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는 것, 이를 통한 부의 축적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러한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추구가 갖는 윤리적 위험성은 없을까?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몇 가지 실험을 살펴보자.
질문 1: 부자가 자기밖에 모른다는 건 그저 가난한 자의 냉소일까?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소명 의식에 따라 열심히 일한 사람이 부를 거머쥐게 되었고, 이것이 서유럽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의 빠른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자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 핵심에는 삶에 관한 성실한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변에서 ‘요즘에는 좋은 집안 애들이 마음도 착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와 같은 세계적 갑부들의 기부 소식은 연일 뉴스를 채운다. 그렇다면 부자들이 자기밖에 모른다는 생각은 그저 가난한 사람들의 시샘과 냉소에서 나온 걸까?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연구를 진행한 버클리(UC Berkley)와 토론토(Toronto) 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바로는, 사회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가 높은 사람의 윤리성은 하위 계층보다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교통 법규를 위반하거나 체스 게임에서 남을 속일 가능성이 높다. 이뿐만 아니다. 협상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직장에서 도둑질할 가능성 또한 높다. 연구에 등장한 일곱 가지 실험 중 두 가지를 좀 더 살펴보자.
캘리포니아에서는 주법에 따라 횡단보도 앞에서 차를 반드시 세워야 한다. 연구자들이 관찰한 차량 중 10퍼센트 가량이 횡단보도를 그냥 지나쳤다. 주목할 것은 고가 차량의 법규 위반 비율이 유독 높았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벤츠나 BMW와 같이 호화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횡단보도에서 차를 세우지 않는 비율은 평범한 차량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3~4배에 달했다.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의 합계에 따라 50불의 상금으로 지급하는 게임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소득 최상위층의 실험 참가자들이 주사위 숫자의 합계를 허위보고한 비율은 최하위층 참가자들보다 무려 약 4배에 달했다. 자신들의 수입에 비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도 안되는 돈을 위해 양심을 속인 것이다.

질문 2: ‘곳간에서 인심 난다’, 정말 그럴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 남에게 베풀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먹고 살기 바쁜 저소득계층은 베푸는 일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한 연구는 이런 생각이 편견에 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하위 계층 사람이 상위계층 사람보다 후하게 베풀고, 많은 돈을 기부하며, 타인을 돕는 데 힘쓸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에 대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평등주의적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동정심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질문 3: 부자는 비윤리적이고, 가난뱅이는 윤리적이다?
두 연구를 통해 부자는 자기밖에 모른다는 생각이 얼토당토않은 것이 아니며, 경제적 여유가 곧 이타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제기된다. 위 두 연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대개 비윤리적이고, 낮은 사람들은 다수가 윤리적이어야 하는데, 정말 그럴까?
서두에 언급한 버클리와 토론토 대학의 연구 중 네 번째 실험은 이 질문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먼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재산, 교육, 직업)를 최상위 계층 혹은 최하위 계층과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다. 통계 분석 결과 최상층과 비교한 집단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반대로 최하층과의 자신을 비교한 집단은 실제 사회경제적 지위보다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당신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자신을 비교할 때 초라해지고, 하루에 두 끼 이상 먹지 못하는 사람과 비교할 때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낀다면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잠시 후 연구자는 “다른 실험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위한 사탕인데 가져가셔도 됩니다”는 말을 남기고 약 30초 정도 자리를 비운다. 의도적으로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사탕을 ‘훔칠’ 틈을 주었던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인식에 따라 윤리적/비윤리적 행동 패턴이 갈렸다. 즉 자신이 지위가 높다고 느끼도록 유도된 집단이 반대 집단에 비해 약 2배가량 더 사탕을 챙긴 것이다. 자신이 가져간 사탕 만큼 아이들에게 돌아갈 사탕 몫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고도 말이다!
일련의 실험들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객관적 통계로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지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믿음이 행위의 윤리성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탐욕은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
달랑 연구 두 개를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모두 비윤리적이며, 낮은 사람들은 모두 윤리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지위 및 그에 관한 개개인의 인식이 행위의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 변수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부유한 사람들이 탐욕에 대해 갖는 우호적인 태도가 비윤리적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버클리와 토론토 대학 연구진들 분석에 주목하며 크게 두 가지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우리가 왜 탐욕스러워지는지를 살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련의 경제학 수업을 수강한 MBA 학생들은 탐욕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고, 다른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명제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탐욕스런 행위에 대해 좀 더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즉, 탐욕은 일확천금과 같은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니라 경제학 강좌 수강이나 부동산 투자 성공 스토리 읽기와 같은 일상적 경험에서 생겨나며, 상황에 따라 비윤리적 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 그렇다면 ‘깨끗한 마음’을 갖기 위한 명상보다는 탐욕을 부추기는 사람이나 조직, 미디어를 멀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 탐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다
탐욕이 개개인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사회 전체가 탐욕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고등학생의 약 40퍼센트가 현금 10억이 생긴다면 1년쯤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답했다는 보도는 그 자체로 충격이지만, 잠재적 탐욕이 비윤리적 행동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듀크대학의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사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소수의 엄청난 타락이 아니라 다수의 작은 비윤리적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탐욕을 부릴 필요가 없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탐욕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질서 속에서 욕심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존본능이 탐욕을 정당화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협동과 상생을 축으로 하는 사회경제적 질서를 통해 탐욕이라는 개인 심리를 다스려야 한다.
우리의 협동이 너와 나의 탐욕을 제어할 때라야 착한 사회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