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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와 영어중심·미국중심주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한때 지하철에서 한 학생에게 “친구가 되자. 영어회화 실습을 해준다면 나도 당신을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경희대 강사였던 박 교수는 그에게 한국어로 “내 영어 솜씨로 누굴 도와줄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고, 그 대답을 들은 학생은 실망스러워하면서 떠났다고 말했다. (한겨레 1999년 5월 25일자 9면)

알다시피 박 교수는 러시아 출신의 한국인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일단 서양인을 보면 미국인일 것이라는 고정 관념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정작 해외에 나가서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하는 질문을 들으면 기분 나빠 하면서 말이다.

이런 식의 대접을 한국을 방문한 소수의 비영어권 출신들 무명 인사들만 겪는 것은 아니다.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작가나 한 세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철학자도 한국에서 겪는 운명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권 국가 출신이 아닌 한,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다.

외래어 표기법 이야기가 아니다. 로망스어(라틴어에서 갈라진 남유럽 언어) 이야기를 할 때 주로 나오는 경음(된소리)화 이야기도 아니다. 단순히 모든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는 문제가 이 나라에는 있다.

알베르 카뮈, 앙리-카르티에 브레송 Albert Camus, Paris 1947, ©Henri Cartier-Bresson

알베르 카뮈, 앙리-카르티에 브레송
Albert Camus, Paris 1947, ©Henri Cartier-Bresson

올해는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를 앞두고 카뮈 전집을 냈던 책세상은 일러스트 특별판을 출간했다. 카뮈 100주년이라면 유명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이벤트라도 벌여 판매에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터이다.

사실 카뮈는 몇 년 전에도 국내 언론에 등장할 기회를 잡은 적이 있다. 2008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이 서울대생과 하버드대생이 즐겨 읽는 책 100선을 뽑아 비교했을 때 하버드대생 쪽 목록 16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밤 12시가 넘으면 게임도 못 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이 목록을 궁금해할 것 같아서 친절하게도 링크를 단다. 여기서 확인하기 바란다.

목록에서 카뮈를 찾지 못했다고 자신을 스스로 탓할 필요는 없다. 알베르 카뮈는 그 목록에 있으면서도 없기 때문이다. 카뮈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정체불명의 작가 앨버트 카무스이며, 그 작가의 작품은 플레이그(Plague)다 (당연히 ‘프레이그’는 카뮈의 [페스트]를 가리킨다).

열혈 저그 유저 앨버트 카무스? (사진은 스타크래프트 저그 유닛 디파일러의 ‘플레이그’ 기술)
©Blizzard

카뮈는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면서 1950년대 국내 전후 문학에 끼친 영향도 큰 인물이다. [이방인]이나 [페스트]와 같은 작품명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인물이 앨버트 카무스로 취급받는 나라, 그곳이 한국이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노벨상 수상자가 또 있다.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으로 망명해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기는 하지만, 독일 태생이다. 그러므로 그는 앨버트 아인스타인이 아니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라고 불러야 맞다. 앨버트 슈바이처도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옳다.

다른 노벨상 수상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는 군터 그라스로,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진-폴 사르트르로,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이기도 했던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헨리 벅슨으로 불리기 일쑤다.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월터 벤자민,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에릭 프롬이 된다.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Vincent Cassel)은 빈센트 캐셀, 에스파냐(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는 안토니오 고디다. 나라 이름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불어권 국가인 마다가스카르(Madagascar)는 마다가스카가 된다. 믿기지 않는다고? 구글 검색창이나 포털 뉴스 검색창에 저 이름들을 검색해보라.

최근에 영화가 인기를 끈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의 원작 소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이름을 빅터 휴고(Victor Hugo)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읽기 시작하면 어린 시절 이 소설의 축약판 제목으로 흔히 쓰이기도 했던 주인공 장 발장(Jean Valjean)도 진 밸진이 돼야 하지만 이건 익숙한 탓에 그렇게 읽는 사람은 없다. (영어권에서는 존 밸진이라고 읽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자베르(Jabert) 형사와 코제트(Cosette)는 재버트와 코셋이 되는 운명을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가 ‘카잔차키스’가 아니라 ‘카잔차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에게 모든 나라의 고유명사를 다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주변의 해당 언어 전공자들을 수배해 봐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에스파냐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약간 있을 따름이다. 심지어 가장 익숙한 영어 이름마저도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언어학자이기도 한 고종석은 마시뱅크스(Majoribanks)나 팬쇼(Featherstonehaugh)처럼 흔한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읽는 괴상한 이름들을 소개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레이건(Reagan) 전 미국 대통령마저 배우 시절 국내에서는 리건이라고 불렸다. 대통령이 돼서야 비로소 레이건으로 제대로 불리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한 축구 선수는 호나우딩요와 호나우디뉴, 호나우지뉴 등으로 각기 달리 불리고 있지만 이 중에 어느 발음이 옳고 어느 발음이 맞지 않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Albert Camus는 인명사전이나 불어사전이 아니라 웬만한 영어사전만 찾아봐도 표제어로 올라 있다. 국내 포털에서 서비스하는 영어사전에도 당연히 있다. 거기 없다면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 용례찾기를 이용하면 된다. 마시뱅크스나 팬쇼는 없지만 상당수 고유명사 용례를 제공한다. 국립국어원의 표기로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Camus를 카뮈로 적을지 카뮤로 적을지 까뮈로 적을지 까뮤로 적을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인류에 뛰어난 작품을 남겨 준 한 프랑스 작가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예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유럽에서도 서로의 고유명사를 제대로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가령 프랑스 사람들은 조지 부시(George Bush) 전 미국 대통령을 조르주 부쉬라고 읽고, 철학자 헤겔(Hegel)은 에겔,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는 쉐 게바라라고 읽는다. 그러나 이 경우는 같은 로마자 알파벳을 쓰는 경우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말하는 ‘빅터 휴고’나 ‘앨버트 카무스’와는 다르다. 가령 마오쩌둥(毛澤東)을 우리가 모택동이라고 쓴다거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풍신수길이라고도 왕왕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을 호금도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습근평이라고 읽는다. 북한까지 갈 것도 없이 휴전선 남쪽에서도 당장 베이징(北京)과 도쿄(東京)를 때로 북경이나 동경으로 읽지 않는가. 그러나 상황을 바꿔서 만약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을 누군가 중국 식으로 리밍보(lǐmíngbó)라고 쓰고 읽는다면, 우리는 그의 발음이 옳다고 할지는 의문이다.

다시 박노자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서울에 온 한 러시아인에게 영어회화 실습을 해 달라는 딱한 학생은 우리가 얼마나 영어에 침윤됐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가 그 답을 알고 있다. 이 소설은 일제 시대와 한반도의 이북과 이남을 두루 거친 이인국 박사의 일생을 조명한다. 엄청난 권력의 변화에도 이인국이 쉽사리 적응하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민한 상황 판단 능력의 힘일 터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언어의 힘이 있었다. 뛰어난 언어 습득 능력이 그의 자산이라면 자산이었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어를, 소련이 진주한 평양에서는 러시아어를, 그리고 1.4 후퇴 이후 미국의 영향권 내에 있던 서울에서는 영어를 했다. 평양 시절 아들에게 노어(러시아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는 장면도 나온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우리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영어가 중요한 권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권력의 중요성에 비하면 노벨상 정도를 수상한 한 작가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편집자주: 원어 고유명사 표기 방식에 관해 본 기사에 언급된 내용 너머로도 발생하는 여러 세밀한 논점 관련, 댓글 토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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