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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는 필요했다.”(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2013년 5월 18일, 연합뉴스)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인 납치와 인신매매를 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본의 입장. 한국과의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완전히 법적인 해결을 마쳤다. 조약을 납득할 수 없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된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2013년 5월 27일, 오마이뉴스)

“민족의 자긍심이 걸린 만큼 (위안부 문제를) 확실하게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하는 것이 옳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열풍] 2013년 7월호, 2013년 7월 20일, 오마이뉴스)

종군 위안부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시간은 쉬지 않는다

차기 일본 총리로까지 주목받는 인기 정치인이 ‘위안부는 필요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현실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는 동안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하야오 감독은 아베 총리를 향해 종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다행스럽게도 그 인기 정치인이 대표로 있는 일본유신회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 아베 총리는 역풍을 고려해 위안부 문제에 거리를 두는 사이, 위안부 문제는 또 다른 이슈들에 묻혀서 희미해진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남겨진 시간은 이제 많지 않은 것 같다. 도대체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당연한 질문이다. 꼭 필요한 질문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 할 수 없는 질문이다.

‘평화뉴스’가 전한 암울하고 충격적인 소식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매체 ‘평화뉴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여성가족부 조윤선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위안부 할머니를 청와대에 초대할 것으로 요청했지만, 박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는 것.

해당 기사는 발행(오후 1시경) 당일 여성가족부 반박 입장을 수용해 보완, 수정된 바 있는데(오후 11시경) 수정되기 전 기사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거절’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유명 게시판에 그대로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된 수정되기 전 기사
수정 기사에서는 여성가족부 입장을 보완하고, 취재원 한 명을 익명처리한다

평화뉴스 보도 이후 몇몇 매체에서 비슷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미디어오늘’처럼 박 대통령의 ‘침묵’을 문제 삼는 매체비평지도 있었고, 오마이뉴스처럼 평화뉴스 보도 내용을 간접 인용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하는 매체도 있었다.

분노가 터지다

네티즌은 즉각 분노를 표했다. 당연한 분노였고, 정당한 비판이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게시판에서 ‘박 대통령이 위안부 할머니와의 만남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참담함을 토로했다. 트위터 반응을 다시 돌아보자. 평화뉴스 기사는 트위터에서 4,875회 링크 인용됐고, 기사 발행 당일에만 4,271회의 관련 멘션을 유발했다(2013년 8월 1일 오전 현재).

평화뉴스 기사가 트위터에서 인용되고, 이야기된 횟수  탑시(Topsy) 화면 발췌 편집
평화뉴스 기사가 트위터에서 인용되고, 이야기된 횟수
탑시(Topsy) 화면 발췌 편집 (2013년 8월 1일 오전 7시 현재)

평화뉴스 해당 기사를 제목과 주소만 단순 인용해 소식을 전한 트윗을 제외하고, 구체적인 논평이 더해진 트윗들을 발췌해서 그 일부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트위터에서 네티즌이 보여준 비판 의견들
트위터에서 네티즌이 보여준 비판 의견들

이상한 반격  

하지만 곧이어 정부부처들의 반격이 이어졌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물론이고, 이 종군 위안부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는 부처의 공식 트위터에서까지 ‘사실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비슷비슷한 해명과 반박이 이어졌다.

정작 청와대 트위터는 가만히 있는데, 관련 없는 정부부처의 트윗들이 ‘토요일’에 총출동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었다(관련 보도: 미디어오늘한국경제 ‘취재수첩’) 심지어 ‘소방방제청’과 ‘중소기업청’ 트위터까지 나서서 ‘오해입니다’는 취지의 트윗을 쏟아냈다.

박근혜는 위안부 할머니 만남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우선 결론을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할머니와의 만남을 거절했다는 평화뉴스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사실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이 판단은 평화뉴스의 해당 기사가 수정 전 기사와 수정 후 기사 모두를 대상으로 한 판단이다.)

우선, 최봉태 위원장의 진술을 살펴보자.

최 위원장은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아주 유력한 취재원이다. 하지만 조윤선 장관이 청와대에 공식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가 아니다. 실제로 그런 발언을 했다고 하는 사람은 기사에서 ‘다른 변호사’로 나온 사람이다. 즉, 최 위원장은 ‘전문'(당사자가 아닌 남이 들은 이야기)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 최 위원장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 높은 평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에 관해서는 취재원으로서의 중요성이 크지 않다.

기사에서 최 위원장이 ‘박 대통령의 거절’ 출처로 인용한 양정숙 변호사는 슬로우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자가 소설을 썼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기사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더불어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가 최 위원장의 증언을 교차 확인하기 위해 기사 발행 전에 한 통화에서 양 변호사는 “(기자가) 쓰려는 기사 취지는 내가 해석한 것과는 정반대”라고까지 말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양 변호사 역시 박 대통령이 만남을 거절했다는 기사의 내용을 확인해줄 수 있는 출처는 아닌 셈이다.

끝으로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도 “현재로서는 청와대와 여성가족부가 위안부 할머니와의 만남을 검토 중이고, 타이밍을 조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인정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것은 사실 확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즉 기자가 정보원을 통해 확정하려는 ‘어떤 사실 행위'(여성가족부의 요청, 청와대의 거절)에 관해 취재원조차도 서로 의견이 정반대로 갈리는 상황에서 일부 취재원의 말만 믿고 사실로 확정한 데에서 생긴 문제다. 즉, 사실로서 입증되지 않은 사안을 어느 한 쪽의 ‘정치적 해석’만을 신뢰해 사실로 확정한 데에서 비롯된 문제다.

즉, 조윤선 장관이 2013년 7월 8일 여성변호사 대회가 끝난 뒤의 저녁 식사에서 ‘청와대에 보고했고, 박 대통령이 거절했다’는 말을 했다는 점은 현장에 있던 양정숙 변호사의 말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부정되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발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청와대가 거절한 것인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청와대가 거절했다’ 등으로 확대하여 해석된 셈이다.

이 점에 관해 평화뉴스 측은 ‘공개할 수 없는 근거’가 있다고만 강조하고, 그 물적 근거를 밝히지는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조 장관의 공식 요청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요청이 없었으므로 박 대통령은 거절할 수조차 없었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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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를 ‘생략’하다

‘위안부 할머니 만남 외면 논란’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취재원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이 점은 물론 중요하다). 이번 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가족부에 관한 사전 취재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기사는 두 가지 핵심 사실관계를 확정해야 비로소 “논란”으로서의 가치가 생긴다.

우선 1) 여성가족부가 위안부 할머니 청와대 초대를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2) 박 대통령이 이를 거절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모두 확인되지 않았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거나, 이러한 사실이 없다고 말한다. 즉, 발언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은, 허공 위에 세워진 기사인 셈이다.

또 하나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위안부 문제가 아주 민감한 정치, 외교적 쟁점이자 사회 현안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더불어 여성가족부 장관과 대통령은 일개 사인(私人)이 아니라 각자 헌법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인이다. 그리고 공안이 공적인 현안을 다루는 데는 당연히 ‘형식적으로 엄격한 절차’를 요구받는다.

밀실에서 현안 이슈를 논의할 수도 있고, 그 밀실에서의 허심탄회한 논의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중요한 쟁점에 관해서는 정부에서 공식적인 경로로 논의되어야 옳고, 그런 논의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옳다. 이를테면 국무회의 같은 자리에서 논의될 때 공식성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전적으로 평화뉴스만 잘못한 것일까. 그리고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토대로 산불처럼 일어난 그 수많은 네티즌들 정의감이 잘못일까. 이들은 깊은 성찰 없이 성급하게 진보연하면서 깨방정 떠는 ‘깨시민’으로 조롱받아야 하는 걸까.

문제의 본질은 ‘침묵’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기사가 갖춰야 하는 요건을 살피고, 고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게 ‘확정된 사실’을 통해서만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토론의 장이 열리고, 그 공간에서 이성에 바탕을 둔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형식적 결격 때문에 문제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문제의 본질에는 무엇이 있는가. 다시 질문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에는 여전히 “위안부는 필요했다”고 입을 놀리는 일본의 극우 정치인이 있고, 하루하루를 천 년 같은 고통의 무게로 살아가는, 아니 버텨내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여성가족부는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담팀을 구성했고, 그 전담팀에는 외교통상부와 여성가족부, 국가기록원은 물론이고, 대한변협(박선아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가 합류 예정)과 위안부 문제 애니메이션을 찍은 영화감독까지 포함되어 있다며, 열심히 보고서도 준비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 말, 의심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해주길 바란다.

평화뉴스는 결과적으로 오보를 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갈 것도 없이 조윤선 장관이 청와대에 공식 요청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했다는 여성가족부도, 이런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는 당사자도 모두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위안부 할머니의 청와대 초대’ 문제는 열심히 검토하면서 준비 중인 문제고,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시기를 조율 중인 문제다. 김영화 기자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나는 오보를 낸 평화뉴스 해당 보도를 탓할 생각이 전혀 없다. 평화뉴스는 사실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음에도 진실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뉴스가 전하는 가장 커다란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 국민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야 할 정부가 너무 오래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국민들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고, 준비 중이며, 검토 중이고, 관련 민간 관련 행사를 계획 중인’ 여성가족부와 청와대.

위안부 문제 해결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을 조율하고 있다는 말, 좋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없다. 이제는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갈 때다. 평화신문의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여러 부처를 동원해 홍보에 나선 정부의 적극성을 위안부를 보듬는 데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남아 있는 할머니들과 함께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김복동 할머니, "니들은 우째 구경만 하노"  출처: GEO 1997년 8월호  재인용 출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역사관
김복동 할머니, “니들은 우째 구경만 하노”
출처: GEO 1997년 8월호
재인용 출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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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아니 거절안했다면 지가 찾아가서 손 한번 잡아드리는게 어렵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어렵냐고 대통령이 모범을 보이긴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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