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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칼럼] 저널리즘 긴장과 갈등을 취재 윤리나 규범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으로 이전시켜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채영길/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4분)

소문자 저널리즘과 대문자 저널리즘

저널리즘은 기자 개인의 실천이자 직업윤리를 뜻하는 소문자 저널리즘(“j”ournalism)과 그보다 일반적인 높은 차원의 윤리적 제도 체계, 곧 대문자 저널리즘(“J”ournalism)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계 등에서 언론에 대한 논쟁이 촉발될 때 두 층위는 뒤엉켜 있다가 결국엔 ‘대문자 저널리즘’의 윤리성과 제도적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식으로 정리되곤 하였다.

그러나 “하였다”라는 과거 시제에서 알 수 있듯 이제 저널리즘에 대한 논쟁은 희망적 기승전결식 정리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늘날 저널리즘 논쟁이 더 이상 저널리즘의 실천, 윤리, 제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저널리즘 제도와 체계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문자 저널리즘은 둘째치고 대문자 저널리즘의 위상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점차 저널리즘은 ‘견고한 제도’가 아니라, 재구성되어야 할 낡은 체제로 간주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저널리즘을 둘러싼 갈등 양상을 살펴보면 저널리즘 그 자체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쟁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이한 집단들이 언론 공론장 내에서 치열하게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이 분화되어 서로의 이데올로기 영토를 주장하며 다투는 형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최근 레거시 저널리즘과 유튜브 저널리즘 간 긴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레거시 저널리즘과 유튜브 저널리즘 사이 갈등은 통상적 수준의 보도 방식이나 취재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이라는 제도의 이념적 기반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벌어지는 첨예한 대결처럼 보인다.

유튜브와 레거시 저널리즘, 헤게모니 경쟁 중

유튜브 저널리즘의 온라인 광고 및 후원 중심 수익구조는 전통적 광고에 의존해 온 레거시 저널리즘의 경제적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투명성, 참여, 상호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유튜브의 생산양식은 중립성과 객관성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유지해 온 레거시 저널리즘의 이념적 기반에 근본적인 모순을 제기하고 있다. 나아가 과거 레거시 저널리즘이 독점적으로 행사하던 의제설정 권력이 유튜브 저널리즘과의 경쟁구도로 이동하고, 이제는 그마저도 대중적 영향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미 두 저널리즘의 대립은 단순한 매체 간 경쟁이 아니라 공론장 권력을 둘러싼 이념적 전쟁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 대립이 생산양식과 분배구조, 노동관계를 둘러싼 적대적 구도로부터 발생한 것처럼 레거시 저널리즘과 유튜브 저널리즘 간 갈등 또한 언론의 생산양식, 분배구조, 노동관계, 특히 뉴스 생산자와 수용자 관계의 근원적 차이에서 발생하고 있다.

저널리즘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본격적으로 발화된 시점도 흥미롭다. 유튜브 저널리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과 낙인은 내란과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기가 일단락된 직후 정치 체제의 불안정성은 어느정도 사라졌으나 권력 체계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레거시 저널리즘을 중심으로 한 저널리즘 헤게모니 쟁투가 재점화되면서 갈등의 수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레거시 저널리즘은 자신들의 윤리와 시스템을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이성적 숙의 공론장의 수호자로 정당화하는 반면 유튜브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반이성, 감정적, 편향적 선동집단이라고 낙인을 찍고 있다.

김어준 뉴스공장 둘러싼 논쟁

▲ <주간경향> 1645호에 ‘공장장 가라사대 – 팬덤 권력’ 기사가 실렸다. ©주간경향 누리집

유튜브 저널리즘의 언론 권력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강경한 목소리도 들린다. 최근 주간경향은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을 “정당의 일부 기능을 대신하고 비판과 견제가 어려운  ‘팬덤 권력’이라 규정하였고, 한국일보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은 김어준과 같은 “인플루언서는 필터링한 정보와 음모론으로 지지층의 확증편향을 강화시키고 적대적 진영을 지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조선일보의 오피니언 칼럼은 더 자극적으로 그를 ‘사기꾼 유형’으로 묘사하면서 정치적 정당성과 도덕적 신뢰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방은 사실관계 해석을 둘러싼 논쟁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김어준을 포함한 유튜브 저널리즘에 대한 정당성을 훼손하는 프레임을 동원한 언론권력 헤게모니 경쟁으로 읽힌다.

더 나아가 이러한 주류 언론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언론학자들 역시 이러저러한 이론과 개념을 바탕으로 유튜브 저널리즘을 “정치적 극화(Polarization)”를 심화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권력화하는 “비시민적” 이데올로기 증폭기로 비판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일부 레거시 언론과 학자의 이러한 저널리즘 담론 연대는 시장과 자유시장주의 학자의 연합처럼 보수적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언론자유를 도그마로 전유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레거시 저널리즘과 유튜브 저널리즘의 긴장 관계에도 한국의 유튜브 뉴스 이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지형을 인위적으로 훼손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당분간은 유튜브와 레거시 저널리즘 간 언론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헤게모니 경쟁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왕 저널리즘의 이념적 쟁투 양상이 이렇게 시작된 만큼 이제는 이를 진지하게 공식적인 사회적 의제로 수면 위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민주적 저널리즘 향한 전향적 고민이 필요한 때

그 방법으로 저널리즘을 둘러싼 긴장과 갈등을 단순한 취재 윤리나 규범이라는 도덕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으로 이전시켜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정치적 차원’이란 새로운 저널리즘을 구상하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하여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이 기존 저널리즘을 과감히 재평가하고 새로운 저널리즘을 구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의미다.

그리고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레거시 저널리즘을 ‘앙시앙 언론체계’로 이전시키는 것을 동반할 것인데 레거시 저널리즘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불편함이 저널리즘 논쟁을 더 민주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문을 여는 첩경이라면 그러한 불편함과 거부감은 내려놓아야 한다. 이 정치적 언어 속에서 ‘무엇이 민주적 저널리즘인가’라는 질문과 진보적인 논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발전은 구체계 무덤 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 민주주의적 실천, 시민적 검증, 제도적 구성의 과정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충실화되는 가운데 발명될 수 있다. 이 모든 재정의와 실천은 당연히 저널리즘이 어떠한 민주적 권력구조에 놓여야 하는가에 대한 정치적 기획과 연결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저널리즘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 민언련 칼럼

민언련 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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