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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방의 눈으로 본 세계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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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에는 욕설과 비속어가 포함된 (가급적 순화한) 문장과 (순화되지 않은) 동영상들이 있습니다. 이 글이 화두로 삼는 다문화 청년 1세대의 목소리, 나아가 서로 교류하는 1020 청년의 온라인 문화의 한 풍경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점 독자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편집자) [/box]

 

‘지방의 눈으로 본 세계화’를 읽은 많은 벗들과 독자들께서 나에게 준 피드백 중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지적한 것은 이 문장이었다.

“백인 다문화 가족은 예능에 나오고, 동남아 다문화 가족은 다큐에 나온다.”

이 문장은 내가 생각해낸 게 아니고, 수년 전부터 인터넷 무명의 현자들이 만들고 유통시킨 통찰력 있는 잠언(?)이었다. 상층과 하층,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되는 세계화, 그리고 모두가 인식하는 그 세계화 속의 간극을 이토록 상징적으로 잡아내는 문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나뉘어진 세계화, ‘백인 예능’ vs. ‘동남아 다큐’

이 말은 곱씹어보면 곱씹어볼 수록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예능’과 ‘다큐’라는 형식은 미디어와 방송 소비자인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많은 이가 선망하는 서구적 외모를 가지고 교육을 잘 받은 ‘백인 혼혈’ 혹은 ‘글로벌 가족’들은 모두를 웃음 짓게 하는 예능에 나오고 연예계에 진출한다.

반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장식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다문화’들은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에, 우리의 시선은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로 향한다. 그 문제의 원인이 포용성 낮은 한국 사회의 인식 때문이든 아니면 이주민들 자체의 문제이든 원인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들을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시선 그 자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관점, 어떤 틀로 세계화를 바라보는가.
우리는 어떤 관점, 어떤 틀로 세계(화)를 바라보는가.

사실 이 같은 일방성은 방송이라는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TV 방송, 그 뿐만 아니라 신문, 출판, 라디오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는 메시지를 송출할 거대한 인프라를 기본적으로 요구한다. 이런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업, 정부와 같이 규모의 경제를 지탱하는 주체가 필요하고, 대규모 청중을 확보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결국 지방에서, 아래에서 세계화를 이끄는 이들의 목소리가 직접 우리에게 도달하기에는 방송국이 쓸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이 꽉 짜여진 예능과 다큐의 대구를 뚫고 나오는 사람이 얼마 전 등장한 것이다.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동력원인 인터넷의 물결에 올라타서 말이다. 최근 혜성처럼 인기를 몰고 있는 ‘과로사'(닉네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footnote]닉네임 ‘과로사’는 주업이 카카오TV PD다. 여기서 PD는 유튜버와 같이 카카오 TV 플랫폼에서 컨텐츠를 생산하는 생산자를 의미하고, 그의 유튜브는 동생이 운영한다. [/footnote]

과로사? 누구냐 넌?

그의 외모만 얼핏 봐서는 국적을 가늠할 수 없다.

과로사 혹은 압둘 알리. (출처: 압둘알리과로사, 과로사의 채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https://youtu.be/dD4QZ0UG8_g
과로사 혹은 압둘 알리. (출처: 압둘알리과로사, ‘과로사의 채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중에서)

움푹 들어간 눈매, 큰 코, 덥수룩한 수염은 어떻게 봐도 중동이나 인도에서 온 사람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가 진행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롤)’ 방송을 보면 그런 생각을 바로 고쳐먹게 된다. 그 누구보다 유창한 한국어를 엄청난 속도로 구사하며 방송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에 일본 오타쿠 문화에 상당히 몰입하고 있는 ‘오타쿠’다. 이국적 외모와 토속적 멘트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과로사가 바로 파키스탄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태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또한 한국 이름 ‘전재환’파키스탄 이름 ‘압둘 알리’가 공존한다.

최근 5월 중순부터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한 과로사의 인기는 대단한 수준이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구독자가 거의 5만 명을 향해 가고 있으니(글을 쓰던 당시, 현재는 2019년 6월 7일 기준 6.5만 명) 하루 만에 구독자가 수천 명 이상 느는 셈이다. 심지어 구독자 3만 명 기념 Q&A를 하겠다고 한지 이틀만에 4만 6천 명을 넘었으니 그 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만하다. 카카오TV 플랫폼이 트위치와의 경쟁 등에 밀려 기울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많은 경우는 나처럼 그의 영상을 커뮤니티 사이트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보고 구독을 시작한 ‘유입’들이다.

사실 인터넷 문화, 특히 10대, 20대의 인터넷 게임 방송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과로사의 방송은 거부감이 상당히 들 수 있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고음으로 욕설을 내지르며 게임을 하고 주먹을 치켜드는 영상은 누군가에게 무척 불편함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과격함이 과로사를 그 어떤 이들보다 매력적인 방송인으로 만드는 주역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과로사 본인도 엄청나게 욕설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갈구는’ 시청자들과 격의 없이 노는 카카오TV의 분위기 덕택에, 그의 파키스탄 혼혈이라는 배경을 갖고 웃고 떠드는 유례 없는 ‘다문화 방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카카오TV 라이브 채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로사의 채널(2019년 6월 7일 모습). 그만큼 방송을 자주, 많이 한다. https://tv.kakao.com/live
카카오TV 라이브 코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로사의 채널(박스 안, 2019년 6월 7일 모습). 그만큼 방송을 자주, 많이 한다.

파키스탄 혼혈의 웃프지만 유쾌한 유머코드 

예컨대 시청자가 그의 파키스탄 배경을 소재로 놀리는 멘트를 주면 과로사가 거기에 유쾌하게 맞받아치는 만담이나, 파키스탄 혼혈로서 한국 사회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과로사의 회고가 중요 포인트라 하겠다. 몇 가지를 예시하면 이런 식이다.

“돼지고기 먹습니다. 소고기 먹습니다. 이슬람 안 믿어요. 무교에요.”

솔직히 한국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에요. 여기 전쟁 없지, 테러 없지. 돈만 있으면 살기 X나 좋은 나라에요. 먹고 싶은 거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고. 싼 건 또 드럽게 싸요. 근데 치안은 또 X나게 좋아. 완벽해.

아니 X발 뭐 북한? 파키스탄에서 한 번 살아보세요. X발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데 X새끼가. 지금 우리나라 정도면 레전드에요, 레전드. 파키스탄은 X새끼야, 비행기타면 ‘이 비행기가 오늘 터질까요 안 터질까요’하면서 옆 사람이랑 내기할 수 있어요, 미친놈아 ㅋㅋ.

가뜩이나 우리 아버지 파키스탄 한 번씩 갈 때마다 인도랑 전쟁 나는데 그 비행기 터질까 안 터질까 X나 무서워요. 가끔 엄마랑 내기할뻔도 했어요. 저 아버지가 파키스탄 비행기 타면 저거 터질까 안 터질까 하면 ‘이 새끼가 못 하는 말이 없어!’ 뭐 그래요”

“아버지 한 번 약 올렸거든요. 그 날 저 명예살인 당할 뻔했어요 거짓말 안 치고. 아버지 라마단일 때 배 존나 고픈 채로 밥 안 먹은 채로 있을 때 거기서 인도 커리 X나 먹었어요. 약 올리는 거 X나 재밌더라구요. 라마단 하는 게 배고프긴 한가봐요 ㅋㅋ”

집에 코란 없어요. 그런 거 안 가지고 다녀요. 우리 아버지는 갖고 다니는데 전 없어요. 제가 이슬람이 아닌데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죠. 뭘 머리 속에 있어 X발 ㅋㅋ 제가 그걸 어떻게 외워요 대가리 속에 ㅋㅋ”

“저희 집 걸어서 4분 거리에 미군기지가 있긴 한데 테러할 생각은 없습니다. 알아두세요.

파키스탄의
아버지가 파키스탄 출신인 ‘과로사’이지만, 파키스탄과 이슬람 문화는 다소 거친 유머 소재로 희화화되는 경우가 많고, 이에 관한 애착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과로사가 방송에서 말하는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여기에 시청자가 더하는 다양한 드립들이 어우러지니 압둘알리 과로사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예컨대 게임 중 그가 ‘나이스’를 외치면 채팅창에서 다들 ‘나IS’를 연호하고, 과로사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말하면 ‘모스크가 싫으면 무슬림이 떠나야지’로 바꾸고, 시청자가 과로사를 놀리면 ‘주소 불러주세요 로켓 배송 해드릴테니까’라고 노는 식이다.

우려되는 점은 과로사가 자신의 정체성과 배경을 활용한 유머들을 쓰는 데 혹시 강한 비판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과로사가 활동하는 인터넷 방송이라는 무대가 음지의 영역이기도 해서 이런 점에 대해서 진지한 비판이 들어오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로 보았을 때 7월, 8월까지 지나갔을 때 그가 어느 정도 규모까지 성장할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폭발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점점 화제가 되면 될수록 그가 활용하는 민감한 이야기, 특히 파키스탄, 이슬람 문화를 테러, 참수, 폭탄 등의 부정적 이미지와 연관시켜 희화화하는 것이 문제가 될 소지는 없잖아 있다.[footnote]과로사 팬들도 미국 플랫폼인 트위치에 방송을 송출할 경우 인종차별 등의 문제로 정지 처분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footnote]

과로사의 ‘자기 인생 이야기’에서 배우는 ‘현실’

물론 나는 이 글에서 과로사의 그런 유머코드를 비판하려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는 지금 대학에서 서아시아 이슬람 지역을 전공하지만 오히려 과로사의 이슬람 드립들을 매일매일 즐기고 있고 응원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비서구 지역을 공부하는 학과를 다니면서 오리엔탈리즘이니 식민주의니 하는 상아탑의 이야기들을 그래도 자주 접해본 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수업에서 읽은 그 어떤 글보다 과로사가 말해준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서 더 많은 충격을 받았고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서구 학자들이 자국의 흑인 및 소수자 문제에 대하여, 혹은 인도 출신으로 탈식민주의에 몸 바친 사람들이 ‘서발턴'(Subaltern)[footnote]탈식민주의 논의에서 ‘지배세력의 헤게모니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경로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모든 집단’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인 용어. (편집자)[/footnote] 이론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도 물론 좋다.

가야트리 차크라보티 스피박(영어: Gayatri Chakravorty Spivak, 1942년 2월 24일~). 비교문학 교수이자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그의 논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can subaltern speak)"(1988)은 탈식민주의에 관한 논의를 폭발적으로 촉진하는 기념비적인 역할을 했다. (출처: 콜럼비아대학교) http://blogs.law.columbia.edu/foucault1313/2016/04/10/gayatri-chakravorty-spivak/
가야트리 차크라보티 스피박(영어: Gayatri Chakravorty Spivak, 1942년 2월 24일~). 컬럼비아 비교문학 교수이자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출처: 컬럼비아대학교)
스피박의 논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 https://cup.columbia.edu/book/can-the-subaltern-speak/9780231143851 (1988)은 탈식민주의 논의를 폭발적으로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른쪽은 그의 논문과 그 이후 학자 7명의 논의를 함께 묶은 한글 번역서.
스피박의 논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1988)은 탈식민주의 논의를 폭발적으로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른쪽은 그의 논문과 그 이후 학자 7명의 논의를 함께 묶은 한글 번역서.

하지만 바로 지금 2019년, 바로 여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문화와 문화의 충돌, 혼합에 관해 알기에는, 그런 글들은 시공간도 다르고, 또 지나치게 이론적이라 현실감이 떨어진다. 과로사의 방송이 그런 학자들의 글과 다른 점은, 그의 방송이 그 어떤 중개자도 거치지 않고 직접 대중들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을 위트 있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그가 한국 사회에서 지니는 가치가 바로 여기 있고, 그런 의미에서 소위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이들이 섣불리 과로사와 그 팬덤을 비판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의 발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인터넷 방송을 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 다행스럽게 그런 비판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아직까지는.

‘예능’과 ‘다큐’의 시선을 넘어서 

앞서 과로사라는 존재가 한국 사회가 갖는 두 시선, 제1세계에 관해 요구하는 ‘예능’의 시선과 제3세계에 대해 갖는 ‘다큐’의 시선을 넘어서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의 방송을 보면 대부분 게임 이야기에 일본 애니메이션, 리듬 게임, 일상 이야기가 많지만, 종종 그가 파키스탄 혼혈, 다문화 청년으로서 말해주는 이야기에는 웃음이 있고 감동이 있다.

심지어 같은 한국인에게도 가혹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가 어렸을 때부터 당해온 차별, 무슬림 아버지와 문화 차이에서 온 갈등과 같은 아픈 기억을 과로사처럼 유쾌하게 풀어서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최초가 아니었을까? 예컨대 과로사가 했던 이런 말을 들어보자.

“(채팅창에 과로사의 이국적인 외모가 부럽다고 쓴 시청자에게) 수염 멋지게 나고 이목구비 뚜렷한 제 유전자가 너무 부럽다고요? 님아, 제 과거는 부럽지 않을 걸요. 학창시절에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X나 따돌림당했는데, 님은 이걸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게다가 처맞아서 코까지 삐뚤어졌는데…. 전 잘못 태어났어요. 부러운 게 아니라니까요. 너도 한 번 처맞아봐야 그런 소리 안 나지.

(채팅창에 “난 한국인처럼 생겼는데도 처맞았어”) 너는 한국인처럼 생겼는데 처맞았다고요? (씩 웃으며) 우리 오늘부터 ‘Best friend(절친)’라고 친구!

-압둘알리과로사, ‘우리 오늘부터 절친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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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목하니까 X발 우리 아버지 생각난다. 옛날에 돼지고기 먹었다고 씨발 나 팬티 바람만 입히고 그대로 내 위에랑 아래랑 다 벗긴 다음에 밖에 끌고 나와가지고 밖에 후들겨 패는데 돼지고기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 줄 몰랐어. 그 뒤에 집 방구석 안 들어갔다가 한 번 더 했다가…. 나는 알몸으로 X발 각목으로 후들겨 맞으면서 사람이 말리는 걸 처음 봤어. X발 아니 옆에 있는 사람이 말리더라고요.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거냐고. 신고할 거면 하라고, 아버지가 내 아들이라고 그러면서. 각목으로 후들겨 패는데 레전드였어 X발.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생각 하면서.”

전 중학생 때 너무 힘들었어요,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말하죠. 지금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대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네. 난 싫어, 씨X년아! 처맞았으니까!! 과거가 팽팽했던 개X끼들은 그런 말 할 수 있어요. 저는 아닙니다. 저는 싫어요. 또 맞고 싶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오 X발, 1, 2, 3, 4, 5, 6, 7지망. 7지망이 걸렸어요. 첫날 학교에 앉아서 옆사람이 저를 쳐다보면서 안녕~ 이런 식으로 손을 흔들더군요. 오 마이 갓. 앞으로의 내 3년이 보이는구만. 말이 안 되게 보이고 있어. 내 미래는 망했다. 이제 앞으로 이 3년 간 저 녀석에게 빵셔틀을 하겠지. 여기 매점도 있으니 이젠 진짜 X된 거야.

선생님한테 달려가서 선생님, 자퇴하겠습니다. 뭔 자퇴야 이 씨X롬아. 자퇴하겠습니다. 안 돼. 안 돼. 부모님 데려와. 부모님 데려와서 들은 선생님의 어김 없는 설득. 하지만 저희 어머니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 너무 힘들어요. 자퇴해야겠습니다.” 이랬거든요.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

외국인 고등학교? 이 개X끼야! 중학생 때 씨발 몽골 혼혈이 있었는데 그 새끼도 씨발 지 산다고 나를 괴롭혔어 개새끼야~ 이 씨발 밥 먹는데 열받게 하네. 역시 선빵필승이었어요. 내가 그 새끼 괴롭혔으면 됐을텐데.”

다문화 청년 1세대의 ‘자기 목소리’ 

사실 ‘지방의 눈으로 본 세계화’라는 글을 썼던 이유는 과로사의 이런 자기 증언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로사는 나와 동갑인 1994년 생이다. 2000년 즈음하여 본격적으로 한국에 이주민의 유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과로사는 이제 ‘다문화 청소년’을 넘어서 갓 태동하기 시작한 ‘다문화 청년’의 제1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관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가?

물론 인간극장에 등장하였던 콩고 출신의 청소년 라비 토나와 조나단 토나의 이야기는 한 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대체로 일시적이었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 가정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낮은 다문화 청소년의 대학진학율(과로사 본인은 고등학교 중퇴), 학교에서 이질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그들이 마주하는 폭력은 늘 현재진행형인 문제였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설령 관심을 갖는 이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온정주의가 섞인 ‘다큐’의 시선이지 결코 그들 본인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은 이제 세계화 시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들은 안산, 평택, 구미의 세계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지방의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았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한다는 것.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한다는 것.

그런 이유로 과로사라는 인물의 등장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 사회 기저에 흐르는 변화를 알리는 신호고, 얼마든지 한국 사회가 보유한 자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화려한 ‘예능’의 세계에 나오지는 못하지만, 더는 한국 사회가 일방적으로 ‘불쌍한’ 이미지를 강요하는 ‘다큐’의 시선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자기가 겪은 얘기들을 이야기할 뿐이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방송에서는 기대하지도 않는 ‘밋밋한’ 이야기, 혹은 반대로 방송에서 절대 못할 적나라한 이야기까지 거리낌이 없다. 바로 남이 바라는 이야기를 입만 빌려 말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느낀 이야기들을 직접 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떤 방송에서 돼지고기 먹었다고 무슬림 아버지에게 각목으로 맞았다는 ‘썰’을 풀어줄 것이란 말인가?

과로사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계 혼혈로서 세계가 주목하는 모델로 성장한 한현민, 러시아 태생으로 완벽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김니키타(보드카베어, 아래 동영상 참고) 등 출신지와 활동분야, 인기도 면에서는 각각 다르지만 인터넷 플랫폼을 능숙히 다루는 다문화 청년 세대가 부상하여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들 인물들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더 많은 1.5세대 이주민 청년, 2세대 다문화 청년들이 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국 사회에 들려주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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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나는 바로 이들이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한국 사회의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혹은 지방의 세계화’에 사회구성원이 적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주역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과로사의 방송을 즐기는 시청자가 파키스탄이나 중동 혼혈 청년을 봤을 때 거부감이 들까 아니면 친근함을 느낄까? 1초만 생각해도 답 나온다. 그들이 그동안 사회의 보이지 않던 영역에 있다가 가시적인 공간에 등장한다면, 앞으로 청년 세대로 꾸준히 진입할 다른 다문화 청년들도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과로사를 비롯해 현재 온라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다문화 청년들이 자신들의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꿋꿋하게 강조한다는 것도 긍정적인 점이다. 옥스퍼드 경제학자 폴 콜리어는 이주 문제를 다룬 그의 저서 [엑소더스]에서 서유럽 국가들의 이주 정책이 공통의 국민 정체성을 해체하는 걸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폴 콜리어 | 김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4
폴 콜리어 | 김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4

피부색이나 인종을 이유로 어떤 구성원들을 그 사회에서 배제시키면 절대 안 되지만, 이주민일지라도 공통의 영국, 프랑스, 독일의 역사, 언어, 문화를 공유해야만 사회적 안정성을 확보하여 복지국가를 운영할 사회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된 주장이었다.[footnote]참고로, 인종적 다양성과 복지국가의 문제는 알베르토 알레시나와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복지국가의 정치학]이 잘 설명하고 있다.[/footnote]

하지만 서유럽 국가들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통치의 영향으로 이미 국내에 오랜 기간 이주민의 디아스포라(그리스어 Diaspora,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특정 민족이 자의든 타의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가 형성되어 왔고, 실질적으로 그 디아스포라는 주문화와 독립된 정체성을 지닌 이문화의 섬처럼 고립돼 사회적 불신과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럽에서 세를 넓히고 있는 포퓰리즘 운동도 그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쯤에서 과로사 본인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 문화의 통합력이 유럽보다 어떤 의미에서 나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 한국 사람이에요. 파키스탄 혼혈이긴 하지만. 토종 한국인입니다. 불고기 좋아해요. 김연아 좋아해요. 볶음밥, 비빔면, 양념치킨 다 좋아해요. 붉닭볶음면 까르보나라 다 좋아합니다. 짜장면, 한국음식 다 좋아해요 진짜. 김치, 깍두기, 그 다음에 겉절이 존나 좋아해요. 홀리쉿 왓더뻑. 수육국밥엔 겉절이 순대국밥엔 깍두기. 보쌈엔 백김치. BTS? 그건 우리 엄마랑 여동생이 좋아하니 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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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떤 지식인은 이런 과로사의 이야기에 대해 ‘국뽕’ 민족주의를 강요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버린 근대국가의 폭력을 운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보다 이주민과 많이 마주쳤다고 확언할 수 있는 내 눈에는 과로사가 어렸을 적 한국 사회로부터 여러 차별과 배제의 벽에 부딪혔음에도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강한 소속감과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진심으로 말이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과로사의 방송을 즐겨보며 그 같은 방송인의 등장이 기쁘다. 그가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비춰지지 않았던 부분을 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길 바란다. 물론 그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는 않으나, 그의 채널 구독자 수가 5만 명을 넘어 10만 명, 15만 명에 이르면 분명 더욱 큰 반향이 생기리라.

그리고 과로사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잠재력이 있다. 예능의 시선도, 다큐의 시선도 아닌, 카카오TV의 PD 과로사의 시선이야말로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시선인 것이다. 물론 그의 LOL 게임 플레이와 미친 듯한 텐션, ‘나니’와 ‘앗살람알라이쿰’으로 대표되는 명대사들도 빼놓을 수 없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과로사의 따뜻한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오늘 학교에 아랍애 전학왔다고요?

아랍애 괴롭히지 마세요.

그리고 그 X끼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만약 괴롭힘당하면 X발X끼들 다 로켓배송 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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