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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망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라

촛불 시위와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전인 작년 3월의 일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들을 상대로 교양 수업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봤다.

“18세 국민에게 선거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몇 개의 손이 올라갔다.

“18세 국민에게 선거권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또 몇 개의 손이 올라갔다.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로서 총선이 국민에게 나쁜 일일까? 아니면 권력에게만 귀찮은 일인 건 아닐까?

왜 그런지 궁금했다. 찬반의 뜻을 표한 학생들에게 각각 이유를 물어보았다. 찬성하는 학생들은 △18세라도 이미 충분한 지식과 상식을 갖고 있고 △인터넷 같은 경로를 통해 예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하며 △18세는 안 되고 19세는 된다는 구분도 설득력이 없다는 등의 의견을 펼쳤다. 바로, 18세 국민에게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지금 거론되는 내용이다.

반대하는 학생들은 △아직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족하며 △부모나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입시 공부에 전념하느라 정치를 잘 모른다는 의견을 냈다. 이 역시 18세 국민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의 주요한 내용이다.

선거 연령 인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든 상관없이,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표현하였고 그를 뒷받침하는 설명도 잘 붙였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하였다. 이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어 마땅하다.

한국 18세는 다른 나라 18세보다 멍청한가? 

선거 연령과 관련한 세계 추세를 보면, 한국 청소년은 세계 동년배 중에서 가장 멍청하고 못난 존재들인 것처럼 느껴진다.

비교적 선진화한 나라들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 중 33개국의 선거 연령이 18세다. 18세가 아닌 나라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는 16세다. 나머지 하나인 한국은 최고령, 19세를 고집하고 있다.

선거 연령

모든 나라를 포함해 따져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선거권 부여 연령이 확인되는 세계 234개국 중에서 19세를 기준으로 하는 나라는 한국 단 하나다. 한국보다 더 높게 잡은 나라는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한 10여 개뿐이다. (아래 표와 그림 자료:  aceproject.org)

선거 연령

전 세계의 선거 연령

선거 연령 선거권 부여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18세 인간들이 미성숙해서 정치적인 기본권조차 행사할 수 없다는 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왜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지, 한국의 18세는 왜 세계 대부분 국가 18세에 비해 유달리 미성숙하고 멍청한지 설명 좀 해보시죠?

병역·혼인은 18세, 선거만 19세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지방병무청이 있다. 3층 창을 통해 거리를 내려다보노라면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는 청소년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밝고 환한 얼굴로 힘차게 걸어가는 이는 보기 어렵다. 대개 홀로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제1국민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가축을 떠올리게 된다.

그곳이 도살장이든 전장이든, 이들은 무조건 가야 한다.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그 의무가 시작되는 것은 18세다. 병역법(제8조)과 병무청 설명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남자)은 18세가 되는 해의 첫날부터’ 병역 의무를 지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19세가 되는 해의 선거날이 되어서야’ 선거권을 갖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다. 한국은 18세 구성원에게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주지 않고 의무만 부여하고 있다. 햇수로 최대 2년의 격차가 생긴다.

군대도 18세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선거는 19세가 되어야 한다.

병역 의무는 18세부터 부여된다. 하지만 투표는 못 한다.

만 18세면 혼인도 할 수 있다. 민법(제807조)이 보장하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투표는 못 한다. 일 년에 하루 투표하는 것과 일 년 내내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것, 어떤 것이 더 힘들고 더 많은 책임이 따르는지는 연말 결산을 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결혼 생활을 감당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공민 생활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결혼 혼인

결혼도 18세면 할 수 있다. 하지만 투표는 못 한다.

한국 18세가 입시에 치중하여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 18세가 자청하여 입시 지옥에 달려 들어간 적 없다. 그런 소리를 늘어놓는 기성세대가 만들고 조장한 게 입시 지옥이고, 한국 18세는 그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염원을 가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붙잡혀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 일부가 입시 때문에 민주국가 공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출 시간조차 부족한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을 만든 기성세대는 제 손부터 찍는 것이 순서이고, 반성과 고통 분담의 차원에서 스스로 선거권을 반납하는 것이 그다음 순서일 것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주장도 있다. 왜 유독 한국 청소년만 그런가는 차치하더라도,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는 헛소리, 괴소문, 선전 선동을 철석같이 믿고 그런 것을 내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사이비 언론을 추종하며 거기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하는 한심한 기성세대가 18세보다 나을 것은 하나도 없다. 18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으려면 비슷한 논리로 이들의 투표권도 삭탈해야 옳지 않을까 한다.

지난해 12월17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5차 탄핵기각을 위한 태극기 집회’에 3만 명(경찰 추산)이 나왔다. 대부분 노인이었다. 최현숙(60) 씨도 그 속에 있었다. 그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태극기를 손에 쥐고 우는 60대 여성에게 다가갔다. 부산에서 교회 사람들과 함께 올라왔다는 그를 최씨가 토닥였다. 60대 여성은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다니 감격스럽다”고 했다. 울음을 멈춘 그와 그의 동지들은 ‘애국시민 신참내기’로 보이는 최씨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이고 언론사 사주들이고 다 김대중 때 북한 기쁨조랑 애를 낳고 와서 김정은 말을 따르고 그러는 거예요. 팟캐스트에서 들었어요.”

한겨레, “태극기집회 노인들 외침은 일종의 인정투쟁” 중에서

청소년은 현실의 구성원, 현재의 주역 

국기를 뒤흔든 부정부패로 비롯된 탄핵 국면에서 선거권을 18세로 하향하는 개혁은 쉽게 이루어질 듯했다. 그 위세가 쪼그라든 새누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이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야 비로소 글로벌 스탠더드에 합류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낙관만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탄핵이 채 결정 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대권 뽕에 취해 다된 밥상 챙겨 먹을 궁리만 하는 야권 탓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보수 정치인이 길을 가로막고 강짜를 부리는 탓이 크다. 특히 새누리당의 “반대가 강경”하다. 또한, 새누리당 출신이면서 박근혜와 추종 세력에 등을 돌리고 개혁에 동참하는 제스처를 보였던 바른정당도 지난 1월에는 새누리당과 함께 ’18세 투표’에 반대하는 “구태”를 드러낸 바 있다. 인제야 국민 눈치가 보이는지, 연령 하향을 바른정당의 당론으로 확정했다고 하면서도, 시행 시기 등 세부안에 대해선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바른정당의 갈지자 행보는 개과천선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19세 선거권이라는 후진적인 꼴을 유지하는 것은, 그를 합리화하는 잡다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칼자루를 쥔 정치인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선거 연령 인하를 기필코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18세 선거권 부여라는 현대적 상식이 한국에서 현실화되지 않은 것은 오로지 탐욕과 협잡의 이해타산에서 비롯된 일이다. 기성세대 일부 정치 세력의 밥그릇을 챙겨주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18세 선거권을 반대하는 새누리당과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바른정당

18세 선거권을 반대하는 새누리당과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바른정당

 

상상하기도 어려운 다양한 방법으로 국가 비정상을 초래한 인간이 ‘비정상의 정상화’ 운운하는 비정상적인 국가가 한국이다. 다행히 그런 비정상을 다시 정상으로 돌리려는 염원이 곳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많은 일을 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선거 연령을 정상화하는 일은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저고리 고름 말아쥐고서
누구를 기다리나 낭랑 십팔세
버들잎 지는 앞 개울에서
소쩍새 울 때만을 기다립니다

– 옛 가요 ‘낭랑 십팔세’ 중에서

국민의 의무는 수행하면서 기본권조차 갖지 못하는 한국의 18세는 낭랑 18세가 아니라 ‘낙망’(落望; 희망을 잃음) 18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단지 현실 권력이 없다고 해서 선거권 부여될 때만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는가. 정치적 차별을 계속해서야 되겠는가.

청소년은 미래의 주역이라고 한다. 이것은 얼핏 보면 멋지고 우호적인 말 같지만, 실은 현재를 기성세대의 것으로 독차지하고 싶은 의지가 반영된 말이다. 또 현실에서 청소년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고가 반영된 말이기도 하다.

청소년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구성원이고 현재의 주역이다. 오늘날 청소년은 배우고 익히고 일하고 먹고 자고 싸우고 화해하고 섹스하고 희망하고 절망한다. 이들은 자신의 현재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잡소리 접고 18세 한국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라.

18 투표권 선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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