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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가 가로수길서점과 제휴하여 좋은 책과 함께 매주 독자를 찾아갑니다. 가로수길서점은 “가로수길에서의 책 한 권”를 더불어 나누고자 2012년 7월에 문을 연 온라인 공간입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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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인 2003년, 영화 ‘올드보이’를 영화관에서 관람했던 날.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와 전개로 충격이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영화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말 한마디, 혹은 애매한 표정들이나 웃음으로 인해서도 누군가에겐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준다는 점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때 너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이라는 말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일을 곱씹고 되씹으며 살아가는 우리들. 2013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한 박지영의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은 이런 우리들의 심리를 아주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꿰뚫어보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삶에 영향을 주는지도 말이죠. 그럼 우선 저자 소개부터 시작합니다.

이 책의 저자 박지영은 1974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으로 당선했고, 2013년 장편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로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을 볼까 말까. 좀 더 자세히 이 책을 살펴볼까요? ‘오늘의 책 미리 읽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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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 17 거북이가 될 수도 있었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이상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도록 생겨먹은 존재였다. 인간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순진한 기대, 자부심 따위에 가득 찬 인간들이나 잔혹한 범죄행위에 대해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라고 충격과 공포를 느끼고 불안과 혼돈을 경험하는 거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만 버리면, 이해할 수 없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일어났던 일, 사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슬픔과 분노,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해서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연기를 할 때에도, 어떤 감정도 싣지 않고 범죄행위의 사실적인 재연에만 충실했다. 그럴수록 범죄행위의 악랄함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실감나는 연기라는 호평도 늘어났다. 널리 알려진 잘못된 인식 중 하나가 연기자들은 캐릭터의 가면을 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해리에게 연기를 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Page. 49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와 고양이 상자

그날 해리는 고양이 상자 중 하나를 열어보았다. 검은색 크레파스로 서툴게 색칠해놓고, 검은 고양이라고 불렀던 상자였다. 그 안에는 초등학생 때 자신의 동시가 실렸던 빛바랜 학교 신문과, 중학생 때 육상 대회에 나가 받은 금메달, 그때 입었던 유니폼, 그리고 1982년 어린이 야구 캠프 때 받은 우승 기념 모자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해리는 모자를 꺼내어 써보았다. 그때는 조임새를 바짝 조여도 크던 것이 지금은 딱 맞았다. 모자 안쪽에는 그때 우승 투수였던 박철순 선수의 친필 사인도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는 야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그해, 어린이 야구 캠프를 다녀온 이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캠프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야구 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까? 아니다. 터무니없다. 자신은 결코 야구 선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꼬인 매듭을 풀고 나면, 나는 지금과 무엇인가 달라져 있을까. 해리는 과거의 물건들을 다시 고양이 상자 안에 넣으며 생각했다. 때로 ‘그럴 수도 있었는데’라며 놓쳐버린 과거의 기회에 대해 아쉽게 중얼거리곤 했지만, 막상 살펴보니 시스템을 복원할 만한 지점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로 돌아가 그때 놓친 기회를 잡더라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Page. 144 쇼 비즈니스의 세계

“성인에게는 애초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아. 그들에겐 개인이 살아온 삶과, 살아야 할 삶이 있으니까. 이제 너무 많은 이야기의 섭취는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비만이나 고혈압, 변비의 원인이 되는 거지. 과유불급이란 말은 이야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야. 어른이 되면 이야기와 현실의 비율이 달라져야만 해. 보통 성인에게는 3:7까지가 안정권인 것 같아. 1:9인 경우는 삶이 너무 퍽펄할 테고, 보통 바쁜 사람들은 2:8 정도면 괜찮지. 조금 여유있게 문화생활을 즐기며 영화와 드라마, 책도 가끔씩 보는 경우가 3:7의 비율. 만약 작가라거나 감독, 만화가처럼 이야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한다면 5:5도 괜찮아.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7:3의 비율로 이야기가 현실을 압도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현실 세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아주 많은 수치라고 보면 돼. 지나친 것은 독이 돼. 이야기의 감염체가 70퍼센트가 되면, 그 사람 스스로 자각 증상이 없고 겉으로는 정상으로 보이더라도 주위의 주의 깊은 관찰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그들은 현실을 이야기의 구조로 해석하려 들기 때문에 위험해.”

Page. 217 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

마침내 이야기를 찾았을 때, 나는 소녀에게 돌아갔다. 나는 소녀에게 이름 없는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 그러나 내가 여행을 떠난 동안, 소녀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카프카였다. 소녀는 나 대신 카프카의 이야기를 가졌다. 이야기가 내 빈자리를 메웠다. 소녀는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의 여행은 거짓 여행이 되었다. 나는 돌아갈 곳을 잃었다.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동안, 나의 이름도 사라졌다. 나는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이름 없는 세계를 떠도는 동안 나는 굶주리고 배가 고팠다. 어느 날 밤,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들었다가 꿈속에서 양을 한 마리 잡아먹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나는 내 이름이 늑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age. 233 재연된 세계와 세계의 재연

지금 생각해보면, 럭키에 대한 글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알면서도 썼다. 그것은 코치를 고발하려는 게 아니었다. 실은 럭키를 고발하려고 했던 거다. 나를 불의를 보고도 침묵한 비겁자로 만든 그 아이를, 그때 그랬다면 그럴 수도 있었는데, 라는 회한과 후회를 갖게 만든 그 아이를, 좋아하던 야구를 더 이상 좋아하지 못하게 만든 그 아이를, 그러면서 눈물도 흘리지 않고 붉게 젖은 눈길로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던 그 아이를, 부끄러워하라고, 좀 더 아파하라고, 좀 더 슬퍼하라고, 소리쳐 울고 창피해하라고, 그렇게 벌거벗겨 세상에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나는 어쩌면 럭키의 완전한 불운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비극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그 아이를, 첫 번째 비극에서도 조연에 불과한 자신은 질투했는지도 모른다.

Page. 306 쉘 위 라이?

로다는 앨리스의 언니 이름이었다. 그래. 앨리스는 모험을 하고, 그 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진 건 언니였다. 결국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니였을지도 모르다고 생각하며 유진은 소포를 열어보았다. 소포 안에는 소중한 것들만 모아두었다는 해리의 고양이 상자 세개가 들어 있었다. 유진은 검은 고양이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 잃어버린 자신의 첫 번째 원고 <그럴 수도 있었던 세계와 12개의 회전목마>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해리를 만날 때마다 습관처럼 냅킨이나 메모지, 전단지 뒷면에 그렸던 낙서들, 그림들이 빠짐없이 파일에 스크랩되어 있었다. 버린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모아둔 걸까. 유진은 파일에 담긴 그것들을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그중에서 카페 카프카의 냅킨에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줄을 건너는 길고 가느다란 한 사람의 실루엣. 그리고 그 밑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인간의 말 중에서 가장 슬픈 말은 그럴수도 있었는데, 라는 말이다. – 커트 보네거트

볼까말까 이 책!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까요? SNS상 독자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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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 님 : 제목부터 독특하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 다른 사람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의 월요일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삼류 재현 배우로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평소에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며 악역을 전담으로 하는 재현 배우로 엄마의 집에 전세를 얻어 함께 살고 있다. 사실 그의 인생은 어린 시절 하나의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꼬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이 야구캠프에 참가해서 받은 야구 모자에 묻은 얼룩이 신경 쓰이던 소년 해리… 그는 자신의 모자를 다른 소년과 바꾼다. 허나 운이란 게 요상하게 그 얼룩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되고 얼룩이 묻은 야구모자를 쓴 소년은 ‘럭키’란 이름으로 불린다.

독특한 방식의 스토리라 흥미롭다. 진짜 살인사건의 진실이 의외성을 띠고 있다. 고의성은 없었다지만 진실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린 일이 점점 커져버려 다른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로인해 본인은 물론이고 상대방도 힘든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의 이야기가 스토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 자체나 스토리의 재미가 좋았기에 오래도록 나의 기억에서 흥미로운 판타지 소설이란 생각을 갖게 할 것 같다.

꿀꿀페파 님 : 판타지문학상 수상작이라서 그런지 표지부터가 독특하다. 목이 잘린 고양이, 그 고양이의 얼굴이 그려진 상자. 거울 앞에 서있는 남자는 거울 밖의 사람일까? 거울 안의 사람일까? 보이는 것이 아닌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하는 거울의 느낌이 판타지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이 책은 이미 지나가버린 후회로 가득한 한 사람의 과거가 다른 사람의 미래를 어떻게 처참하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그럴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후회가 현재의 나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격하게 느끼게 한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그럴 수도 있었는데”라는 후회.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릴 커다란 그럴 수도 있었는데부터 짬뽕을 시킬까 자장면을 시킬까의 사소한 그럴 수도 있었는데까지. 사람들은 언제나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그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옳으니 그르니, 좋으니 싫으니에 상관없이.

여기 ‘그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한 남자 해리가 있다. 해리의 ‘그럴 수도 있었는데’ 는 안타깝게도 누군가의 생을 마감하게 했다. 그리고 해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그럴 수 있었는데’로 인해 잘나가던 인생에서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평생 기억 속에만 비밀스럽게 꽁꽁 묶어두었던 해리의 과거가  처참하게 유기된 살인사건을 계기로 하나씩 들춰지게 된다.

마지막 결론에서 하나씩 밝혀지는 살인사건의 진실과 해리가 감추고 살았던 비밀이 밝혀질 때는 판타지적 모호함과 상관없이 흥미로운 전개로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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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면 무협지와 함께 세트로 생각해버리곤 했는데요. 이번에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을 읽고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 속에도 많은 부분들이 내포된다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지금의 내 삶이 이렇게 된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판타지. 그리고 과거에 집착하고 고쳐가려 할 수록 꼬여버리고 불안해지고 위험해지는 사람의 심리. 1부와 2부의 시작부분에서 등장하는 ‘그럴 수도 있었는데’라는 말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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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재본은 가로수길서점 원문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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