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냉장고 안이 텅 비어버리는 날이 있다.
냉장고가 텅 비어버리는 어떤 날
대개 일을 하다가 스케줄이 엉망이 된 며칠을 보내고 난 후의 냉장고에는 오래도록 돌보지 않아 얼어버린 오이나 두부, 맛이 가기 직전의 반인 분 남은 사흘 된 찌개, 만들자마자 상에 올려야 맛있을 볶음류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것들을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고 나면 원치 않았으나 고요한 냉장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오래된 유적처럼 말이다.
혼자 살기 시작하고부터 고정적으로 사흘에 한 번은 장을 봐 냉장고를 채워둔다. 다음 장을 볼 때는 남아있는 채소나 찬거리를 생각하며 그에 어울릴만한 음식재료들을 구입한다. 처음 두세 달을 그렇게 습관 들여가며 규칙적이고 건강하게 식탁을 만들어 왔다. 간혹 시간에 쫓겨 한껏 해놓았던 반찬을 쓰레기통으로 넘겨야 할 때의 안타까움이란……
습관이란 무서워서 스케줄이 없는 오후엔 신이 나서 장을 보고 냉장고를 채워 넣는다. 하지만 며칠 내로 모두 소비하지 않으면 버려야 하는 일이 반복되곤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 싱싱한 채소를 한 단씩 구매한다든가, 꼼꼼히 그날 식단을 체크하는 일이란 꽤나 어려운 일일 테다.
독신생활의 벗, 그 이름은 ‘냉동실’
그래서 독신생활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냉동실을 이용하는 날이 많아진다.
잡곡밥 역시 장장 여덟 시간을 쌀을 불려 정성스레 밥을 지어도 이틀만 지나면 밥통에서 쩐 내를 풍기기 마련. 그 날 지은 밥을 두 끼 연달아 먹고 반 그릇 정도가 남으면 그대로 비닐봉투에 담아 냉동실로 직행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취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에게 허기진 날 냉동실에 남아있는 밥 한 덩이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이다.
냉장고나 냉동실에 준비해놓으면 늘 맘이 편할 몇 가지 음식재료들이 있다. 다용도실에는 늘 양파를 준비하자. 훌륭한 밑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냉장고 안의 두부와 두유, 몇 가지 장아찌류와 냉동실에 얼려둔 밥이나 바나나, 가끔 마트에 싸게 나온 돼지고기 앞다릿살 같은 것은 언제나 갖추도록 신경 쓰자. 이 정도만 되어도 다른 걱정 없이 갑작스러운 식사에 대비할 수 있다.
모든 음식과 궁합이 좋은 ‘두부’
두부는 반 모 정도만 물에 삶아 내놓으면 냉장고에 남아있는 어떤 반찬이라도 잘 어울린다. 먹고 남은 두부는 물에 잠기도록 담아 보관한다. 냉동실에 얼려둔 밥은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고 전자레인지가 없는 경우엔 속이 불편한 날 아침 물에 넣어 그냥 푹 끓여준다. 바나나가 과하게 익어 마트에 싸게 나온 날은 한 개 반 정도씩 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얼려두고 우유나 두유에 그냥 갈아 마시면 된다. 돼지고기 앞다릿살은 시어 버린 김치와 함께 푹 끓여도 되고, 집에 남아있는 채소들을 모아 고추장을 넣고 끓여내면 훌륭한 한 끼 식사를 완성할 수 있다.
평일 밤 마트를 공략하면 시들해진 채소나 한 끼 분량으로 묶어놓은 생선이나 고기류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너무 꽉꽉 채운 냉동실 역시 언젠가는 정리하기도 귀찮은 날이 올 테니 욕심내지 않고 며칠 안에 소비할 수 있는 정도를 나의 스케줄에 맞춰 준비해 놓자.
두유는 훌륭한 소스다!
복잡한 식사는 준비하고 싶지 않았던 한가로운 어떤 평일의 아침, 주먹 반 만하게 뭉쳐진 잡곡밥을 냉동실 한쪽에서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냉장고에 음료는 생수와 도라지배즙, 두유가 전부이다. 목을 많이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늘 챙겨 먹는 도라지 배즙 말고는 심심할 때 마셔줄 두유 정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두유는 훌륭한 소스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두유와 집에 남아있는 채소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덮밥을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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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버섯덮밥 요리법
1. 집에 있는 버섯 어떤 것이든 좋다. 옆으로 썰어 양파와 함께 올리브유에 볶는다.
2. 양파의 숨이 죽고 버섯 향이 올라올 때쯤 얼려두었던 밥을 넣고 밥이 살짝 담길 만큼 두유를 붓고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여낸다 끓이면서 숟가락으로 얼은 밥알은 살짝 씩 풀어줘야 한다. 두유가 끓어오를 때쯤 소금으로 간을하고 너무 간이 세지 않게 소금을 넣은 다음, 밥이 질척한 느낌이 들 때까지 졸여준다.
3.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살짝 저어가며 다른 재료들의 모습도 살아있도록 끓이다가 마지막에 들깻가루를 한 숟가락 넣고 두유와 밥이 되직하게 섞이도록 잘 저어주면 완성!
심심하지만 담백하고 느끼한 듯하지만, 다른 반찬들과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