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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가 실패한 기본소득 실험을 독일이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AI, 디지털화,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식량, 임대료 및 사회 참여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기본 소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특히나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 위기와 그로 인한 노동 시장 약화로 코로나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 변화는 기본소득 논의를 끌어냈다.

독일 기본소득 실험 개요 

독일 기본소득 협회, 막스플랑크 연구소, 쾰른대가 협력하여 진행할 독일경제연구소(DIW)의 ‘기본소득’ 연구 프로젝트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100만 명의 신청자를 받는다.
  2. 그중 직장인에서부터 실업자, 연금수급자,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120명의 실험군을 선정한다.
  3. 실험군과 통계적으로 아주 유사한 1,380명의 대조군를 선정한다.
  4. 실헌군에게 월 1,200유로(약 170만 원)총 43,200유로(약 6천만 원)의 기본소득을 3년간 지급한다.
  5. 유일한 조건은 18세 이상독일 거주자다.

연구는 기본소득을 받는 120명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조군에 속한 1,380명의 삶을 온라인 설문지 응답 방식으로 기록한다. 실험군의 행동 변인이 기본 소득인지 확인하려면 ‘통계적 쌍둥이(짝패)’라고 할 수 있는 대조군의 삶과 감정을 세밀하게 비교해야한다.

이상적으로는 한 쌍의 실험 ‘짝패’를 비교함에 있어 나머지 모든 실험을 위한 질문은 동일하고, 오로지 기본소득이냐 아니냐는 질문만 달라야한다. 그런 다음 참가자의 직장생활, 재정, 가족 및 사회적 접촉에 중점을 두고 실험을 진행한다. 심리적 변화, 특히 스트레스 수준을 분석하기 위해 머리카락 샘플을 평가하기도 한다.

독일 기본소득 논의 (세 가지 모델)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기본소득에 관해 대학과 경제연구소의 수 많은 프로젝트와 과학연구가 수행되었고, 독일에는 크게 세 가지 기본소득 모델이 있다.

1. 연대시민수당 (by 기민당) 

첫째, ‘연대시민수당’이다. 보수정당 기민당의 유명한 정치가 디터 알트하우스(Dieter Althaus)와 토마스 슈트라우바르(Thomas Straubhaar. 경제학자)가 제안한 기본소득은 기존 세금과 사회 시스템을 단순화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이 단순화로 절감한 사회적 비용으로 모든 독일시민들의 생계수준이 보장된다. 동시에 충분한 수입이 창출 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소비세와 소득세가 부과되어 공백이 상쇄된다.

시민수당 또는 세금 책임을 계산하는 데는 시민수당의 25%를 공제한다. 예를 들어 수입이 월 1,500유로(약 210만 원)인 사람들은 ‘연대시민수당’으로 더 많은 돈을 지급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임금 일자리가 더욱 매력적일 수 있다. 이 모델은 모든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디터 알트하우스(Dieter Althaus, 왼쪽), 토마스 슈트라우바르(Thomas Straubhaar)
디터 알트하우스( 왼쪽)와 토마스 슈트라우바르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4.0)

2. 해방기본소득 (by 좌파) 

둘째, 해방기본소득. 좌파들이 제시한 ‘해방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의 ‘연대시민수당’과 일치한다. 그러나 해방기본소득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의 기준은 개인소득이 아니라 총국민소득에 기준하여 지급한다. 모든 노동자와 소득자의 절반은 16세부터 기본소득을 지급 받으며, 아동은 그 절반의 금액을 받는다.

주정부들은 소득세 33.5%를 통해 이 모델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지출 재원을 조달한다. 특히나 고소득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자산과 고소득에 대한 세금은 급격히 증가한다. 자녀수당, 학자금 대출과 같은 복지 혜택은 이 모델에서 삭제되지만, 연금, 건강 및 실업보험은 재설계되어 운용된다.

3. 괴츠 베르너의 제안 

셋째, 독일의 가장 큰 약국체인인 DM(dm-drogerie markt)의 창립자 괴츠 베르너(Gotz Werner)가 제안한 기본소득 및 소득세가 있다. 상술한 두 모델의 접근방식과 달리 베르너의 모델은 소득세 대신 상품 및 서비스 소비세 부과에서 재원을 마련한다. 소득세와 기업세가 완전히 제거될 것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더 저렴할 것이고, 인간 노동을 기계로 대체할 인센티브도 줄어들 것이다. 기계에 세금이 부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델은 역-세금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을 보호하고, 이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재분배와 사회정의는 베르너의 비전에서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은 1,000유로로 모든 사회보험과 혜택을 대체한다.

괴체 베르너 (2010년 당시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2.0)
괴체 베르너 (2010년 당시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2.0)

타산지석: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연구들은 오늘날 세계화와 디지털화 정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핀란드의 조건없는 기본소득 실험이 이번 연구 방향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핀란드는 2017년과 2018년에 무작위로 선택된 2천 명의 장기 실업자에게 면세 혜택과 조건없이 매달 560유로를 지급했다. 핀란드가 제시한 대차대조표에 따르면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은 대개 더 나아졌고, 안전한 일정 소득은 참가자들의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핀란드 실험은 노동시장에 대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명시적으로 입증할 수 없었다(고용효과는 적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2017,2018)에서 참가자들의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경제적 효과는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2017,2018): ‘삶의 질’은 높아졌다. 하지만 경제적 효과는 명시적으로 입증할 수 없었고, 고용효과는 적었다.

‘조건없는 기본소득’ 찬 vs. 반

독일 기본소득협회는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을 지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주정부는 이미 사회 지출에 연간 9,000억 유로(1,270조 원)을 지출하고 있으며, 기본소득 이전에 사회 복지를 관리, 감시하고 운영해야만 하는 대규모 행정 장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돈을 재분배하는 방법을 통해 충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 기본소득협회는 단순히 이론만 주장한 것이 아니다. 이미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14만 1천 명이 기부한 지원금으로 600명을 선정해 1년간 매월 1,000유로, 약 140만 원의 기본소득과 면세를 조건으로 실험했다. 연구원들은 연방 통계청이 정기적으로 계산하는 빈곤 임계값(독신자 기준 현재 월 약 1,130유로, 연간 약 13,600유로)보다 약간 높은 값(한달 1,200유로, 1년 14,400유로)을 정했다. 빈곤층의 소득 수준보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Ipsos 연구에 따르면 독일의 많은 이들이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보는데, 그 연구 결과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독일인 52%가 기본 소득 도입에 찬성하고, 22%가 반대한다
  •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계층은 다음과 같다.
    • 저소득층
    • 젊은 층
    •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 정치 의식이 진보적일수록
2013년 10월4일 모든 국민에게 월 2,500 스위스프랑(우리 돈 약 300만 원)을 지급하는 걸 골자로 한 기본소득법 국민발의안이 12만여 명의 시민이 서명해 연방의회에 부쳐졌다. 이 날 법안을 주도한 시민단체 회원들은 연방의회 앞마당에 스위스 국민 800만 명을 상징하는 5라펜 동전 800만개를 뿌려놓고, 발의안 통과를 맘껏 축하했다. 기본소득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에 부쳐졌지만, 2016년 6월 5일 찬성 23.1%, 반대76.9%로 부결됐다. (출처: © swissinfo.ch )
스위스에서는 2013년 10월4일 모든 국민에게 월 2,500 스위스프랑(우리 돈 약 300만 원)을 지급하는 걸 골자로 한 기본소득법 국민발의안이 12만여 명의 시민이 서명해 연방의회에 부쳐졌다. 이 날 법안을 주도한 시민단체 회원들은 연방의회 앞마당에 스위스 국민 800만 명을 상징하는 5라펜 동전 800만개를 뿌려놓고, 발의안 통과를 맘껏 축하했다. 기본소득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에 부쳐졌지만, 2016년 6월 5일 찬성 23.1%, 반대76.9%로 부결됐다. (출처: © swissinfo.ch )

조건없는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기본소득이 기존의 주정부 복지정책보다 공정한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 임금 수준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령 기후변화에 맞서고 싶어하는 기업가와 연구원들은 기본적인 욕구나 상업 행위를 다루는 직업을 가지지 않고도 인류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에 전념할 수 있다.
  • 간호, 육아와 같은 힘든 직업과 저임금 직업의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다.
  • 노동시간을 줄여  여가 활동이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에 대한 지원과 보상이 쉬워져 실업 문제가 부분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 궁극적으로 AI, 자동화, 디지털화의 사회적·산업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 조세제도를 단순화하여 사회복지시스템과 관료적 복잡성이 감소할 것이다.

조건없는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대다수 시민이 ‘일하기 싫어하는 복지국가’로 퇴행할 수 있다.
  • 기본소득을 받으려는 이민자가 증가할 것이다.
  • 사회적 불평등이 오히려 더 심화할 것이다.
  • 세금제도 개편으로 자금조달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다. 연방정부가 자금조달을 하지 못할 경우 납세자들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찬반 찬성 반대

현재 독일의 인구 수준을 고려할 때, 모든 시민이 한달 1000유로(약 140만 원)의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약 1조 유로(약 1,400조 원)의 자금조달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한 자금은 연방예산에서 쉽게 유용할 수 없다. 기본소득 모델들은 하르츠 법안(Hartz IV: 노동시장 개혁안)[footnote]하르츠 법안은 독일의 ‘아젠다 2010’에서 슈뢰더 총리의 적록연립정부가 구성한 하르츠 위원회에서 2002년 8월에 급부 중심의 사회국가 기본체계를 수정한다는 내용의 개혁안이다. 하르츠(Hartz) I~IV는 2002년 2월에 폴크스바겐 사의 노동이사 하르츠(Peter Hartz)를 위원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하르츠 위원회가 같은 해 8월에 제시한 4단계 노동시장 개혁 방안이다. (출처: 위키백과 ‘하르츠 법안’ 중에서) [/footnote], 연금, 아동 수당, 학자금 대출 및 연방 고용청과 같은 행정기구에 대한 비용과 같은 사회적 혜택을 제거하면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 소비세와 법인세를 조정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현재 독일 정부의 1년 예산은 2,000조 원가량이다.

코로나19와 독일 기본소득 실험 

무엇보다 독일 기본소득 실험이 공적인 영역에서 진행될 수 있었던 건 자영업자와 프리랜서를 파멸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예컨대 좌파당을 비롯한 독일의 좌파 진영에서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하르츠 법안(Hartz IV: 노동시장 개혁안)의 폐지를 요구하며 더 완화된 기준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요구해왔지만, 관철되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독일 정부는 신속히 움직여 4월부터 최소 6개월 동안 독일의 직업센터는 실업수당II(ALGII과 Hartz IV)를 신청하는 사람들의 자산과 월세를 더는 확인하지 않고 지급했다.

소득 손실을 겪고 있는 부모를 위해 지난 4월부터 가족의 평균 소득을 통한 혜택 수급 자격을 완화하여 신청자는 소득 데이터만 표시해도 긴급 아동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작센주와 튀링겐주를 비롯한 여러 연방주에서 탁아소에 보육비를 지불하지 않도록 하였고, 니더작센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의 여러 연방, 도시들이 부모에게 보육비를 지급했다.

또한, 코로나19 위기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대차법을 개정했다. 코로나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임차인은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퇴거당하지 않는다. 물론 임대료를 제때 내야 하는 임차인의 의무는 남아있지만, 임대인의 임차권 종료 권리는 주거 및 상업용 공간 임대 모두에서 제한된다.

또한, 소득을 잃는 등 결과적으로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은 연기 규정의 도움을 받아 3개월간 모든 소비자 대출 계약의 원금 및 이자 상환을 중단할 수 있다. 동시에 연방정부는 전기 및 가스, 물, 전화와 인터넷과 같은 기본 서비스에 대해 3개월간 요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차단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비용은 연방 정부가 임시로 지원토록 했다.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 부모, 임차인, 프리랜서 등을 위해 독일 정부는 관련 법을 개정하고, 공적 지원을 확대했다.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 부모, 임차인, 프리랜서 등을 위해 독일 정부는 관련 법을 개정하고, 공적 지원을 확대했다.

독일은 이렇게 코로나 기간동안 많은 자영업자들과 실업자를 지원해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믿음의 도약 토대를 마련했고, 그로써 삶에서 기초생활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국민들에게 환기하게 했다.

이번 실험은 기본소득이 시험 대상자의 직업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주목한다. 즉, 사람들이 인센티브와 보상을 받을 때만 행동하는지, 기본소득이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되는지, 결과적으로 삶의 만족도와 사회적 헌신도가 높아지는지와 같은 심리적 측면이 이번 실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이 실제로 더 많은 경제효과와 창의성을 부여할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을 좀 더 명확한 과학적 근거와 통계를 통해 알아내는 것이 이번 연구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인상적인 것은 기본소득에 비판적이었던 독일경제연구소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공공자산 연구와 쾰른대, 그리고 지금까지 기본소득 연구를 주도하고, 캠페인과 실제 실험을 했던 비영리 시민단체인 기본소득협회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베를린 자유대의 사회학 교수이자 독일경제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위르겐 슈프(Jurgen Schupp)은 이렇게 말했다:

“조건없는 기본소득에 대해 수년간 해온 이론적 논쟁을 사회적 현실로 변환할 수 있는 큰 기회”이며, “3년동안 조건없이 지급한 금액이 개인의 행동과 감정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는지 알게 될 것이다.”

독일경제연구소는 당초 예상했던 백만 명보다 훨씬 많은 170만명이 현재 신청했다고 밝혔다. ‘다다익선’, 즉 더 많이 신청해야 더 다양한 계층을 선정할 수 있기 때문에 11월 10일까지 계속 신청자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뜨거운 신청 열기와 지지를 바탕으로 연구의 높은 성과와 실험의 탄력성, 활성화를 위한 추가 기부를 요청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위기를 통해 많은 사람이 소득을 잃고, 실업자가 되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불가능해보였던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독일의 기본소득 실험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개인적으로 독일 실험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독일 실험을 다른 나라들이 참고해 각 나라에 맞는 기본소득 모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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