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이 글은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의 녹음 기록을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재구성한 인터뷰집의 일부입니다. 전체 인터뷰집은 ESC 청년과학기술인 위원회의 협력과 도움에 힘입어 [어떤 대화: 청년 과학기술인의 목소리](pdf)로 발간되었습니다. (필자)
¶ 이 인터뷰는 2014년 8월에 있었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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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부터 부탁합니다.
수리과학과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곧 졸업해서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할 예정입니다.
– 좀 더 다양한 배경을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한국 나이로 31살입니다. 남자이고, 학부 때부터 계속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과학고 나왔습니다.
– 저희는 가보지 못한 대한민국 영재교육의 산실이네요. 생각해보면, 보통 사람들이 순수 수학을 박사까지 전공한 사람을 만날 일이 있을까요.
제가 만나는 사람의 80%는 순수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대수기하
– 순수 수학을 하시는데, 구체적인 연구분야는 무엇인가요.
‘대수기하’라는 분야인데, 영어로는 ‘algebraic geometry’라고 합니다.
– (…) 뭐 하는 학문인가요. 간단하게 부탁합니다.
고등학교 때 원의 방정식이라는 걸 다들 배웁니다. ‘원’이라는 기하학적인 대상을 방정식이라는 대수를 이용해서 표현할 수도 있는데 둘 사이의 관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기하(geometry) 문제를 대수적으로(algebraic) 바꿔서 풀 수도 있고, 반대로 대수에서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기하로 바꿔서 풀기도 합니다.
– 그러면 재미있나요?
(…)
– 많이 망설이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지금쯤 되니 재미가 있는 건지 그냥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멀리 왔어요. 루비콘 강을 건넜네요.
– 지금 이 분야를 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투자한 건가요.
지금 박사 5년 차입니다. 박사 5년 더하기 석사 2년에 학부도 5년 반을 다녔네요. 대학을 오래 다니고 싶어서 이 좋은 데를 왜 내가 졸업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박사를 5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애초에 학부 때는 내가 수학을 계속 전공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졸업을 했겠죠.
– 건너 듣기로 ‘대수기하’라는 분야를 전공 삼으려면 석사 2년 차에 가서야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제가 다닌 대학원은 석사 1년 차 때 이미 지도교수를 정하기 때문에 분야는 정해지는 셈입니다. 다만, ‘대수기하’라는 영역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공부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석사 2년 차 정도까지는 일단 수업을 듣고 기초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학자의 일과
– 최근에는 포항에도 갔다왔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합동연구를 하러 다녀왔습니다. 요즘에는 공동연구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서로 다른 사람이면 보는 관점이나 생각하는 방법들이 다릅니다. 또, 가지고 있는 테크닉 같은 것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합쳐가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 물리적으로 어떻게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만나서 보통은 칠판을 앞에 두고 써 내려 갑니다. “아, 박사님 이런 문제가 있는데 해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이러면 그걸 보면서 생각을 하죠. 이렇게 조금 이렇게 썼다가 지웠다가 이런 페이퍼에 관련된 언급이 있었던 것 같다 하면서 같이 찾아보고. 그런데 보통은 거의 대부분 시간이… 이번에는 특히 여름이라 늘어져서 그런지 거의 30~40분씩 둘이 말도 안 하고 그냥 응시했네요.
–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과학/수학하는 학자들의 연구 방식과 조금 다를 것 같아서 물어봤습니다. 연구실에 가면 플라스크라도 있고 랩 코트도 입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수학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수학자는 오히려 인문학과 어찌 보면 더 비슷합니다. 책을 읽고 페이퍼를 읽고 그다음에 쓰고. 이것이 거의 연구활동의 대부분입니다.
– 하루를 요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순수 수학자의 하루.
느지막이 일어나서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을 일단 클릭합니다. 아카이브(arXive.org)라는 곳[footnote]Arxiv.org로 대표되는 이공계의 논문 공유 공간. 이공계 학자들이 본인들의 연구 성과를 저널에 전형적인 논문의 형태로 제출하기 이전에 프리프린트 양식으로 업로드한다. 자신이 하는 연구를 빠르게 알림으로써 학문 전반의 발전 속도 향상에 기여하는 한편 연구자 개개인은 연구 주제를 선점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대다수 저널과는 다르게 무료로 운영한다.[/footnote]에 가는데요. 프리프린트(pre-print; 거의 완성된 논문 형태의 글)들이 올라오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저널에 출판되기 전에 페이퍼를 쓰는데 그 페이퍼를 미리 온라인에 올려서 공개를 하는 거죠. 내가 이런 걸 쓰게 됐다고 침 발라놓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다양한 인터넷에 사이트들을 한 바퀴 정도 돌고 공부를 합니다. 어제 실패했던 그 부분에서 다시 또 이렇게 공부하다가 페이퍼 읽을 게 있으면 좀 읽기도 하고요. 공부도 좀 하다가 생각도 하다가 보면 세미나 들어가서 세미나 듣고 방에 와서 인터넷 하다가 공부하고 그렇습니다.
– 뭔가 인터넷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보통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항상 페이퍼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켜 놓고 있다가 보면 손이 가더라고요, 컴퓨터에. 세미나를 듣고 발표한 사람과 같이 저녁 식사를 먹으러 간다거나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 앉아서 공부하는 거죠.
– 순수 수학 연구의 어려움이라는 부분이 좀 와 닿지 않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수학이 그냥 그 자체로 어렵기도 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뭘 만들어 본다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다든지 하는 작업이 있는데 여기는 그런 일이 없네요.
종이에 이렇게 쓰면서 하나하나씩 내 아이디어들을 적다가 ‘아, 오늘도 안 되는구나’ 합니다. 거의 항상 실패해요. 그러니까, 사실 되는 것이 더 신기해요. 예전에 만났던 은퇴하신 일본 수학자가 저에게 ‘열 번 시도해서 한 번을 건지는 거’라고, 본인은 평생 그렇게 연구를 해 왔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아,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10개 중에 하나를 건지지 생각했어요. 저는 한 100개 중에 하나 건지면 대박이죠.
연구 환경
– 그럼 이제 좀 진지한 얘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국의 수학 연구 환경을 대략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사실 유명한 한국인 수학자를 말해 봐라 하면 잘 모르기도 하고, 막 수학으로 유명한 나라도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수학연구를 하면 어떤가요?
저는 아직 대학원생이고 계속 대학원생으로서 수학을 접했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수학을 잘 하는 나라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두 가지 정도 됩니다. 일단 하나는 대학원생들에게 주어지는 연구 이외에 잡일들이 많다는 겁니다. 행정직원을 충분히 고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 인원들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만 하죠.
– 대학원생은 좋은 노동력이죠.
연구비가 많은 그런 학과들은 비서를 고용해서 어느 정도 행정 업무를 하는데 수학은 그런 식의 연구비가 많지가 않으니까요. 결국, 대학원생에게 더욱 ‘로드’가 걸리게 되는 거죠. 외국의 경우에는 학회를 한다든지 외부에서 방문객이 오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굉장히 훈련이 잘된 행정직원이 항상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간 모든 기관들에는 그런 분들이 다 커버를 해주시는데 한국은 대학원생들이 하게 되니까요. 그런 것들도 분명 노하우이고, 한 직원이 계속 그렇게 노하우를 쌓아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 나머지 차이점은요?
그리고 다른 차이점을 보자면, 수학은 아무래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여러 관점이나 생각하는 법들을 많이 배울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한국은 좀… (힘들어요). 아직은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잘하시는 분들도 외국에 비해서는 많지가 않으니까요.
– 두 번째 부분은 여러 분야에 다 해당하는 문제인 것 같은데요? 한국이 국제적인 환경에서 연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수학은 연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부 시간이 필요하고 연구에서도 지도 교수가 학생을 이끌어 주는 비중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지도 교수와 함께 끌고 가는 면이 있으니 주변의 이끌어 줄 사람들의 존재가 다른 분야보다 더 중요 할 수가 있는 거죠.
– 연구 환경이 아주 우수하다고 하기는 힘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지금 이 조건에서 순수 수학 연구는 왜 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 어떤 국립대에서 일하는 선배랑 이야기하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수학 하면 이공계 사람들의 로망 같은 것이 있잖아요. 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고 파헤치는. 그런데 실제로 본인이 연구를 하면서 보니까 그런 큰 것들은 자기는 못 하는 것 같고, 조그마한 문제들 밖에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자기는 그냥 이렇게 해서 논문을 쓰면 대학교에서 월급 주니까 수학을 하는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 굉장히 실용적인 사상이네요.
많은 경우엔 이게(수학 연구) 직업이니까요.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그러면 왜 이런 직업을 국가에서 만들어놓았을까 하는 겁니다. 대부분 세금이고요.
수학의 ‘쓸모’
– 사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내가 세금을 내는데 국가가 그 세금의 일부로 순수 수학을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왜?” 라고 물어볼 수 있잖아요.
참 어려운 문제인데요. 먼저, 국가가 이공계를 지원함으로써 거기에서 파생되는 산업으로 먹고산다면 그 인력들을 트레이닝을 시킬 때 많은 수학이 필요하니까 그렇겠죠. 그 트레이닝을 시킬 때 가령 대학교 1학년 때 미적분학을 들어야 하고, 2학년 때 뭐 선형대수도 듣고, 미분방정식도 듣고, 공업수학 이런 걸 다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제공해 주는 의미로써. 아무래도 첫 번째 의미는 이것 같아요.
– 본인은 잘 가르칠 수 있나요?
저는 잘 가르친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 좋은 연구자와 좋은 강의자는 좀 다릅니다(…)
– 수학이라는 학문의 쓸모가 잘 체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럴까요? 대학에서조차 이제 수학을 왜 따로 가르치고 연구해야 하는지 되묻기도 합니다.
수학은 자연과학과 공학의 기본적인 언어를 제공해 주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까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굉장히 유용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250년 후에는 이 연구가 암호로 쓰일 거야” 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했던 연구들이 실제 문제에서 쓰이고 했던 것이죠.
100개 중에 하나는 어딘가 응용이 될 텐데 무엇이 그렇게 될지 모르니 100개를 다 키워 보는 겁니다. 또 나머지 99개들도 언젠가는 유용할 수도 있고요. 실제로 요즘 순수 수학 분야에서도 직접적인 응용이 있는 부분 연구들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즉, 완전히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아요. 생각만큼 가깝지도 않지만…
– 아까부터 땀을 흘리시는데 더워서 그런지… 유독 이 질문에 땀을 흘리시네요.
굉장히 열악한 곳에서 작업하시네요. 한국과학의 현실이 약간 느껴진달까, 이 온도에서.
– 네, 뭐, 일단 순수 수학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완벽하게 설득이 되진 않았지만, 일단 그렇다고 합시다.
그렇죠. 제가 그걸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저는 이제 막 태어난, 수학자로서 아직 태어난 것이 아니죠. 졸업하면 이제 태어나는 셈입니다. 태아가 인생에 대해서 뭘 알까요.
“3,000원”
– 그래도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수학 연구를 하는 데에 사실 돈이 많이 안 드는 것 같네요.
그렇죠. 일단은 수학 연구비 대부분은 당장 공동연구를 해서 사람을 부르거나 내가 그쪽으로 가는 출장비, 혹은 사람 초청했을 때 드는 비용들 정도입니다. 아니면 미래의 잠재적인 공동연구자들을 초청하고 방문할 수도 있고요.
– 말 그대로 친목 비용… 좀 더 공적인 단어가 뭐 있죠?
교류, 네트워킹이죠. 정보화 시대 21세기에는 지식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들이 만들어지니까요. 여하튼 연구비 대부분이 이런 겁니다. 결국, 비행기 푯값이죠. 사실 이런 비용은 다른 분야들도 다 있는 돈이기는 합니다.
– 그러면 말씀하셨듯이 겹치는 영역을 빼고, 가령 기계공학에서 큰 실험용 기계를 사고 별도의 실험 건물도 짓고 막 하는데 수학과에서는 뭘 하나요?
수학과에서는 일단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책상이 필요하고, 풍부한 종이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갑자기 계산이 잘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잘 나오는 펜. 이런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제 생각엔 한 달에 한 3,000원 정도 되지 않을까요. 지식 교류를 위한 활동비를 제외하고. 연구 재료비로는?
– 연구자 한 명당 3,000원. 엄청나네요.
저널을 구독하고 하는 비용이 사실 굉장히 크긴 한데, 이것은 다른 과도 다 나가는 비용이네요. 그리고 사실 A4용지를 기계과에서도 저만큼 쓸 것 같아요.
한국 수학의 위상
– 그렇다면 한국 수학계의 위상은 어느 정도 되나요? 세계에서 한국 수학계 하면 얼마나 쳐 주나 뭐 이런 궁금증입니다. ‘다시는 한국 수학자를 무시하지 마라’라고 할 정도 됩니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지금 한 20위권 정도 아닐까요, 전 세계에서. 다만 굉장히 급속도로 발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학에 있어서는 후진적인 나라로 평가를 받고 있었어요, 국제 수학계에서는. 국제 수학자 연맹이라는 단체가 있고 거기서 각 나라별 등급표가 있는데 한국이 경제 수준이 매우 좋지 않은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가 2005년 즈음해서 위로 올라왔죠.
– 다른 지표들에 비해서 수학이 많이 낮은 편이었네요.
그렇죠. 그런데 최근에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이 보여서 그 등급표에서 굉장히 상향 조정이 되었어요. 덕분에 이제 한국이 국제수학자대회도 개최할 수 있게 된 거죠. 물론 아직 좀 더 발전해야 합니다. 사실 국가 내에서 수학자들이 크고 그 나라만의 어떤 분야나 학풍 같은 것도 생기고 해야 이제 우리를 무시하지 말라고 할 수 있죠. 아직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의 지도 교수님들만 해도 거의 해외에서 학위를 받아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아직 국내에서 뿌리가 그렇게 깊지는 않죠. 한국 역사를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거예요, 아마.
–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응용분야에 돈을 쏟아붓고 있었으니까요. 짐작해보면, 논문을 내고 학술 활동하는데도 무언가 문제가 있었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저희 교수님이 80년대 초반 학번이신데, 교수님께서 대학을 다닐 때 그 대학에 계셨던 교수님 중에는 동료 평가(peer-review)되는 저널에 논문을 내신 분이 한 분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SCI[footnote]SCI: Science Citation Index의 약자로 과학 인용 색인이라 부른다. 미국에서 1960년대에 만들어진 인용 색인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전 세계의 저널 중 상위 10% 이내의 저널들만이 등재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 연구의 중요성, 연구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ex. SCI 피인용 횟수, SCI 등재 몇 편 등).[/footnote]나 SCIE급이 아니라 그냥 peer-review가 되는 저널 기준으로 해서요. 리뷰가 안 되는 저널에 내셨는지도 잘 모르긴 하겠는데, 어떤 그런 식의… 우리나라에서 수학연구 자체가 사실상 없었던 셈입니다. 한 90년대부터 이제 조금씩 조금씩 제대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 그러면 지금 본인은 90년대부터 연구를 하기 시작한 교수님들에게 배운 사람이니까 2세대 수학자라고 보면 되나요?
약간 애매하긴 한데 어쨌든 카이스트가 처음 시작하던 시절이 1세대. 그분들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면 그 세대들인데 그분들이 아직 40대죠. 아직 한 턴이 다 안된 거죠. 그분들이 은퇴를 안 하셨으니까요. 이제 막 테뉴어[footnote]테뉴어(Tenure): 대학에서 교수의 직업 안정성을 평생 보장해주는 특수한 제도적 장치. 영년 교수직 제도라고 번역되기도 하며, 흔히 “정교수”가 되었다고 함은 테뉴어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대학에 정규직 연구자로 취직했다 함은 테뉴어 트랙 계약을 합의했다, 즉 영년 교수직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는 의미와 사실상의 동치로 사용된다.[/footnote]를 받기 시작하고요.
– 그러면, 1.5세대?
네. 저는 그런 세대라서 그분들 보다는 한 10년 정도 뒤져있죠. 한편으로는 해외파에 수학 받은 첫 세대기도 하고요.
수학자의 괴로움
– 여기서 그 1세대 이야기를 잠깐 한번 해 보죠. 우리나라가 가뜩이나 순수 연구에 돈을 많이 안 쓰는데 누구보다 힘드셨을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이 대학원에서 과연 내가 수학을 전공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는 건가” 고민했다고 해요. 이게 남자가 30대가 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
– 왜 하필 남자인가요? 차별적 발언입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실제로 선배들이 다 남자라서…
– 여기서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수학계의 암울한 성 비율이군요.
네. 남자. 선배들이 다 남자분들입니다. 성차별 발언은 아닙니다.
– 다시 돌아와서, 30대가 되면요?
그분들이 이제 30이 되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대학원 다니면서 하셨던 거죠. 해외파도 아니고, 이미 국내 대학들은 해외에서 박사 받아 오신 분들이 쭉 자리를 잡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던 찰나에 BK21(브레인 코리아 21)이 그 당시에 퍼지면서 그분들이 쫙 자리를 한 턴 잡으신 때가 있었죠. 비록 잠깐이지만 불과 2~3년 전 까지만 해도 덕분에 자리들이 많이 났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도 기다릴 수 없어요. 그다음을 기대해야죠. 다만 이미 자리 잡은 선배들로부터 어떤 교수님이 은퇴해도 사람을 새로 뽑지 않을 계획이라는 뭐 이런 훈훈한 얘기들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 굉장히 훈훈한 소식이네요(…)
훈훈하게 제게 중국 가서 일자리 잡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하네요. 중국이 지금 경제 급성장을 이루는 중이니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 수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굉장히 힘드네요.
기초과학 친화적인 나라를 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일 큰 문제는 결국 직업입니다. 수학을, 이런 기초과학으로 박사 학위 받고 나서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고, 종류는 당연히 이게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이니 그렇다 쳐도, 그 숫자가 문제입니다.
물론 선진국도 사실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제 느낌에는, 어떤 정확한 통계 자료가 있는 건 아니지만,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박사가 되신 그분들이 턴이 끝나지도 않고 이제 막 테뉴어를 받으려는 그 시점에서 일자리가 이렇게… 다음 세대한테 일이 없다는 현실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해요. 제 일자리가 없고, 저와 같이 공부했던 그 많은 사람들의 일이 없다는 문제입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자리’
– 현 세대의 신진 연구자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없군요.
네.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학부 때 수학과가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거든요. 금융권에 인기가 확 높아졌어요. 두세 학번 위 선배들은 수학과가 한 10명이였다면, 저희 때는 50~60명도 있었어요. 최근에 막 100명씩 들어온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가 사실 수학과에서 학부를 마치면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고, 몇몇 분야에 가서 고액 연봉을 받을 수도 있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서 더 공부를 많이 하면 어떨까. 학부보다 더 수학을 열심히 많이 오래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갈 데가 없는 거죠.
– 아이러니하네요. 공부는 더 많이 했는데 갈 곳이 없다?
보통 사람들이 대학원을 가면 좋은 직업을 잡을 기회가 더 많아지는데요. 어렸을 때는 공부를 많이 하고 잘 할수록 점점 기회가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고 원하는 과에 가려고 하고 하는데, 이제 그걸 넘어서 더 공부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문제가 되죠.
– 일종의 임계점이 있네요. 본인은 임계점을 한참 지나치셨네요?
지난 줄도 모르고 막 오다 보니까(…)
– 어찌 되었든 지금 이렇게 얘기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취직을 하셨는데요.
비정규직입니다.
– 그렇죠. 그래도 향후 2년은 보장되었는데요. 한국이 최근에 R&D 투자에 돈을 계속 쓰고 있고 또 기초과학연구를 많이 한다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탈 추격 선도형이라고 하죠. 그런데도 일선에 있는 뛰어난 순수 수학자는 일자리와 돈이 없나요?
제가 뛰어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어요.
– 한국에 ‘대수기하’ 하는 사람 몇 명 없지 않나요?
‘대수기하’ 하는 학생들까지 다 합치면 아마 50~60명 정도 되겠네요. 전국에서.
– 그러면 그중에 반 정도는 그래도 취직이 돼야 운영이 될 텐데, 반 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죠, 지금?
이미 그중에 교수님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반 정도는 사실 정규직이라고 봐야죠 이미. 문제는, 다음 세대가 계속 수학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정규직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한국 수학 연구 규모를 보면 제가 해외 나가서 비교해봐도 돈이 많다는 느낌은 많이 들어요, 수학계에도. 돈이 많이 돌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받는데 그런 돈들이 도는 것과 직업이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포스트닥터(post doctor)[footnote]포스트닥터(Post Doctor): 포스트닥, 혹은 ‘포닥’이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의 상태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실 박사 학위를 마친 모든 연구자는 포닥에 속하지만 그렇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주로 학위를 받은 후 비정규직 상태로 연구 경력을 쌓는 연구 초년생을 지칭하며, “박사-포닥-교수”라는 일종의 정형화된 연구직 커리어 진행 과정의 일부를 구성한다. “인턴-레지던트-의사”와의 비교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footnote], 흔히 포닥이라고 부르는 그 자리는 많아요.
– 지금 당장 일자리는 솔직히 계약직도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정규직이군요.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를 거쳐 학계를 유지하는 어떤 기반이 되는 뿌리인데 지금 잘 안 되어있다는 뜻이죠.
그런 정규직들 자리들이 이미 있기는 한데 문제는 새로운 자리들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 수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완전 천재 하나가 이렇게 다 하고 이런 연구가 아니에요.
– 아닌가요? 영화나 픽션에서는 보통 수학 같은 분야에서 한 명이 쫙~ 하던데요.
실제로는 사실 많은 사람이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죠. 존 내쉬나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큰 스케치를 하죠. 그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큰 스케치를 하면 이제 디테일 하게 얼굴을 여기다 그리자. 남자 얼굴을 스케치해 놨으면 수염도 그리고 눈동자도 칠하고. 누구는 색칠도 해야 하고 누구는 점도 찍고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 본인은 어디쯤하고 계십니까
저는 코털… 좀 많이. 지저분하게 막.
– … 그리고 아마도 평가 시스템의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수학 분야 논문이 쏟아져 나오기는 힘들 테니까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요. 학과에서는 이 사람을 뽑고 싶은데 학교 본부 측에서는 난감하다,
이 사람이 논문도 몇 편 없고. 수학도 분야마다 다른데 저희 분야 같은 경우에는 논문이 많이 나오지 않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 확실합니까? 본인이 조금 쓰는 것이 아니고?
저는 논문을 굉장히 많이 찍어내고 있는 편이죠. 그런데 수학계는 또 전통 중 하나가 저자의 순서가 없어요. 제1 저자, 제2 저자 그런 개념이 없이 다 그냥 알파벳 순이거든요, 무조건. 그래서 제 이름이 사실 뒤로 많이 밀립니다.
여하튼 그래서 이렇게 보는 거죠. 아니 이 사람은 교수라고 지원했는데 제 1저자도 아니고 이름도 뒤에 가 있고. 예를 들어 다른 공학 분야는 박사 1년 차 때부터 1년에 막 논문 6편씩 썼는데 얘는 교수를 지원한다고 했는데 논문이 4편이네. 제1 저자도 없고. 이게 뭐냐, 돈 받고 교수 뽑냐 하는 말을 수학계가 아닌 사람들은 할 수도 있죠.
– 아무래도 평가 시스템은 대부분 지엽적 상황을 다 고려해 주기는 힘들고 적당히 뭉뚱그려서 SCI를 몇 개 썼냐, 제1 저자가 몇 개냐 하는 식으로 수치화를 하다 보니까요.
사회가 서로서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좀 부족하기도 합니다. 대학 본부에서도 수학계를 믿는다면 수학계가 이 사람을 추천한다 했을 때 뽑을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 믿는 거죠.
– 대안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요? 가령 공학 분야에서는 처음에는 교수의 길을 걸으려고 막 논문을 찍어내고 하다가 잘 안 되면 연구소 가지 뭐 하는 경우들도 있는데요, 수학은 어떤가요?
기업에 가서 하는 것과 학계에 남아서 하는 일은 관점이 다르죠. 아무래도 공학은 이쪽에서 승부를 볼 수 없겠다 싶으면 길을 바꾸는 것이 훨씬 수월하죠. 막말로 안 되면 삼성 간다는 말을 하는 것인데, 수학은 하다 안 되면… 한 때는 하다 안 되면 학원으로 많이 갔죠. 사교육계로. 그런데 그것도 사실 학위가 높다고 해서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수학하다가 안 되면 우스갯소리로 뭐 절에 들어간다든지 해야죠.
수학자와 정규직
– 결국 요약을 해 보면 “수학계에서 정규직을 갖기 너무 힘들다”라는 얘기로 딱 귀결될 수 있겠네요. 한데 하나 얘기를 해 보자면, 특히 저희는 영재 교육을 받지도 못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보면. 지금 본인은 한국 영재 교육의 산증인이잖아요. 거기서도 또 막 남들이 “오, 수학 너무 어려워”라고 하고 있는데 수학 대학원도 가고 아무도 모르는 대수기하로 박사도 하고. 한국의 한 0.01%로 한 15년 정도를 지금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거죠. 십몇 년을 속된 말로 처박았는데
네. 수학을 공부하면서 즐거웠습니다.
– 그런데 지금 이렇게 남들이 보기에 게다가 버젓한 대학도 나왔는데 지금 앞으로 갈 포닥에서 주는 연봉이 4000 초반쯤 되죠. 그나마 여기도 정말 알아주는 곳임에도 대기업 신입 세전 소득이랑 비슷한 셈이네요.
사실 오래 공부를 한 거랑 사회·경제적 대우를 받는 거랑은 좀 다른 문제입니다. 대기업 신입 사원들은 그 이상의 경제적 기여를 하는 것이죠. 수학자가 경제에 당장 기여하는 건 아닐 수 있으니까요. 저는, 오래 공부했고, 더 많이 공부했으니까 연봉을 더 많이 준다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쨌든 한국이 기초과학에 투자할 정도의 나라가 된 건 맞습니다. 세계적인 인류의 지식을 쌓는 과정에 한국이 투자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한국의 과학정책을 말씀하시는 분들이나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 S급 학자들에게 더 지원해서 그 사람들이 더 연구할지에 관해 논의합니다.
저는 오히려 반대로 그런 집중보다는 어떻게 보면 저 같은 평범하거나 평균 이하인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더 많이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해요. 정규직을 늘린다는 건도 이런 맥락에서 말씀드린 것이고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영국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라는 역사학자가 있는데, 홉스봄이 처음 대학교 교수가 되었을 때 홉스봄의 지도교수가 그런 얘길 했다고 해요.
“아마 네가 가르치는 애들은 다 너보다 멍청한 애들일 거다.”
– 그렇겠죠. 홉스봄인데(…)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만큼 똑똑한 애들이 거의 없는데, 사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가르치는 거라고. 똑똑한 사람들은 어차피 자신을 돌볼 수 있기 때문에 네 강의가 있든 없든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네 강의가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 정책이나 과학기술정책도 똑똑한 사람을 더 잘 되게 해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사람들은 알아서 잘 하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을 키워서 그 사람들이 국가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다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가장 첫 번째 걸음으로써 일단,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제발 일자리 좀 많이 부탁드립니다.
–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엄청나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아요. 앞서 말씀하셨듯이 수학은 또 돈을 많이 안 쓰니까. 게다가 숫자도 적고요.
이것도 미국에서 물리학 하는 교수가 물리학 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 말인데. 비슷하게 하자면 뭐 이런 것 같아요. 저는… 제 주변에는 마약이나 아니면 도박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보다 수학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이 더 많아요.
– 이게 진짜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사실 지금 이 현실을 들으면 수학에 조심해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반대로 학생들 입장에서는 주변에서 맨날 듣는 얘기가 수학 공부 좀 해라, 과학 공부 좀 해라, 이거잖아요. 게다가 이공계에서 대학을 가려면 수학을 잘해야만 하고.
제가 말하는 수학은 학부를 졸업 하고 나서 대학원 이상의 문제입니다. 대학교 때까지는 수학을 잘하는 게 좋죠.
– 하지만 일정 시점을 넘으면
그 이후에도 수학을 잘한다면 이제(…)
– 그렇죠. 사실 한국에서 도박이랑 마약으로 인생을 망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워낙 제도적 장치가 많아서 망치고 싶어도 망치기 쉽지 않은데, 수학은 굉장히 위험한 학문이군요. 좋은 결론 감사합니다.
이게 다… 네. 농담입니다. 수학… 굉장히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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