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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5일 대법원(대법원장 양승태)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판결을 내렸다. 기성회비 징수는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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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사항: ○○대학의 기성회가 기성회비를 납부받은 것이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으로 이익을 얻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소극 = 그렇게 볼 수 없다. 즉, 합법이다)

“국립대학이 영조물인 국립대학의 사용료로서의 실질을 가지는 비용을 직접 납부 받지 아니하고 영조물 이용자인 학생이나 학부모로 구성된 단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대학의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역무와 교육시설의 제공에 사용하더라도 이를 두고 교육 관련 법령의 취지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 대법원 2015. 6. 25. 선고 2014다5531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주심)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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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기준, 국공립대학교는 전체 등록금의 84.6%를 기성회비로 충당했다.
2010년 기준, 국공립대학교는 전체 등록금의 84.6%를 기성회비로 충당했다.

이 사건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재판장 김용대)은 기성회비 징수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 즉, 기성회비는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항의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에 포함되지 않으며, 기성회비를 영조물 사용 대가로 볼 수 없기에 학칙 역시 근거가 될 수 없다.

기성회 규약에 따른 징수는 가능하나, 가입하지 않은 경우 강제 징수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종래 징수한 기성회비에 대해서 기성회는 부당이득을 반환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보았다.

편법은 묵인하고, 국가 책임은 부정한 대법원 

이 사건의 쟁점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논점은 대학운영 경비를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헌법과 법령의 규정일 것이다. 헌법은 교육제도에 대한 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을 설치하는 주체는 국가다. 따라서 국립대의 운영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의무다. 그리고 학생은 이차적으로 수업료 등을 부담하여 대학운영 경비의 일부를 제공한다(고등교육법 제3조, 제4조, 제7조, 제11조).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국립대학의 운영 경비를 부담하는 기성회라는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는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학의 설립과 운영의 기본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대학설립운영규정 참조). 이런 맥락에서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대법관 박보영, 고영한, 김신, 김소영, 조희대, 권순일)이 타당하다.[footnote]

¶. 대법관 박보영, 고영한, 김신, 김소영, 조희대, 권순일의 반대의견

(가)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항 에 의하여 ‘그 밖의 납부금’을 받을 수 있는 자는 ‘ ○○대학의 설립자ㆍ경영자’이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 ‘기성회’가 회비명목으로 학생 또는 학부모로부터 영조물인 ○○대학의 사용료에 해당하는 ‘그 밖의 납부금’을 받는 것은 법률유보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아니한다.

(나)기성회비는 기성회 회원들이 납입하는 회비이므로 학생이 ○○대학의 이용대가로 납부하는 ‘수업료 그 밖의 납부금’과는 법적 성질이 다르다. ○○대학 비국고회계 관리 규정 제4조 , 제5조 제1항 , 제11조 에 따르면,국가는 기성회비를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항 에 의해 ‘그 밖의 납부금’으로서 받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단체인 기성회가 회원의 회비로서 받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그에 따라 ○○대학의 등록금 중 입학금과 수업료는 국고회계로 편입시키는 반면, 기성회비는 비국고회계인 기성회회계로 편입시켜 기성회장이 주관하고, ○○대학 총장이 기성회로부터 기성회의 예산ㆍ회계 사무를 위임받아 집행하도록 집행절차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사립학교법 ○○대학이나 기성회가 기성회비를 등록금처럼 의무적으로 부과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부차적인 규정일 뿐,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항 의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중 ‘그 밖의 납부금’에 기성회비가 ○○대학이 기성회비를 직접 받을 수 있다거나 ○○대학의 이용대가를 부과할 수 있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다)법인 아닌 사단인 ○○대학 기성회가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수백만 원의 회비를 부과하면서 가입을 강제하고 탈퇴를 불허하는 것은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따라서 학생의 부모 또는 보호자를 당연회원으로 하는 기성회의 규약과 학생에 대한 기성회비의 강제적인 부과는 법률상 효력이 없다.[/footnote]

대법원도 인정하듯 해방 이후 국가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성회의 존재를 정당화시킬 수는 있다. 즉, 국가가 충분한 재정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운영 경비의 결손 부분을 기성회에 기성회비로 전가한 것이다.

기성회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국립대에 다니는 학생 입장에선 기성회(비)라는 존재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학 설립과 운영에 드는 기본 비용은 국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는 편법이거나 불법이지 적법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 판결을 내렸다면 헌법에 합치하는 고등교육관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국립대학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을 부정하는 판결로 인하여 국립대학마저 사립대학처럼 사적 책임의 대상으로 변질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정부가 기성회비 대책으로 입법한 것이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국립대학회계법)이다. 이 법률은 기성회비를 수업료에 통합시켜 버렸다. 종래 학부모가 부담하던 기성회비가 학생이 부담해도 되는 교육경비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국립대학회계법, 재정 자율 망치는 잘못된 해결법 

정부가 ‘국립대학회계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한 것은 국립대학 선진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즉, 국립대학 법인화 정책이 국립대학구성원의 저항으로 실패하자 그 우회로로 선택한 것이 국립대학 선진화 정책이었다. 그리고 그 정책의 핵심이 바로 ‘국립대학회계법’ 제정이었다.

‘국립대학회계법’은 복식부기를 도입하여 재정·회계의 투명성을 높인 점은 장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단점이 너무 많다. 국가의 관료주의적 통제와 감시가 강화돼 대학의 재정적 자율이 질식될 정도이다.

교육부는 국가 관리·감독권으로서 감시권(자료제출), 동의 또는 승인권, 훈령권 등을 통해 대학의 재정운영 및 회계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다.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편성 운용하던 기성회계를 대학회계로 사실상 편입시켜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모든 대학경비지출에 대하여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

가공식품 중독의 책임,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국립대학회계법은 대학의 재정 자율성을 망칠 위험성이 크다.

더 심각한 것은 국립대학 운영경비에 대한 국가의 안정적인 지원이 전혀 담보되고 있지 못한 점이다. ‘국립대학회계법’은 “국가는 국립대학의 교육 및 연구의 질 향상과 노후시설 및 실험·실습 기자재 교체 등 교육환경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동법 제4조 제1항)고 규정하고, 이어 “국가는 종전의 각 국립대학의 예산, 고등교육예산 규모 및 그 증가율 등을 고려하여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등 국립대학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각각 총액으로 지원하여야 한다”(동법 제4조 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들만 본다면 공적 책임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지원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점이다. 더구나 이들 조항의 핵심은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등 사업별로 목적을 특정하여 각각 총액으로 지원하여야 한다”는 부분이다. 즉, 항목별로 칸막이를 설치함으로써 대학의 자율적 판단이나 운영에 심각한 제한을 가한다. 이러한 관료의 개입은 국립대학의 예산 삭감이나 자발적 법인화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고등교육의 중요성, 국가의 공적 책임  

주지하다시피 헌법과 관련 법령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고등교육이 사립대학 위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생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비율이 78%나 된다.

이는 90% 이상이 국공립대학에 다니는 유럽국가나 82%가 주립대학에 다니는 미국(4년제 대학 기준, 영리 대학 제외)과 비교해도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하여 고등교육 여건은 매우 부실하다. OECD 국가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지출 평균은 GDP의 1.6%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0.8%에 불과하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고등교육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 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루뱅 선언(2009, 유럽 고등교육 관련 장관 회의 공동선언)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에게 직면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문화적·사회적 발전을 끌어내기 위해 고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우선으로 고등교육 분야에 공적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John Walker, CC BY
John Walker,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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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관해서는 여러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을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 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 기준은 바로 ‘판결’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로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써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장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1. 2009년 6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 교사들은 정말 유죄였나 (곽노현) 
  2. 문재인의 탈원전 ‘공론화’ vs. 제주 해군기지 ‘날치기’ (김필성) 
  3. ‘시효’ 뒤에 숨은 국가배상책임 (이상희)
  4. 신속하고 잔인하게 – 쌍용차 대법원 판결을 회고한다 (김태욱)
  5. 감기 보험 vs. 암 보험: 키코의 본질과 대법원의 오류 (박선종)
  6. 시대착오적인 ‘기성회비’ 판결 (2015) (임재홍)
  7. 대법원, 민주화운동 피해자 등에 비수를 꽂다 (조영선)

¶. 이번 칼럼의 필자는임재홍 교수(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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