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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시여? 비문명적 불법시위?’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책 [슬픈 열대] (1955)를 통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며 야만적인 문화는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레비스트스는 서구 중심의 오만한 이성중심주의와 그 편견과 이분법적 억압을 깨는 데 기여했습니다. 레비스트로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비문명적 불법시위”라는 언명을 접했다면 어떻게 평했을 지 궁금합니다. (편집자,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시위’를 연일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100%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수를 볼모 삼는다”, “박원순 시정에서 약속을 못 지켰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 때에 지속적으로 시위하는 건 의아하다”라며 이동권 보장 시위를 “비문명적 불법시위”로 규정했습니다.

국민의힘을 포함한 정치권, 당사자 단체 등은 “주요 사실을 왜곡한 발언으로 장애인 단체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약자 혐오를 이용해 시민을 갈라치기 한다”라며 반발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지난 3월 2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시위 현장을 찾아 의견수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은 근본적 해결책은 물론 이 대표의 주장이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길 위험성은 없는 살폈어야 했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 대표가 장애인 시위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한 3월 25일 이후 보도된 장애인 이동권 관련 기사를 분석했습니다.

TV조선 ‘장애인 이동권’ 한 건도 보도 안 해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요구가 20년간 계속된 데에는 언론의 무관심도 한몫했습니다. 최근 이 대표의 발언을 대신 사과하며 무릎을 꿇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8일 JTBC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큰 사건·사고가 아니면 언론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조명해주지 않는다며 언론의 무관심을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이 대표 발언을 둘러싸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관련 소식을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25일 이후부터 신문 지면은 29일까지, 방송사 저녁종합뉴스는 28일까지 보도건 수를 살펴본 결과 중앙일보와 TV조선은 관련 보도가 ‘0건’이었습니다. 중앙일보는 30일이 돼서야 [사설/장애인 단체 지하철 시위 중단…해법 도출 계기 되길] (3월 30일)을 내놓으며 이 대표의”비문명적 방식”이란 표현은 “부당한 갈라치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그전까지는 관련 보도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28일 오후, 모든 언론의 관심이 쏠려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29일 장애인 단체를 만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소식이 없었던 건데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노골적인 무관심이 작용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KBS,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가 각 1건씩 보도해 그 다음으로 적었습니다. 한겨레가 9건으로 보도건수가 가장 많았고 경향신문이 7건, JTBC가 6건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보도건수와 유익한 보도의 건수가 항상 비례하진 않습니다. 이번처럼 특정 정치인의 자극적 발언이 논란 되면서 관련 보도가 쏟아지는 것도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처럼 20년간 주목받지 못하던 이슈가 사회 쟁점으로 떠올랐는데도 관련 보도를 한 건도 내놓지 않은 것은 소수자에 소홀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민언련의 지난 보고서 [시민불편 걱정된다면, ‘장애인 이동권’부터 관심 가져야] (2021년 12월 23일)에서 지적했듯 지난해 12월 다섯 차례 넘는 시위와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있었는데도 관련 보도를 내놓지 않은 언론도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처럼 소수자 문제는 언론이 적극 보도해야 할 이슈입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곧 완성”, 오세훈 입장 전한 SBS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를 “비문명적 불법시위”로 규정한 뒤 “3년 뒤 100% 설치될 것으로 이미 약속이 완료된 이동권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탈시설지원 등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지하철 타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이번 시위를 “독선”이라고도 했습니다. 또한, 박원순 전 시장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오세훈 시장에게 요구한다며 장애인단체가 ‘정치적 시위’를 한다는 취지로 비판했습니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전역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하며 장애인단체의 시위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이준석 대표와 서울시 주장은 사실 여부를 따져볼 여지가 있는 발언인데 일부 언론은 그대로 받아쓰며 검증을 소홀히 했습니다. SBS [‘철야’ 지하철 중단 시위 강행…해법 없나] (3월 25일 박세원 기자)는 “현재 326개 지하철 역사 중 21곳에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2025년까지 설치를 완료”하겠다는 서울시 입장을 보도하며 “앞으로 3~4년만 지나면 거의 100%는 아니지만 (사실상 완료된다)”는 오세훈 서울시장 발언을 덧붙였습니다. 이 보도만 보면 곧 공사가 완료될 텐데, 장애인들이 과도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큽니다.

△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가 곧 완료된다는 오세훈 시장의 발언을 보도한 SBS(3/25)

SBS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년…뭘 요구하나] (3월 28일 하정연 기자)는 장애인단체가 장애인 탈시설과 장애인 활동 지원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준석 대표가 “지하철 시위가 이동권이 아닌 예산 요구 시위로 바뀌었다며 비판하는 지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역시 장애인이 많은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이동권 시위를 하면서 이동권과 무관한 요구까지 하고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동아일보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정치권서도 “시민볼모”“죄송” 공방 확산] (3월 29일 조응형·이윤태 기자)은 “박원순 시정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에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라고 한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글을 그대로 옮겼는데요. 동아일보 온라인기사 [이준석 “장애인단체 오세훈 시장 들어선 뒤 지속적 시위 의아”] (3월 25일 두가온 동아닷컴 기자), 한국경제 온라인기사 [이준석·오세훈, 출근길 장애인 시위에 “자제 해달라” 촉구] (3월 25일 김대명 기자)도 이준석 대표의 같은 발언을 검증없이 전했습니다.

MBC 서울시 예산 팩트체크, JTBC 이준석 발언 검증

SBS, 동아일보와 달리 서울시와 이준석 대표의 주장을 검증한 언론도 있습니다. 장애인단체 측은 서울시가 2022년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공사 예산을 119억 원에서 96억 원으로 삭감한 점을 들어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만큼 3년 내 설치를 완료하겠다는 서울시 주장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MBC [20년 계속된 외침…‘그렇게 들어주기 어렵습니까’] (3월 28일 김건휘 기자)는 “남은 21개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비용은 620억”인데 “편성된 예산은 96억 원에 불과한 데다 역마다 설치 공사에 2년은 걸리기 때문에 이번에도 약속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라고 짚었습니다.

△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관련 예산을 살펴본 MBC(3/28)

JTBC [팩트체크/단체행동 이유가 “지하철 엘리베이터 때문”?] (3월 28일 이지은 기자)은 장애인단체 측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이준석 대표의 주장에 대해 장애인단체 측이 “올해 초 처음 ‘출근 지하철 타기’” 시위를 할 때부터 “요구한 건 모두 4가지(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관리) 그리고 이를 위한 예산”이었고, “이동을 해야 교육을 받고 그래야 노동기회가 생기고, 그래야 시설을 나와 자립할 수 있고, 출근길 지하철은 이 모든 차별이 담긴 공간”이라는 장애인단체 측 입장을 함께 보도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요구는 애초부터 엘리베이터 설치에 국한된 단순한 요구가 아니었다는 점을 짚은 겁니다.

한겨레 [장애인 이동권 요구마저 ‘혐오’ 덧씌운 이준석의 정치] (3월 28일 장나래·오연서·박지영 기자), JTBC [“지하철 승강기 100% 설치” 약속 깬 서울시장은 누구?] (3월 25일 임지수 기자)는 장애인단체가 ‘정치 시위’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이준석 대표 발언을 구체적으로 따졌습니다. 한겨레는 “장애인단체는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20여년 넘게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해왔다”고 짚었고, JTBC 역시 “부실한 지하철 리프트 탓에 장애인들이 다치고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자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2년 안에 모든 지하철역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2022년까지 설치를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으며, “지난달 오세훈 시장도 3년 안에 설치를 끝내겠다고 했지만, 장애인들에겐 또 한 번 미뤄진 약속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준석 대표의 ‘정치 시위’ 발언과 달리 장애인들은 정권과 상관없이 계속 시위를 해온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지면에선 소극 보도, 온라인에선 SNS 적극 받아쓰기

지면에선 장애인 이동권 보도에 소극적인 일부 언론이 온라인에선 이준석 대표의 발언을 부각하거나 시민 불편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여러 번 관련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경우 3월 28일까지 지면에선 장애인 이동권 보도가 없지만, 같은 기간 온라인에선 7건의 기사가 검색됩니다. 이중 5건은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글을 중계하면서 제목에서부터 발언을 부각했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그대로 받아쓴 경우도 있습니다. 나머지 두 건은 김예지 의원의 사과와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준석 대표 비판 페이스북 글 관련입니다.

△ 이준석 대표 발언 부각한 조선일보 온라인 기사 (3/25~28 네이버 ‘이준석’, ‘장애인’ 검색 결과)

조선일보 온라인 기사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 놓고…이준석 “타인 권리 과도하게 침해”] (3월 25일 오경묵 기자)는 “박원순 시정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에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라는 이준석 대표의 글을 보도했습니다. 또 다른 온라인 기사 [“임종 지키러 간다는 시민에 버스 타라?” 이준석, 연일 장애인단체 비판] (3월 26일 김명일 기자)은 전장연 시위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내용이 담긴 두 줄을 제외하고 모두 이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20년째 시위’ 이유보다 ‘시민 불편’ 부각 보도

“이 시위의 방법을 누구도 옳다고, 너무나 좋은 방법이라고 박수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중략) 정책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했던, 정말 당연한 권리를 정치계에서 관심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도 충분치 못하다란 생각이 들고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시위 현장을 찾아 이 대표 대신 사과한 김예지 의원이 3월 28일 KBS [사사건건]과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시민 불편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막을 수 없으며, 20여 년간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짚은 발언입니다.

이번 이동권 시위 관련 보도에서도 시민 불편만 강조하는 보도는 여전했습니다. 동아일보 [장애인단체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 재개…직장인 “20분 지각”] (3월 26일 김윤이 기자)은 이동권 시위로 불편을 겪었다는 시민 발언을 제목에 싣고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이준석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덧붙였습니다. MBN [잇단 지하철 시위로 출근길 혼잡·지각 ‘속출’] (3월 25일 이시열 기자)도 “출근길 혼잡 상황이 또 벌어졌다”, “지하철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지각하는 승객들도 속출” 등을 언급하며 시민 불편에 초점을 뒀습니다.

△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인한 시민 불편을 부각한 동아일보(3/26), MBN(3/25)

불편 감내하며 갈등조정 계기로 삼는 사회가 민주주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시민 모습을 전하며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가치를 보여준 칼럼도 있습니다. 매일경제 [필동정담/그때 지하철 안에 있었다] (3월 29일 김기철 기자)를 쓴 기자는 이준석 대표가 언급한 시위가 벌어졌던 3월 24일 충무로역에 있었다며 “역사 내부는 붐볐고 소란은 있었지만, 결코 혼란스럽지는 않았”으며, “많은 시민이 묵묵히 자기 몫의 불편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많이 성숙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는데요. 일부 언론은 외면했지만, 모두의 권리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민주 시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의 권리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며 갈등을 함께 조정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 필수 조건입니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가 아닌 공동체 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해결 방안을 적극 이끌어내는 공론장으로서 역할도 중요한데요. 장애인 이동권 시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각 속출’만 보도할 게 아니라 ‘지각 속출’을 막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를 화두로 던지는 보도가 많아질 때 공론장은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의 ‘특권 주장’이 아닙니다.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주장하는 것일 뿐. 그 투쟁을 “비문명적 불법시위”라고 공당대표가 규정했다? 해외토픽감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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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2년 3월 25~28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평일)/[뉴스7] (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 2022년 3월 26~29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및 온라인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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