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밀러의 걸작, ‘매드맥스’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이하 ‘퓨리오사’)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퓨리오사’의 저조한 흥행으로 이제 또 다른 ‘매드맥스’ 시리즈를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1945년생인 조지 밀러의 마지막 영화일지도 모르죠. 물론 더 많은 조지 밀러의 영화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지만요. 희망 없는 시대의 영웅 ‘퓨리오사’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담아 옥토 님이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굿바이, 퓨리오사.
2015년, [매드맥스] 클래식 3부작 이후 30년만의 속편 [분노의 도로]가 개봉했을 때 주인공 맥스 이상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캐릭터가 있었으니 총사령관 퓨리오사였다.
9년 동안의 궁금증
영화 자체가 빌드업 따윈 거두절미해 버리고 ‘5공주’ 데리고 탈출하는 급전개로 시작해 장대한 엔딩까지 논스톱으로 치닫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극장을 나와서도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영화한테 처맞았다는 표현이 지당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그로기 상태를 벗어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치밀어오르는 웅장한 궁금증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전 지구적인 신드롬이 발생한 것이었다. 특히 아무 설명 없이 급발진부터 선보인 총사령관 퓨리오사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왜 시타델에 오게 됐는지, 한쪽 팔은 왜 없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자기 팔이라도 잘라바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에 이르렀다. 결국, 조지 밀러 감독님이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프리퀄을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팔을 자르지 않게 할 따름이니라…
존경을 담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9년이 지난 2024년 5월 22일 반도의 한 극장, 퓨리오사가 살아낸 15년의 삶이 스크린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컴컴한 상영관 속의 한 오덕은 여전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옥토였다. 그의 끄덕임은 전작의 총사령관과 프리퀄로 드러난 성장기 퓨리오사의 여정을 겹쳐보며 비로소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만족감의 표현이었다.
이 영화는 오롯이 퓨리오사라는 캐릭터의 완성만을 보여준다. 딱 필요한 만큼 보여주고 ‘그 이후는 너희가 아는 바대로야’라고 하는 영화다. 그러기 위해 다뤄야 했던 시간은 15년이었고 5개의 챕터로 나눈 것은 합당한 선택이었다. 또한, 종교나 신화의 흔적을 엮어 해몽같은 썰을 풀지 않더라도 그 스스로 하나의 위대한 신화임을 선언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고, ‘매드맥스 사가’라는 제목이 주는 위용에 걸맞은 작품이었다. 이에 감독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이 영화의 미덕을 간략하게 담아보려고 한다.
※ 이후 스포일러 ※
1. 세계관
매드맥스의 세계는 여러 면에서 희망이 없는(end game) 세계다. 폭력과 납치가 생존의 공식인 이 세계에서는 약하거나 여자이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기대 따위가 없다. 피하지 않으면 차로 모녀를 밟고 지나가는 세계다. 그렇게 만들어진 원한과 복수가 뒤섞여 세상의 살과 피를 이루었고 할머니까지 샷건을 당기는 세계관이 완성되었다.
이곳에서는 적에게 한 번만 잡히면 그 길로 죽는다. 혼자서 무쌍을 찍었던 메리 자바사(퓨리오사 모친)도 잡히면 죽었고 잭처럼 비중 있는 인물도 잡히니 죽었다. 유일한 예외가 퓨리오사였지만 탈출하기 위해 팔 하나를 잘라야 했다. 잡히면 죽을 뿐이고 적에게 자비를 베풀면 반드시 뒤통수 맞는 그런 곳이다.
애써 센척하지 않아도 너무나 ‘빡쎔’이 휘몰아치는 세계에서 비극적인 사연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감독한테 말랑함 따위는 기대도 안 했지만 가장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말랑하지 않은 세계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참고로 시타델의 땅굴에 사는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퓨리오사조차 기겁했을 정도. 스핀오프로 [매드맥스: 땅거지 로드] 기대해 본다.
2. 녹색의 땅
폭력과 납치가 생활 양식인 것은 녹색의 땅도 같다. 선한 척하지도 않으며 주인공이고 뭐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잡힌 적은 반드시 죽인다.
전작에서 맥스가 피 주머니였던 것을 기억하는가? 마찬가지로 녹색의 땅에서 남자는 씨주머니다. 그곳은 여자들만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들의 존속에 딱 하나 필요한 것은 씨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과일에서도 씨만은 챙긴다. 남자는 여아 출산을 위한 도구일 뿐이고 다 쓴 남자는 추방한다. 여기나 저기나 사람은 그냥 도구인 것이다. 시타델에서 정상적인 여자는 아기 주머니였다가 정상인 아기를 낳지 못하자 모유 주머니로 강등되는 것처럼.
어쨌든 이 세계에서 드물게 녹색이 있는 그곳은 여자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하는 터전이며 모녀가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비밀을 지켜낸 곳이다.
3. 디멘투스
이번 작품도 역시 수많은 악당과 폭력 스턴트가 난무하는데, 전작을 포함한 시리즈의 전통적인 악당 정서(?)를 생각해 본다면 디멘투스의 캐릭터는 상당히 의외성이 있다. 일단 이놈은 말이 참 많으며 말로 이간질하고 속이는데 도가 튼 놈이다. 가끔 적이라고 해도 멋있다거나 나름의 위엄을 갖춘 자가 있는가 하면 디멘투스는 곰 인형에 집착하는 짜증 나고 상대하고 싶지도 않은 시궁창 같은 인성의 악당인데, 어머니를 죽인 죄로 인해 퓨리오사와는 운명적으로 뒤엉켜 버린다.
모두가 비극적으로 사는 세계 속에서도 가장 나쁜 놈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관종과 맹렬히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분투하는 주인공 사이의 큰 간극에서 오는 다이내믹은 독특하다. 이 원한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가 있는 수렁 밑바닥까지 기꺼이 들어가 그 세계를 완전히 부숴야만 할 것 같아서다.
둘의 본바탕은 마치 절대 섞일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 왔을 듯하지만, 모름지기 전쟁 영웅이란 유능한 살인자와 한 끗 차이일 뿐이라는 듯이 퓨리오사는 상상을 초월한 복수를 집행하고야 만다. 디멘투스의 매콤함이 청양고추였다면 어린 퓨리오사는 하바네로였다. 퓨리오사의 빨간 망토는 매운 고춧가루를 의미한다.
4. 복수
우리의 조지 밀러 감독님은 복수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옵션 중 가장 창의적이고 오래 걸리는 방식을 전수해 주셨다… 정말이지 인간 나무, 그건 상상도 못 했다.
5. 성장
어린 퓨리오사의 위기는 갑자기 찾아온다. 전투 트럭의 일원이 되어 겪은 첫 전투에서 전작의 맥스-퓨리오사가 처음으로 전투 중 협력했던 것과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는데, 이 과정에서 숨겨뒀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근위대장 잭에게 정체가 탄로 나고 급기야 벙어리 연기마저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
일련의 시퀀스 끝에서 단둘만이 남았을 때 잭을 죽이는 것이 (살려주면 뒤통수치는 세계에서의) 본능적인 이끌림이었지만 퓨리오사는 그러지 않는다. 잭도 이유를 말하지 않고 퓨리오사를 도와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은 그들이 느꼈을 만한 동질감을 액션만으로 이끌어낸다. 보고 나면 묘하게도 ‘그럴만한 생각이 있겠지’, ‘어차피 대답도 안 할 테니 더 묻지는 말아야겠다’ 싶은 기분이 든다. 관객까지도 자연스레 이 세계의 방식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리스펙트!
퓨리오사는 타고난 전사일 뿐만 아니라 매번 스스로를 극복하며 방심하지도, 주저하지도 않는다. 머리를 자르는 것으로 시작된 자기 극복의 여정은 무기 농장 씬에서 절정에 달한다. 탈출을 포기한 잭이 쏘아 올린 신호탄의 색은 좀처럼 보기 힘든 색깔인 녹색이었다. 이것의 의미는 두말할 것 없이 녹색의 땅이다. 퓨리오사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한 곳이고, 무려 엄마와 돌아가기로 약속한 곳이다.
하지만 퓨리오사는 자신의 과거와 처해 있는 여건에 단순히 지배당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 어떤 일을 겪었더라도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규정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그 순간 녹색의 땅보다 중요한 것은 잭이었다. 이것은 대사 없는 멜로이자 대각성의 신호탄이었다. 고향 지도를 새긴 자신의 왼팔을 자르고 바이크를 훔쳐 타고 도망치는 퓨리오사의 모습은 그가 어떤 언덕이든 오를 수 있는 자이며, 그의 매 순간이 장차 폐허 위에 홀로 우뚝 설 여신의 행보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또한, 그가 혼자 도망치지 않고 임모탄에게 감금되어 있던 신부들까지 해방시키겠다는 결심을 한 것을 우리는 전작을 통해 알고 있다. 살육의 업보를 쌓으며 총사령관의 자리에 오른 그는 신부들을 탈주시키는 것만이 구원이라 믿었고, 믿는 걸 행하는 결단이 있었기에 속편의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보라! 그분의 족적을!! 극장에서!!!
이상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9년간 궁금했던 사연 대부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반복해서 볼수록 더욱 훌륭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이니 극장에 걸려있는 동안만 가능한 경험을 최대한 누리기를 바란다. 요즘 사람들이 극장에 잘 가지 않아서 여기저기 망해가고 있는데 이럴 때 가줘야 한다. 극장의 존재 이유가 이 영화 안에 있다. 또한, 나중에 집에서 볼 수 있게 되면 ‘퓨리오사’와 ‘분노의 도로’를 이어서 보시라. 정말 대단한 감상이 될 것이다.
+추신.
-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가 임모탄을 죽이기 전에 “날 기억해?(Remember me?)”라고 물은 건 어떤 의미일까. 디멘투스에게 빼앗아온 여자애가 자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것인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 임모탄의 셋째아들 스크로투스는 전작에서 눅스와 더불어 가장 인상적인 워보이였던 슬릿을 연기한 배우였는데, 전작에 스크로투스가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 전작에서 맏형 역할이었던 배우 쿠엔틴 케니한이 사망하여 [분노의 도로]가 유작이 되고 말았다. RIP.
공감합니다
진짜 명작입니다
임모탄에게 ‘네가 씨받이로 쓸생각 이였던 여자아이를 아직도 기역하나?’ 라고 묻는 의미 에서 Remember me? 라는 말을 한거 같네요.
+게임판이 정사로 인정된다는 가정하에 스크로투스는 분노의 도로 시점에서 이미 맥스에게 사망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