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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50일 전쟁”이 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쪽에서는 2,143명의 사망자가, 스라엘에서는 7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특히 팔레스타인 사망자 중 약 1,460명이 민간인이고(이스라엘은 6명) 47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이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를 ‘전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전쟁이 아니라 ‘사실상’ 일방적인 대학살이므로. -편집자)이 터져 나왔다.

이것은 '전쟁'인가, 아니면 '학살'인가? (출처: KBS, 피디저널)
이것은 ‘전쟁’인가, 아니면 ‘학살’인가? (출처: KBS, 피디저널)

역사적 맥락 거세된 ‘외신 받아쓰기’ 

2021년 5월 10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다시 11일간의 “충돌”이 있었다. 약 7년이 지났지만, 한국 언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을 대하는 방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국내 언론사 중 가장 많은 해외 취재망을 갖고 있는 언론사는 연합뉴스다. 연합뉴스는 국가기간 통신사로 공적 기능 수행을 위한 정부 지원금 320억 원가량을 받는다. 지원금의 지급 근거인 ‘공적 기능’에는 해외 뉴스, 외국어 뉴스, 뉴스 통신 서비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연합뉴스가 생산하는 국제 기사는 해외 취재망을 갖지 못한 국내 언론사들의 중요한 정보원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연합뉴스 국제 기사 대부분이 외신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있다. 이번 연합뉴스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보도의 정보원은 해외 통신사, 주요 TV, 현지 언론, 유명 해외 일간지가 전부이다.

심지어 특파원이 있는 경우에도 외신 보도를 인용한 기사가 대부분이다. 특파원이 작성한 기사에는 “AP통신에 따르면”, “로이터에 따르면”, “AFP, A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AFP는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해”가 전부였다. 서구 주요 통신사 기사를 국내 언론사가 그대로 받아쓰는 일이 수년째 반복되면서 국제 문제를 우리나라의 시각으로 보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서구 언론이 생산해내는 담론은 그들의 이해관계만을 담고 있다. 특히 강대국들이 생산해내는 담론은 중동지역을 타자화할 뿐 아니라 자국의 이해관계에 맞게 생산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여 인과관계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역사적 맥락을 제시해야 한다. 두 나라 사이에는 지난한 탄압과 학살의 역사가 있다. 이를 무시한다면 죄 없는 약자들이 수없이 죽어간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많은 기사들은 이런 역사적 맥락을 배제한 채 쓰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 (출처: Image by hosny salah from Pixabay) https://pixabay.com/users/hosny_salah-10285169/?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image&utm_content=3829414 https://pixabay.com/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처: Image by hosny salah from Pixabay)

특파원의 존재 이유 

특파원의 역할에 대해 묻고 싶다. “AP에 따르면”, “로이터에 따르면”이라는 문구 없이 본인들의 취재 기사를 쓸 순 없는 것인가. 물론 혹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위험지역이라 입국이 어려워 취재가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미얀마 사태를 두고 그 곳에 입국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방콕에 파견된 KBS 기자가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에 나가 취재하고, 한 마을의 공습 직후 영상을 자체적으로 입수해 보도하기도 했다. 중동 지역에 나가있는 특파원 중 대부분이 가자지구와 맞닿아있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봤을 때,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서울에서보다는 분명히 더 많을 것이다.

외신을 받아쓰기한 동아일보 기사(왼쪽)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10517/106968234/1 vs. 분쟁 현장(태국-미얀마 국경 지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 KBS 리포트 (오른쪽)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54074
외신 받아쓰기 동아일보 임현석 특파원 기사(왼쪽)  vs. 분쟁 현장(태국-미얀마 국경 지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 KBS 김원장 기자의 리포트 (오른쪽)

언론이 ‘서구 언론 인용 기사’를 계속해서 써 내려갈 때 피해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2018년 그 누구도 예멘 내전이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멘 난민이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이전까지 예멘 내전과 난민 문제에 대해 언론을 통해 전혀 접한 바 없었던 많은 이들이 그들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사전 지식이 있었다면 ‘가짜 난민’ 논란이나 무슬림의 폭력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고통받는 예멘 난민들은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11일 동안 진행된 ‘충돌’은 조건 없는 합의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즉, 언제든지 한국 언론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후에 또다시 서구 언론의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해 내보내며 서구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한국의 언론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대하는 방식을 재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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