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지난 시간에는 맥락(context)과 언어(text)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언어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언어교육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었고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 의사소통중심 교수법(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 이하 CLT)을 기반으로 의미의 역동성을 가르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언어와 맥락의 역동적 관계

형식과 의미의 상관관계

CLT는 기존의 문법 번역식 교수법(Grammar-translation Method)이나 청화식 교수법(Audiolingual Method)을 비판하면서 언어학습의 과정과 목표 모두가 의사소통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정확성(accuracy)을 강조하는 문법수업을 최대한 지양하고 실생활에서 의사소통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죠.

하지만 한국과 같이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상황에서 문법을 완전히 배제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의사소통과 문법교육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CLT에 기반한 커리큘럼과 이에 큰 영향을 받은 과업중심 교수법(Task-based Language Teaching)은 언어교육계의 상식이 되었고, 많은 선생님이 이들 교수법을 훌륭히 실행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언어와 의미의 역동적 관계를 생각할 때 개선되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시험 준비를 기조로 하는 수업에서 문법은 여전히 의사소통의 도구라기보다는 문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고, 언어의 형식과 기능을 1:1 관계로 파악하는 경향 또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형식과 의미의 관계는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box type=”note”]
문법 번역식 교수법이란?

외국어 학습의 목적이 문학 연구와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 방법은 외국어 학습 목적이 문장을 이해하며 외국어 서적을 읽을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문법 지식을 넣어 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어려운 문법 용어를 사용하면서 외국어 문법을 가르치며 외국어를 우리말로, 우리말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훈련을 주로 한다. 우리나라 평범한 중고등학교 영어 수업을 떠올리면 된다.

청화식 교수법이란?

행동주의 심리학과 구조주의 언어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기계적인 발음, 어휘, 문법의 연습을 강조하는 교수법이다. 학생들이 가르칠 내용을 선정한 후 그걸 대화식으로 구성하여 외울 정도로 반복 훈련을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역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영어 수업을 떠올리면 된다.

의사소통중심 교수법이란?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고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외국인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교사는 실생활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 위주로 훈련하고 학생들 상호 간의 의미 있는 의사소통 활동을 통해 외국어를 습득하도록 가르친다. 1970년대 말 이후 영어 교수 방법의 대체적인 주류라 할 수 있다.

과업중심 교수법이란?

의사소통 중심 교수법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 능력을 핵심 목표로 하고 있으나 보다 학생이 관심을 둔 영역이나 전공 영역에 대한 내용을 이용하여 외국어를 가르침으로써 내용 습득과 외국어 습득을 동시에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box]

전통적 문법 수업에서의 구조와 기능

전통적 문법 수업이라면 “Did you eat?”에 대해서 이런 설명과 활동이 이어질 것입니다.

평서문이라면 “You ate.”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알고 싶다면 “Did you eat?”이라는 의문형을 사용해서 물어볼 수가 있겠죠.

이때 주의할 것은 ‘Did’라는 조동사를 앞에 놓고, 뒤의 동사는 동사 원형 즉, ‘eat’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다른 동사들로 문장을 더 만들어 볼까요?

eat 대신 come이나 sing을 넣어서 만들어 보도록 하죠. 다 되었나요? 그렇다면 옆의 친구들과 함께 만든 문장을 이용해서 대화를 해보세요.

이 활동에서 “Did you eat?”은 상대의 식사 여부를 알고자 하는 상황에서 사용되는 표현으로 일련의 규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맞는 설명이지만 언어와 맥락의 의미작용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수업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아래에서 “맥락 쓰기”“역할 바꾸기” 두 가지 활동을 제안해 보겠습니다.

맥락 쓰기: 같은 구조, 다른 의미, 그리고 맥락의 힘

첫 번째 제안은 ‘맥락 쓰기’(creating contexts)입니다. 맥락을 쓴다고 하니 조금은 생소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주어진 구조를 활용하여 여러 가지 문장을 만들어 보는 활동을 뒤집어, 특정한 문장 하나가 쓰일 수 있는 다양한 맥락을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초급 학습자들이라면 영어가 아닌 한국어 문장에서 시작해 볼 수 있을 텐데요. 다음 시나리오에서 힌트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box type=”info”]
과제: ‘밥 먹었어?’가 사용될 수 있는 다양한 맥락을 상상해 봅시다.

(1) 조금 늦게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때 ‘밥 먹었어?’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친구의 식사 여부를 묻는 것을 넘어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제안이 될 수 있습니다.

(2) 동생과 대판 싸웠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열기를 식히려고 잠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방금까지 난리를 치던 동생이 밥을 깨끗하게 다 비운 겁니다. 이때 싸늘한 목소리로 동생을 째려보며 이야기합니다. ‘어이, 밥 먹었어? 그래서 배불러?’

(3) 돌보는 길고양이가 놓아둔 밥을 먹고 있네요. 이때 귀여운 냥이를 보며 ‘냐옹아, 밥 먹었어? 어제는 그냥 도망가더니.’라고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물론 대답을 들으려는 의도는 없겠지요.
[/box]

‘맥락 쓰기’ 활동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상황을 창조해 냅니다. 이를 통해 책을 통해 배우는 문장 하나하나가 맥락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맥락의 중요성을 확인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교수전략으로 ‘맥락 쓰기’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It's creating contexts.

역할 바꾸기: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롤플레이’ 활동

두 번째는 역할극(role play) 활동을 변형한 ‘역할 바꾸기’입니다. 보통 역할극은 주어진 역할을 학생들에게 맡기거나 대사를 조금 바꾸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역할 바꾸기 활동에서는 주어진 대사를 바꿈과 동시에 역할을 새롭게 부여합니다. 이를 통해 재미있거나 황당한 상황, 또는 학생들이 바라는 시나리오를 연출해 보라고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

[box type=”info”]
제시 예문

Teacher: Can you finish the work today?
선생님: 오늘 과제를 끝낼 수 있니?

Student: Of course. Give me just one hour.
학생: 물론이죠. 1시간만 주세요.
[/box]

[box type=”info”](1) 역할 바꾸기

Kidnapper: Can you send 1 million dollars to me?
납치범: 백만 달러를 보낼 수 있나?

Mother: Of course. Give me just one day.
엄마: 물론입니다.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box]

[box type=”info”](2) 재미있는(희망하는) 상황 연출하기

Student: Can I study here after school?
학생: 방과 후에도 여기서 공부할 수 있나요?

Teacher: Of course not. You should play after school. You studied too much today.
선생님: 물론 안돼. 수업이 끝나면 놀아야지. 넌 오늘 공부를 너무 많이 했어.
[/box]

이렇게 역할 바꾸기 활동은 학생들이 주어진 역할(role)을 연기(play)하는 것을 넘어, 역할을 가지고 놀 수 있는(play with roles) 기회를 제공합니다.

It's role playing.

의미의 역동성, 삶의 역동성

언어교육의 기조가 의사소통 중심으로 바뀐 지 수십 년이 지났고, 우리 영어교육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언어와 맥락의 역동적 관계를 학습할 기회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의미의 생산 및 변형 원리를 가르치기 위한 활동 둘을 제안해 보았습니다.

먼저 주어진 문장이 사용될 수 있는 다양한 컨텍스트를 상상하는 “맥락 쓰기”입니다. 두 번째는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는 역할극을 넘어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보는 “역할 바꾸기”입니다. 이들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의미의 역동성, 나아가 삶의 역동성에 눈뜰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관련 글

첫 댓글

  1. 좋은 방법을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캄보디아 교민들에게 회화를 가르치고 교재를 개발하는 강사입니다. 교수님의 글이 큰 도움이 되고있어요^^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