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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2015년 9월 30일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열린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필자인 염형국 변호사가 발표한 내용을 간추려 편집한 것입니다. (편집자)[/box]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정신과 의사 앨런 프랜시스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사이언스북스, 2014)에서 범람하는 정신장애에서 현대인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랜시스가 말한 바로는, 정신장애를 실험실에서 확인하는 검사법은 아직 없다.

이게 무슨 의미냐고? 생물학적 검사법이 없다는 것은, 현재 모든 정신장애 진단이 정신과 의사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를 두는 것이라는 말이다. 즉, 그 판단은 본질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만큼 뒤바뀔 가능성도 크다는 뜻이다.

비정상 혹은 정신장애에 대비되는 정상은 정의될 수 없으며,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과학으로 사람들을 서로 정밀하게 비교할 수는 있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인구의 2.5%에 그을지 25%에 그을지 하는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

‘정상’이라는 신기루 vs. ‘장애’라는 주홍글씨 

그럼에도 사회가 새겨놓는 ‘정신장애인’이라는 주홍글씨는 너무도 강력해서, 정신장애인이 한번 되기만 하면 의사결정권도 박탈당하고, 정신병원에 수시로 강제입원을 당해도 어쩔 수가 없으며, 잠재적인 범죄자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는 결론에 쉽게 이르게 된다.

그러나 승자독식의 약육강식 사회, 불평등이 자연법칙이 된 사회, 갈수록 그 격차가 커지는 빈익빈 부익부 사회, OECD 국가 중 수년째 자살률 1위를 도맡고 있는 사회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신장애인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며, 우리 사회가 함께 껴안아야 할 사람이고, 그들을 희생양 삼아 우리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다고 증명하는 사회를 만들어선 안 된다.

모든 이들은 자유를 원한다.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러한 자유를 쉽사리 제약해서는 안 된다. 사적 주체들에 의해서 자의에 반하여 신체의 자유·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약되어서는 안 되며, 불가피하게 이러한 자유를 제약하더라도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적법절차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m.vop.co.kr/view.php?cid=624265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자립과 통합, 세상 속으로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장애인의 자립적인 생활과 지역사회통합의 권리’를 규정한다. 정신장애인 역시 지역사회로 들어가 자립적으로 살아갈 권리를 동등하게 획득해야 한다.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선택권을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장애인의 이러한 권리와 지역사회의 완전한 통합 및 참여의 완전한 향유를 촉진하기 위한 효과적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복귀를 막는 정부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와 통합을 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은 정부의 예산집행이다. 중앙정부의 예산집행을 살펴보면, 2009년 기준 정신보건사업 예산을 살펴보자.

  • 정신보건사업 전체 예산액 750억 원
  • 정신병원 및 정신요양시설 지원액: 732억 원(전체 예산 중 97%)
  • 정신장애인 사회 복귀와 관련 예산: 15억 원 (전체 예산 중 3%)

더구나 정신장애인의 사회 복귀를 위한 정신질환자 사회복귀시설은 2004년 7월 중앙정부의 국고보조 대상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어 지자체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자립도의 현격한 차이로 탓에 지자체 간 사회복귀시설의 예산 편차가 심각한 상황이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사회복귀시설 신고의 유보를 요청하거나 법적 기준 이하로 지원해, 사회복귀시설은 운영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가족 + 정부 + 정신의료기관 = 운영자 중심 카르텔

정신병원 입원환자 중 70%에 이르는 의료급여 환자 입원비용은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서비스는 지자체가 떠맡는 현 구조는 정신병원 장기 입원을 조장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Jorge Gobbi, CC BY https://flic.kr/p/9on1qb
Jorge Gobbi, CC BY

가족은 정신장애를 가진 자식과 부모를 손쉽게 강제 입원시키고, 정부는 그들을 사회와 차단된 정신병원에서 관리하도록 정신보건예산의 97%를 지원하며, 정신의료기관은 정부 지원을 통해 환자 중심이 아닌 운영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한 셈이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법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정부예산 집행 방향을 정신보건기관 지원에서 지역사회 정착 지원으로 바꿔야 한다.

지역사회 통합 위해 가장 중요한 ‘집’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무를 수 있는 주거공간이다. 정신장애인에게 ‘주거’는 물리적 시설로서 ‘머무는 공간’ 이외에도 지역사회와의 관계, 자아정체성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정신장애인의 주거는 탈시설화와 지역사회 통합의 핵심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집 가정 가족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공식적인 주거 프로그램이 없다. 정책적 지원이 미흡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입소시설이나 주거시설에서 독립생활 훈련을 마친 정신장애인이 퇴소 후 갈 곳이 없어 다시 병원에 재입원하거나 다른 주거시설로 옮기는 현상이 일어난다. 갈 곳이 없는 정신장애인은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준비 없이 지역사회로 나가게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비정상?  성인 10명 중 3명은 정신질환 경험 

보건복지부의 2011년 실태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정신장애인의 현실을 잠깐 살펴보자.

  • 15세 이상 정신장애인: 103,893명
    • 경제활동가능자: 14,887명(14.3%)
    • 비경제활동인구: 89,006명(85.7%). 전체 인구 평균은 39.0%
  • 월 평균 임금: 53만 원. 자폐성 장애(38만 원) 다음으로 낮음. 시급 1,709원
  • 고등학교 이상 재학 비율: 59.7%. 15개 장애 유형 중 간(肝)장애(63.2%) 다음으로 높지만, 취업률은 높은 교육수준에 비하여 낮음.

정신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너무도 뿌리 깊다. 정신장애인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편견, 정신장애인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어서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편견, 즉 소위 ‘정상인'(비정신장애인)을 기준으로 보아 정신장애인은 비정상이라는 편견이 뿌리 깊다.

하지만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중 1년간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인구는 전체 인구의 16%인 577만 명으로 추산되고,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 경험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27.6%로 성인 10명 중 3명꼴이다.

우울 의자 슬픔 고독 절망 기억

[box type=”info” head=”2011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개요)”]
1. 18세 이상 성인 중 최근 1년간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16.0%인 577만 명으로 추정된다. 알코올과 니코틴 사용장애를 제외하면 10명 중 1명(전체 인구의 10.2%)꼴이 최근 1년간 정신질환에 걸린 적이 있다. 1년 유병률은 2006년 8.3% → 2011년 10.2% (22.9% 증가)

2.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 경험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27.6%로 성인 10명 중 3명꼴, 알코올과 니코틴 사용장애를 제외하면 14.4%(’06년에는 12.6%)로 성인 6명 중 1명꼴이다.

3. 성인의 15.6%는 평생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사고(思考)를 경험하였으며, 3.3%가 자살계획, 3.2%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1년간 자살시도자는 10만 8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4. 평생 정신질환 경험자 중 정신과 전문의, 기타 정신건강전문가를 통한 상담․치료를 받은 비율은 15.3%에 불과, 85% 정도가 정신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의료 서비스 이용률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미국 39.2%(2010년), 호주 34.9%(2009년), 뉴질랜드 38.9%(2006년).

5. 이상은 보건복지부(장관 임채민)가 25개 주요정신질환의 유병률, 의료서비스 이용실태 등에 관한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간추린 것이다. 본 조사는 정신보건법 제4조의2에 근거해 5년마다 실시한다. 본 조사는 2001년, 2006년에 이은 세 번째 조사로써, 서울의대(책임연구자 조맹제 교수) 등 14개 기관이 합동으로 참여하여 실시하였다. 조사대상는 전국 만 18~74세 성인 6,022명이고, 조사 시기는 2011. 7. 19~2011. 11. 16까지다.[/box]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가벼운 우울증을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실로 어림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질 것이다. 흔하다고 하면 이처럼 흔한 병이 정신질환이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나 정신장애인으로 낙인 찍히면 누구도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울 여자 사람 절망 슬픔

가벼운 우울증이 있어서 지역에 있는 정신과 의원에서 약이라도 한 번 타 먹는 날에는 의료기록에 F 코드가 날인되어 어디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고,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듯이 정신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체장애 위주의 장애인복지법 

정신분열병 또는 우울증 등의 정신장애가 있는 정신장애인은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에 비해 취업, 교육, 문화생활 등에 있어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회 ․ 경제적 소외 및 심각한 인권침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을 비롯한 현행 장애인 관련법은 신체적 장애인 위주의 지원과 보호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1995년에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병원 입원과 치료 등 의료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어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지원과 권리 보호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4년 5월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 등을 위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도 복지 지원 등에 관한 별도의 법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이 필요한 이유 

이에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살 수 있도록 재활·고용·평생교육·거주시설·돌봄 등의 복지서비스 지원 방안을 수립하고 지역정신장애인복지지원센터 설립 등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규정한 가칭 ‘정신장애인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필요가 있다. 이 법에 담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정신장애인의 범주 설정
  • 정신장애인의 권리 천명
  •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
  • 정신장애인 지원을 위한 종합계획 수립
  • 정신장애인 개인별 복지지원계획 수립
  • 개별 복지서비스 지원
  • 정신장애인 복지시설 설치 및 운영 근거 마련
  • 정신장애인 자조 단체 및 자립생활센터 지원
사진 제공: 함께걸음
사진 제공: 월간 ‘함께걸음’

정신장애인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신장애인은 거대한 의료 권력과 사회의 차별·편견, 이를 방조하는 국가권력에 둘러싸여 오랫동안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고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같은 위헌적인 제도에 의해 지속적인 인권침해를 당해왔다. 정신병원을 무사히 퇴원한 사람들은 당사자들 사이에서 ‘생존자’라고 불린다고 한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가야 하는 병원이 살아나와야 할 곳이 되는 비참한 현실을, 오늘도 정신장애인은 견뎌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신장애인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은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기결정권을 보장받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모쪼록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요구가 최대한 반영된 법안을 마련해 이를 하루빨리 국회에서 통과시켜 시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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