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이 글은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의 녹음 기록을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재구성한 인터뷰집의 일부입니다. 전체 인터뷰집은 ESC 청년과학기술인 위원회의 협력과 도움에 힘입어 [어떤 대화: 청년 과학기술인의 목소리](pdf)로 발간되었습니다. (필자)
¶ 이 인터뷰는 2014년 10월에 있었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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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부터 부탁 드립니다.
화학과 석박 통합과정 1년차입니다. 유기합성 연구합니다. 음악이랑 여행이랑 고양이를 좋아해요.
– 굉장히 연구에 빠져 지내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이야기가 화학 이야기밖에 없던데요.
진심으로 이 분야를 좋아합니다.
– 화학과에 온 동기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처음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 초등학교 친구가 졸업할 때쯤 학교에 자기가 공부하던 것을 가져 왔어요. 그 친구 형이 과학고를 가서 부모님이 그 친구도 과학고를 보내려고 고등학교 것을 가르치고 했던 친구였어요. 뭐 하는지 봤는데 화학 공부를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신기했던 것이 산소랑 수소가 만나서 물을 만드는 거였어요. 수소는 잘 타고 산소는 다른 물질 태우는 걸 돕는다고 배웠는데 둘이 만나서 불을 끌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집 가서 인터넷으로 계속 찾아보고 그랬죠.
– 그 전까지는 제대로 된 계기가 딱히 없다가 그렇게 된 건가요.
그렇죠. 자기소개서 같은 데 단골로 나오는 스토리입니다. 과학고등학교 때도 올림피아드를 이어서 하고 화학 중에서도 유기화학이 제일 재미 있어서 대학 와서도 계속 했어요.
유기화학이란 무엇인가?
– 유기화학이라고 했는데, 화학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유기화학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있을 유”를 쓰는 “유기(有機)”입니다. 탄소가 있다는 거에요. 탄소를 포함한 화합물이 굉장히 많아요.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단백질, 탄수화물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화합물들, 특히 약 같은 것들이 많죠. 탄소를 낀 화합물들이 할 수 있는 화학반응에 규칙성이 있고 예측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걸 전문적으로 합니다. 금속을 다루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유기화학 안에서도 유기반응이 기본적인데, 원자들이 어떤 놈은 전자가 많고 어떤 놈은 전자가 부족하고 빈익빈 부익부 같은 게 있어요. 그러면 가능한 격차를 줄여가는 자연의 섭리에 맞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분자가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바뀌게 되는데 그런 단위 하나 하나를 유기 반응이라고 합니다. 유기반응만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저는 유기합성을 해요. 반응들을 배치를 하는 거에요. 간단한 화합물부터 복잡한 것까지 다 하는데 주로 약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 간단한 것의 예가 무엇이 있나요?
예를 들어 아미노산이나, 또 유명한 건 벤젠. 일단 탄소 수가 적고 원자가 몇 개 없는 것에서 시작해서 원자 50개, 100개까지 가요. 연결을 잘 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 연결이 잘못되면 쉽게 깨지고 그러나요.
네. 아니면 연결을 다 해놓고 만들었다 했는데 구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러면 약효가 없죠. 극단적인 케이스는 독이 될 수도 있고.
– 퍼즐 게임을 하는 느낌이네요.
맞아요. ‘보호기’라는 게 있어요. 전자가 많은 애들은 다른 데를 공격하고 그러는데 그런 애들을 다른 원자로 막고 다른 쪽에서 반응을 진행한 후에 끝나면 막았던 것을 풀고 다시 반응을 진행하고 하죠.
– 건물 공사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건축에 실제로 비유를 많이 해요.
– 화학 분야에서 내에서는 메이저(major)인가요?
엄청 메이저죠. 다른 분야에서도 도구로 많이 쓰여요. 신소재공학과에서 표면 원자들에 뭘 붙여서 바꾼다든가 바이오 쪽에서 세포 표면 처리를 한다든가. 유기화학이 생명의 언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미시적인 것을 설명을 해서 유기체의 거동을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 편에서 유기합성 자체는 사람들이 농담 삼아 끝났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 응? 왜요?
많은 것들이 연구가 되었거든요. 역사가 200년 정도 되어 가는데 축적된 것도 많아요. 옛날에 비타민B12 분자가 엄청 큰데, 이걸 추출할 생각만 하지 만들 생각을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우드워드(Robert Burns Woodward, 1917~1979)라는 천재가 이걸 완성시켰죠. 16년 정도 걸려서 박사와 포닥이 100명 정도 투입되었어요. 인식이 바뀌었어요.
방법은 다 연구되어 있고, 시간과 자본만 있으면 다 만들 수 있다는 방향으로. 그래서 제약회사에서도 실제로 추출하기 어려운 것들은 만들어서 많이 해요. 그런데 분야가 끝났다고 할 수는 또 없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아직도 할 게 많은데 다른 분야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미 할 만큼 했다고 하더라고요.
– 견해차가 있군요. 그런데, 이제 막 석사에 들어가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닌가요.
나름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진짜, 정말 거대하고 하나의 예술 같다고 자주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설파하듯이.
–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역사적으로도 대가들이 하나의 걸작을 만드는 예술과 같고, 산을 정복하는 탐험가와 같다고 많이 회자했습니다. 그런데 200년 동안 유기합성이 콧대가 높았어요. 90년대까지는 최고 존엄이고, 다른 분야와 협력을 많이 해야 연구가 나오는데 폐쇄적인 게 없지 않아 있었죠.
가령 타겟(target) 설정해서 만드는데 이게 생물체 안에서 약인지 독인지 신경도 안 쓰고 만들고 나서 자 봐라, 하고 끝내버리고. 90년대까지는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누구는 100단계나 했는데 나는 30단계만 했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면서 많이 떴죠.
그런데 요새는 달라요. 사람들이 유기합성에 돈을 많이 안 대주려고 합니다. 이제 그거 해서 뭐할 건데, 라고 해요. 30단계, 50단계 해서 1mg 만들었다 하면 사실 경제성도 없잖아요. 그래서 2000년대 넘어오면서 화두는 이것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 스마트하게. 경로를 잘 짜야 한다. 누구는 50단계 했는데 누구는 10단계 만에 엄청나게 많이 만들고 해요.
–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아미노산 1kg을 시작으로 50단계에 걸친 작업 끝에 A라는 물질을 10g을 만들었다 이런 거네요.
맞습니다.
– 듣다 보니 코딩 같은데, 프로그래밍을 해보시면 알겠지만, 저희는 스마트하게 짜지 못해서 엄청 길어져요 코드가.
그러면 문제가 요만한 부피의 공장 하나면 될 것을 어디서는 여러 개가 필요하고 그러면 폐기물도 엄청나게 나오는 거죠. 시간도 한 사이클 도는 데 엄청 오래 걸리고.
– 코딩 잘하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 있다고 하던데요. 어려서부터 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고. 유기합성도 약간 그런 면이 있나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훈련하면 경로를 잘 짜고 연륜이 쌓이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분야 자체에 대한 직관, 영감이 있어야 해요. 일종의 예술이랄까. 누구는 열심히 습작하는데 걸작이 안 나오는 반면에 누구는 발로 그려도 박수 치면서 세기의 걸작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런 직관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훈련으로도 대부분 커버가 가능합니다.
– 직관이 필요하다고 하면 사람들 생각과는 다른 게, 보통은 치열하게 계산을 다 하고 나서 실험을 한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직관이라는 건 사실 계산은 아니니까요. 100단계짜리 실험을 누가 보고 나서 이건 어떻게 하면 10단계 만에 되는데? 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이신데요.
문제는 이 분야가 굉장히 노동집약적인 영역이라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이해 못 할 수 있어요. 연구실이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1시 퇴근인데, 그래서 아이디어도 필요하고 전략도 필요합니다. 제한적인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써야 해요.
유기화학자의 일상
–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연구실에 나가나요?
네. 기본적으로 계속 실험실에 있습니다. 계속 실험하는 건 아니고. 휴일이니까 중간 중간 쉬기도 하고.
– 휴일인데 랩에서 쉰다는 건 사실 슬픈데요.
반응 돌려놓고 예능도 보고 해요. 이게 우리는 펜이랑 종이로 그냥 쓱쓱 해서 하는데, 그런 비판을 받아요 계산화학자한테. 저건 머리 나쁜 애들이 주먹구구 식으로 계산 안 해보고 일단 해 봐 해서 대충 하는 거다라고.
– 약간 어머니의 손맛 같은 느낌이에요? 막 한 줌 집어서 넣고.
이렇게 해서 안 되면 이거 조금 더 넣어 보기도 하고, 저걸 조금 높여보기도 하고. 지금 시대가 많이 발전했지만, 컴퓨터로 예측하는 단계가 아직 아니에요. 멀었어요. 모든 대가들은 그렇게 말해요. 이것은 컴퓨터가 하는 일이 아니다 라는 거죠.
저번 학기에 은퇴하시는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 이 분야는 컴퓨터로 대체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100년은 더 걸릴 거라고. 단편적인 정보를 잘 조합하고 경험도 필요하고 합니다. 최근에 나온 논문의 이걸 써 먹자, 이걸 쓰면 4단계 할 것을 1단계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해 봅니다.
– 뭐, 일단 한번 해 보는 거 아닌가요. 그게 또 실험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아까는 우스갯소리로 한 거지만 요리와 진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요리와도 비교 많이 합니다. 산에 오르는 거, 예술작품, 요리. 마지막에 맛 본 사람은 진짜 맛있고, 살살 녹아요. 그런데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집약적으로 진짜 신선한 거 가져오고, 섞는 거 비율부터 해서 막… 그런데 이걸 항상 다 계산해서 하는 건 아니죠.
– 그러면 이렇게 유기합성을 사랑하는 덕후 님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늦게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어떻게 보면 게으르다고 할 수 있어요. 주로 아침엔 자니까. 제 철학은 오전 시간대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게 저랑은 안 맞다, 올빼미 형이라는 겁니다. 다른 연구실들은 아침에 없으면 뭐라고 하는 교수님들도 있는데, 저희 교수님은 인자하시고 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하는 걸 허용하시죠.
– 그래서 실험실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나요?
실험실에 가면 일단 기본적으로 ‘dry lab’들과 다르게 ‘wet lab’은 실험 준비를 하죠.
– ‘Wet lab’이니 땀에 젖어 있고, 화학물질에 젖어 있고. 이론적 사고와 증명을 주로 하는 dry lab 은 아무래도 앉아서 생각을 하는 시간이 길죠. Wet lab은 그에 비해 열심히 몸을 써서 실험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 랩은 (석사) 1년 차가 전반적인 일들을 많이 합니다.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진공 같은 걸 켜면 드라이아이스를 넣어줘야 하고 유기반응 보낼 때 유기용매에서 보내는데, 용매 타워가 증류하기 위해 계속 끓고 있어요. 그걸 관리해줘야 합니다. 일단 나오면 이런 것부터 해요. 순회 한 번 하고.
이런 게 인프라인데 문제가 생기면, 예를 들어 타워가 고장 난 적이 있었는데, 그러면 용매를 쓸 수가 없어요. 1년 차가, 저희 랩에서 비유하는 게 윤활유라고 합니다. 그렇게 기본적인 준비가 되면 시약을 냉장고에서 꺼내요.
상온에 두는 것도 있지만, 냉장 시약도 있어서 미리 식히고 용매도 나중에 써야 되니까 타워도 잠가서 위쪽에 차게끔. 잠가두면 끓어서 올라온 애들이 조금씩 차오릅니다. 그리고 풍선을 가져와서, 질소 치환이라든가 아르곤 치환을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공기 중에서 하면 산소나 수분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화학반응을 방해할 수 있어요.
–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 다 불순물인 셈인가요.
그렇죠. 깨끗한 조건에서 변수를 제거한 채로 하기 위해서는 반응시키고 싶은 물질을 잡아다가 풍선을 꽂아서… 그럼 안이 진공으로 비어 있었던 것을 아르곤으로 싹 채울 수 있어요. 이제 여기서 유기반응을 진행할 수 있죠. 이렇게 하면 반응 하나를 세팅한 겁니다. 유기반응을 하나 했으면, 제 것이 생겼으면, TLC를 찍습니다.
유기반응의 진척도를 체크하는 작업이에요. 눈으로 볼 수 없으니까요. 가끔 색으로도 보는데, 정확하지도 않고 몇 가지 예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TLC를 찍어서 확인하는데, 반응이 다 갔다, 예를 들어 산소와 탄소 이중결합을 끊는 반응을 했는데 잘 끝났다 하면 반응을 종료 해야죠.
주로 물이라든가 염산이라든가 반응을 종료시킬 수 있는 것들을 넣어줍니다. 물 층을 섞어서 제 것을 유기 층에서 추출해요. 유기용매를 더 부어서 추출하면 부산물은 물 층에 섞여 들어가서 버릴 수 있어요.
– 이게 매일 하는 실험인가요? 구체적으로 원하는 반응은 무엇인가 궁금하네요.
이게 일반적인 프로토콜입니다. 무엇을 하든 기본적으로 이렇게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유기반응은 루테늄 촉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루테늄은 중금속이고, 희귀금속이라고 할 수 있어요.
– 그런 녀석이 주기율표에 있었군요(…)
가운데에 있어요. Ru라고 표기합니다. 이게 몸에 안 좋아요. 루테늄 두 개 옆에 유기 분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촉매를 씁니다. 빛을 받으면 용액 상에서 루테늄 두 개가 찢어져요. 쪼개지면 그 하나가 촉매 사이클을 돌릴 수 있어요. 메인 반응은 산소-탄소 삼중결합에 수소랑 주석이 있는데, 그걸 이제 삽입시키는 반응을 할 때 루테늄이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이 반응이 되게 하려고 아까 말했던 그 작업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거군요.
그렇죠. 사실 추출을 해도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정제까지 해야 합니다. 그 결과물이 탄소와 주석이 결합한 물질인데요, 다양한 합성 과정에서 탄소-주석 화합물을 거치면 아주 쉽게 갈 수 있는 전략들을 쓸 수 있게 되거든요.
– 일종의 지름길을 뚫어주는 물질이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런 걸 빌딩블럭(building block)이라고 해요. 건축에 비교하면 하나의 벽돌이죠.
– 그러면 지금 만들어 낸 것이 벽돌 몇 개쯤 되는 건가요?.
예를 들어 5층짜리를 짓는데, 어떤 건물에서는 건물의 한 벽을 메울 수도 있는 거고, 어떤 건물에서는 그냥 지나가듯이 잠깐 거치는 걸 수도 있고 쓰기 나름이죠. 다만, 주석이 몸에 안 좋아서 일부러 피하는 교수님들도 있고 제약회사들에서는 웬만하면 피하려고 합니다.
– 실험 프로세스를 들어보면 지금 만드는 게 아까 말했던 예술과 같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 일단은 블럭 만드는 걸 하고 있어요.
–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유기합성을 원래 주로 하는데요, 합성을 하려면 반응을 해야 해요. 강력한 무기죠. 그러니까, 무기에 대한 연구도 같이 하는 겁니다. 등산으로 치면, 히말라야의 어느 봉우리를 정복을 하려면 따뜻한 패딩 같은 게 필요하잖아요. 그걸 만드는 단계죠.
– 보통 실험 한 번 돌리는 데 얼마나 걸려요?
경우에 따라 다른데, 빠르면 정말 빨리 끝나요. 15분 만에. 그런 경우에는 그냥 해놓고 잠깐 있다가 돌아오면 종료하고 정제하면 되죠. 다른 경우에는 속도가 좀 떨어져서 거의 하루 정도 놓습니다. 다음 날 와서 진척도를 확인하고 반응 종료시키고 정제를 하죠.
– 각각이 어떤 케이스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나요? 아니면 해 봐야 아는 건가요?
그거는 NMR이라고, MRI의 모태가 되는 기술이 있습니다. 라디오파를 이용해서 원자 안의 핵 스핀 차이 폭을 보는데요, 이게 원자핵마다 다릅니다. 전자가 부족한 원자핵은 라디오파를 쏘면 폭이 좀 더 크다든가, 어떤 핵은 파장이 조금 더 길다든가 하는 차이가 있어요.
– 그러면 화합물을 일단 NMR을 찍어 보고 판단하겠네요.
맞습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산 건 바로 알 수 있어요. 스펙(spec)이 이미 있어서. 그래도 이걸 달고 저걸 달고 한 다음에 NMR로 확인은 해 봅니다. 그 다음에 촉매 반응으로 넘어가요.
– 촉매는 얼마나 넣어요?
3mg. 진짜 요만큼. 촉매를 한 70mg 가지고 있어요. 아껴 써야 한다. 아껴서. 한 번에 100mg 만들기도 힘들어요.
– 아까 말했던 루테늄은 얼마나 해요?
음, 그 아이의 형제 격 되는 녀석은 대략 1g에 14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네요.
– … 손 떨리는 가격이네요.
정확히는 그건 형제 격이고, 제가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원재료도 어차피 비싸다는 겁니다.
– 원재료는 또 얼마입니까.
5g에 10만 얼마 정도 했던 것 같네요.
– 돈 먹는 하마네요.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해요. 처음 들어오면, MIGO Chemistry 라고. Money In, Garbage Out. 그런데 연차가 차서 좀 잘한다 싶으면 MIMO Chemistry 가 됩니다. Money In, Money Out.
– Money in, Money out은 너무 평범한데… Garbage in, Money out은 안 됩니까. 이건 연금술인가(…)
그런 거 하는 랩도 있는데 진짜 힘들어요. Green Chemistry라고 해요. 솔직히 하고 싶은데, 유기화학자들은 대표적인 산업 쓰레기를 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죠.
– 지구에 사과하시죠.
미안합니다(…) 실제로 유기화학은 90년대부터 그냥 돈 먹고 쓰레기만 만드는 것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 자만하는 게 있긴 하죠. 저는 예술인 건 맞다고 생각하지만 살아나갈 길을 모색을 하려면 바이오 쪽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아하. 순수예술이 아니라 대중예술을 하겠다, 재해석을 해서 대중들도 좋아할 만한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 같은 겁니까.
그래서 제약 진짜 관심 많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유기합성이 짱이고 막 교수해서 지금도 예술인 것을 더 경지에 올려놓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점점 현실과 타협 하더라고요. 이걸 실생활에서 더 실용적으로 하면 더 쓸모 있고 실생활에 더 쓸 수 있는데. 그래서 제약회사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사랑의 경지”
– 유기합성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했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학부 1학년 때부터 개별 연구를 계속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때는 놀기도 바쁜데 왜 그랬어요.
제 스타일이 약간,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자뻑 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운다거나 클럽을 간다거나 이런 게 잘 안 맞아요. 여행 다니는 거나 음악도 좋아는 하는데, 사람 만나는 걸 엄청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사실 학부도 3년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남는 시간에 딴짓을 거의 안 해서 그래요. 가만히 있는 게 싫고, 뭔가를 하긴 해야 합니다.
– 근면 성실한 농부 같네요.
동아리 일이든, 여행 가는 것이든, 공부든 연구든 기본적으로 방에 잘 안 들어가고 뭔가 미적지근한 게 싫어요.
– 파이팅 넘치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기합성이란 걸 1학년 때부터 열심히 했는데, 아까도 직관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좋아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어떻게 보면 “잘한다” 이런 것도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걸 제 입으로 말하기가…
– 이미 많이 하셨는데요(…)
자신 있어요. 뭐라고 할까. 열심히 해서 정복하고 싶고, 내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싶고 그래요. 열심히 해서 이 정도 수준에 빨리 올라올 수 있었고 재미 있고. 그래서 그런 애들이 싫어요. 별로 하는 것도 없고 공부나 연구도 별로 안 하면서 입만 산 일부 사람들.
저는 그게 싫어서 열심히 해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할 수 있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내 생각 쫘르르 말할 수 있고. 그냥 그런 것이 좋은 거예요. 실패하거나 대답 못했다고 해서 쪽 팔린다는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어떤 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을 넘기 전까지는 그냥 일이고, 직장이고, 게으르게 하지 않아야겠다는 선. 그걸 더 지나가면 어떤 사랑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그러면 본인이 실험할 때 그걸 느낄 수 있어요?
노동집약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사람이라 피곤해요. 그런데 실험하고 잠깐 앉아서 논문을 읽는데, 누가 이런 논문을 냈네 하면서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 등골에 막 소름이 돋아요?
기분이 너무 좋으면 커피 사와서 다시 읽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저자 누구지. 이 랩이 이런 걸 연구하는구나 하고. 예전에 연구했던 것도 보고 인용한 것도 따라가서 보고 하죠. 이런 것도 있었네, 하고. 뜬금없지만, 제가 영화 300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마지막에 그 크세르크세스가…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300의 전사들이 페르시아 군사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죠. 저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겁니다. 포인트는 그렇게 무너뜨리는 데에 있어요. 이게 난공불락의 요새였는데 날 만나면 너는 뭐. 사실 이런 문제는 제가 아무리 파이팅 넘쳐도 현실과 타협해야 해요.
실험이란 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요. 실제로 어떤 대가의 2001년 논문을 보면, “we didn’t know why but this reaction didn’t…” 이러면서 안 될 리가 없는데 안 됐다고 해요. 이게 리뷰 논문에서 지나가듯이 말을 하면서 그래서 결국 우린 다른 경로를 택했다 해요.
리뷰를 거의 열 몇 장을 쓰는데, 예를 들어 한 5년 걸려서 했다고 막 대서사시를 쓰죠. 그런데 거의 다 왔는데 이 앞에 엄청난 암벽지대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두 발짝 뒤로 가서 이렇게 저렇게 해 보다가 이 길은 안 되겠다 하고 처음부터 이쪽으로 했어야만 했다 뭐 이런 케이스가 많아요. 이게 묘미기도 하죠. 컴퓨터로 예측할 수 없고 교수와 대학원생이 합심해서 하는 말 그대로 하나의 예술이죠.
– 잠깐만, 이걸 300에 비유하면 유기합성이 크세르크세스고 300명의 화학 덕후들이 모여서 지켜냈다, 이렇게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결국, 마지막에 페르시아가 이길 거니까요.
– 어디 가서 300 좋아한다고 하지 마요. 무릎 꿇게 하는 게 그렇게 좋습니까.
정복하는 거죠. 대가들이 정복하고 기념사진 찍으면 그렇게 멋있어요. 박사들 옆에 서서 분자모형 들고 씩 웃고 있죠. 몇 년 만에 완성했다 이러고.
– 보통 사람들 생각에도 기본적으로 화학이란 게 돈과 시간을 쏟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엄청나네요.
진짜 가시밭길입니다. 논문이 잘 안 나와요.
– 말을 들어보니 논문이 다작이 나올 수 없는 구조네요.
천재들은 다작을 하기도 하는데 거의 불가능하죠.
– 1년에 한 편이면 잘 나오는 건가요.
평타 이상입니다.
– 보통 화학은 그냥 꾸준히 하다 보면 정기적으로 논문 하나 나오는 거 아닌가 할 텐데요.
화학 안에서도 달라요. 유기합성하는 사람들이 유기반응 하는 사람들 보고 저거는 그냥 이거저거 섞어서 생각 없이 한다 해요. 변수 하나씩만 바꿔서 물질 바꿔보고, 온도 바꿔보고. 그래서 그냥 노가다라고 하면서 디자인을 하라고, 제대로 연구를 하라면서 무시하는 교수님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그쪽에서는 논문이 잘 나오기는 해요. 뭐 하나 터지면 내가 이걸 할 테니 너는 여기에 질소를 달아서 해봐 이러면 잘 나와요. 부럽죠. 같은 유기화학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저희 교수님도 저희한테 프라이드를 가지라고 해요. 유기반응 하는 사람들이 유기합성을 할 수는 없어도 유기합성하는 사람들은 유기반응 할 수 있다는 거죠.
유기합성의 미래, 유기합성의 위상
– 말을 이어가다 보니 조금 더 큰 이야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논의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기합성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치 같은 문제요. 막 뛰어든 병아리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요.
많이 듣는 문제입니다. 분야의 현실을 교수님들이나 박사 형들이 말씀하시길 한국이 유기화학이 강세인 나라는 아니다라고 하시죠. 한국의 자연과학 안에서도 툴로 쓸 정도로 기본적인 분야인데 투자를 많이 받지는 않아요. 제약회사와 함께 하면 많이 받을 수 있는데 대부분은 많이 받지 못하고 있죠. 그래도 요즘 상황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 위상이 좀 올라갔다고 할 수 있어요?
솔직히 80-90년대까지는 불모지였다고 하면 지금 대가 분들이 불쾌하실 수도 있는데…
– 불쾌할 것까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때 한국에 비해 다른 나라들은 쓰는 돈의 규모가 달랐는데요.
논문 찾다가 이거 장난 아니네 하고 보면 90년대 일본 논문인 경우가 많아요. 대단하죠. 미국은 당연히 많고. 우리는 아주 후발주자라고 할 수 있어요.
– 그리고 이제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유기합성 목표가 제약에 집중이 많이 되어 있는데 한국에 그렇게 큰 제약회사들이 없다는 거에요. 오츠카, 파이자(Pfizer)…
–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사노피(Sanofi) …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길리어드(Gilead) 이런 회사들이 있는데 타미플루, 백혈병 치료제 이런 히트 약들을 내요. 그런데 우리는 카피(copy)약이라고 하죠. 특허 풀리면 동아제약, 종근당 이런 데서 다 같이 모여 들어서. 진짜 인류 건강과 복지를 해결해 가는 건 큰 제약회사고 그런 회사들은 돈과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유기합성 실험실들과 많이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영향권 아래에는 없어요.
– 상생의 관계가 될 필요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제약 산업이 좋지 않은 것 같네요.
그런 부분이 좀 아쉽네요.
– 이건 한국 화학계의 미래고. 개인적인 미래는 어떻습니까.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교수 채용되고 이런 건 진짜 운칠기삼이에요. 처음에 무조건 난 교수 할 거라는 마음은 점점 현실과 타협해서, 이제는 제약회사 가도 합성할 수 있지 않나 해요. 그래서 편하게 마음 먹고, 교수 못해도 좋으니까. 그래도 교수 되는 게 목표이기는 합니다.
– 차선은 제약회사네요. Plan C는 무엇인가요?
생각 안 해봤어요.
– 배수의 진 쳤나요?
가시밭길인 걸 인식하고 있습니다.
– 그렇네요. 언젠가는 유기합성을 무릎 꿇려야 하니까.
인생의 최종목표죠. 그런데 대학원 넘어오면서 이런 오그라드는 포부 같은 걸 잘 말을 안 하게 되었어요. 공부하면 할수록 이 분야는 정말 방대하고 방대해서 제가 작아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실패했을 때도 덤덤하게. 마라톤이니까.
길게 생각하고 포부라든가 꿈이라든가 너무 먼 이야기라 말을 잘 안 하게 되네요. 오히려 멋모르고 철없을 때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학부 1학년 때 제 목표 세 가지가 1) 최우등졸업, 2) 조기졸업, 아 이거는 했네요. 그리고 3) 유학 가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 정도예요.
– 아프니까 청춘이네요.
그 책 아주 싫어합니다.
– 그래서, 본인에게 유기화학이란?
그냥 동반자입니다. 그냥 같이. 그런 거죠. 저도 나이 들면서 유기화학의 발전을 직접 보면서… 그러면서도 무릎은 꿇리고 싶고.
– 동반자인데 무릎은 꿇리고 싶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프로도한테 끌려다니는 장면 있지 않습니까.
– …
그냥 열심히 하겠습니다.
– 10년 후에 다시 말씀 나누어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