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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하지 않을 양심: JTBC ‘성완종 녹음파일’ 유출 사건에 부쳐

어젯밤(2015년 4월 15일) JTBC는 자사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 ‘뉴스룸’을 통해 경향신문이 16일 자 신문 지면을 통해 발행하겠다고 밝힌 ‘성완종 녹음파일’을 경향신문에 앞서 육성으로 보도했습니다. 경향신문 보도를 9시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JTBC는 보도 과정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유가족과 경향신문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족과 경향신문은 방송에 앞서 방송하지 말라고 JTBC에 요청했지만, JTBC는 이 요청을 거부하고, 방송을 단행했습니다.

“jtbc가 입수한 녹음파일은 이날 경향신문이 검찰에 제출할 당시 보안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자진 참여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김인성 씨가 검찰에서 작업을 마치고 나온 뒤 넘겨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경향신문 관련 기사 참조).

JTBC의 보도윤리와 포렌식 전문가로서의 직업윤리, 더 나아가 형사 범죄의 가능성까지 내포한 ‘성완종 녹음파일’ 유출 사건,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요?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의 글입니다. (편집자)

뉴스룸

열 받아서 잠이 안 온다. JTBC 욕 좀 하자.

세월호 참사는 한편으로 ‘언론참사’였고 그만큼 JTBC는 빛났다. 나는 지난해 4~6월 참사취재에서 최고 돋보인 언론사는 CBS라고 생각한다. JTBC를 거쳐 이슈화됐던 상당수 특종들은 CBS에서 발굴한 것이었다.

하지만 JTBC는 모두가 떠나고 찬바람이 불 때까지 팽목항에 남아 고집스럽게 세월호를 내보냈다. JTBC 동료들은 열심히 일했고, 그들의 보도는 방송윤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리하여 지난해의 언론사를 꼽으려면 나도 JTBC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방송 매체라는 (상대적) 우위 요소가 있다만.

1. 세월호와 JTBC 그리고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세월호 참사 취재에서 JTBC를 CBS보다 아래 둔 것은 (물론 정직하고 훌륭했지만) 뉴스의 본령인 팩트 취재·발굴 때문이다. 내가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업계 종사자로서의 시각이다만, JTBC가 발굴한 대표 상품인 ‘다이빙 벨’과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 보도는 아쉽다.

다이빙벨 논란이 한창일 때 JTBC는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를 스튜디오로 불러 인터뷰했다. 손석희 사장은 다이빙벨의 효과를 의심하는 날카로운 질문도 몇 차례 던졌고 김 대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론이 팩트를 검증하는 것은 이런 방식이 아니다. 직접 전문가 찾아다니고 실험해서 리포트를 내보내야 한다. 이종인 대표의 인터뷰를 내보내면 내용이 뭐든 ‘다이빙벨 사용해야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손석희 사장은 아직 시선집중 식으로 뉴스를 진행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결국, 다이빙벨은 구조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침몰 사실이 국정원에 보고됐다는 내용도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으로 엮기에 무리가 있었다. 이때 JTBC는 해저에서 건져 올린 노트북에서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단독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새로운 기사라고 다 엄청난 뉴스는 아니다. 전후 맥락을 따져 충분히 익어야 하는데 섣부르게 보도된 것들이 많았다. 손석희 사장의 인터뷰는 여전히 발군이었지만, 아직 스트레이트를 감별하는 힘이 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이슈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다.

세월호 관련 JTBC가 좋았던 것은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복원해 건져낸 동영상을 보도하는 방식이었다. 침몰 직전의 공포, 절망, 당시 상황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자료를 독점 확보한 JTBC는 뉴스를 사실보도를 빙자한 고통의 전시장으로 만들지 않았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을 정지화면으로 내보냈다. ‘왜 이렇게 보도하는지’ 설명도 꼼꼼하게 했다. 이 영상자료는 세월호 기억에 크게 기여했고 진상규명을 위한 시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노트북와 아이들의 휴대전화 영상을 복구한 이가 바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김인성 씨다. 그는 이 과정에서 JTBC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김 씨의 선의와 실력을 믿는다. 그는 깊은 분노와 정의감으로 크게 돈 되지 않아 보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해경을 심하게 불신했다. 검찰도 해경과 한통속이라 보고 믿지 않았다. 그의 불신은 과한 감이 있었다. ‘국가기관은 증거자료를 조작할 것’이라는 믿음이 신념에 가까웠다.

국정원 사태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던 터이니 비합리적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트위터 등을 보면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 ‘세월호 고의 침몰설’ 등을 굉장히 믿는 듯했다.

뛰어난 의제 설정과 뚝심, 색다른 보도양식, 언론윤리를 선보였지만, 팩트 취재에서 조금은 아쉬웠던 손석희 사장 영입 초기의 JTBC도 옛날 모습이다. 지속해서 기자 수를 늘리고 중앙일보와 순환 근무를 시키며 JTBC의 스트레이트 취재력도 상당히 향상했다고 본다. 뉴스 시간을 1시간에서 갑자기 2배로 늘린 것이 좋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로서는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2. 선악 논리와 직업윤리 

2015년 4월 15일 JTBC는 격에 맞지 않는 황당한 일을 저질렀다. 경향신문이 다음 날 지면 게재를 공언하고 검찰에 제출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인터뷰 녹취록을 빼내 보도했다. 녹취록을 빼돌린 이는 검찰이 조작하지 않도록 (검찰은 부장의 휴대전화 전체를 일단 맡기라 주문했다) 보안을 강화해주겠다던 김인성 씨였다. “경향신문 보도 후에 사용하라”고 줬다고 한다. 직업윤리도 망각하게 하는 ‘진보 종편’에 대한 신뢰가 보인다.

JTBC가 ‘진보 종편’이란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은 상업적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공영방송이 무기력한 상황에서 TV조선·채널A가 아닌 MBC·KBS 시청자들을 끌어오자는 것. 언론사도 기업이고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상업적 동기에서 출발한 전략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의 구현자를 손쉽게 내세울 때 더 위험하다고 본다. 나야말로 비좁은 언론시장에서 이념적 노선의 혜택을 입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가.

단, 상품을 제대로 만들어 속이지 않고 팔면 된다. 그것이 상도덕이다. 즉, 최소한 자기들이 노력해 만든 상품을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

JTBC

중앙일보는 성완종 회장의 다이어리를 단독입수했다. 장사를 하려면 최소한 이 다이어리로 장사해야 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도 보도를 보고 바짝 긴장했다. 녹취록을 공개한 뒤 모든 언론사의 조건이 평등해진다. 그때부터 진짜 실력이 나온다. “이제부터 우리야말로 단단히 각오해야겠다”는 말이 나왔는데, 경쟁자이자 동료에게 이런 식의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다. 왜 자기 자원은 두고 엉뚱한 데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손석희 사장은 “알 권리”를 거론했다. 그는 세월호 아이들의 휴대전화 영상을 독점 공개할 때 “알 권리”와 더불어 “유가족들의 심정을 배려한다”고 했다. 이번에 성완종 회장의 유족들이 울면서 애원해도 JTBC 보도본부는 ‘생방송’이라며 일축했다.

김인성 씨와 JTBC는 금전적 거래를 했을 수도 안 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악랄하고 교활한 인간은 아니라고 본다. 세월호 아이들의 영상을 복구한 그에게 JTBC는 절대 나쁜 짓을 할 리 없는 정의의 집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행동과 직업윤리에 대한 성찰은 못 한 듯하다. 선악의 논리에 빠질 때 인간이 어리석어지고 실수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3. JTBC가 말한 ‘알 권리’ 도대체 무엇인가 

확실하게 더 나쁜 쪽은 JTBC다. 경향신문이 16일 자 양면에 걸쳐 실은 성완종 인터뷰 전문은 A4 10장 분량이다. JTBC가 공개한 부분은 A4 5장 분량이다. 새로운 사실관계가 있기는커녕 경향신문의 공개분량보다 적다.

종이신문은 한두 시간 만에 뚝딱 못 만든다. 경향신문의 초판 마감 시간은 취재기자 기준 4시 30분이다. 그 전에 공들여 죄다 만들어놓은 것을 9시간 먼저, 분량도 더 적게 보도하면서 무슨 ‘알 권리’를 추구했는지 의문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알 권리’는 취재와 보도를 막는 공권력에 대항해 쓰는 말이지, ‘내가 보도하는 모든 것’을 정당화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 (2015년 4월 16일 자, 8면)

경향신문,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 (2015년 4월 16일 자, 8면)

경향신문,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 (2015년 4월 16일 자, 8면)

경향신문,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 (2015년 4월 16일 자, 9면)

알 권리가 뭔지 알려주랴?

경향신문이 15일 자에 공개한 ‘비타500’ 박스는 녹취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완구에게 돈을 건넸다’는 녹취록 진술(이미 공개했다)을 바탕으로 취재기자가 성 회장의 측근을 따로 만나 확인한 내용이다. 이렇게 취재한 경향신문을 JTBC는 “단편적으로 대화록이 일부만 공개한다”고 했다.

세월호 영상을 JTBC가 독점했다고 그 누구도 욕한 적 없다. 당시 JTBC가 보였던 유가족에 대한 신뢰, 성완종 녹취록을 위해 보였던 경향신문의 노력은 본질에서 다른가. JTBC 시청률 말고, 활자화된 전문 텍스트가 아닌 중간중간 잘린 육성녹음(즉 생중계도 아니고 편집중계다) 보도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는 대체 뭔가.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JTBC 보도본부의 판단은 오늘의 일 뿐 아니라 과거 제작진들이 고생해서 만든 성과까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를테면 다이빙벨 보도의 헛발질은, 판단착오가 아니라 ‘그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싶었나’라던가. 원래 상업적 동기와 정치적 신념이 섞인 공간이 언론사다만 생각보다 ‘상업’에 더 방점을 찍은 언론사였던 것인가.

공영방송에서 독립성을 지키려면 정권 하나만 상대하면 됐다. 민영방송에서는 정권, 사주, 기업, 시장 모두를 상대해야 하는데 고작 이 정도였나. 다른 매체라고 사주나 편집국장에게 안 쪼였겠나. JTBC의 적이 얄팍한 실적주의거나 사주의 압박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오늘 손석희 사장이 입장을 밝힌다는데 어물쩍 넘어가지 않기 바란다. 도둑질 행위에 대해 누군가는 직을 걸고 책임을 졌으면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손석희 사장의 현장 취재경험이 일천해 애써 취재한 결과가 통째로 빼앗기는 아픔을 모르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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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은하
초대필자.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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