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에 대한 비난이 이어진다.
그럴 만하다. 설탕의 과도한 사용, 맥락에 맞지 않는 설탕의 사용은 미식가의 얼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설탕에 대한 모든 비난이 정당한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단맛 논쟁에 불을 붙인 황교익 평론가와 다른 두 전문가의 말을 비교해보면서 어떤 주장이 더 합리적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황교익, 해럴드 맥기 그리고 시드니 민츠
황교익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음식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재료의 장단점에 맞춘 조리법이 얼마나 섬세한가에 따라 음식문화의 선진과 미개를 구별할 수 있다.”
감자를 예로 들었다. 분질 감자와 점질 감자의 성질이 달라서, 각각의 용도에 맞게 요리할 줄 알아야 선진 음식문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설탕이라는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 음식문화에 대한 선진과 미개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설탕은 오로지 단맛을 내기 위해 쓰이는 식재료가 아니다. 알고 보면, 설탕도 섬세한 식재료다.
‘요리의 과학자’ 해럴드 맥기의 말을 빌리면:
“평범한 설탕조차 비범한 음식이다.”
백설탕 하나만 해도 용도별로 입자의 크기가 달라서 종류가 10가지가 넘는다. 설탕을 음식에 사용하는 이유도 단순히 단맛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자신의 저서 설탕과 권력에 다음과 같이 썼다.
설탕은 빵이 상하는 것을 방지해 주며, 소금의 화학적 내용물을 안정시켜 주고, 케첩의 신맛을 경감시켜 주며, 이스트의 먹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용법들에 있어서 설탕의 단맛은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식품 제조업자들은 칼로리가 ‘없으면서’ 자당(설탕)의 모든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 화학물질이 있다면 그런 것을 좋아할 것이며, 몇몇 경우들에서는 단맛이 없더라도 그런 것을 좋아할 것이다. 17세기 이후로 설탕의 용도는 이렇게까지 발전해 온 것이다.
설탕은 단순하지 않다
설탕의 용도에 대한 해럴드 맥기의 설명도 이와 비슷하다.
주방에서 설탕은 다용도 재료다. 단맛은 기본적인 맛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요리사들은 풍미를 완성하고 맛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갖가지 음식에 설탕을 첨가한다. 당은 단백질 응고를 차단하는 유용한 역할을 수행하며, 그래서 빵과 과자류의 글루텐 그물조직과 커스터드와 크림의 알부민 그물 조직을 부드럽게 만든다. 당 분자들이 분리될 만큼 충분한 열을 가하면 매력적인 색상으로 변하면서 더 복합적인 풍미를 낸다. 그저 단맛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신맛, 쓴맛, 충만하고 짙은 향이 더해진다.
설탕은 그저 단맛을 위한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설탕은 섬세하고 복잡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여러 용도에 사용된다. 요리에서 ‘설탕=단맛’이라는 단순한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숙련된 요리사는 무조건 설탕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탕을 섬세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황교익 평론가의 설탕에 대한 비판을 계속 살펴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설탕은 그 모든 음식을 동일하게 맛있게 한다.
설탕의 단맛이 입안에 들면 뇌가 즉각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때에 단맛에 가려진 여러 맛은 그게 어떤 것인지 인간의 뇌는 분별하기를 포기한다.
단맛으로 맛있다 뇌가 인식하였으니 뇌는 그 다음의 미션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설탕이 그 모든 음식을 동일하게 맛있게 만들고, 다른 맛을 가려버린다는 것은 사실인가? 해럴드 맥기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설탕의 단맛에는 순수하고 단순한 단맛 이상의 느낌이 있다. 단맛은 다른 재료들에서 나오는 신맛과 쓴맛의 균형을 잡거나 가리는 데 도움을 준다. 또 풍미 화학자들은 단맛이 뇌에 그 음식이 좋은 에너지원이며 따라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우리 인체의 음식 향에 대한 지각 능력을 대폭 강화해 주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단맛의 복잡함
단맛이 다른 맛을 가리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쓴 약을 먹을 때 설탕을 넣어서 삼키는 이치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단맛은 음식의 냄새를 더 민감하게 해주며, 다른 맛과 균형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된다. 황교익 평론가는 음식에서 설탕을 빼면 음식의 여러 가지 맛에 대해 “섬세하게 구별하고 구획 짓는 작업”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지만, 풍미 화학자들에 의하면 오히려 단맛이 그렇게 섬세한 지각을 돕는 역할을 한다.
단맛을 무시하고는 풍미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설탕의 과도한 사용과 과잉 당분의 섭취로 인한 문제들에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논리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논의를 무의미한 논쟁으로 만들 뿐이다. 자고로 섬세한 식재료는 섬세하게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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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시드니 민츠, [설탕과 권력] 김문호 역 (지호, 1998)
해럴드 맥기, [음식과 요리] 이희건 역 (백년후, 2011)
레시피도 이젠 FDA + 식약청과 논의해야?ㅋ
설탕이나 식용류/참기름 등 많이 넣으면 건강에 안좋은건 맞는거 같긴 하던데…
이 분이 놓치고 있는 것은 황교익이 이 기초적인 사실을 모를 것이라는 생각. 식품연구원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양반인데 말야. 당연히 설탕의 역할은 있는 것이고 그렇게 따지면 소금도 마찬가지이고 그렇지 않은 성분이 어딨겠는다. 황교익이 말한 음식은 이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음식다운 음식이 아닌 논지를 벗어난 것.
집 밖에 나가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면 달지 않고, 짜지 않고, 맵지 않은 음식을 찾기 어렵다. 모든 음식이 갈수록 자극적이 되어가고, 많은 이들이 설탕 중독에 빠져가는 이 시대에 굳이 설탕의 역활을 대변할 필요는 없는 듯.
설당의 역할과 당위성에 대한 이야길 하시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요 설탕 중요하지요. 소금도 물도 밀가루도 중요합니다. 안중요하고 이유없는 것들은 없겠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건 균형입니다.
설탕 사용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설탕 과잉에 대한 비판은 황교익님이던 누구던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탕중독에 대한 이야기까지 할 필욘 없겠지만 음식 이면의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쓰시려면 그 반증과 목적을 명확히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탕 지방 단백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영양소입니다. 과거에는 이런것이 고급자원이였죠. 문명의 발전 방향이 달고 기름진 음식을 얻기 위한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터키같이 강대국이 였던 나라의 음식문화는 달달하고 기름진게 많은걸 보면 알수 있죠.
싱거운 음식도 좋지만 달고 기름진 음식은 당연히 맛있고 건강에도 필요합니다.
맛있는 음식은 몸에 좋습니다.
그러게요. 황교익선생 주장의 맥락도 확인 안해보고 허수아비 때리기 하는 사람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