다.

11일 서울 광화문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전성인은 이재명 정부가 기치로 내건 ‘코스피 5000시대’에 관해 “5000이라는 숫자는 버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건강한 주식 시장 토양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피아의 달콤한 속삭임을 경계하라”고도 당부했다.

모피아:

옛 재무부(MOF, Ministry of Finance) 출신 인사들을 가리키는 말. 재무부 영문 약자 ‘MOF’와 조직폭력배를 뜻하는 ‘마피아’(Mafia)의 합성어. 재무부 후신인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고위 경제 관료들이 정치, 금융 분야에서 막강한 인맥을 형성하고 조직적으로 힘을 모으는 모습을 마피아에 빗댄 것이다.

“세금은 표 떨어지니 은행 팔 비틀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고신용자 대출금리를 올리고 저신용자 대출금리는 낮추자고 발언해 논란이다. 이것도 ‘관치금융’인가?

“금융 원리에 반하는 관치금융이다. 고소득층이 저리 대출을 받는 건 그 사람들이 로비해서가 아니다. 빚을 져도 부도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소득층 금리가 높은 까닭은 부도 확률이 높아서다. 그래서 신용도를 반영한 가산금리*가 존재하는 거다. 물론 가산금리 폭이 과하고 볼 여지는 있다.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네 가지 방법론이 있다. 첫째, 한국은행 총재를 압박해 기준금리를 낮추게 한다(①번). 둘째, 은행장들을 한데 모아 괴롭힌 뒤 금리를 억지로 낮추게 한다(②번). 셋째,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제대로 산정하는지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살핀다(③번). 넷째,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는 저소득층을 선별해 정부 재정으로 정책금융을 제공한다(④번). 네 가지 방법 가운데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

가산금리:

한국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에 신용도 등 조건에 따라 덧붙이는 금리. 대출 등의 금리를 정할 때 기준금리에 덧붙이는 위험 가중금리를 말한다. 신용도가 높아 위험이 적으면 가산금리는 낮아진다. 반대로 신용도가 낮아 위험이 많으면 가산금리는 높아진다.

— 마지막 방법이 적절해 보인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방법은 가능한 이야기다. 은행업은 완전 경쟁 산업이 아니다. 담합하려는 구조 유인이 있다. 공정위 감시(③번)가 필요하다. 정부가 정부 돈으로 직접 지원하거나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저리 대출을 해주는 것(④번)은 괜찮다. ①번은 트럼프가 하고 있는 짓이다. 감시·견제가 이뤄지고 있는 한국에서는 실현하기 어렵다. 우리는 주로 ②번을 목격한다. 은행장을 불러 이재명이 한마디하면 권대영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은행 임원을 모아 ‘대통령이 이리 말씀했는데, 상생 협력 방안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 압박이다. 금융감독원은 현장에 나가 은행 뺨 때리는 역할을 한다. 교과서는 ①번과 ②번은 하지 말라는 거다. 고소득자로부터 돈을 거둬 저소득층에게 나눠줄 거라면 세금을 거두면 되는 일 아닌가? 세금은 표 떨어지니까 은행권 팔을 비틀고 있는 거 아닌가?”

— 저소득층에 금융 지원이 필요한 건 사실 아닌가?

“저소득층에 금융 지원을 하지 말라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은행이 과도한 이익을 보고 있다면, 이자 장사 근원이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금리가 실제 차주의 부도 확률에 비해 너무 높은 건 아닌지 감독 기구가 엄밀히 살펴야 한다. 부당한 담합이라면 과징금 같은 제재를 내릴 수 있다. 지금은 은행장을 불러 ‘이자 장사 내막을 들여다보지 않을 테니 상생 금융 좀 하라’며 이른바 ‘쪼인트’(관절을 뜻하는 영단어 ‘joint’에서 비롯한 표현)를 까고 있다. 가산금리를 과도하게 받고 있다면 상환 연장 등 채무 재조정을 취할 수도 있다. 부자한테 이자 0.1%를 더 높여받자는 건 경제 교과서에서 찾을 수 없는 듣도 보도 못한 관치금융이다.”

전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은 지난 2월 6일 오후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 불법 합병 사건 2심 판결 비평 좌담회에 참석했다. 사진=참여연대 제공.

“살살하는 채권 추심”은 어디에도 없다.

— 경기도지사 시절 이재명의 ‘기본금융’을 설계한 한 인사는 ‘중앙은행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은행은 정부 정책을 금융 차원에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하는가?

“나는 반대한다. 기본금융은 이번 대선보다 지난 대선(2022년 3·9 대선) 캠프서 더 본격적이었다. 누구나 필요 시 1000만 원까지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본대출’ 공약에 관여한 모 교수가 내게 자문한 적 있는데, 나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면 1000만 원을 직접 지급하는 게 더 낫다고 전했다. 왜 자꾸 은행에 저리 대출을 강요하느냐. 대출했다가 못 갚으면 어떻게 할 거냐. 채권 추심 안 할 거냐. 이렇게 묻자 ‘채권 추심을 하되 살살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세상에 살살하는 채권 추심이 어딨나? 은행이 받을 돈 못 받으면 업무상 배임이다. 신용정보회사가 은행 위임을 받아 추심 업무를 수행하면 기본대출이든 뭐든 똑같이 적나라하게 채권 추심이 이뤄진다. 신용불량자 된다. 왜 자꾸 못 갚을 사람에게 빚을 지우는 정책을 하느냐.”

— 민생지원금에는 찬성하는 입장 아닌가?

“그건 매우 잘했다. 소비 쿠폰 지급이 성장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정책 목표에 따라 국민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 국가 돈으로 하면 된다. 지급 대상이 전 국민이냐, 아니면 일부 취약 계층이냐, 이 논쟁은 부차적이다. ‘누구나 100만 원까지 빌려 쓰고 대신 임기 말까진 갚아라. 채권 추심은 살살하겠다’ 이런 정책을 할 바엔 국가 돈을 직접 주는 게 낫다. 현금 지급에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는 이들이 있지만 당장 얼어가는 경제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민생지원금 규모도 재정 적자를 심화할 만큼 크지 않다.”

금융위 조직 개편… “최악 중 최악” 혹평 왜?

  • 정부·여당은 7일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확정했다.
  • 기획재정부는 경제 정책 총괄·조정, 세제, 국고(결산) 정책을 담당하는 ‘재정경제부’(재경부)와 예산 편성과 재정 정책, 중장기 미래 전략을 담당하는 ‘기획예산처’로 쪼갠다. 신설하는 기획예산처는 국무총리실 밑에 둔다.
  •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 정책 기능은 재경부가 흡수한다. 금융감독 기능만 남는 금융위는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한다.
  • 현재 금융위 하위기관이지만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의 반민·반관 조직인 금융감독원은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하여 각각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
  • 조직 개편 시행은 내년 1월 2일부터다.
  • 관련 기사 : 모피아와 맞장 뜨는 이재명 정부, 조직 사수 로비에 의원실 문턱이 닳는다.
— 금융위원회 조직 개편 어떻게 평가하나?

“최악 중 최악이다. 이재명 대선 공약집은 금융위 개편 취지를 ‘정책과 감독 분리 및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은 공무원이 금융(산업) 정책과 금융감독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고, 비금융적 정책 목표를 위해 금융감독 권한을 남용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금융 정책은 ‘액셀러레이터’ 기능으로서 정부가 담당하고, 감독은 ‘브레이크’로서 공적 민간 기구가 담당하여 금융감독의 독립·자율성을 제고한다는 뜻이 공약에 담긴 것이다. ‘정부가 할 일과 민간 기구가 할 일을 구분하자, 이를 통해 관치금융을 통제하고 감독 기구의 독립·자율성을 높이자’는 게 핵심이었다. 지금은 단순히 쪼개기만 할 뿐이다. 조직 개편안을 보면, 현 금융위처럼 신설 금감위 밑에 사무처 형태로 모피아들이 군림하는 구조는 차이가 없다. 사무처 조직을 해체하고 금감위를 현 금감원의 내부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만들었어야 했다. 공무원이 금융감독을 쥐락펴락하는 행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잘 운영되고 있는 공적 민간 기구 사례가 있나?

“한국은행이 대표적 모범 사례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무자본 특수법인 한국은행의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내부 최고위원회다. 별도 법인격을 갖고 있는 외부 기관이 아니라 한국은행 안에 있는 조직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금통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전신인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 요직에 있던 경제 관료들은 금통위에서 모두 철수했다. 기획재정부가 한국은행 금통위 회의에 참석해 발언할 권한이 있지만 금통위 독립성을 위해 발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정부는 한국은행에 관한 경비 예산을 통제할 뿐이다. 금감원도 내부에 독립적인 최고 의사결정 기구를 설치하고, 현 사무처에 존재하는 금융위 관료들이 모두 철수한다면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일 테다. 한국은행 모델은 가장 확실하게 관료 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조직 형태다.”

—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에 구성원 반발이 크다. 금감원 노조와 직원들은 조직 개편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금감원 직원들이 더 큰 논점을 갖고 문제를 제기했으면 한다. 조직 개편 이유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민간 금융감독 기구 설치에 있다. 이번 개편은 ‘금융감독 기구를 정부와 정치권에 예속시키는 개악’이라고 비판해야 한다. 단지 왜 금감원을 쪼개느냐고 반발하면 ‘밥그릇 챙기기’라고 오인할 여지가 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는 금감원은 모피아 공무원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금융감독위’와 ‘재경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감독을 받아야 한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금감위, 재경부 공공기관운영위, 금감위 내 신설하는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 등 3중 관리를 받아야 한다. 모두 공무원 조직이다.”

“이재명, 관치금융 속내 드러냈다.”

— 여러 칼럼에서 금융위 문제점을 지적하며 ‘금융위 사무처에 포진한 관료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모피아’로 불리는 이들이 왜 문제인가?

“현재 형식적 권한은 ‘합의제 행정위원회’인 금융위원회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사결정과 업무 집행에 관한 실질적 권한은 금융위 사무처 조직이 행사하고 있다. 금융위 출입 기자들한테 ‘금융위가 누구냐’고 물어보라. 금융위원들이 아니라 관료부터 떠올릴 것이다.”

— 전문성 있는 관료가 감독 기능을 맡는 게 왜 그리 문제인가?

“모피아는 집권자 입맛에 맞게 관치금융을 대행하고, 그 책임은 국민에게 전가한다. 2002년 카드 대출 부실, 2011년 저축은행, 2020년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수많은 금융 사고 이면에 모피아가 있다. 금융업계와 정치권이 원하는 대로 금산분리, 자본 적정성 기준 등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한 뒤 문제가 생기면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긴다. 금융위 인사들이 금감원 수석부원장으로 가는 게 관행인데, 이들 모피아가 감독 기구를 좌지우지한다. 2013년 동양그룹 사태* 당시에도 금감원 내에서 동양그룹 계열사가 발행한 기업어음(CP)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가 올라갔지만 묵살됐다. 독립적이고 투명한 감독 기구라면 무분별한 규제 완화에 나설 수 없다. 금융위 사무처 조직을 해체해야만 금융감독, 금융 소비자 보호 원리가 구현된다. 이재명은 대선 과정서 이를 공약했지만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관치금융을 하고 싶다는 속내가 드러났다.”

동양그룹 사태:

2013년 동양그룹의 경영 부실과 사기성 회사채 발행으로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금융 파산 사건.

— 기재부를 ‘재경부’와 ‘예산처’로 나누는 조직 개편은 어떻게 평가하나?

“대통령실이 경제 정책을 주도하고 개혁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는 읽히나 개편 명분부터 잘못됐다. 이재명 정부는 왜 기재부를 쪼개려 할까? ‘무소불위 권력 기재부를 손봐야 한다’는 것 아닌가. 기재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나눴는데 두 기구를 합하면 공무원 수와 자리가 오히려 늘었다. 기존 금융위에서 금융 정책하는 공무원이 기재부로 자리를 옮기고, 기획예산처 장관 자리도 생겼다. 정부가 할 일, 민간이 할 일에 대한 분별이 필요하다. 관치금융, 금융감독은 정부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됐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주식 시장 개선 입법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법원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된다고 넓게 해석하면 될 문제였다. 영미권에서 주식회사는 신탁 원리가 기반이다. 경영진은 주주 위임을 받아 신탁 자금을 잘 운용할 책임이 있다. 이익을 내면 신탁을 맡긴 주주에게 배당 형태로 신탁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이에 비춰보면 법원은 ‘회사’를 협소하게 볼 게 아니라 위임 관계 실질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2009년 삼성에버랜드 사건*에서 아주 편협한 판례를 남겼다. ‘이사가 나쁜 짓을 해서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지만 회사에 손해는 없었으니 이건희는 무죄’라는 요지였다. 대법 판례는 잘못된 것이었다. 이후 어느 시점에 대법 전원합의체를 통해 판례를 변경했어야 했다. 지난 7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묻고 싶은 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이 없으면 이사는 주주에 대해서 책임을 방기해도 되나? 신설된 조항에 따라 이사가 ‘회사’와 ‘주주’에게만 의무를 다하면 문제가 없나? 회사와 주주 이외의 사람에게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없느냐는 거다. 도산 상태 기업이 있다고 해보자. 밀린 월급을 못 받고 있는 노동자는 무담보 채권자로서 사실상 주주와 유사한 성격을 띤다. 도산이 임박하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은 무담보 채권자까지 확장한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사는 주주와 회사 외에는 충실 의무를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법원이 폭넓게 해석하면 될 문제를 기존 조항에 ‘주주’를 끼워 넣으면서 ‘반쪽짜리 해법’이 됐다.”

삼성에버랜드 사건:

대법원은 2009년 5월 경영권 승계를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저가로 발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그룹 회장 고(故) 이건희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은 아버지 이건희로부터 61억여 원을 증여받아 1996년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 CB를 사들였다. 당시 삼성 계열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저가 발행 CB를 인수하지 않았고, 에버랜드 이사회는 남은 CB를 이재용 남매에게 배정했다. 아들에게 경영권을 편법 승계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검찰은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이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의무를 위배한 불법 행위라고 봤지만 대법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은 주주가 아니라 ‘회사’라고 판단했다.

— 상법 개정의 입법적 완결을 위해 ‘노동이사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교·의료·사회복지법인 등 비영리 공익법인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면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사립대의 경우 다소 유명무실해졌지만 개방이사제를 경험했다. 개방이사 대신 노동이사를 선임하거나 노동이사를 추가 선임하는 것도 방법이다. 직원, 교수도 노동자인 만큼 직접 이사가 되든지 아니면 추천 인사가 이사가 되든지, 어떤 방식이든 노동이사는 이사회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코스피 5000 시대? “숫자는 버려야 한다.”

—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시장에서 회수한 자기 주식은 당연히 소각해야 한다. 자사주 매입은 그 반대 개념인 신주 발행 사례에 준하여 실행하면 된다. 우리나라 신주 발행은 주주 평등 원칙에 따라 발행한다. 자사주는 주주 평등 원칙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일부 판례에 의해 회사가 자기 주식을 우호적인 제3자에게 처분*하는데, 시장에서 회수한 주식은 원칙적으로 소각해야 한다.”

—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기업 경영권 방어를 무력화*한다는 데서 우려가 적지 않다.

“총수가 기업 지배력을 더 높이고 싶으면 돈을 넣으면 된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강화하려면 시장에서 주식을 더 사면 된다. 돈 없이 회사를 지배하고 있으면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하면 지배권이 흔들린다’고 이야기하는 건 웃기는 처사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

자사주는 국내 총수 일가의 든든한 우군이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든다. 유통 주식 물량이 감소하면,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자가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매입해야 하는 주식 수와 비용이 늘어나게 되어 부담이 커진다.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총수 우호 세력에게 매각해 의결권을 확보할 수도 있다.

—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000 시대’ 열릴까?

“‘5000’이라는 수치는 버려야 한다. 정상적 수단을 통해 코스피를 활성화하여 자금 흐름 물꼬를 트겠다는 것에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다만 ‘코스피 5000 시대’는 선거 구호로 그쳐야 한다. 주식 시장 토양을 건강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지, 대통령 취임 100일에 주가가 올랐느냐, 떨어졌느냐 따위는 쓸모없는 이야기다.”

전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50억 원’을 유지할지, 아니면 과세 대상을 늘리기 위해 대주주 요건을 ‘10억 원’으로 완화할지, 논쟁이 아주 뜨거웠다. 정부는 ‘50억 원’을 유지할 생각이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 무엇이 원칙인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가 원칙이다. 납세자가 반대하니까 과세 대상을 늘리지 않겠다? 납세자가 싫어하니까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 어불성설이다. 납세자는 언제나 과세를 반대한다. 주가를 쳐다보고 제도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조세 형평에도 맞지 않다. 근로소득자 가운데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은 소득에 따른 세금을 계속 내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도 문재인 정권 때 여야가 도입키로 합의했다가 시행 시기가 다가오니 윤석열 정부의 폐지 추진에 이재명의 민주당이 동참했던 것 아닌가.”

— 한국 경제에 수많은 과제가 있다. 이재명 정권이 임기 초 막강한 권한으로 시급히 해결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새 정부에 제언한다면.

“취약 계층의 금융 부담을 완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수많은 반대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본대출’은 버리고, 채무 재조정 등 교과서에 있는 일을 하시라. 그 다음 관료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정을 정상화하는 방법이다. 빛이 안 나고 어려운 일이다. 집권자 본인의 욕심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은 모두 이 작업에 실패했다.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싶은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대통령한테는 무리한 주문일 수 있다. 이재명도 실패할 것 같다. 금융감독 체제 개편을 지켜보며 ‘이 사람은 관치금융을 못 놓겠다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부자한테 이자 0.1%를 더 걷자’는 말을 듣고는 ‘결국 관료에 발목 잡히겠구나’ 싶었다. 욕심을 버리시라. 좋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모피아의 포로가 된다. 욕심은 정상적인 정책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럴 때 모피아는 다가와 속삭인다. ‘우리가 대통령님 바라시는 정책의 목표를 이뤄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홀딱 빠지게 돼 있다. 유혹에 빠진 비용은 국민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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