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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8인 협의체 협상결렬 후에도 오는 12. 31.까지 언론미디어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서 논의키로 합의한 뒤 철회된 국회의안번호 ‘2112222’호’ 언론중재및피해구제등에관한법률일부개정법률안(대안)는 다양한 별칭을 갖고 있다.[footnote]참고로 이 법은 21대 국회에서만 16개의 개정법안이 발의(2021. 10. 1.현재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상 검색내역)되어 위원장안으로 국회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에 올라갔다.[/footnote]

관점의 차이: 징벌이냐, 구제냐

이렇게 긴 이름을 가진 법률은 보통 ‘언론중재법'(앞부분) 또는 ‘언론피해구제법'(뒷부분)과 같이 약칭으로 부른다. 그런데 의안2112222호는 법률 명칭을 줄인 ‘언론중재법개정안’, ‘언론피해구제법개정안’이라는 이름 대신 ‘언론징벌법’, ‘언론재갈법’, ‘언론겁박법’ 등의 이름으로 변주되어 사용됐다. 체감하기로는 언론징벌법이라는 명칭이 언론에 의해 많이 사용되다가 언론중재법으로 정리되는 듯하고, 언론피해구제(현실화)법은 상대적으로 사용 빈도가 없는 듯하다.

‘언론징벌법’이라는 이름은 개정안에 신설될 이른바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을 누구의 처지에서 관찰하는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손해배상을 구할 원고(잠재적 언론피해자)의 입장이라면 5배를 넘지않는 범위내의 손해를 규정하여 손해배상액의 현실화를 꾀한 법으로 피해구제현실화법이며, 손해배상을 하여야 할 주체인 피고(언론사 또는 기자) 처지에서는 손해의 ‘5배 손해액’은 가혹하다 여길테니 ‘징벌적’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허나 법안 명칭 자체에서 또는 조항 자체에 ‘징벌’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없다. 위 조항을 피고이자 손해배상책임자의 처지에서 ‘징벌적’이라고 평가하는 개념일 뿐이다.

언론중재법은 바라보는 관점, 틀에 따라 정반대, 즉 언론사 입장에서는 '징벌'로, 언론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구제'로 볼 수 있다.
언론중재법은 바라보는 관점, 틀에 따라 정반대, 즉 언론사 입장에서는 ‘징벌’로, 언론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구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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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개정안 제30조의 2)의 내용

법원은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 보도로 인한 피해정도, 언론사 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 고려하여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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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천문학적 손해액을 규정함으로써 사전예방의 기능 및 징벌적 의미를 갖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여 ‘언론징벌법’이라 명명하였다고 좋은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이 언론중재위원회 언론판결분석보고서를 바탕으로 2009.~2018.년까지 10년간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재판에서 실제 금전배상으로 이어진 재판 900건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청구액 최빈액(가장 빈번하게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평균 7800만원, 인용액 최빈액(가장 빈번하게 선고한 손해배상액)은 평균 565만 원으로 나타나 10분의 1 이하 수준을 보였다”고 한다(출처: 2021. 7. 12.자 미디어오늘).

그렇다면, 이 피해배상액, 피해 5배 범위 내의 손해배상액 최대치가 규정된다고 하여 사건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효과를 지니는 ‘징벌적손해배상제’의 도입이라고 볼 수 있을까. 동의하기 어렵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고 수년간의 소송 끝에 법원에게 (가장 빈번하게) 인정받은 평균 565만 원은 정신적 손해를 보상할 수 없으므로 실제 손해액이 아니라는 언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회의안2112222호’는 법안 후반 약칭인 언론피해구제법일 뿐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효과를 지니는 징벌과는 무관하고 게다가 ‘고의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라는 요건을 통과하여야 한다.

법원은 평균 500만원 남짓을 언론보도피해가 인정되었을 때 배상액으로 선고한다고 합니다.
법원은 평균 500만원 남짓을 언론보도피해가 인정되었을 때 배상액으로 선고한다고 합니다.

‘징벌’에 담긴 속뜻

언론징벌법은 의안2112222호에 대해 잠재적 손해배상책임자인 언론이 스스로의 처지에서 평가하여 규정한, 그래서 개정안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을 이미 포함한 개념이다. 어째서 언론은 일방당사자로서 평가한 개념을 관련기사에서 객관적 개념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사설이나 칼럼이 아닌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언론징벌법’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스트레이트성 기사에서조차 위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보도를 접하면 어느새 배상액에 대한 언론사의 불편함이나 언론중재법의 개정취지는 사라지고 언론중재법에 형벌조항이 들어있는 것 같은 착시로 이어지고, 사설에서 언론재갈법, 언론겁박법 등의 이름으로까지 변주되면 개정안 자체를 언론자유내용의 본질적 침해로 규정하고 모든 논의를 중단하라는 고약한 교시마냥 느껴지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위해 고도로 보장되어야 할 핵심적 가치이나 언론이 허위조작보도로 개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 손해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하기 위해 소환될 개념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허위조작'의 방패막이 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가 언론의 ‘허위조작보도’로 인한 피해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방패막이 될 수는 없다.

어찌 되었던 위와 같이 언론중재법 또는 언론피해구제법이라는 약칭을 두고 언론에 의해 ‘언론징벌법’으로 명명된 국회의안 2112222호는 또다시 2021. 12. 31.까지 언론미디어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서 제도 개선 전반을 논의한다는 조건하에 철회되었다. 위 철회 며칠 전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 7단체는 여야협의시한을 며칠 앞두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강화와 건강한 언론생태계 조성을 위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 추진 내용을 발표했다.

자율규제기구를 통한 사전적 예방적 역할을 통해 언론피해 발생 자체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므로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겠으나, 이것과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사후적 피해구제를 규정한 언론중재법개정안과는 별개이다. 그럼에도 이 개정법안을 ‘언론징벌법’으로 명명한 한 언론사는 관련 소식을 전하며 “언론징벌법은 철회가 아니라 폐기되어야 한다”며 의안 2112222호의 폐기를 주문하기 시작한다.

3개월이 심도깊은 논의가 이뤄지는 시간이 될지, 언론과 미디어 제도 전반을 논의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1년3개월간 ‘언론징벌법’으로 언론에 의해 규정된 채 난타당한 의안 2112222호를 슬그머니 떠나보내는 사실상 이별의 절차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아울러 통합형자율규제기구가 법안처리라는 소나기만 피한 뒤 버려지는 ‘위장개혁’ 우산이 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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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언론인권센터의 ‘언론인권칼럼’으로 필자는 송현순 변호사(미디어피해구조본부 실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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