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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 사회의 ‘레 미제라블’ – [사당동 더하기 25]

이 글은 ‘까칠한 마냐’에 수록된 서평을 글쓴이와의 협의 하에 슬로우뉴스 발행용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편집자)

사당동 더하기 25

사당동 더하기 25
지은이: 조은
출판사: 또하나의문화
출간일: 2012-05-15

60대 부부가 10대 손녀를 키우고, 아들은 지방에서 일하고 며느리는 집 나갔고…… 60대 아버지와 30대 아들 두 명 모두 백수에, 철거 촌에서 쫓겨나고…… 70대 노모, 무직인 둘째 아들, 지체장애인 막내아들, 그리고 첫째 아들이 두고 간 손녀가 함께 살고…… 어떤 달동네, 어떤 영구 임대 아파트를 조사해도 상관이 없을 만큼 그 구성은 비슷하다는 것이 함정이다.

한국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다. ‘비참한 사람들’. 어느 동네에 있든, 크게 다르지 않은 닮은 꼴 인생들. 흔히 ‘불확실한 미래’라고 하지만, 이들의 미래는 그리 불확실하지도 않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 이들의 삶을 25년 동안 추적한 사회학자가 책으로 담아낸 우려다.

저자는 1986년 유니세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철거를 앞둔 한 불량 주거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사당동 거주자들을 상대로 현장연구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족을 중심으로 각별히 추적하고 관찰하게 됐다. 매주 찾아가기도 하고, 드문드문 가기도 하고,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소장파 젊은 교수였던 저자는 이제 정년을 마쳤다. 그가 돌아보는 25년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당동 달동네에서
여덟 살, 열한 살, 열네 살이었던 금선 할머니의 손주들은
이제 서른셋, 서른여섯, 서른아홉 살이다.
이 가족을 따라다니면서
한편으로 이야기꾼 사회학자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밑으로부터 사회학 하기에 빠져들었다.
이제 나는
한때의 도시빈민이
25년이 지난 뒤
빈곤의 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질문에 확답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사당동 더하기 22] (2009) 한 장면

저자가 책을 쓰기에 앞서 만든 [사당동 더하기 22] (2009),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책에 이 영화 DVD도 들어 있다.

미리 밝히면 별 다섯 개를 주는 책이다. 25년의 기록에 학자로서의 충실함이 녹아 있는 것은 기본이고, 견문이 짧은 탓에 이런 류의 저술을 본 기억도 없다. 무엇보다 연구자가 분노와 절망에 빠지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트위터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교양수업 중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는 게 있었다. 애들 대부분이 노동자의 삶을 가여워하는 어투로 글을 썼나 보다. 기가 차신 교수님이 “이것들아 니들이 사회에 나가면 그 노동자야. “하고 말씀하신 게 요즘 부쩍 생각난다”라고. 저자는 섣불리 그들을 가여워하며 스스로 우월함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다양한 유혹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25년 작업은 연구자 윤리 문제에서도 전범이 된다.

연구 책임자로서 현장 조교들에게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객관성과 중립성을 위해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부탁한 것도 고육지책의 하나였다. (……) 당시 조교들은 철거 재개발 현장에서 온갖 폭력과 부조리함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무력감에 자주 혼란스러워했다고 한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이 주는 고민 외에 연구자의 윤리, 특히 질적 연구 방법론에 나오는 ‘윤리 규정’을 흔들 만한 실물적 ‘유혹’도 있었다. 달마다 오르는 철거 아파트 딱지는 엄청난 유혹이었다. 10평 무허가 주택 가격은 1987년 2월 2000만 원에서 1989년 말에는 1억2000만 원으로 6배가 올랐다. (……) 빈곤에 대한 연구비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에 구색 맞춰 프로젝트 제안서를 쓰는 것보다 차라리 철거 재개발 딱지 몇 장만 사면 독립적으로 빈곤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소도 차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딱지값’은 치솟고 있었다. 한편으로 금선 할머니 가족이 별일 없이 무탈하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뭔가 사건이 안 생기면 이 가족에 대한 관심이 느슨해지고 사건이 생겼다 하면 달려가면서 ‘참 흥미로운 사례야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 문화기술지란 자기의 연구 주제(예를 들면 가난)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주제의 사람들(즉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뭔가 배워 가는 것’이라는 기본을 때로 잊어버리거나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74~76쪽)

큰 소명을 맡게 된 분들이 직위를 이용해 주식으로 한 몫 챙긴다거나, 연구비를 유용했다거나, 정보를 활용해 투기한다거나 하는 스토리는 며칠 전에도 한 건 봤고, 솔직히 너무 흔해서 이런 저자의 고민이 오히려 낯설다. 저자는 현장 연구 20년이 지난 뒤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오래된 녹음테이프를 푸는 과정에서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사실도 마주한다. 겸허하고 자기 비판에도 냉정하다. 1987년 무렵 사당동 강제 철거 당시 백골단이 들이닥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난 다음 날의 녹취음. 주민들의 증언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완전히 여긴 전쟁판이었어. 여기는 광주사태여 광주사태. 70명이 병원에 가 입원하고 – 막 대가리 부러졌지 갈비 부러졌지 팔 부러졌지 다리 부러졌지 그렇게 깡패들이 때려 갖고 다 병원에 가서 – 가야병원에 여기 구호내과에 사당의원에 여기 사당동에. 그때 여기가 완전 피바다였어, 피바다. 광주사태여. 말도 못했어요. 사람 보기만 하면 막 찔러 죽여 버리고…”  거기에 대고 “저는 무서워서 못 왔어요. 차마 못 오겠더라구요” 하는, 거의 기어들어 가는 내 목소리를 녹음테이프 끝자락에서 잡아내게 되었다. 나는 사당동 철거 재개발 지역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현장에 있기는 했지만 정말 위험하고 필요한 순간에는 그 현장에 부재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었다. (63~64쪽)

굳이 용산참사를 떠올릴 필요 없다. 철거와 재개발, 혹은 그 주변 사연은 그저 계속 반복된다. 건조하게 기술하고 있지만, 저자가 25년간 얻은 깨달음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빵 한 조각 훔쳤다가 감옥에 간 장발장에게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 한국의 ‘레 미제라블’ 역시 과거와 현실, 미래가 촘촘하게 그들을 이끈다. 그냥 사는 게 그렇다.

불량소년? 가족붕괴? “다 그래요”

덕주 씨를 통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우리가 흔히 ‘불량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특별히 불량하지도 악덕하지도 않은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거의 즉흥적으로 돈이 없으면 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덕주 씨가 처음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은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걸려서였고 그 뒤로도 몇 차례 수감당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덕주 씨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실제로 덕주 씨가 중학교를 자퇴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본드도 하고 카드놀이도 하고 조직에 들어가기도 한 경력이 있는데 덕주 씨 자신은 그런 모든 것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의 일상으로 이해했다. ‘불량소년’이라는 범주가 아니라 “어렸을 때는 다 그래요”라는 말로 자기 동네 아이들의 일탈을 설명했다. (228쪽)

달동네, 이제는 임대 아파트 촌에 온전한 가정은 드물다. 남자는 밑바닥 일로 돈을 벌지만 녹록지 않다. 폭력은 약한 곳으로 투사되는데, 대개 상대는 여자다. 여자는 맞고 살다가 가출하는 사례가 흔하다. 아이들은 방치된다. 사당동 이들은 한두 평 방에 가족이 똑바로 눕지도 못한 채 옆으로 누워 칼잠을 청하며 살았고, 이제는 방 한 칸 임대아파트다. 엄마에 이어 아이들도 일찌감치 가출에 눈을 뜬다. 덕주 씨가 연구자의 학교로 찾아왔다가 교수실이라는 그 큰 공간을 혼자 사용할 수 있다는데 경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에게 실제 ‘사람 사는 집’은 드라마일 뿐 현실에선 구경조차 힘들다. 사는 공간만 다른게 아니다. 언어도 다르다. 언어의 계급성은 저자가 실제 연구 과정에서 부딪친 사례들이 절절하다. 예컨대 “장점이 뭐냐”고 묻는데 “장점이 뭐예요?”라고 반문하면 “네가 잘 하는 것, 좋은 점 같은 거”라고 설명해줘야 한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더니 ‘성실한 게 뭐예요?”라고 묻는다거나, “저녁 먹을 때 주로 화제가 뭐예요?”라고 할 때 “화제가 뭔데요?”라는 식.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영화도 그렇지만, 왜 가난한 이들은 종종 아프기까지 하냐고? 이들의 업 자체가 노동 강도가 세고 생활 환경은 열악하고 먹는 것은 부실하다. “믿을 데라고는 ‘맨몸’ 밖에 없는 이들이 병에 걸리면 빚더미에 빠지게 되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냥 그런 거다.

25년에 몇 년을 더한다고 달라질 것인가

현장의 사연들, 사람들의 이야기로 담담하게 기록하는 저자는 25년 간 지켜본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들은 형제자매가 많은 가난한 농촌에 태어나서 서울에 올라와 열심히 일했고 가족에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임금이 너무 낮았거나 경기가 불안정해서 가정을 지키거나 가족을 건사할 수가 없었다. 철거 재개발, IMF, 금융 위기 등 구조적 충격이 왔을 때 이를 완화할 ‘완충 지대’도 없었다. 이들은 철거 재개발 정책이라는 자본주의적 공간의 재편에 바로 영향을 받았고 88 올림픽 때는 일자리가 줄어 직격탄을 맞았으며 IMF 때는 경기가 둔화되면서 바로 실직으로 이어졌고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는 카드깡으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빌려 주고 대포차나 대포통장을 만드는 일에 가담하는 범법자가 되어 갔다. (……) 빈곤층의 남성들은 배우자로 결혼 이주 여성을 맞고 ‘다문화’라는 또 다른 빈곤 문화 범주를 추가하고 있다. 사당동 때 가난한 사람들의 꿈이었던 가게 주인은 이제 꿈을 꿀 수도 없게 되었다. 웬만한 자본금이 없이는 어떤 가게도 주인이 되기 힘들어졌다. 쌀가게, 구멍가게, 연탄가게, 미장원 주인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된다고 해도 가난의 출구가 아니다. (……) 이러한 구조적 충격 속에서 그들이 살아 내는 방식, 곧 삶의 양식이 빈곤 문화라고 이름 붙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빈곤 문화의 핵심에 그들의 성과 사랑과 결혼의 방식이 있다. (……)‘성적 문란’이나 가출, 이혼, 동거와 출산 등이 ‘가족의 위기’로 읽히고 빈곤을 재생산하는 빈곤 문화의 핵심 요소로 주목된다. 가진 것이라고 맨몸뿐인 이들에게 더는 기댈 곳이 없어졌을 때 그리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을 때 잦은 가정 폭력이나 알코올 중독은 또 다른 빈곤 문화라 불리는 삶의 양식이다. (312~314쪽)

개천에서 용 나는 것까지 감히 바랄 처지도 아니고, 그저 비참하다. 그런데 그냥 일상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치다. 한 가족을 25년 간 지켜본 저자는 책보다 앞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을 남겼다. 한 번쯤 더 이 가족에 대한 다큐먼터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는 “25년에 몇 년이 더해져도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될지 모른다. 그 점이 두렵다. 25년이 더 더해져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마무리한다.

조금 더 배운 소위 ‘엘리트’로서, 미디어, 사회 변화 등에 관심 많은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지적 허영’을 늘린다. 그러나 어떻게 ‘더불어 함께 하는 삶, 사회’라는 화두를 부끄럽지 않게 가져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책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숫자로 집계되는 도시빈민 한 줄짜리가 아니라, 저마다 사연 있는 사람들이다. 못 배우고 덜 가질수록 어떠한 성향이더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왜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한 정책에 관심이 없느냐고 따질 일도 아니다.

사회는 눈부시게 빠른 성장만큼이나 그림자가 깊고 진하다. 세계 자살률 1위에 놀랄 게 아니라 벼랑 끝에 선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작은 가게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잘 살아보세’는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최소한 고용과 복지라는 정책 과제가 잘 풀려나가기만 그저 바라면 되는 걸까. 저자가 확답할 수 없다는 이유가 그대로 전해온다.

사족.
저자인 조은은 우리 아버지가 은근 멋지다고 인정하는 ‘친구 부인’이다. 살짝 반가운 마음에 서점에서 책을 들춰보는데, 몇 페이지 안 보고 알았다. 이 책, 장난이 아니다. 320여 쪽을 한달음에 읽었다. 그저, 존경하고 감사한다. 이런 어른도 계셨고, 제자들을 키워냈을 터. 답을 알 수 없지만 계속 풀어야 하는 질문들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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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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