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이 있는데, 물려서 구석에 몰린 고양이는 밥상을 뒤집는 듯하다. 바로 한국일보에서 최근 벌어진 일들이 그렇다.
기자 내쫓은 한국일보 사주 측
2013년 4월, 한국일보의 기자들이 그간 경영파탄 해결 약속을 어겨온 사주 장재구 회장의 배임 혐의를 검찰에 고발했고, 그것에 대한 일련의 보복인사가 이뤄지고 다시금 보복인사를 거부하는 등 갈등이 고조되었다. 그런데 6월 15일, 사주 측이 용역 업체를 고용하여 편집실을 봉쇄하고, 기자들을 신문 제작 일선에서 내쫓는 일이 발생했다.
파업이 일어난 바 없이 사측에서 선제로 사실상 직장폐쇄를 한 격인데, 그 상태에서 사측의 입장에 서 있는 간부급 위주의 11여 명의 성원이 계속 나름대로 일간지를 제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법적으로 완전히 직장폐쇄로 결론지으려면 좀 더 여러 세부요인의 다툼이 있을 정도로 이례적인 방식이다.
엉터리 편집부의 엉터리 기사들
그 결과물은 물론 한국일보의 정상적 완성도에 크게 못 미치는데, 첫 1주일 동안의 기사 작성 명세를 살펴보면 100~120여 건의 일일 기사 가운데 25~30개 내외의 기사만이 자체 기명으로 생산되고 있으며, 5~60건의 기사들은 연합뉴스의 기사를 재송신하거나, 바이라인이 응당 있어야 할 취재 기사임에도 바이라인을 제거하여 짜깁기의 혐의를 풍기고 있다.
특히 몇몇 기명 기사는 물론이고 신문의 공식 입장표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설마저도 연합뉴스의 내용을 표절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신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첫 전면광고 이전까지의 톱뉴스(사측 제작의 24면 기준에서는 6면까지)에서조차 많게는 1/3까지 연합뉴스 등의 기사와 사진이 차지했다. 그 와중에 발행인 명의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고를 1주일 동안 두 번이나 1면에 내는 등 사유화의 모습을 보였다.
2007년 ‘짝퉁’ 시사저널 사태
그런데 외부 세력은 물론이고 사주로부터도 편집권의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는 저널리즘 규범에 관하여 약간 기억을 되짚어보면, 불과 수년 전인 2007년에도 기자들 없이 사측이 가짜 제작을 한 언론의 사례가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서 삼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사주가 잡지에서 멋대로 삭제한 편집권 개입 사건이 벌어졌고, 그것 때문에 기자들의 저항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기자들이 파업에 돌입했으며, 그러자 사주는 직장폐쇄로 화답하고, 자신의 인맥범위에 있는 외부 – 주로 삼성일ㅂ… 아니 중앙일보 계열 – 인사들을 규합하여 같은 제호의 연속이지만 원래 기자들을 배제해버린 출판물을 계속 발간했다. 그 당시에도 사주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이뤄졌는데, 중단 없이 ‘정상’ 발간되어야 한다는 것과 발행인의 편집권 개입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노골적인 무리수가 관철될 정도로 한국 사회가 퇴행한 것은 아니었고, 기자들에 대한 징계는 불법 노동행위로 대법원까지 무효 판결을 얻어냈다. 당시의 발행인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고, 파업했던 기자들은 한층 자신들의 의지를 뚜렷하게 드러낸 새 시사주간지로 ‘시사IN’을 성공적으로 창간하여 당시 시사저널보다 한층 진일보한 의제설정과 취재력을 과시하며 발간 중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도 있었으니 이번 한국일보 기자들도 비슷하게 따라가야 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대법원 판결까지의 과정은 법조의 특성상 여러 해가 걸렸으며, 제작 현장으로부터 계속 강제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신규 창간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그간 일궈놓았던 매체 브랜드의 성과는 모두 버려놓고 나와야 했다.
사태의 근저에 있는 언론 ‘기업’의 경영 파탄
그렇다면 이번 싸움에는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가. 사실 한국일보 사태는 편집권이라는 규범적 차원의 문제가 전면에 드러난 상태지만, 그 바탕에는 ‘언론사라는 기업은 경영 파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자리한다.
한겨레 기사에서 정리한 바 있듯, 한국일보는 신문 조직으로서는 저널리즘의 품질을 선도했으나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조석간 동시발행 같은 지면 확대 경쟁 등 90년대의 신문사 간 출혈경쟁을 앞당겼으며, 거품 확장과 비교하면 재벌기업의 흔한 약점인 사주의 부패가 누적되어서, 결국 97년 이후의 외환위기 국면에서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 결국 1999년 사적 화의와 2002년 워크아웃 상태를 거치게 되었다.
당시 약속한 증자와 경영일선 후퇴 등을 지키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기자들과 결정적으로 충돌한 것이 현재의 상태다. 즉 잘못된 경영에 대한 정상적인 책임부여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고, 사적 화의 같은 어중간한 방식으로 경영권을 유지한, 좀 더 한국 대기업들의 기업지배 일반의 문제와 통하는 부분이다.
싸움의 전망
한국일보 기자의 싸움이 승리를 이뤄낸다는 것에는 어떤 식으로든 회장의 후퇴가 포함되는 만큼, 매각이든 기타 방식이든 기업지배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찬가지로 금융 환란의 정국에서 변화를 겪어야 했던 다른 언론사 하나의 사례를 떠올릴 수 있다.
1997년, 자금난에 봉착했던 재벌기업 한화는 그간 소유하고 있었던 경향신문의 경영에서 물러났다. 모기업을 졸지에 잃은 경향신문은 폐간 위기에 봉착했으나, 다른 지배구조의 회사로 거듭나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사원 주주회사라는 형식으로, 1998년에 ‘독립언론’이라는 기치를 걸고 되살아났고 기사의 성향과 품질 역시 그에 맞추어 한층 진취적으로 발전했다(반면 마찬가지로 우리사주 방식으로 전환했던 문화일보는 논조의 보수성이 계속되었으며 적지 않은 선정성까지 더해졌던 만큼, 어디까지나 케이스-바이-케이스다).
물론 이것 또한 순탄했던 것이 아니어서, 2000년대 중반에 경영상태가 자본잠식 수준으로 악화하였던 바도 있다. 하지만 그간 확보한 고정 지지층과 개선된 광고영업 등에 힘입어 서서히 정상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기업지배의 완전한 체질 개편이라는 과업에 정면으로 부딪쳐, 결국 무언가를 이뤄낸 하나의 참조 사례임은 분명하다.
이 싸움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
한창 진행 중인 한국일보 사태가 회장의 배임 혐의가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 있음에도, 편집실 폐쇄라는 희대의 언론탄압 조치가 대놓고 문제가 있음에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연합일보’(연합뉴스 콘텐츠를 대량 짜깁기해서 신문을 제작하는 모습에 대한 풍자적 호칭)의 만듦새가 심각하게 비웃음거리임에도, 결국 언제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다른 경험들이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사태의 끝에는 지금 고생하고 있는 그 기자들이 다시 만들어내는 한층 발전한 저널리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그들이 싸움에서 어떤 식으로든 승리를 일궈낼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해줄 만한 이유가 모든 시민에게 있는 셈이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국일보 기자분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