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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의 녹음 기록을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재구성한 인터뷰집의 일부입니다. 전체 인터뷰집은 ESC 청년과학기술인 위원회의 협력과 도움에 힘입어 [어떤 대화: 청년 과학기술인의 목소리](pdf)로 발간되었습니다. (필자)

  1. 청년 수학자와의 대화
  2. 청년 생태학자와의 대화 
  3. 공룡 꿈나무와의 대화

¶ 이 인터뷰는 2015년 9월에 있었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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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남 어떤 대화 청년 과학기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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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가장 바쁜 존재가 누굴까요? 맞습니다. 고3입니다. 지금 여기 앉아 계십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공룡에 관심이 있어서 블로그도 운영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운영하고 하다 보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공룡 꿈나무
디자인: 노수리

– 반갑습니다. 공룡 이야기를 하셨는데, 테마파크에서 팔 것 같은 티셔츠를 입고 오셨네요.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기념품점에서 샀어요.

–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자연사 박물관이죠. 서울에선 여기밖에 없죠, 아마.

대학 소속은 꽤 있지만, 서대문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고 할 수 있어요.

– 페이스북 페이지와 블로그를 하시는데요, 그것부터 간단하게 소개를 해주세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하게 되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게 티라노사우루스과였죠. 그걸 영어로 하면 ‘티라노사우루이데'(Tyrannosauridae)라고 하는데, 멋있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그걸 이름으로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단순 위키백과나 이런 것처럼 공룡 하나하나 이름 올리면 사전 복사본밖에 되지 않지 않으니 참신한 내용을 싣고 싶었어요. 찾다 보니 ‘다이노소어 메일링 리스트’라고 학자들이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면 메일을 주고받고 그게 온라인에 게시되는 사이트가 있더라고요. 그 사이트를 통해 최신 연구결과를 볼 수 있게 되어서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해보자 마음먹고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배춧잎의 고생물학 정보통’을 만들었습니다.

– 다이노소어 메일링 리스트라고 하면 영어일 것 같은데요. 그걸 막힘 없이 읽을 수 있어요? 전공용어도 많을 텐데.

처음에는 솔직히 어려웠죠. 그런데 꼭 읽어보고 싶었고, 잘난 척하고 싶었어요. 어떻게든 동네 도서관에 가서 다 뒤지고 공룡이라 뼈에 관련된 해부학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해부학 찾아보고. 그런 형식으로 하니까 이제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데 아직도 막히는 부분이 많습니다.

dml.cmnh.org http://dml.cmnh.org/
dml.cmnh.org

– 연구자들이 다 그렇죠. 사실 저희가 논문 내신 것을 봤습니다.

대단한 건 아닙니다.

– 학술대회 가서 발표를 하신 것이잖아요. 절차를 거쳐서 포스터 발표를. 그것만 해도 고등학생들이 하기 쉽지 않은데요.

일단 처음 고등학교 2학년 때 참여했고, 한 편 발표했어요. 그 때 느낌이 왔죠. 그 경험이 소중했어요. 3학년 때는 다른 학생과 함께 쓰기도 하고, 그걸 포함해서 세 편을 봄에 발표하고 얼마 전에 생물학회에서 두 편을 더 발표했어요.

–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있나요? 이거는 남들이 들어도 흥미로울 것 같은 아이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발표했던 것인데요, 주제가 티라노사우루스입니다.

–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 바로 그 티라노사우루스네요.

(티라노사우루스가) 종류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연구도 많이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분류 상의… 예를 들어 공룡을 분류하려면 특정 종의 특징이 명확하게 나와야 하는데 논문에 오류가 많이 발견되거나 학자들의 의견이 다르거나 해서 분류에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몇몇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다른 종의 새끼일 확률이 높은데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에 입각해서 다른 종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문제점들이 있어서 그걸 바로잡는 논문이었습니다.

"Stan" (BHI 3033) the T. rex at Manchester Museum. (Picture by en:User:Billlion, CC BY SA 3.0)
“Stan” (BHI 3033) the T. rex at Manchester Museum. (Picture by en:User:Billlion, CC BY SA 3.0)

– 혹시 논문 제목이 무엇인가요?

[티라노사우루스와 공룡들의 해부학적 특징 및 분류]입니다.

– 굉장히 큰 주제네요. 리뷰 논문스러운데요? 뭐랄까 대학자가 쓸 것만 같은 제목입니다.

자랑일 수 있지만, 처음엔 정말 긴장했어요. 대학생, 대학원생, 교수가 보통 올 텐데 고등학생이 가서 서 있으면 사람들이 비웃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교수님들이 와서 칭찬해주시고. 호평을 받아서 그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연구활동이 학계 분들에게 고통을 줄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런 (즐거운) 기분을 받고 해서 3학년 때 연구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 내가 했던 일이 마냥 이상한 것이 아니었구나 깨달았군요.

그렇죠.

– 분류학에 원래 관심이 많은가요?

공룡에 대한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분류에 더 관심이 많아요.

– 공룡의 분류라고 하면 이게 사실 잘 상상이 안 되는데요. 과학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분명 분류의 역사가 중요해서 보긴 하는데 주로 식물의 분류체계를 많이 접하거든요. 공룡의 분류체계는 좀 생소해요. 식물을 무슨 과 무슨 목으로 분류하는 것과 같은 건가요?

분류체계를 한글로 번역해서 분류군이 나오잖아요? 과거에 린네(Carl von Linne)라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이건 진화론 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생물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했죠. 그런데 이제 세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고생물학은 생물의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린네의 이런 분류군이 쓰이지 않고 있어요.

대신 분기 분류학이나 이런 것을 사용합니다. 보통 공룡 논문을 읽으면 클레이드(clade)라고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 분류군이에요. 경계를 나누는 것 자체도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애매해서 사실상 분류군이라고 말하는 것이 제일 정확한 명칭이 되어 버렸습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각 군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을 모아서 정의할 수는 있지만 요새 대부분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써요. 계통도를 만들죠. 이렇게 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편입니다.

Skeletal reconstructions of various tyrannosaurids.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https://en.wikipedia.org/wiki/Tyrannosauridae#/media/File:Tyrannosauridae.jpg
Skeletal reconstructions of various tyrannosaurids.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 그러니까, 가계도 같은 걸 만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 그러면, 우리는 뭉뚱그려서 티라노사우루스라고 말하는데, 그 안에서도 가계도가 달라지나요?

티라노사우루스’류’라고 하면 그게 가지가 굉장히 많이 처져 있어요. 그런데 이 경우에는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게, 고생물학자들은 새로운 학명을 많이 명명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타르보사우루스, 한반도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공룡인데, 잘못되긴 했습니다만, 여하튼 그 공룡은 사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외에 티라노사우루스의 한 종류로 분류된 공룡이에요.

렉스와 해부학적 차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다른 종으로 분류되긴 했는데, 타르보사우루스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임의적 기준 없이 맘대로 붙일 수 있는 것이죠. 많은 공룡 종류의 계통에서는 속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오늘날 동물들로 따지면 사자, 호랑이 이런 것도 같은 판데라 속인데 종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공룡은 그렇지 않습니다.

타이보사우루스(Tarbosaurus; '놀라게 하는 도마뱀'이라는 의미)
타이보사우루스(Tarbosaurus; ‘놀라게 하는 도마뱀’이라는 의미)

 

– 분류학 외에 관심 있는 분야는 또 무엇이 있나요. 너무나도 문외한인 저희가 앉아 있어서 묻는 질문인데, 공룡에서 분류학 외에 뭐가 있죠?

사실 고생물학이란 것 자체가 유럽 귀족들이 땅을 연구하다가 이상하게 생긴 화석들을 줍게 되면서 이걸 좀 연구해보자, 이건 무슨 돌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어요. 화석을 지질학에서는 어느 층 즈음에 있는지 판별하는 도구로 썼죠. 연대층서학에 쓰는.

– 학교에서 배우죠. 무슨 지층에 뭐가 있고, 어디에 암모나이트가 있고. 외워서 맞추기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저는 층서 쪽에는 관심이 많이 없어요. 고생물학이 생물의 진화를 연구한다고 했었죠, 제가. 고생물학은 돌이 된 생물들을 가지고 하는 거고, 현생생물학은 살아 있는 생물을 근거로 합니다. 이 생물들의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 걸 진화생물학이라고 부르는데, 이걸 연합해서, 생물학에서 나온 걸 고생물학에 적용하는 걸 이보디보(Evo-devo; 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 진화발생생물학)식이라고 하는데, 이런 활동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보디보가 포함하는 학문들 (출처: 김서경, CC BY SA 3.0)
이보디보가 포함하는 학문들 (출처: 김서경, CC BY SA 3.0)

요새는 공룡의 무는 힘이라든지 이런 것도 학자들이 알고 싶어 합니다. 얼마나 힘이 세고, 얼마나 큰 먹이를 들어 올릴 수 있었는지 하는 것들이요. 그래서 물리학과도 관련이 많은 편입니다.

– 생물의 몸 구조나 해부학 같은 것도 중요할 거고, 고전역학 등의 물리학적인 이야기도 들어갈 거고. 고생물학자라는 카테고리만으로 연구하기 힘들어지는 분야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만 같네요.

뭉뚱그려서 고생물학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세부적 흥미가 어떤지는 알겠는데 논문 내기로 마음먹은 건 어쩌다 그렇게까지 갔나요? 블로그를 운영하는 건 하는 거고, 메일링 리스트 보는 건 보는 거고. 논문은 다른 분야잖아요? 앞선 활동이야 조금 힘든 취미생활로 쳐도 논문은 다르죠. 어떻게 태세 전환을 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대단한 계기는 아니에요. 고생물학자들이 연구한 걸 보면서,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도 생각 못 했던 것들이라서. 그래서 이런 식으로 한 번 연구해 보자 해서… 그게 계기였네요.

– 그러면 그 결과를 학회에 가서 발표까지 하게 만든 계기는 또 뭔가요?

처음에 그냥 무작정 논문을 혼자 써 봤어요. 그런데 논문이란 거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야 하는 물건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알게 된 연구원분께 보여 드렸죠.

– 그분은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SNS를 통했습니다. 그분이 나름의 가치를 인정해주셨어요. 그리고 학회에 가서 발표해 보는 게 어떻겠냐 하셔서 가게 되었습니다.

– 학회에 가서 발표한다고 하니 주변 반응이 어땠어요?

친구들은 잘하고 오라는 말만 했고, 한 번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축하한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 상을 받았어요?

처음 발표한 곳에서 포스터 발표 상을 받았습니다.

– 지금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고등학교 친구가 이런 거 관심 있어서 연구했는데 어디 막 한국지질학회 가서 발표하기로 했다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지 않을까요. 저희가 봐도 잘했다 못 했다를 떠나 신기하네요. 지금 주변에 연구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나요? 학생 중에 있어요?

같은 학교에 생물 쪽에 관심 많은 친구가 많은데, 주로 과학전람회 발표를 합니다. 학회 가는 사람은 본 적이 없네요.

고등학교

– 사실 고생물학이 전람회 같은 데서도 ‘핫’하지는 않을 수 있죠. 학회 분위기는 어땠나요?

뭐랄까.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았어요. 대학원생 분들, 젊은 분들도 많이 계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가끔 하고. 엄밀히 말해 학회는 끝나고 가는 저녁을 위해서 가는 것 같기도 하고.

– 네트워킹하러 간다고들 하죠.

이런 분위기들 보니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 참 신기한 것이, 공룡에 관심이 없던 사람은 없어요. 어렸을 때는 다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흥미가 떨어지죠. 소위 테크트리(tech-tree)라고 하는데 처음에 자동차를 좋아하고, 그다음에 공룡, 그리고 레고 뭐 이런 것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관심을 유지했던 것인지, 혹은 새로운 계기가 있었어요?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잠시 만화에 빠졌었지만… 공룡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식지는 않았어요.

– 그게 정말 신기하네요.

본격적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진로 고민도 생기고 내가 뭘 잘할 수 있고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니 공룡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동안 잠시 쉬었던 적이 있으니 따라잡으려 한 것도 있었고, 교양을 쌓으려고 한 것도 있었어요. 나름대로 어려운 책들을 펼쳐 보기 시작했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었죠.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 어려운 책들 어떤 거 읽으셨어요?

도서관에 가면, 아동 분류에 있는 책이 아니라 과학 분류에 있는 책들. 가령 송지영 교수님 책이요. 엄밀히 말해 치과의사신데 공룡에 관심이 많으셔서 아마추어 생물학자로 활동하고 계신 분인데, 그 분이 쓰신 [화석, 지구 46억 년의 비밀]이라는 책으로 중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화석 지구 46억년의 비밀

– 한국의 학생 추천 도서에 들어갈 만한 책이 아닌 것 같은데요(…) 보통 한국 중학교 2~3학년이라고 하면 고등학교 갈 때니까 집에서 학원도 보내고 과외하고 하면 시간이 많이 없지 않나요?

중학생들은 보통 취미로 게임을 많이 하는데, 게임 할 시간에 공룡을 본 거죠.

– 덕업일치다?

공부하는 시간에도 하긴 했습니다만(…)

– 그러면 지금 햇수로 5년째 공부하는 셈인데, 5년이면 박사 학위를 받잖아요. 적어도 학부 과정은 혼자 뗀 것 아닌가요.

한국에서 학부 때 고생물학만 할 수 있는 곳은 없어요. 지질학과 가서 세부 전공으로 배워야 해요. 그것도 아까 말했듯이 층서고생물학적인 게 강하죠. 우리나라에서 공룡을 전공한 교수님은 서울대에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다른 분들은 층서나 다른 화석들 연구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공룡만 죽어라 팠기 때문에 솔직히 거기서 다른 고생물학을 배우는 대학생들보다 지식이 많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 지질학과에 갈 생각은 있나요?

공룡의 생물적인 모습에 관심이 많아서 현재로서의 최선은 생명과학입니다. 그런데 국내 생물학과의 문제점은 세포 단위나 미생물을 주로 한다는 것이죠. 이게 조금 애로사항이어서 지질학에 갈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 생태학, 진화생물학 하시는 대학원생, 연구원들도 비슷한 애로사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생물학과에 갔는데 생각하던 생물학이 아니었다는 거죠. 비슷한 이야기인데, 그렇게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무조건 지질 아니면 생명이라서요.

– 그러면 서울대 가야겠네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 공룡을 전공하시는 분이 가시긴 해요. 그런데 제가 서울대 가기에는 턱도 없는 성적을 가지고 있어서… 대학교 때 열심히 해서 대학원을 노려야… 꿈이 대학원생인 처지에 있습니다.

공룡을 연구하려면 서울대에 가야 하지만...
공룡을 연구하려면 서울대에 가야 하지만…

– 서울대 넣어봅시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 학업이 덕질에 밀린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밀리나요?

전체 10만큼 공부한다고 했을 때 공룡 관련된 게 7 정도, 학교가 3 정도입니다. 3 중에 반은 자는 것 같아요.

– 공룡을 연구하다 보니까 이걸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 그게 생기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이 정도로 파이팅 넘치게, 고등학교 때부터 진지하게 하겠다 하는 건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남들에 비해 빠르네요. 그래서 신기하기도 한데. 주변 친구들 반응이 어때요? 이런 생각을 친구들과 이야기해 본 적 있어요?

친구들과 많이 놀러 다니고 하는데, 보통 남자애들은 PC방을 가요. 친구들 게임 할 때 저는 공룡을 읽어서 공룡 좋아하는 걸 들키고, 친구들이 그걸로 먹고살 수는 있냐 하는데 저는 좋아하는데 뭐가 대수냐고 응했고. 애들도 응원도 해주고 많은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역시 우정이 최고!
역시 우정이 최고!

– 부모님은 어때요.

찬성하시지는 않는데 열정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반대하시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에요. 다른 걸 하면서 취미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신 것 같아요.

– 학교 선생님들은?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편이죠. 자세하게 물어보시거나 그런 건 아니고 공룡 좋아하는 학생이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 선생님들이 제일 관심이 많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학교니까요. 아무래도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와 비슷한 구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출처: [거인의 별] 제32이야기 "악마의 깁스" 편)
‘공룡이라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와 비슷한 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출처: [거인의 별] 제32이야기 “악마의 깁스” 편)
– 척박하네요. 한국에서 고생물학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나요?

아까 말했던 서울대 교수님 한 분, 문화재청에서 일하시는 한 분, 그리고 전남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이 있는데 공룡이나 다른 척추동물들을 연구하세요. 활발하신 분들은 이분들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수도 있어요.

– 전체 고생물학계를 따져도 그렇게 크지 않은 거예요?

고생물학도 많이 다양해서 그분들 다 합치면 상당히 많은데, 이런 척추동물 쪽은 별로 없어요.

– 외국에는 많아요?

한국보다는 훨씬 많지만, 그쪽에서도 마이너한 분야죠.

– 상식적으로 유아들에게 공룡 관련 컨텐츠가 쏟아져 나오려면 연구한 게 이 만큼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아이들 컨텐츠만 쏟아져 나오고 애들은 공룡을 졸업하고. 뭔가 이상하네요.

적은 분들이 그렇게 많이 노력해서 우리가 이렇게 많이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 분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 뜬금없지만, [쥬라기월드] (2015)는 어땠어요?

극장에서 여섯 번 봤습니다.

쥬라기월드

– 여섯 번이나 본 이유가 있어요?

어렸을 때를 [쥬라기공원] (1993)과 보냈어요. 이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는데 그 사운드나 화면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많이 감동적이었죠. 어린 시절 향수도 떠오르고…

– 한국 고생물학계에 사람이 적은 것도 알겠고, 본인이 그 맥을 잇고 싶다는 파이팅도 알겠는데, 지금 현실에서 고생물학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학부에서부터 꾸준히 연구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무언가 바뀌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을까요.

솔직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공한 분들이 많았으면 해요. 어떤 대학을 가도 전공할 수 있게.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많이 발전을 못 한 것도 있지만… 갈 길이 많은 것 아닌가요. 너무 현실을 비판하지 말고 스스로 바꿔나가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에요.

– 아직 대학을 안 갔는데, 곧 어디 대학을 가서 4년 동안 세포를 들여다보고 있다면, 대학원 갈 때 또 성적이 중요할지도 몰라요. 싫어하는 세포 공부들을 열심히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유명한 고생물학자 중에 필립 커리(Philip J. Currie)라고 있어요. 그분도 공룡을 좋아했는데, 어디 나가서 화석을 직접 찾아보려고 했더니 공룡은 찾아볼 수가 없고 연체동물이나 산호만 주야장천 찾은 거예요. 관심이 없을 수 있는데 그분 생각은, 이런 것도 공부해서 언젠가는 공룡을 하겠다 이랬다고 합니다.

필립 커리(Philip J. Currie)
필립 커리(Philip J. Currie)

그리고 요새 고생물학이 아까 말했듯이 많은 분야가 있어요. 세포 자체가 살아 있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세포 공간 이런 걸 통해서 크기를 측정하기도 하고. 세포와도 관련이 없지 않은 이런 분야로까지 가고 있으니 도움이 아주 안 되진 않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 본인은 현장에서 연구할 것 같아요, 연구실에서 연구할 것 같아요? 사실 뼈, 세포를 연구하는 건 땅을 한 번도 파볼 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건데요.

연구실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네요.

– 현장 타입은 아닌가 봐요?

직접 가서 발굴해 보고 이런 게 소중한 경험일 수는 있지만, 일단 더운 데서 일하기가 싫고(…) 공룡 화석이란 게 퇴적암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처음 캘 땐 공룡인지 돌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아요. 그걸 연구실에 가져와서 처리하고 깔끔해진 결과물을 읽어갈 수 있는 것인데 그 과정들이 그렇게 매우 흥미로워 보이지는 않아요.

– 결국, 대학교에 가서 전혀 공룡과 관련 없는 분야가 아닌 공부를 하더라도 기쁘게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건가요.

그렇습니다.

– 사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할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수학이나 그런 건 학교에서 지겹게 하니까 그렇게 큰 의미를 느끼지는 못해요. 제가 공룡에 관해 관심이 있는 부분은… 무는 힘이라든지 달리는 힘이라든지 이런 것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성장 과정이나 생물학적인 데 관심이 있는 거예요. 이렇게 수학이나 이런 걸 안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수학 노트 공부

– 한국 수학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려워요. B형 쳐서 서울권에 가고 싶네요.

– 생물학 이야기하면 그냥 어디 랩에 앉아 있는 대학원생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다가도 조금만 다른 데로 가면 고3 같고… 혼란스럽네요. 미래에 본인 같은 사람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생물학에 대한 멸시가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순수과학, 곤충, 공룡, 우주 이런 데 관심이 많은데 학교 공부를 하다 보니 그런 흥미들이 사라지게 되고. 그래서 학교 수업시간이라도 이런 자기계발이나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고. 국가 수준에서 순수과학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게 지원도 좀 많이 해주고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적어도 흥미의 씨앗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필요하다?

그렇습니다.

– 지금 스스로 보기에 이 활동들이 의미가 없었던 것 같나요?

절대 아니죠.

– 그러면 대학 갈 때는 도움이 되나요?

… 궁극적인 목표는 공룡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런 활동들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미래에는 언젠가 이것들이 그나마 어느 정도라도 빛을 볼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 아마추어 공룡학자처럼 파 보고 싶은 사람이라든가 미래의 어린 친구들이나 이미 고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일단, 처음에 언급했던 국내 고생물학 연구자들이나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 이런 공룡에 대한 열정을 가지신 다양한 분들이 꿈을 잃지 않고 공부가 조금 힘들더라도 언젠가 같이 공룡 연구를 해서 우리나라 고생물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Elisabeth Audrey, CC BY ND https://flic.kr/p/5d3b7b
Elisabeth Audrey, CC BY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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