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은 대개 (공동체의) 당위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반영한다. 나는 최근 MBC 아나운서의 제작 거부 선언 기사에 달린 어느 댓글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그 댓글은 MBC 아나운서들이 제작을 거부한 이유나 사회적 의미를 묻지 않았다. 그 댓글은 높은 연봉을 받는 MBC 아나운서의 가방과 옷이 명품이네 아니네를 따지며 비아냥거렸다.
못난 댓글이다. 개인적인 질투 감정으로 공동체 성원으로서 마땅히 참여하고, 동참해야 할 의무는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선. 하지만 나는 그 못난 욕망과 질투도 공적 대화 속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게 인간이니까. 적어도 나는 그런 댓글러에서 그리 멀리 있지 못하니까. 그것을 그저 무시하면, 세상에는 합리와 당위만 남는다. 그런 세계가 유토피아일까. 아니, 나는 그 세계가 위선만이 가득한 지옥일 것으로 생각한다. 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성주 기자는 최승호(5대, ’03~’05), 박성제(7대, ’07~’09), 이근행(8대, ’09~’11), 정영하(9대, ’11~’13) 등 전임 노조위원장이 대부분 해고당한 ‘절망의 시대’에 MBC 노조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했다(10대, 2013년 3월~2015년 2월). 그 절망이 얼마나 깊게 MBC 조합원을 잠식했는지 이 위원장의 임기가 끝난 직후에는 노조위원장 후보를 못 구해 선거가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참조: 미디어오늘).
그는 2003년 이후 그 자신에 이르기까지 6대 김상훈 위원장과 함께 유이하게 해고당하지 않았던 MBC 노조위원장이다. 나는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연한 일을 다행으로 여기게 하는 세계는 불행하다. 이틀 전 그에게 어제 시작된 MBC 총파업에 관해 물었다. 첫 질문은 MBC 총파업의 ‘당위’가 아니라 ‘왜 지금인가’라는 원망 섞인 물음이었다.
그 질문은 앞서 말한 ‘못난 댓글’처럼, MBC 총파업의 시대적 당위보다는 박근혜 정권에서 침묵과 무기력으로 노조위원장 후보도 제때 내지 못했던 MBC 조합원을 비난하는 세상의 잔인한 양가감정을 담고 있다. “세월호 때 부끄러워서 죽고 싶었다”고 말했던 그이지만, 총파업에 관해서는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리고 “싸움을 멈춘 적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이 인터뷰는 ‘배신과 부역의 시대’에 MBC라는 절망을 온몸으로 짊어졌던 한 방송 기자와의 다섯 시간 대화를 정리해 옮긴 것이다.
- 2017년 9월 3일 (일요일) 오후 4시 30분 ~ 9시 30분
- 김포공항 인근 카페
- 인터뷰이: MBC 이성주 기자, 인터뷰어: 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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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바뀌니까 (파업) 하는구나.’라는 분들이 있다. 왜 지금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왜 이제서야 파업하는가’.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MBC는 몇 가지 기억으로 남았다.
- 2012년에 파업했다.
- 김재철 사장은 좀 이상한 사람이다.
- 세월호 당시에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백지인 것 같다. 당연하다. 쌍용차 사태로 많은 노동자가 자살하고, 살아남은 노동자는 사 측의 손해배상소송에 시달리며, 백남기 어르신께서 물대포로 돌아가시고, 지역에서는 조선업이 붕괴하면서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MBC에 관해서는 1, 2, 3과 같은) 큰 기억만 남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정권 바뀌니까 파업하는구나’라는 시선도 당연하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싸움을 멈춘 적이 없다”
– 그 비판을 인정하는 건가.
’12년 파업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시청자의 시선을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공범자들]이 끝나면 나오는 엔딩 크레딧에 적힌 기나긴 이름들처럼, 해직된 분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안에서도’ 정직되고, 감봉되며, 부당전보 당한 이들이 많다. 밖에서 보면 이런 존재들을 쉽게 알기 어렵다. ’12년 파업 이후 해고 10명, 중징계 110명, ‘유배'(부당전보) 157명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님을 상징하는 숫자로 생각한다(참조: 미디어오늘).
– 노조위원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뭔가.
내가 노조위원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돈을 꾸는 일이었다.
– 돈 꾸는 일? 왜?
회사가 전 집행부를 해고하고, 조합에 195억 원 손해배상소송(이하 ‘손배소’)을 걸었다. 현재는 원고(회사) 패소로 2심 판결까지 났고, 회사가 상고해서 대법원에 가 있는 상태다. 그런 대형 소송에 대응하려니 노조 적립금이 바닥났다. 그래서 SBS 노조에 1억 원 정도를 빌렸다. 물론 지금은 빌린 돈을 갚았지만. 그 정도로 재정이 바닥이 난 상태였다.
– 노조를 상대로 한 손배소와 부당노동행위는 김재철 사장 이후 노조 탄압의 공식이 됐는데.
‘소송 3종 세트’라고 우리끼리는 부른다. 회사 측은 우리를 상대로 1) 업무방해 2) 손배송을 걸고, 우리는 회사를 상대로 3) 해고무효 소송을 진행한다.
– 그런 소송이 얼마나 되나.
이런저런 소송을 모두 합치면 30~40건이 족히 된다.
사실 실패로 끝났다는 ’12년 파업에 관해서도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쫓겨나고, 정직당하고, 감봉당한 동료들, 목소리를 빼앗겨 유배지에서 버텨낸 이들과 이를 위한 싸움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자들은 계속 싸우고, 쫓겨나고, 소송하고….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속한 사람이 김연국 현 노조위원장이다. 짤리고, 데려다 놓고(복직), 다시 짤리고, 다시 데려다놓고… 전임 노조위원장 조능희 피디도 마찬가지다. 그런 와중에 회사는 경력직을 계속 뽑고, 그렇게 뽑은 경력 기자가 100명이 넘어서고… 그동안 논 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싸움을 멈춘 적이 없다.
– 소송 경과는 어떤가.
대체로 노조가 승소했고, 승소하고 있다.
– 그렇다면 왜 ‘지금’ 총파업인가.
지금 현시점에서 파업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방문진’과 김장겸 사장 때문이다. 우선, 내년(2018년) 여름에 ‘방문진’ 이사가 바뀐다. 두 번째, 김장겸 사장의 임기는 2020년 2월까지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를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간부들이 동료의 기획안을 검열하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조져라’는 노골적인 상부의 명령이 내려오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결국, 파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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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과 김장겸 사장
‘방문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현재 MBC의 대주주로서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MBC 사장의 임명권, 해임권 등을 가진다. (위키백과, ‘방송문화진흥회’ 중에서)
김장겸
“김장겸 씨는 2011년 이후 사실상 MBC뉴스를 좌지우지해왔고 추락시켰다. 2012년 대선 당시의 편파 보도는 물론 세월호 참사 당시 MBC가 가장 부끄러운 보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데 크게 기여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는데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뉴스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그는 잠시도 뉴스 책임자로 앉아 있을 수 없는 일들을 했다.
그러나 한국 극우 세력의 본산이 되어가는 방문진은 그를 서슴없이 사장으로 선출했다. 청와대가 낙점했다는 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만장일치였다. 야권 이사들은 퇴장한 상태였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혁하려는 목적의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지금, 방문진은 스스로 다시 한번 현재의 지배구조가 엉망임을 입증한 셈이다.”
– 뉴스타파 최승호, ‘MBC뉴스 파탄 책임자’ 김장겸, MBC 사장이 되다, 2017년 2월 24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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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파업의 체험은 어땠나.
2012년 170일 동안 파업하면서 느낀 게 많았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월급이 나오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빚에 몰린 동료가 늘었다. 정신적으로 끝없이 피폐해지는 상황이 계속됐다.
내 경우엔, 어느날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갔는데, 순간적으로 분노가 자제되지 않았다. 집에 없는 접시를 30개 정도 깼다. 한꺼번에 깨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하나씩 집어서 접시를 깼다. 식구들이 무서워 집에서 나가고…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동료가 많았다고 하더라. 우울증 진단을 받은 동료가 내가 아는 선에서도 열 명이 넘는다. 12년 파업에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이런 부정적인 체험은 그동안 박근혜 정부 시절에 파업을 어렵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 그렇다면, 현 총파업의 구체적인 계기랄까, 동력은 뭔가.
이번 총파업은 기획된 것이라기보다 우발적인 것에 가깝다. PD수첩(PD 11명 중 10명)의 제작 거부가 발단이 됐다(참조: 경향신문). PD수첩팀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를 통해 한국의 노동 현실을 다뤄보려고 했는데, 이를 국장이 불허하자 ’17년 7월 22일 제작 거부를 선언했다(참조: 국민일보).
그런데 이런 제작 거부는 PD수첩에 그치지 않았다. 시사제작국 소속 ‘경제매거진 M’, ‘시사매거진 2580’, ‘생방송 오늘 아침’ 등도 제작 거부를 연이어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은 (총파업에 관한) 논의를 자연스럽게 시작한 것이다.
– 이번 총파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조합원 자격으로 말한다는 전제에서 현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다. 헌법이 21조에 규정한 ‘언론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방송법 4조, 5조, 6조에서 규정한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를 확보해, 방송의 공적 책임을 확인하고,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파업이라는 행동이 배불러서 하는 행동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기자 생활을 10년 쫓겨나서 변방에서 10년 … 신경민 선배가 쫓겨날 때 제작 거부했으니 거의 10년이 됐는데, 20년 동안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직업정신’, ‘직업윤리’였다.
예를 들어서 의사의 직업윤리를 생각해 보자. 의사는 환자를 위해서, 그 의술을 펼치는 과정에서 속임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고 백남기 어르신의 사례를 보면, 그 과정(사인을 ‘병사’로 한 것)에 ‘속임’이 있었기에 의사로서 비판받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인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제작 거부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더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사명, 직업윤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권에 의한 언론통제, 이를테면 이명박 사저에 관한 보도에서 1보도 없이 청와대 입장이 먼저 나오는 상황, 이런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었다.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 vs. 시스템: 데칼코마니의 역설
– 우선순위를 뽑는다면.
최우선 과제는 경영진 교체다. 경영진이 바뀌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현 김장겸 사장이 계속 MBC를 경영하면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일례를 들어 설명하면, MBC 뉴미디어 뉴스국에는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뽑아 쓸 수 있는 ‘라인’이 있다. 그런데 그 장치를 전혀 쓰지 않는다. 뉴미디어 뉴스국에서는 왜 (그 장치를) 안 쓰냐고 공문을 통해 상부에 문의했다.
보도국장은 뉴미디어국장에게 ‘뉴스 유출 우려’로 쓰면 안 된다고 회신했다. 그 속뜻은 간부들이 뉴스를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실시간 핫라인이 있는데도 1시간씩 걸려서 인코딩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일이 곳곳에 있다.
– 지난 1일, 노동부의 부당노동행위 혐의 조사에 불응했던 김장겸 사장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는데.
체포영장 발부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권과 MBC (노조)가 시나리오를 짰다고 하는데, 정말 시나리오가 있는 건 김장겸 사장과 자유한국당이 아닌가 싶다. 김장겸 사장의 (공적인)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인지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거 아닌가. 갔다 오면 되는데, 왜 안 가고 버티는지 모르겠다. 김장겸 측이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정권의 탄압”이라면서 이를 언론 탄압으로 쟁점화하려는 모습은 우습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MBC·KBS를 ‘노영방송’으로 만들어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참조: 한겨레)이라고 말하는데,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시절에 했던 행동과 말을 되돌아보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 ‘정권의 탄압’이라는 경영진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판단하나.
이 문제는 형식 논리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혹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MBC가 흔들려야 하느냐는 형식 논리를 들고나오는데, 형식만 강조할 게 아니라 내용을 봐야 한다. 적게는 지난 4년, 길게는 지난 9년 동안 MBC가 방송해온 뉴스가 정상인가? 그 뉴스들이 정상이라면 그들이 아니라 내가 지금 당장 사표내고 나가야지. 하지만 그 뉴스들이 정상이 아니라면, 그렇게 MBC 뉴스를 망가뜨린 장본인인 김장겸과 그 일당들이 MBC에서 나가야 한다.
– 한편 착한 경영자, 올바른 경영진만이 정상화의 해법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 말고, ‘시스템’을 통해 재발을 방지할 수는 없을까.
이 문제로 절망했다. 두 개의 사례가 있다. 마치 데칼코마니 같다.
MBC가 키운 손석희가 나가서 JTBC를 바꿨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조중동’으로 묶였던 JTBC가 대한민국 저널리즘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방송이 됐다. 세월호 국면에서 아주 중요한 보도를 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반대편에 김재철과 안광한의 MBC가 있다. MBC는 80년대부터 파업의 역사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등의 시스템을 통해 그 성취를 축적해왔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무너졌다. 법적 효력은 3심 재판을 통해 구현된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부당한 일이 생겨도 법으로 해결하려면 길게는 10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장이 돈과 인사권을 쥐고, 조직을 흔들고 파괴하니까 방법이 없더라.
법에 의존하면 10년 걸리는데, 회사는 단체협약도 무시하면서 노조는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고.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런 상황에서도 일방적으로 무너지지 않은 건, 적어도 MBC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직장’으로서는 튼튼해 구성원이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보이는 이 두 개의 사례를 보면서 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체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스템을 고민한다. 기록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더 긴 기사를 쓰고, 그럼으로써 관점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시스템은 무력하기가 쉽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고, 리더가 중요하다.
– 그렇다면 MBC의 리더가 갖춰야 하는 역량은 무엇인가.
공영방송으로서 MBC의 정체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언론의 자유, 공정성, 책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MBC에 구현하기 위한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 MBC 조합원들이 후보로 이야기하는 적임자들이 있나.
정말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간혹 동료 중 일부가 김장겸 체포영장에 대해 흥분하곤 하는데, 체포영장은 법과 절차에 따른 집행일 따름이다. 우리가 흥분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언론인이지, 법 집행자가 아니다. 흥분하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장은 법에 의해서, 법이 짠 구조 아래서 정상적으로 임명될 일이지, 우리가 누구를 특정해서 지목할 일은 아니라고.
시용·경력기자들 그리고 부역자들
– 2012년 파업 이후 ‘신입’ 대신 ‘경력’ 기자를 집중해서 채용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지난 12년 파업 때도 회사 측은 1차로 30명의 시용[footnote]정규직 전환을 염두에 둔 1년 동안의 한시적 계약직. 회사 측에서 쓴 표현.[/footnote]·경력 기자를 뽑았다(참조: 오마이뉴스). 그중에는 자격이 미흡한 분들도 있었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의 일단을 당시 트위터에 올렸다가 “너는 금딱지냐”, “비정규직 무시하냐” 등등 비판을 받았다. 그때 아주 놀랐고, 또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회사 측은 노-노 갈등을 부추긴다. 이런 노-노 갈등은 아주 경계해야 한다.
’12년 파업 이후 지금까지 경력 기자만 100여 명을 채용했는데, ’14년 이후 ’16년 8월까지 신입은 1명도 채용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경력 기자를 의도적으로 참 많이 뽑는 게 사실이다(참조: 미디어스). 이번에도 경영진에서는 경력직 공고를 냈지만, 불법으로 판단돼 중단된 바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는 전제에서 지상파 공영방송 MBC에 기자가 필요하다면, 그 기자에게는 어떤 자격이 요구되는지를 냉정하게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들, ’12년 파업 징계자를 대체하기 위해 채용한 시용, 경력 기자들은 ‘동료’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그분들 가운데 이번 파업을 위해 ‘큰 노조'(=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로 가입하신 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판단하면, 좋지 않은 시기에 들어왔던 분들 가운데 2012년 이후 지금까지 경영진의 논리로 언론인의 기본 사명을 완전히 저버리고, 정권의 나팔수, 주구 역할을 했던 사람은, 우리 동료였던 사람들도 ‘언론 적폐’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냉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2년 이후 대체 인력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언론인의 자격’이라는 기준으로, 결과물로, 기록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 MBC가 ‘정상화’하면, 이들의 재배치 문제가 현실적인 쟁점으로 불거질 것 같은데.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이분들 중에는 함께 할 수 있는 분도 있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굉장히 쉽지 않은 문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당했던 방식, 가령, 해고나 부당전보나 감봉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분들에게 합당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문제가 단순하지는 않다. 지금 당장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너무 골치 아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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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복수 노조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통상 ‘MBC 노조’): 현재 총파업의 주체. 대표성을 가진 노조. 별도의 특별한 설명이 없다면 ‘MBC 노조’는 이 노조를 가리키는 것.
- MBC 공정방송노동조합: 2007년 11월 말 창립된 노조로, 보직 간부를 제외한 부장급 이상 간부를 가입 대상으로 하는 노조(참조: 미디어스, 2009)
- MBC 노동조합 (일명 ‘MBC 제3노조’): 2013년 결성된 노조. 김세의, 박상규, 최대현이 초대 공동위원장. (참조: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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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현진 아나운서는 이른바 ‘배신의 아이콘’으로 많은 네티즌에게 비판받는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나.
특정인에 대해서 사람들의 비난이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마녀를 찾는 습성이 있고, 이는 어느 시대, 어느 집단이든 마찬가지다. 배현진이라는 특정인이 부각되는 현상은 불편하다.
하지만 MBC 구성원으로서 배현진 아나운서의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현진 씨는 원래는 파업에 참여했었고, 파업의 의미를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돌아섰다. 그냥 돌아선 게 아니라, 그냥 뉴스를 진행한 게 아니라 회사에 의해 ‘선전 도구’로 쓰였다. 파업에 등 돌리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진실과 사실 사이의 촘촘한 경계”로 알려진 글도 올렸다. 적극적으로 회사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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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사실 사이의 촘촘한 경계” (배현진)
“그 길고도 짧은 시간(파업 기간) 동안 진실과 사실 사이의 촘촘한 경계를 오가며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 “더 이상은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적어도 뉴스 앵커로서 시청자 이외의 그 어떤 대상에도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습니다.” (배현진)
– 2012년 5월 11일 9시 뉴스데스크 앵커로 복귀한 배현진 아나운서가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 중에서 (재인용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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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배현진 씨가 자신을 저널리스트로 생각했다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MBC의 보도(태블릿 PC가 조작됐다, JTBC는 입수 경로를 밝혀야 한다 등등의 보도)는 있을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12년 파업, 그 실패의 의미
– ’12년 MBC 파업에 대해 평가하면.
이용마 기자가 [공범자들]에서도 했던 이야기지만, 내 목소리로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파업을 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정말 마지막 수단으로 파업을 선택한 것이지만, 우리들의 선택과 행동은 싸움의 기록으로 남았고,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그 싸움에서는 졌지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한 분들도 이기지 못하고, 철저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졌지만, 그런 패배의 기록도 역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물론 ’12년의 파업을 독립운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웃음)
– 박성제 전 위원장은 “MBC 정상화되면 JTBC 이긴다”고 했다(참조: 오마이뉴스). 인터뷰 본문과 비교하면 제목을 과장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JTBC보다 더 좋은 뉴스, 더 의미 있는 뉴스를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좋은 뉴스를 만드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천만 번은 다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신천교육대’에서 브런치 만드는 법, 맥주 만드는 법을 교육받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각자의 ‘유배지’에서 얼마나 그런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좋은 뉴스를 하고 싶고, 그런 뉴스를 만들 수 있는 아픈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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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교육대?
서울 송파구 신천에 있는 MBC 아카데미의 별칭으로 ‘삼청교육대’에 빗대어 부른 풍자적인 멸칭이다.
“MBC 파업 가담자들에게는 징계와 관련한 일종의 공식이 존재한다. 대기발령→정직 징계→교육명령 순서로 진행된다. 파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6월에는 해당 직무를 없애는 대기발령을, 파업이 끝날 무렵에는 정직 ○개월의 징계가, 그리고 징계가 끝난 뒤에는 MBC 아카데미에 3개월 동안 강제 ‘교육 명령’을 보내는 ‘징계 3종 세트’가 존재한다.” (한국기자협회, MBC 기자들은 지금 ‘신천교육대’에, 2012. 10. 2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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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화 이후, 개인적인 비전이랄까 목표는?
비전이나 목표라고 한다면, 그동안 뉴스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을 했으니 정말 좋은 뉴스를 만들고 싶다는 거다. 개인적인 소망을 말하면, 지상파는 공공재고, 공공 이익을 위해서는 약자의 목소리를 더 잘 듣고, 그분들 입장이 잘 퍼지도록 하는 거다.
기계적인 중립보다는 어떤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MBC 뉴스가 망가지면서 MBC 뉴스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논란’, ‘공방’이라는 단어였다. 이들 표현은 시청자의 초점을 흐리고, 관점을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로 쓰였다. 그런 기계적 중립을 고집하다 보면, 그런 단어, 기법을 악용하는 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고 본다.
– 악용하는 세력, 어떤 세력?
언론인의 탈을 쓴 이익추구집단. 앞으로 MBC가 새로운 경영진이 바뀌겠지만,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집단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저널리즘에 관하여
– 이성주 기자에게 저널리즘은 무엇인가.
저널리즘은 공중이 가지는 가져야 하는 의문에 관해 기자로서 질문을 던지고, 최대한 확인된 사실로 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중의 의문을 ‘의제로 설정’하고, 이에 관해 ‘사실을 확인’해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 사실 확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던 사실에 관해서는, 어떤 기준으로 보도하거나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하나.
언론 보도에 관한 소송에서 법원이 판결문에 자주 쓰는 표현 중에 ‘상당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실이라고 판단할만한 상당성, 그 상당성에 대한 판단(력)은 취재 과정이 얼마나 충실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칙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보도하지 않았을 때 생겨날 공익 침해가 확실시되고, 취재를 통해 사실을 완벽하게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진실에 근접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면, 보도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의혹 기사를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 기자 생활 20년 중 앞 10년은 ‘엘리트 코스’였고, 뒤 10년은 ‘유배 생활’이었는데.
정치부에선 정당팀, 총리실, 감사원, 한나라당을 출입했고, 경제부에서는 재경부, 증권거래소를 출입했다. 사회부에서는 검찰 출입 기자였다. 그래서 소위 ‘엘리트 코스’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운이 좋았다. 선배들이 열심히 하는 후배로 봤던 것 같다.
양지만 다녔던 기자로서 음지 10년을 겪으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디테일한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가령 195억 원 손배소를 당하니까 쌍용차처럼 다른 노조의 손배소 기사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노란 봉투]라고, 회사에 손배소 당한 활동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을 한다길래 초대받아서 갔다. 연극 중에 손배소 때문에 굴뚝에 올라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엉엉 울었다. (- 굴뚝에는 고공 농성하러? 아니면 자살?) 아마 후자겠지.
– ‘앞 10년’과 ‘뒤 10년’을 비교하면, 기자로서 배운 게 꽤 달랐을 것 같다.
최근 10년 동안은 사람들 사정을 살필 수 있는, 내가 기사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세월이었다. 앞선 10년이 기사 쓰는 기술에 관한 것을 습득한 시기였다면, 뒤 10년은 기사의 의미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기자로서 전범이랄까 롤 모델은 있나.
김종철 선배다.
– 김종철 이사장을 존경하는 이유는.
기자는 말과 글이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원래 나는 공부하고 싶었는데,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그래도 글을 쓸 수 있는 직업을 택하고 싶어 기자가 됐다. 아버지도 중앙일보 사진 기자셨다. 방송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기자라고 하면, 적어도 내가 하는 말과 글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종철 선배는 그런 사람이다. 동아투위에서 해직됐고, 그 이후에 힘들 생활을 하시다가 한겨레에 들어갔다가 나오시고, 언론 운동에 발을 담그면서도 한 번도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하지 않고, 오직 기자 정신으로 발언하고, 늘 언론인의 곁에 서 계시다. 그런 선배가 정말 훌륭한 선배라고 생각하고, 존경한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론계 선배로서 최소한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끝으로 시청자(독자)께
– 총파업, 얼마나 길어질까.
파업에 들어가면서 출구는 보지 않기로 했다. 언제 파업이 끝날지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들어갔다. 1년일지 2년일지… 얼마가 걸리더라도 MBC가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하겠다는 각오로 참여하고 있다.
– 참, 노조위원장이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머리 깎았을 때. 세월호 때였는데, 정말 죽고 싶었다.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고…. 기자로 살아왔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지던. 안광한 사장은 (MBC의 세월호 보도에 관해) 너무 잘하고 있다고 임직원에게 글을 올리고… 너무 부끄럽고, 손배송 때문에 돈 꾸러 다니면서, 잠도 일주일 넘게 제대로 못 자고, 머리라도 깎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는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 이번 파업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파업과 관련한 곡을 만들고 싶다. 2013년 [내가 걸어온 길]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 있다. 올해 봄에는 이용마 기자를 생각하면서, [다시 봄]이라는 두 번째 싱글을 만들었다. 촛불집회의 도도한 흐름, 그 뭉클한 체험을 피아노로 표현한 곡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총파업의 느낌을 곡으로 만들려고 생각 중이다. (- 오, 놀랍다!)
– 파업 소식을 편하게 받아볼 만한 채널을 소개한다면?
-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페이스북) @saveourmbc
– 끝으로, 역사적인 MBC, KBS 총파업에 재밌게(?) 참여할 방법이 있을까.
[공범자들]이 처음 나왔을 때,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서 되게 부끄럽고, 되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게 정말 진심이다. 그래서 우리가 파업하니까 (시청자에게) 뭘 해달라고 바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총파업과 관련한 기사를 잘 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은 세상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우리 사회에는 어려운 분들도 많다.
하지만 MBC (KBS) 파업은 노조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 전체의 공적인 문제인 것도 분명하다. 그런 차원에서는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드리고 싶다. 더불어 자유한국당 등이 총파업을 악용하려고 하니 그런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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