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2014년 9월25일 오전 9시 52분경. 지하철 4호선 이수역(총신대입구역) 당고개 방면 선로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희생자는 80대 여성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당고개행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 틈새에 끼어 8m가량 끌려가다 사망했습니다. 해당 열차는 오전 10시 25분경 사고 조치를 완료하고 운행을 재개했습니다.
대다수 언론에선 서울메트로 측 말을 그대로 옮기며 해당 여성이 “뒤늦게 열차에 탑승하려다 열차 문이 닫히는 바람에 못 탔다”고 단정해 보도했습니다. 아직 경찰 조사는 진행 중이었고, 사고가 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이수역 사고와 관련해 495개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구글 기사 검색 기준), 대부분 어떤 기자가 썼는지도 모를 ‘온라인뉴스팀’의 기사였습니다. 해당 기사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한편, 이수역 사고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 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기계적인 문구로 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한 인간의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은, 대다수 언론이 비슷비슷한 ‘붕어빵’ 기사를 찍어내듯, 성급하고 기계적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존엄은 자리하지 않습니다.
시신을 수습하는 와중에도 “열차를 후진해 내려달라”고 했던 한 승객이 있었다고 많은 언론에서 지적했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의 ‘목격담’을 옮기며 우리사회의 성급함과 경박함을 질타했습니다. 하지만 그 목격담을 담은 기사들이 한 인간의 죽음을 얼마나 경건하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사고 피해자인 80대 여성은 ‘로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성공회 신자였습니다. 당일 오전 성당에서 있을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던 중이었죠. 주낙현 신부님은 동료 성직자와 함께 장례식을 주관했습니다. 로사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깊은 슬픔과 분노를 글에 담아 보내주셨습니다. (편집자) [/box]
지하철 이수역 사고의 희생자는 저희 성공회 주교좌성당의 80대 여성 교우이신 ‘로사’님입니다. 목요일 아침에 성당에서 있을 성서 공부 모임에 참여하려다가 변을 당하셨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슬퍼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삭일 수 없어서 고인과 가족께 결례라 생각하면서도 한마디 적습니다.
희생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SNS 등에서 고인을 향한 애도의 염을 표하는 분들이 있기도 하고, 사이사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댓글도 보입니다. 차마 옮길 수 없는 무례하고 잔인한 말들입니다. 이 잔인성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고 후 빨리 기관차를 출발하라고 말했다는 사람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익명의 말들이니 그냥 덮고 싶습니다.
그러나 CBS 김현정 뉴스쇼 인터뷰에서 서울메트로 홍보실 차장이 뱉은 발언과 이어가는 대화는 우리 사회의 병폐, 특히 책임을 진 사람들의 책임 전가와 안전사고의 희생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홍보실 차장과 앵커의 대화는 이렇습니다.
김현정: 그러니까 어제 오전 9시 50분쯤 총신대입구역 승강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겁니까?
김광흠(서울메트로 홍보실 차장): 그때 총신대입구역에서 열차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80대 할머니 한 분이 뒤늦게 열차에 타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전동차 문은 닫히고, 전동차 문이 닫히니까 할머니가 급한 마음에 전동차 문에 지팡이를 끼워 놓으신 거죠. 그리고 그렇게 가까이 있으니까 스크린도어, 요즘 안전문이라 얘기하는데요. 스크린도어는 안 닫힌 상태였고, 지팡이는 전동차 문 사이에 껴 있었는데 그것이 얇다 보니까 전동차 문이 닫힌 걸로 인식이 됐었고요. 그래서 차장이 열차를 출발시키는 바람에 발생한 사망사고입니다.
김현정: 할머니가 지팡이를 놓으셨으면 되는데 잡고 계셨군요.
김광흠: 예. 지팡이를 잡고 계시는 바람에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책임 기관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언론 플레이가 훤히 드러납니다. 그 차장의 발언대로라면, “지하철을 타려고 했으니까 사고가 난 겁니다. 지하철을 타지 않았으면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세월호에 탔으니까 죽은 것이다, 수학여행 제주도로 안 갔으면 사고 났을 리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팡이’는 사고 원인이 아닙니다
사고의 정확한 구성이 어떻든, 이런 이야기를 멀리서 듣는 안타까운 마음에서는 ‘그 지팡이를 놓으셨다면…’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고 원인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책임 기관을 대표해서 나온 사람이 할 말은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는 언론 플레이일 뿐입니다.
밝히거니와, 희생당하신 분은 80세 초의 여성이시고 신체장애가 있으셔서 거동이 매우 느리신 분입니다. 지팡이는 그분의 수족과 같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거동이 느릴 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으시고 독립하여 홀로 사셨던 분입니다. 그분의 판단력에 별 의심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 연세에 비해 흔치 않은 고등교육을 받으셨으며 매사에 삶과 행동과 판단이 사려 깊고 정확하신 분입니다.
사고의 원인은 명백합니다. 지하철 안전 운영 규정에 어긋나는 지하철 운행이 있었기에 사고가 났습니다. 이 책임을 경감하려는 발언은 그저 한 인간의 생명에 무례할 뿐만 아니라 잔인합니다.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듯하면서 슬그머니 개인도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식으로 물타기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사회는 무례하고 잔인한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없고, 문제점이 개선될 여지가 적어집니다. 비슷한 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책임 전가는 생명 자체에 잔인한 생각을 품게 합니다
분명한 책임, 특히 공적이고 우선적인 책임을 회피하며, 희생당하거나 피해를 본 개인에게 어떤 작은 원인이라도 전가하려는 행위는 곧바로 한 인간, 아니 생명에 대한 잔인한 사고를 품게 합니다. 어떤 안전 사고 등에 관하여 ‘그 사람도 잘못했네.’ ‘참 운이 없네’ 하는 등의 말을 입은 물론이려니와 생각에도 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말을 담는 순간, 우리는 공적 기관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잔인성에 무의식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 개인도 그 잔인성의 희생자가 될 일이 뻔한 일인데도 말입니다.
이 지상에 한 생명이 왔다가 떠나는 일은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고귀하고 장엄한 일입니다. 그 장엄한 생명의 생멸을 손쉽게 바라보면, 자기의 손익계산과 편의대로 바라보면, 우리 삶이 비천해집니다. 비천하고 잔인한 나락에 이 사회와 우리 생각, 우리 자신을 내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간곡한 호소입니다.
생명과 죽음에서 존엄을 지우는 ‘오염된 상상력’
로사 교우님의 장례가 있었고 저는 화장예식을 인도하며 한줌의 재가 된 고인을 모셔야 했습니다. 하얀 재가 된 몸에서 타지 않은, 어린이 주먹 만한 세 개의 큰 쇳덩어리가 여러 나사와 함께 나왔습니다. 척추 수술을 하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느릿한 걸음의 신체장애를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그분은 서둘수도 없었고 억지를 쓰며 문을 열려는 분도 아니었습니다.
한 세대를 귀하게 살았던 드문 여성 지성인이요, 사랑스러운 어머니가 공적 기관의 안전 불감증과 무책임으로 희생되었지만, 생명을 향한 고귀한 마음이 희미해진 사회의 ‘오염된 상상력’ 안에서 허투루 보도되고 그려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사회를 향한 안타까움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귀한 생명을 앗긴 일을 자신의 편의와 오도된 입방아의 소재로 삼아선 안 됩니다.
죽음을 비웃는 오염된 상상력을 거둬내고, 죽음에서 생명의 신비와 깊이를 바라보는 청명한 상상력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로사 교우님의 재 앞에서 다짐하며 드린 기도입니다. 그분의 죽음이 이 사회를 향해 던지는 호소이기도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할머니께서 얼마나 아프셨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책임기관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언론플레이가 드러난다, 지하철을 타려고 했으니 사고가 난 것이다, 지하철을 타지 않았으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세월호에 탔으니까 죽은 것이다, 수학여행 제주도로 안 갔으면 사고 났을 리 없다. 는 말과 같다고 하셨는데요.
이 말씀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할머니께서 무리하게 지하철을 타신 것 + 승객이 안전하게 탑승했는지 확인하지 못한 것 두 가지에 모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하철을 타지 않았으면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호에 탔으니까 죽은 것이다.= 수학여행 제주도로 안 갔으면 사고 났을 리 없다. 라는 말하고 같지는 않죠.
할머니께서 무리하게 지하철을 타시지 않았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하철쪽에서는 그 부분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겠구요. 무리하게 지하철을 탄 할머니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하철을 탔냐 안 탔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리하게 탔느냐 무리하지 않게 탔느냐가 문제라고 지하철 측에서는 언급을 한 것이구요. 세월호 사건의 여러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 과적도 결국 무리하게 태운 것이지 않습니까.
무리하게 탄 할머니도 안전불감증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사람은 마음이 급하면 누구라도 열차에 뛰어들게 마련인지라, 그것을 감안해서 안전요원, CCTV, 등 안전관련 시설을 더 확충하는 것은 지하철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일 것입니다.
희생당하신 분은 신체장애가 있어서 거동만 느릴 뿐이지 판단력에 의심이 없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매사에 삶과 행동과 판단이 사려 깊고 정확한 분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이 부분도 동의하기 힘듭니다. 글쓰신 분이 이 단락을 쓰신 의도는 노인이라고 해도 판단력에 문제가 없으니 사고가 난 것은 지하철의 책임이다..라고 말씀하시기 위한 것 같은데요.
하지만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고 행동반경도 적어지는 것은 당연하죠. 판단력에 문제가 없었다면 아슬아슬하게 닫혀가는 출입문에 탈 생각을 안 했을 것 같습니다만, 기다렸다가 다음 열차를 타지 않았을까요?
이건 지하철측의 책임전가가 아니라, 사건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가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가려야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절대로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지하철측에서도 더 노력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플랫폼에 안전요원이 상주하고 CCTV를 더 설치하고, 스크린 도어의 센서를 더 손보는 것등 승객의 안전을 위해 해야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승객의 안전에 더욱 신경썼으면 좋겠습니다.
예산의 문제가 거론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무임승차 노인분들의 문제도 거론될 것입니다. 안전시설 설치를 위한 예산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예산에서 어떤 부분을 줄이고 어떤 부분을 늘릴 것이냐, 지하철 측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전과 쾌적한 지하철을 위해서 지하철과 시민, ,서울시, 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명이 무엇보다도 귀하고 존엄하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현장에서 열차를 후진시키라는 둥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서 안타까움 감정이 듭니다. 인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하철 안전 운영 규정에 어긋나는 지하철 운행’ 이라고 굵은 글씨로 까지 강조하여 표기하셨는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네요. 안전장치가 고장났는데 점검을 제대로 안 했는지? 아니면 기관사와 차장이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고 확인을 소홀히 한 것인지? 그러했다면 그 증거는 어디에 있는지?
안전 운영 규정에 어긋나다 하셨으니 규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볼 수 있겠군요. 그러면 안전 규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겨 사고가 난 것인지 설명을 할 차례입니다.
그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면 이런 글은 존재가치가 없겠군요.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월호에 탔으니까 죽은 것이다, 수학여행 제주도로 안 갔으면 사고 났을 리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라는 부분이 있는데 …
문을 닫고 출발하려는 지하철에 억지로 탑승하려 하면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반면 세월호에 탑승하던 승객들은 ‘적어도 탑승하던 시점에는’ 세월호에 ‘단순히 탑승하는 행위 자체’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같은 개념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두 가지가 같은 개념이라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승하차하는 지하철에 타고 내리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겠군요.
허허.
“지금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면”
“더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위한 비용은 아깝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이걸로 충분하리라 봅니다.
물론, “그래서 그 비용을 우선 들이고, 그 안전함을 만든뒤에, 안전함을 부수면서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돌려 우리가 나눠먹고, 그때문에 위험해진 것에 의해 사고가 다시 생기면 다시 더 비용을 들여서 다시 안전함을 만든 뒤에 그 안전함을 부수면서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돌려 다시 우리가 나눠먹고” 같은 짓은 못하게 막아야겠죠. 규제가 약해지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
“스크린도어는 안 닫힌 상태였고, 지팡이는 전동차 문 사이에 껴 있었는데 그것이 얇다 보니까 전동차 문이 닫힌 걸로 인식이 됐었고요. 그래서 차장이 열차를 출발시키는 바람에 발생한 사망사고입니다.” (김광흠 서울메트로 홍보실 차장)
본문에 바로 나옵니다. 서울메트로 홍보담당자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전 규정 위반입니다. 차장은 기관사에게 출발하라고 해선 안 됩니다.
이것은 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박한 위반이고, 만에 하나 급한 마음에 지팡이를 지하철 문에 끼워 넣었다고 하더라도, 그 과실과 이 안전의무 위반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중대한 차이인 것입니다.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만 더 첨언하자면,
그런 중대한(달리 표현하면, 가장 기본적인) 직업상의 안전 의무 를 위반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그 메트로 홍보담당자와 앵커(김현정 씨)의 이어지는 대화 내용을 좀 보십시오.
지팡이만 빼냈으면 괜찮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대화합니다.
이래도 좋은 건지, 이래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정말 알 길 없습니다.
설사 지팡이를 끼워넣었다(이것은 어떤 언론에서도 경찰의 수사결과를 전제로 확정한 사실로서 보도한 곳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모니터링한 결과로는)하더라도, 그 과실로 사람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은 아닐 것으로 믿습니다. 혹은 그 경미한 과실로 죽음에 이르렀으니 그 과실로 숨진 분을 함부로 말해도 된다는 것은 아닐 것으로 믿습니다.
이것은 최소한입니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이고, 사회적 약속에 대한 최소한입니다. 이 글은 그 최소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 무슨 대단히 무리한 요구나 요청을 하고 있는 글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확실한 건 우리 사회가 한 개인의 사정 보다는 민폐, 경제 비용, 시간의 문제에 너무 민감하다는 점 같아요. 사람의 죽음에도 빨리 출발하라고 했다는 말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현장에 있던 사람이 아니니 누가 잘못했다 이 부분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글을 써주신 신부님이 아니었으면 몸이 불편하신, 지팡이 없이 생활하기 힘든 상황의 어르신이었다는 걸 몰랐을테고 지하철 시스템이나 주변의 우리들이 충분히 배려할 수 있었다면 막을 사고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떠나지 않네요. 죽음의 책임을 한 노인에게만 지운채 지팡이가 끼었다는 것만 보고 그 속사정은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뭐 이런 말에도 80먹은 노인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니 지하철 타지말라고 막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좀 더 안전하게, 좀 더 사회적 약자에게 편리하게, 좀 더 인간적으로 이런 의식이 바탕이 되야 인명사고는 줄어든다는 점을 한번 더 느낍니다. 할머니에게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일 보다 이런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참 궁금하네요. “할머니가 무리하게 승차하신 것” 이라거나, 여기저기서 한마디 하면서 던지는 “지팡이를 일부러 밀어 넣었다”는 추측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 ‘무리’와 ‘밀어 넣었다’는 부분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런 추측을 하게 한 발언은 대부분 지하철 관계자에게서 나온 듯한데요. 아마도 글쓴이는 이런 확인되지 않은 추측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객관적인 책임 부분이 슬그머니 묻히는 현실을요. 내 독해가 잘못됐나요?
음, 민노씨 님의 댓글은 무슨 일이 있었건에 관계 없이 사람이 다쳤기 때문에 차장과 서울메트로가 잘못했다는 이야기 같은데요. 결국 할머니의 지팡이가 우연히 낀 것인지 밀어넣은건지는 이 본문에서 알기 어렵지 않나요? 그리고 분명히 본문에 할머니는 명민하고 정확한 판단력을 지닌 분으로 소개되어있는데 상식적으로 그런 분이라면 지팡이를 놓는다는 판단은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분이니 그 점을 안타까워하는 거죠.
그리고 아무리 안전의무가 철저하다 하여도 이용객의 과실이 완전하게 무시되고 결백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할머니가 당한 사고는 안타깝지만 글쎄요. ‘그 사람도 잘못했네.’ ‘참 운이 없네’ 하는 등의 말을 입은 물론이려니와 생각에도 담지 말아야 합니다. ←라는 이 본문의 내용이나 민노씨 님의 댓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는 평소 이런 사건이 있었을 때 분명히 이용객인 피해자의 편입니다만 이 본문과 민노씨님의 댓글은 지나치게 편향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말씀대로라면 지각하지 않기 위해 지팡이를 끼워넣고, 손을 끼워넣고, 핸드백을 던져넣고 그런 행위들이 다 용납되고 모든 책임은 서울메트로와 차장이 져야겠겠군요. 뭔들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다른 이용객들의 손해야 뭐 알 바 있나요. 사람이 끌려가다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 차장은 끝도 없이 안전의무를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기다려야 하겠군요. 이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명백히 별개로 할머니를 세월호와 비교하는 것은 대단한 언어도단이자 논리의 비약이자, 세월호 사건이 한국 사회에 준 충격과 슬픔을 끌어내 논지에 공감시키게하고픈 세뇌에 가깝게 느껴지네요.
함께 사는 사회라는 뜻은 긍휼의 회복과 생명 존엄성의 절대적 존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요. 문명과 기술이 가져오는 안전사고 등의 위험에 있어 사측의 안전 의무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이용객들 역시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 지켜야 하는 수칙이라는 게 있고 그걸 안 지켰을 때 손해를 보는 건 모두가 되고, 아, 손해라는 말이 거슬리시나요? 가장 치명적으로 화를 당하는 건 그 본인이 됩니다.
이 글의 테마는 아랫분의 댓글처럼
“지금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면”
“더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위한 비용은 아깝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가 되어야지 사람이 죽었으니 무조건 회사가 잘못했다, 그래도 본인의 일을 급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했다. 사람이 다쳤는데 그의 과실을 논하면 안된다 그것이 인간의 최소한이다. 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 좋은 글과 댓글 잘 봤습니다
슬프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혹자는 안전을 최우선하지만 혹자는 안전을 앞에 두는 것보다 다른 걸 원합니다
이 점은 인간이 영원히 고민해야 할 부분 같아요
오랫만에 댓글 쓰는데 마음이 아퍼서 길게 적지 못하겠어요
본인이 당사자가 되면 안전 사고는 큰 일입니다. 입장 바꾼다면 동일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요. 그런데 아예 당사자가 되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전쟁도 그 누군가에게는 시끄럽게 떠드는 불쾌한 소식일 뿐이예요. 이런 차이를 얼마나 좁혀갈 수 있는 지가 그 사회의 수준을 나타내겠지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또다시 이렇게 대면하고 나니 정신차리고 치열하게 살아야겠어요~ 모든 분들 함께 고민합시다~!
몰려다니고, 끌려다니고, 맞는 게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
책임이니 생명이니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고 봅니다.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할머님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더 큰 것을 보고 실망했었습니다. 문 틈에 지팡이를 끼운 것은 할머니 과실이지만 사고의 결정적 원인은 스크린도어가 닫히지 않았는데도 출발한 것이라 생각했었거든요. 이런 글을 보게 되어 마음이 조금 나아지네요. 할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위에서 많은 분들이 논의를 해 주셨으니, 저는 이 사건이 누구의 과실이고 책임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사건사고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정상’이나 ‘평균’의 기준이 상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안전규정이라는 것은 분명히 어떤 누구라도 안심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일텐데, 현재의 시스템은 ‘신체 거동이 민첩하고 자유스러운 성인’이 이용하는 것만을 간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남들보다 조금 아프고 불편한 사람들 또한 지하철 이용객이라는 것을 알고, 정책이나 규정에 배려했다면, 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분이 몸이 불편해서’ ‘그 분이 실수해서’ 라는 설명아닌 변명은, 사실 근본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첫째, 할머니는 본인이 주체이지만, 세월호는 아이들이 주체가 아닙니다.
둘째, 할머니가 무리하게 타려고 했다는 것은 지하철에서 승객의 안전을 살펴야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사항입니다. 원칙을 지켰다면 무리하게 타려고 하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막았을 것입니다.
어디서나 합당하게 규칙이 정해지고 그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시스템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피해자는 일반인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 생각이 다르네요. 애시당초 사회라는 게 결국 인간으로 이루어진 곳임에도, 생명존엄이 최우선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긴 합니다만. 어찌됐거나 이게 어떻게 네탓이냐 내탓이냐류로 읽히는지 이상하네요. 이건 누군가의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글이라고 읽히지 마치 법적 책임소재를 추궁하면서 메트로의 100% 잘못이다..이런 식으로는 안 읽혔습니다. 그리고 법적처리과정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몰라도, 법이기에 앞서 사람의 문제라는 점을 좀 생각했으면 좋겠네요. 이런저런일이 있다해도 결국은 누군가가 죽은 사건이란 말입니다. 물론 사고수습 및 처리과정에서 배상문제를 두고 그런 접근이 이루어질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저런 인터뷰 자리에서 저런 식으로 은연중 책임 전가하는 건 분명 비열해보입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죽은 것을 두고서 그 사람 책임도 있으니까 우리의 잘못은 전적이지 않다는 식의 저울질을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회사는 그저 확인된 자기 과실을 수긍하고 그것을 책임지게 위해 충실하면 되는거지 죽음에 100% 책임이 있네 없네 그런 식의 태도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근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경솔하고, 마치 자신이 사람아닌 법전의 줄글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감각하게 소재추궁이나 하고 있다는 게 서글프고 충격이라는 게 글의 요지로 보이는군요.
게다가 누군가들이 불편을 겪더라도 죽는 것보다 나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요? 거기서 갑자기 핸드백이나 책을 문에다 끼워도 상관없다는 거냐는 얘긴 왜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지금 그런 행동은 지하철에서 해도 된다, 편의는 내맘 사고는 네탓 이런 식의 말을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 영민한 할머니라도 어떻게 항상 365일 평정심과 정확한 판단력으로 살수 있답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항상적으로 유지하고 못 삽니다. 때때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벌이기도 하지만, 지금 저 사건은 그 실수(사실 이 실수라는 것도 확인된 상황이 아니니 얘기하기도 뭣하네요)로 모든 걸 다 메꾸고 설명하기엔 너무 엄청난 참사였습니다. 할머니가 무슨 실수 한번에 모든 걸 망치는 외과집도를 하는 상황도 아니잖아요- 실수 하나로 모든게 용납이 안되는 세상이라면 사람 살 만한 곳도 아니겠지만 말이죠. 할머니의 순간의 판단착오를 운운할 게 아니라 최소한 그 판단착오를 메꿀 수 있었던 회사측의 일관된 대처자세가 있었으면 될 일이 아닙니까. 수십명의 제각기 다른 신체적 수준과 정신수준을 가진 시민과 일관된 규칙과 체계를 갖고 있는 회사는 분명 다르죠. 분명한 건 회사가 그렇게 못했다는 거니까요.
지하철을 상습적으로 지연시킨 것도 아니고 1-2시간 운행 못하게 고장낸 것도 아니고…
도대체 할머니가 죽어 마땅할 정도로 지켜야 하는 그런 약속이란 게 뭔가요
생각해봐야 할 점은
1. 죽음을 진중하게 대하지 않는 현 세태
2. 거동이 불편한 소수의 이용자를 포함한 모든 탑승객을 배려하지 않는 시스템
인 것 같네요. 세월호와 비교하신 것은 비약인듯싶습니다만 그렇다고 이 사건의 비극성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해하기로는 작성자분께서 당시 지하철 운행을 하신 분들의 잘못을 거론하신 주 이유는 전동차 문이 닫혔어도 스크린도어 문이 닫히지 않은 상태여서 원칙적으로는 출발을 해서는 안 되는 여건이었는데도 운행했다는 부분인데 그 내용을 댓글까지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려웠다는 점이 좀 아쉽네요.
지팡이를 넣었느냐 안넣었느냐를 떠나서,
스크린도어가 닫히지 않았다면 출발하지 말고,
왜 안닫히는지 확인을 했다면,
거동이 불편한 탑승객의 어처구니 없는 희생은 없었겠지요.
사고의 원인이 희생자에게 있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