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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론의 선악을 넘어서: 경향신문의 성완종 녹음파일 보도를 훔친 JTBC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지 누가 내보내느냐가 중요한가?”

큰 사건, 그러니까 현역 정권의 전·현직 핵심 인사들이 대거 엮여있는 뇌물 스캔들 같은 거대한 부실 앞에서는, 그것을 앞다투어 보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점을 지적하는 것이 작은 트집으로 열심히 알리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등한시하는 것이야말로 부실을 쌓아가는 기본 패턴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JTBC의 경향신문 성완종 인터뷰 유출보도에 관한 몇 가지 논점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JTBC

‘성완종 녹음파일 유출 방송’ 사건 개요 

1. 경향신문의 취재와 공개 예고

경향신문은 보도가치가 대단히 큰 인물(고 성완종 전 회장과)과 전화 인터뷰했고, 관련 사안을 취재하여 연속 기사화했다. 검찰에 수사협조 차원에서 전화 인터뷰 녹음파일을 넘겨주고, 인터뷰 대상 측(당사자가 사망했기에 유족) 동의를 얻어 전문을 녹취록 형식으로만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2. 녹음파일 유출 및 JTBC의 방송 강행 

경향신문은 성완종 전화 인터뷰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하기 전, 원본 녹음파일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에게 녹음파일이 담긴 전화기를 맡겼다. JTBC는 해당 전문가를 통해 녹음파일 복사본을 입수했고, 경향신문이 예고한 보도시점 직전에(경향신문 보도 전날 저녁), 유족 측과 경향신문의 명백한 반대 요청을 무시하고 방송을 단행했다. 경향신문이 녹음파일 전문을 공개하기 9시간을 앞둔 시점이었다.

3. JTBC 입장 표명과 녹음파일 유출 당사자의 사과문 발표 

JTBC가 방송을 강행한 다음 날, 손석희 보도 부문 사장이자 앵커인 손석희는 마무리하는 말로 녹음파일 방송 강행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녹음파일을 JTBC에 건넨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김인성 소장도 사과문을 발표했다.

Mustafa Khayat, CC BY ND

Mustafa Khayat, CC BY ND

JTBC 보도는 어떤 피해를 초래했는가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논점은, 사건으로 인해 피해가 생겼는가, 그렇다면 어떤 피해가 있는가다.

먼저 미시적(즉 직접 피해)으로는 유족에게는 자신의 의향에 반하여 고인에 대한 감정을 들쑤심 당했다는 정서적 피해가 있고, 경향신문에는 자신이 발굴하고 진행한 특종을 명백하게 중간에 날치기당했다는 언론사로의 피해가 있다.

거시적 피해, 즉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사회적 피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첫째, 언론과 정보원, 자문 전문가 사이의 신뢰도 저하
  2. 둘째, 정확한 보도를 위한 세부 교정 생략 정당화(녹취 자막 오류 등)
  3. 셋째, 언론계 상호 존중 파괴
  4. 넷째, 명백히 잘못된 보도방식임에도 이를 용인하는 대중 인식(팬덤)과 만나 정당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왜곡할 가능성

이 사건 하나로 모든 문제가 터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정적 결과를 앞당기는 구체적인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지 누가 내보내느냐가 중요한가”, 또는 “정의 구현을 위해 힘을 합쳐야지, 언론사들 사이에서 밥그릇 싸움인가” 같은 논지와 달리, 정도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피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JTBC 보도는 어떤 언론 윤리와 충돌하는가

언론 윤리가 무엇인지는 개별 사회, 개별 언론 단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몇 가지 공통 주제들이 있다. 가장 세련되게 정리한 동네 가운데 하나가 미국 SPJ(프로페셔널 언론인 협회)의 윤리규범 기준으로, 크게 네 가지 중분류 아래 세부 항목으로 되어있다(2014년 버전).

  1. 진실 추구와 진실 보도: 정확성, 맥락, 출처 명시, 공정성, 의견 부분 명시 외 다수의 지침이 여기 포함.
  2. 피해 최소화: 개인정보 침해 최소, 피해자 보호, 정보 취득 합법성, 파급력 고려 외 다수.
  3. 독립성: 이해관계에 개입됨을 피하기, 청탁 금지 외 다수.
  4. 책임성: 정정 보도, 윤리 위반의 공익제보 장려 외 다수.

SPJ보다는 논리적 정리나 시의성 반영이 뒤쳐져서 업데이트가 긴요하긴 하지만, 한국기자협회 강령도 이런 틀거리로 충분히 재분류할 수 있다.

그중 진실추구와 책임성은 언론인/조직의 실력만큼 추구하는 것이고, 독립성 또한 사업 현실에서 제약을 받을 뿐 규범적 기준은 매우 명확하다. 하지만 피해 최소화 원칙의 경우에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알고 있고 나름 최소화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해야만 할 때”를 처음부터 상정하고 있다. 원칙을 유예할 수 있는 상황이 무엇인가 많은 논의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기준점으로는 두 가지를 함께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뚜렷한 공익성이 있는가다. 예를 들어, 당장의 화제성 너머 실제로 공적 판단에 도움되는 정보인가. 그리고 단지 다수의 관심사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 대한 함의를 주는 것인가 같은 질문을 만족시켜야 한다. 둘째는 불가피성, 즉 다른 방식으로는 그런 함의를 전하는 것이 불가능했는가다. 예를 들어, 실제로 공익성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새로운 정보를 주는가. 그리고 그런 식으로 보도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못했을 내용인가 같은 것이다.

경향신문,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 (2015년 4월 16일 자, 8면)

경향신문,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 (2015년 4월 16일 자, 8면)

경향신문,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 (2015년 4월 16일 자, 8면)

경향신문,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 (2015년 4월 16일 자, 8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JTBC 보도는 정당한가 

이제 앞서 살펴본 기준을 이번 사건에 좀 더 구체적으로 접목할 차례다. 먼저 해당 내용은 경향신문의 제작물이며, 경향신문의 전문공개 이전이었다. 검찰에 참조자료로 제출되었으나, 검찰이 사법 과정에 의거하여 공개한 상태가 아니었다. 즉 정당한 입수가 아닌 유출에 의한 자료 획득이며, 이것은 웬만한 언론윤리에서는 당연하게도 피해야 할 행위가 된다.

또한 유족 측은 정서적 이유로, 경향신문과 인터뷰 전문에 대하여 녹취로 옮긴 내용 공개는 허락하고 육성 공개는 불허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정보원 측 의사는 존중해주는 것이 기본이며, 불가피할 경우에만 거슬러야 옳다.

관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완종 음성파일을 ‘육성’으로 경향신문 보도를 ‘9시간 앞두고’ 보도할 정당성이 있는가이다.

이에 대해 손석희 사장이 발표한 입장은 이랬다. 먼저 입수 정당성 여부는, 검찰에 제출했으니 공적 대상물이 된 것(그러니 입수가 정당)이라는 입장이다. 공익성 부분에 대해서는, 편집 없이 진술의 흐름에 따라서 공개하는 것이 공익이라고 보았다. 불가피성 부분에서는, 육성이 진실 추구에 중요한 데 신문은 육성의 현장감을 전할 수 없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한편 몇몇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큰 호응을 얻은 지지 입장글들은 ‘불가피성’ 부분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가며 확 더 나아가버렸다. 그중 하나는, 경향신문이 검찰과 거래해서 원본 자료를 왜곡하거나 비공개할 위험이 있었으며, 지금껏 전체를 까지 않고 찔끔찔끔 보도한 것도 그런 징조였다는 것이다. 혹은 검찰이 자료를 우익 종편에 바로 넘겨주고 그들이 왜곡해서 특종을 때릴 위험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나아가, 신문 안 보는 세태이기 때문에 방송으로 나와야 훨씬 중요하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사진: JTBC [뉴스 9] 웹사이트.)

실수는 실수고 잘못은 잘못이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짚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1. 정당성

먼저 입수 정당성 여부를 보면, 앞서 꼽았듯 딱히 정당하지 않다. 특히 방영 전에 방영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기에, 유출의 부당성에 대해서 몰랐다고 변호 받을 여지가 적다.

2. 공익성 

공익성 여부를 보면, 인터뷰 전문의 보도란 그 자체만으로는 ‘새로운 정보’가 담기지 않은, 경향신문의 후속보도라는 맥락에서 비로소 생기는 공익성이다. 경향신문이 이미 개별 토픽들을 검증 취재 후 차례대로 기사화했고, 전문은 그간 기사화한 내용이 인터뷰 원문의 내용과 맥락에서 왜곡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3. 불가피성 

불가피성 여부를 보면, 첫째, 육성의 효과는 감정의 전달을 통해서 내용의 설득력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것에 있다. 그런데 사건 속성상, 절박한 목소리라고 해서 증거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고 폭로의 구체성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둘째, 경향신문은 전문을 왜곡/비공개할 동기가 없다. 민감한 내용은 이미 다 기사화했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추가취재도 했다(예: 비타500 증언). 전문 공개도 예고한 상태였다. 보도의 페이스 조절은, 취재와 지면 사정의 기술적 사안이다.

셋째, 검찰이 우익종편에 자료를 넘겨준들, 그간 공개된 보도를 뒤흔들 내용이나 미공개 내용이 애초에 없다. 게다가 현시점에서 우익언론들이 취할 수 있는 합리적 전략은 ‘야당 유력인사도 받았다’는 물타기밖에 없다.

넷째, 방송으로 나와야 훨씬 중요하다면, 경향신문 공개 이후에 육성 없이 내용만 방송해도 무방하다. 자극성이야 그만큼 덜 하겠지만 말이다.

남겨진 과제 – 진영론의 선악을 넘어서 

“누군들 갑자기 특종 자료를 입수한 상황에서 보도 유혹을 느끼지 않았겠는가?”라는 성찰적 질문과 별개로, 이번 사안은 그런 방식으로 했어야만 할 정당성을 찾을 수 없는 보도다.

이런 사건에 대하여 수습하는 방법도 당연한 정석이 있다. JTBC 측의 공식 사과와 경위 공개, 재발방지책 발표 말이다. 하지만 손석희 사장이 뉴스 맺음말로 내놓은 입장 발표는, 사과를 눙쳤고(세월호 사건 당일 무리한 취재에 대한 훌륭한 사과와 비교해보라), 경위 공개가 미진하며, 재발방지책은 수사법으로 넘어갔다.

이런 것을 현명한 대처로 보기 어려운 것이, 눙치고 넘어갈 때 한 움큼 떨어져 나가는 것은 이성적 지지자들이고, 한 덩어리 엉겨 붙는 것은 진영론의 선악 구도에 몰입한 팬들이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손석희 사장이 이끈 JTBC 뉴스의 그간 보도 행적을 대체로 지지해온 사람들은, 다음 두 인식의 심대한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진영론의 선악 구도, 그 함정에서 피하는 첫걸음이라는 걸 명심했으면 한다.

JTBC의 잘못을 인정하되 아직 지지를 거두지 않는 것.

혹은 지지를 거두지 않고자 JTBC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

당신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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