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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가 오픈넷과 함께 정보통신 분야에서 2015년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할 법과 꼭 막아야 할 법을 총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1. 저작권 삥뜯기 방지법 고! vs. S/W 특허법 스톱!
2. 삭제는 메일로 복원은 소송으로? 임시조치 개악을 막아라!
3. 사이버 사찰 방지 vs. 감청 설비 의무화
4. 국민 20% 감시, ‘투명성 보고’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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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을 차단한다

“당신의 게시물을 차단한다.”

포털이 운영하는 블로그 안에서 그리고 댓글에서 비판적인 글을 쓸 경우 종종 겪을 수 상황이다. 질 낮은 서비스를 하는 업체를 비판해도, 공인의 행태를 비판해도 상대방의 한 마디면 끝난다.

“이 글 막아주세요.”

이제까지의 상황: 불합리하다

“임시조치”는 정통망법 제44조의2에 따른 조치다. 게시물로 인해 피해를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신고가 있으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은 그에 따라 게시물을 강제로 삭제하거나 내린다. 해당 글을 작성한 작성자에게는 사후에 통보한다.

이 때 작성자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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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신의 글이 차단된 상태를 받아들인다.
  2. 귀찮지만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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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은 여기서 1번을 택한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타인에 의해 막히고 지연당하는 상황이지만, 해당 글의 내용에 목숨 걸고 덤비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 의견 개진을 포기하고 만다. 불쾌한 기분이 들지만 애써 잊어버리기도 한다.

삭제된 글이라면 다시 살릴 방법이 마땅히 없다. 임시조치는 말 그대로 ‘임시로’ 조치된 것이니 삭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30일 후에나 다시 열람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 효과는 ‘삭제’에 가깝다.) 예를 들어보자.

정치인이나 기업 상당수는 특정 시기에 특정 이야기가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특정 시기 동안 언급되지 않도록 막으면 유리해질 경우가 많다. 임시조치 제도의 악용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스톱 스탑 금지 안돼

더 나빠진다: 정부(방통위)제출안

방송통신위원회는 2014년 12월 29일 정통망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이하 정부제출안) 그런데, 세칭 “블라인드”라고 부르는 이 임시조치 제도를 ‘개악’하는 방향이다.

[box type=”info” head=”정부개정안”]

  • 개정법률안 보기 (pdf)
  • 정부제출안 제안이유 요약
    • 임시조치에 대한 정보게재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한다.
    •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 분쟁 조정기능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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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이유를 살펴보면 얼핏 정보게재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는 이의제기 금지 절차를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의제기에 소송까지 하라고? 

정부제출안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1. 임시조치를 당한 글 작성자가 이의제기하면 ‘임시조치를 유지’한 상태에서 직권조정절차로 회부한다.
  2. 삭제 결정에 대해 소 제기를 해야 임시조치가 해제되어 글이 복원된다.

지금도 임시조치에 대한 이의제기율이 매우 낮은데, 자신이 쓴 글을 복원하기 위해 이의제기와 소 제기를 재차 요구하는 것은 이의제기하지 말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최초에 글을 작성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반면,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무엇 때문에 차단을 요구했는지를 밝힐 기회를 지금보다 줄이는 효과 발생한다. 지금보다 더 큰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이다.

쥬얼리성형외과 사례를 ‘가상’ 적용하면? 

2014년 12월 쥬얼리 성형외과는 직원들이 올린 수술실 생일파티 인증 사진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사진은 급속도로 인터넷의 다양한 공간으로 퍼졌고, 많은 언론과 블로거들이 이 사실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쥬얼리 성형외과 측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실을 블로그에서 다룬 블로거의 글을 임시조치 요청을 했고, 하나둘씩 블라인드 처리되었다.

정부제출안에서는 쥬얼리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까? 아래 “가상” 흐름도를 보자.

방통위안에 따른 쥬얼리 성형외과 사건 가상 흐름도

블로거들은 쥬얼리 성형외과 직원들이 올린 사진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글 안에는 욕설이나 음담패설도 없었고 불법적인 정보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요청안에 따르면 흐름도를 보다시피 각종 귀찮고 불편한 절차를 확인하는 동안 글은 “블라인드”를 당한 상태가 유지된다. 블로거가 사진을 조작한 것도 아니다.

만약 “블라인드” 조치를 받은 블로거들이 매일 야근을 하는 직장인이거나 여러 사정으로 저런 절차에 제대로 응답할 여건이 안 된다면 어떨까.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논평하거나 인터넷상에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저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한다면 정상적인 사회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자율적인 판단조차 할 수 없다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선 현재의 제도를 살펴보자. 현행 제도는 그나마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 한해 임시조치를 명령하고 있다. 즉, 포털 사업자는 “권리 침해”를 악용하거나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정보의 유통을 막으려는 자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정상적인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부개정안은 이러한 여지가 없다. 권리 침해를 주장하는 자는 자신의 블라인드 요청이 거부당하면 임시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나 처음 정보를 게시한 자는 아무리 옳은 글을 써도 정보가 일단 차단당하는 걸 막을 길이 없다. 포털 사업자 역시 이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고 Go

나아질 수도 있다: 유승희 의원안

표현의 자유를 살리자고 서로의 생각이 충돌하는 개인들의 의견을 고루 받아들이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유승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을 살펴보자.

2013년 12월 20일 유승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안번호 1908685)은 간단하다. 일단 권리침해를 받은 자가 차단을 요청하면 임시조치를 해놓고, 정보게재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바로 풀어주자는 것이다. 제안이유와 주요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box type=”info” head=”제안이유와 주요 내용”]
제안이유

  • 현재의 임시조치는 누구든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권리침해를 당했다고 주장만 하면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30일 동안 차단되며 이는 사실상 사전검열로 작용하고 있다.
  •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차단한 인터넷 게시물은 82만 건에 달한다. 2008년 대비 300% 증가했다.
  • 이는 게시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정보접근권을 동시에 침해하고 있다.
  • 현재 임시조치는 정보 차단의 절차만 규정하고 이의제기 절차는 규정하지 않는다.

주요 내용

  • 자신의 글이 블라인드 당했을 때 이의신청하면 포털 사업자는 30일 전이라도 다시 글을 공개로 돌리고, 이 사실을 임시조치 요청인과 게시자에게 알린다.
  • 포털 사업자는 이런 차단 조치에 대해 매년 2회 방송통신위원회에 보고한다.
  • 방송통신위원회는 보고받은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한다.
  • 포털 사업자는 자율적인 판단으로 임시조치/이의신청 거부를 할 수 있다.
  • 또한, 포털 사업자는 타인의 임시조치 신청도 거부할 수 있다. (즉 자율 판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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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주체들이 책임을 지도록

저작권법 제103조 제3항도 권리자의 요청이 있으면 게시물을 차단하되 이의제기를 하면 풀어주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해야 권리자와 정보게재자의 이익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연예인이나 공인에 관해 악의적인 비난글이나 유언비어성 글을 올렸을 때 포털 사업자는 자율적인 판단으로 글을 차단할 수 있다. 만약 글 작성자가 고의로 터무니없는 내용을 쓴 거라면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정말 공익을 위해 글을 쓴 거고 임시조치 당한 게 억울하다면? 글 작성자는 자신의 글을 풀어달라고 이의신청을 해서 글을 다시 살리면 된다.

이런 식으로 글 작성자가 직접 글을 쓰고 이의신청까지 해서 글을 살릴 정도의 사안이라면 임시조치를 하려는 자와 글을 쓴 작성자 간에 서로 직접 해결을 하면 된다. 누군가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채 포털이 한쪽 편을 들어 30일간 무조건 막게 하는 제도 보다는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이제까지 알아본 것처럼 정부제출안은 표현의 자유를 살리자는 취지이면서도 정보게재자의 복원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 한번 이의를 제기하면 그게 옳든 그르든 간에 무조건 30일 동안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포털 사업자는 자율적인 판단을 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결국 이의제기자의 손을 들어주는 행동만 취할 수밖에 없다.

[box type=”info” head=”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3.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4.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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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제출안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언론, 출판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에도 반하는 것이며 불법정보만을 차단하겠다는 정보통신망법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타인의 명예, 사생활, 영업비밀 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글들은 긴급히 내려질 필요가 있다. 불법임이 확인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선 한시적으로라도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제출안은 그런 법이 아니다.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지에 관계없이 그리고 피해가 회복할 수 없게 시급한지에 관계없이 누군가 주관적인 판단만으로 게시물을 내릴 수 있는 법안이다.

Amy Clarke, CC BY https://flic.kr/p/7gFVrj
Amy Clarke, CC BY

글 삭제는 메일 한 통! vs. 글 복원은 소송하라? 

이렇게 합법적인 글에 대해 차단의무를 부과하는 법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만약에 이 법안이 통과하면 진실한 상호비판과 토론이 어려워진다. 정치, 경제, 문화를 다루는 공론장이 모두 망가진다. 기업 A가 소비자 B의 주장이 ‘기분 나쁘면’ 차단할 수 있고, 영화감독 A가 관객 B의 영화평이 기분 나쁘면 차단할 수 있다. 정치인 A가 유권자 B의 비판이 싫으면 차단할 수 있다.

소통의 장인 인터넷이 망가지면 과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다. 임시조치 제도를 개선하고 정보 게재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다. 이번 정부개정안은 공약을 전면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에 배치되는 법안이다.

그래서 주장한다.

유승희 의원안은 고! 정부(방통위)제출안은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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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은 이 글을 함께 기획하고, 슬로우뉴스의 재정을 지원한 시민단체로 인터의 자유, 개방, 공유정신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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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명은 있다고, 실시된다해도 걱정할 일 없습니다.
    역으로 이용합시다. 내가 보기 싫은 글에 대해서도 메일 한 통씩 보내면 되죠. 그들이 손해보나 우리가 손해보나 질기게 가봐야죠. 아마도 쉽게 실행 못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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