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지 칼럼] 위기의 한국 영화, ‘베테랑 2’와 ‘하얼빈’이 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
아마도 추석 연휴 극장가를 살핀 사람이라면 적잖이 놀랐을 터다. 8월 여름과 추석 명절, 설 명절, 연말이 극장가의 가장 큰 대목 시즌인데 제대로 사람 모으자고 내건 영화가 [베테랑 2]밖에 없다. 인터넷엔 [베테랑 2] 흥행세가 좋다는 기사들이 솔솔 올라오지만 이럴 수밖에 없다. 가서 볼 영화가 이것뿐이다.
사흘 만에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주요 멀티 플렉스 상영관의 스크린 점유율이 90%를 넘긴 것과 무관하지 않다. 스크린 10개 가운데 9개에서 [베테랑 2]를 틀고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지난 주말 [베테랑 2]의 좌석 점유율은 73.5%를 기록했다. 영화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넷플릭스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영화계 큰손 CJ의 사정
사실 사정이 이리될 만큼 극장가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계의 큰손 CJ의 사정이 더 그렇다. CJ는 이제까지 우리나라 영화계의 가장 큰 메인 배급투자사로 굵직굵직한 영화들을 투자하고 만들어왔고, 잘 알려져 있듯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위해 캠페인도 펼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 CJ가 코로나19를 거치며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그 이후 내건 영화들이 정말 하나같이 족족 흥행에 실패하면서 영화 투자에 손을 뗀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그런 소문에 대한 화답은 마지막으로 [베테랑 2]와 [하얼빈] 흥행 여부를 보고 결정한다 카더라는 이야기였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이 두 영화에 많은 것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계에선 CJ가 진짜 이 시장에서 손을 떼면 어떡하나 두려웠을 것 같다. 나 역시 이 어려운 영화시장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많은 것을 일구어 온 그들이 손을 뗄까 조마조마하니, 현업에 있는 분들은 어떻겠는가. 결국 추석 시즌 딱히 붙어봐야 대적할 만한 영화도 없는 상태니, 많은 영화가 조용히 길을 비켜준 게 아닐까 나 혼자 생각할 뿐이다. 그만큼 위기라는 이야기다.
추석 ‘국가대표’ 영화 [베테랑 2]
그래서 내건 [베테랑 2]는 딱 9년 전 [베테랑]이 보여준 것과 거의 똑같다. 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들을 딱 내놓고는 있다. (오동진 평론가는 모두 이름값을 했다고 평가했지만 딱 그들이 보여줄 걸 보여줬다는 의미인 듯 싶다.) 전보다 못하다는 의미는 아니니 이 영화를 좋아할 분들도 많을 터다. 하지만 그뿐이다. 9년간 많은 OTT 시리즈물을 보며 높아진 사람들의 눈높이를 뛰어넘는 걸 찾기는 조금 어렵다.
무소불위의 재벌과 댓거리를 하며 보여주었던 쾌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러기엔 이번 빌런은 너무 만만해 보이기도 한다. 베테랑에게서 범죄도시를 기대하지 않았을 텐데,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는 뭔가 한발 더 나아간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9년 전과 너무 똑같은 황정민이 접어 준다. 어쩌면 CJ의 영화가 이렇게 9년 전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영화의 적나라한 평은 드물 것 같다. 모두 이 영화가 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있으니. 흥행도 어느 정도는 거둘 터다.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스크린까지 몰아줬는데도 실패하면 모두 자괴감에 빠질 것 같다. 남은 [하얼빈]은 조금 더 나은 모습이길. 다들 남은 연휴 [베테랑 2]도 보시면서 한국 영화가 어떻게 가야 할까 한번 생각해 주시길. 지루할 틈은 없고, 온 가족이 가볍게 즐길 명절용 영화로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