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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 영역 B형의 35번 문제는 80%가 넘는 오답률로 학생과 교사들 사이에서 화제를 뿌렸습니다. 수학과 과학, 과학자의 언어와 소통에 관한 철학적인 논의를 담고 있는 지문이어서 학생들이 푸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인지언어학으로 언어와 교육을 살펴보고 있는 본 연재에서 수능 문제를 풀어보려는 것은 아니고요. 35번 지문의 내용이 과학 및 학문적 이론 전반에 대한 인지언어학적 입장과 상충하는 부분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격적인 논의를 위해 35번 문제 지문의 후반부를 옮겨 봅니다.

“When science speaks to others, it is no longer science, and the scientist becomes or has to hire a publicist who dilutes the exactness of mathematics. In doing so, the scientist reverses his drive toward mathematical exactness in favor of rhetorical vagueness and metaphor, thus violating the code of intellectual conduct that defines him as a scientist.”

과학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전달되면 그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닌 것이며, 그러한 과학자는 수학의 정확성을 약화시키는 선동자가 되거나 그런 일을 하는 선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과학자는 화려하면서 애매모호한 표현과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서 수학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자신의 욕구를 뒤집게 되고, 그리하여 자신에게 과학자라는 자격을 부여하는 지적인 행위의 규약을 어기게 된다.

– 해석은 EBS 공식 해설 자료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영역(B형) 정답 및 해설” 참조

윗글의 저자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은유적 표현을 쓰는 것은 “애매모호한 표현”만큼이나 피해야 할 일이고, 과학자로서 “지적인 행위의 규약”을 어겨 스스로 품위를 깎아 먹는 일이 됩니다. 진정한 과학자라면 메타포를 사용할 생각 따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과학적 언어와 메타포의 관계

학문적 용어와 메타포

그런데 과학이론이 중립적 언어로 기술될 수 있다는 믿음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하면서도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과학에서 용어와 개념이 탄생하고 차용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중립적 언어에 기반을 둔 이론전개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심리학이나 사회과학이라면 메타포가 없는 이론의 성립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뉴턴이 사물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표현하기 위해 attraction이라는 용어를 썼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attraction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용어인데 사물 간의 관계에 적용하는 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과학에서 attraction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초기에는 메타포적으로 이해되었던 용어가 교육과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는 것이죠.

사람 간의 관계를 그물망 즉,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로 표현하거나 조직의 특성을 사람의 행동에 빗대어 ‘조직 행동'(organizational behavior)으로 표현할 때에도 학문적 언어의 비유적인 특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일상생활에서 ‘머리’라는 기본 의미를 지닌 head가 HR(Human resources) 분야와 촘스키 언어학(Chomskian linguistics)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도서관(library)은 생물정보학과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지요. 선생님들께 친근한 언어교육 분야에서 화석화(fossilization)라든가 전이(transfer) 등의 용어를 떠올리신다면 이론 용어의 메타포적 성격을 더욱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과학이 일상언어에서 용어를 차용하면서 기존의 의미가 탈각되며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메타포적 성격을 띤다는 사실입니다.

이론의 전개와 메타포

그렇다면 메타포는 이론의 몇몇 개념과 용어를 생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일까요? 아래의 예를 통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이라는 메타포로 표현했죠. 그러나 ‘손’은 하나의 메타포일 뿐, 실제 존재하는 것은 수많은 생산자와 수많은 소비자가 만나는 물리적 시장입니다. 경제학, 정치학, 생물학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론 중 하나인 ‘게임이론'(Game Theory)은 용어 자체가 메타포입니다. 특정한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정한 게임으로 파악하여 기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저명한 저술가이며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생물학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의 서두에서 자신이 메타포를 쓰고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메타포의 사용이 새로운 학문적 관점(perspective)을 가능케 한다고 말합니다. 즉, 메타포가 같은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하는 수사적 장치를 넘어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동력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를 ‘이기적’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유전자를 자기 생존과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는 존재로 파악했습니다. 개별 유전자 각각이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일 수는 없으므로 ‘이기적’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메타포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이 강력한 메타포가 이론적 틀이 되어 책 전체의 관점과 흐름이 이끌고 있습니다.

생명의 음악그러나 누구나 ‘유전자는 이기적 존재’라는 메타포의 이론적 적합성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시스템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Denis Noble)은 생명현상 전반을 이해할 때 개별 유전자는 음악에서의 개별 음표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별 유전자 하나만 놓고 “이기적이다 아니다”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개별 음표는 독립적으로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음악의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지요.

이런 논의를 통해 그는 생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메타포로 음악을 제안합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도킨스의 이론적 틀을 비판하면서 시스템 생물학의 핵심을 설명하는 [생명의 음악] (The Music of Life)를 집필하기도 했죠. (재미있는 것은 노블 교수가 뛰어난 클래식 기타 연주자라는 사실입니다.)

현실, 이론 그리고 메타포

다시 수능 35번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지문의 저자는 진정한 과학적 언어는 메타포를 완벽하게 배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상의 논의는 “완벽하게 중립적인 언어에 기반을 둔 이론 전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언어 자체가 메타포적이며, 이론의 전개는 언어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메타포를 이론에서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메타포의 사용이 과학자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정확한 메타포를 통해 현상의 본질을 더 잘 설명하며 기존의 이론들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는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 과학자의 주요한 임무가 되겠지요.

참고문헌

  • Dawkins, R. (1990). The Selfish Gene. (2nd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USA.
  • Noble, D. (2008). The Music of Life: Biology Beyond Genes. Oxford University Press,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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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학생들 중엔 정답을 맞힌 비율이 20% 정도 나왔을 법한 문제군요. 하지만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조차 이 문제를 어렵게 여겼다(구글링 결과 확인)는 건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과학과 과학 아닌 것(non-science)을 구별하며, 과학이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에서 일부를 떼어낸 것인데, 언어 자체가 메타포로 구성된 거니까 과학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토를 달다니, 약간 어긋난 느낌이 듭니다. 원문 필자인 하비 맨스필드가 과학 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한 건 “중립적 언어” 사용이 아니라, 엄밀하고 계산과 검증이 가능하며 정직하고 공유가 가능한 방식으로 학문을 하는 거지 싶습니다. 말하자면, 과학의 세속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2. 답글 감사드립니다. 언어 자체가 메타포로 구성된 것이니 과학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건 제 개인의 주장은 아닙니다. ‘과학’과 ‘과학하기’를 구분할 수 있는가도 이슈가 될 거구요. 저는 그런 면에서 과학적 지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과학과 분리해서 생각하긴 힘들다고 보는 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When science speaks to others, it is no longer science”라는 문장은 선동적인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진실에 가깝다고 여겨지지 않네요.

    이런 저의 견해에 대해서 논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상당히 많은 과학자들 또한 과학에서의 메타포 사용이 유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적확한 메타포의 사용이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믿죠. 예를 들어 sub-particle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적절한 모델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 메타포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과학적 소통을 위해 필요한 거구요.

    죄송하게도 순수 수학에 대해서는 제 지식이 더욱 짧아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3. 아이러니컬하게도 하비 맨스필드가 쓴 글에서 speak라는 말에 일종의 메타포가 담겼고 그 때문에 지금 이 답글 대화가 촉발된 걸로 보이는군요.

    과학에 쓰여야 할 언어는 수식과 이론적 기술, 논증 등으로 한정되어야 하며, 그것을 넘어선 발화 행위(다시 말해 어떤 메시지를 담은 의사 표시같은 거겠지요)를 가리켜 speak라고 했다고 보는 게 제 관점입니다.

    따라서 인용하신 그 문장을 진실보다는 오히려 선동에 가깝다고 보신 건 당연합니다. 바로 그런 메타포 사용을 통한 현혹을 비판하면서 메타포를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글이 되었네요.

  4. Yet there are obvious reasons why science needs to use language everyone — that is, those of us unskilled in math — can understand. 저 지문의 마지막 문장 다음에는 이런 문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용된 지문이 필자의 ‘주장’인지는 의문시됨. 긴 글에서 문제내기 좋은 부분만을 따와서 출제했기 때문에 … 휴…

    참고문헌에 “Science and Non-Science in Liberal Education by Harvey C. Mansfield”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5. 편집자와 협의하여 수정하겠습니다. (사실 저 글 쓸 당시에는 문제만 보고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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