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일 뵈어요” 웹툰의 인문학
나는 ‘웹툰’을 무척 좋아한다. 포털에 연재되는 여러 웹툰을 요일에 맞추어 챙겨 보는 것이 삶의 작은 기쁨이다(슬로우뉴스에 연재 중인 ‘웹툰 사용 설명서’도 즐겨 읽는다).
웹툰 전성시대
[마음의소리], [덴마], [송곳], [질풍기획], [전자오락 수호대], [생활의 참견], [잉어왕], [이말년 시리즈] 등이 내가 즐겨 보는 작품들이다. 스무 살 무렵에는 [마린 블루스]가 좋아 꽃이 예쁘게 핀 선인장 화분을 책상 위에 올려 두기도 했다. 나뿐 아니라 많은 또래가 ‘성게 군’과 ‘선인장 양’의 매력에 빠져있던 때다.
웹툰 취향에 대해 갑자기 중언부언한 것은 이 독특한 장르를 ‘대학 국어’ 강의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웹툰이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도 무척이나 유용한 수단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들은 종이책 본문에서보다 오히려 일상의 다른 매개에서 더 많은 텍스트를 접한다. 예컨대 간판도, 광고도, 어딘가의 낙서도, 모두 텍스트다. 그러한 총합은 우리가 굳이 수고롭게 읽는 종이책 본문의 양보다 월등히 많을 것이다.
2주차 강의에 들어간 나는 프로젝터 화면을 띄우고 네이버 웹툰 페이지에 접속했다.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다가, 저마다 즐겨 보는 작품을 소리 높여 외쳤다.
“웹툰을 일주일에 한 편 이상 보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80% 이상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편 이상 글을 읽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라고 물었다면 사뭇 다른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웹툰과 표준어문법
나는 몇 년 전 10대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어느 웹툰을 클릭했다. 그리고 1분 동안 시간을 줄 테니 이 컷에서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몇 군데나 잘못되었는지 찾아보라고 말했다. 말풍선 하나 분량에 불과한 두 줄 남짓의 문장이었다. 1분이 지나고 학생들에게 묻자 한 개부터 일곱 개까지 다양한 답이 나왔다. 정답은 여섯 개였다. 함께 나머지 분량을 보며 80여 개의 오류를 더 찾았다.
웹툰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고 접근성 쉬운 텍스트 매체다. 하지만 네이버와 다음 등 유명 포털을 통해 서비스되는 웹툰들조차 표준어문법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작가마다 편차는 있지만 한 편당 10개에서 100개까지 다양한 오류가 드러난다. 구어체나 관용적 표현을 제외하고 접근해도 그렇다.
수많은 이용자에게 웹툰을 유통하는 거대 포털이 어떠한 맞춤법 검수도 없이 그저 작가의 개별 역량에 모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웹툰 주 독자층이 10대와 20대라는 점에서 웹툰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은 잘못된 맞춤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맞춤법 규정을 준수한 글은 ‘신뢰성’과 ‘가독성’을 함께 높여준다. 글쓰기는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하는 행위다. 기본적인 맞춤법을 모르는 사람이 좋은 글을 썼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는다. 국어학자 수준의 엄격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용되는 것들만 숙지하고 있어도 충분히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있다.
학자도 어렵다는 띄어쓰기
특히 띄어쓰기는 더욱 그렇다. 언젠가 논문을 쓰다가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어 어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둘에게 물었는데 서로 대답이 달랐다.
관형사로 보아야 한다.
관용어로 보아야 한다.
어떠한 명사로 보면 해석이 다르다.
서로 옥신각신했다. 누가 이길까 싶어 지켜보고 있는데, 다시 누군가 오더니 둘 다 틀렸다며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결국, 띄어 쓰든 말든, 해석에 따라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국립국어원장을 역임했던 모 교수는 언젠가 “나도 띄어쓰기가 자신 없다”고 인터뷰하며, 어문 규범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띄어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런 것은 전공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일상의 규범을 지켜나가면 충분하다.
받아쓰기 퀴즈
나는 웹툰 한 편을 함께 본 후, 성적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 간단한 받아쓰기 퀴즈를 냈다. 강의 준비를 하는 동안 짬짬이 만든 문장을 활용했다. 학생들이 쉽게 틀릴 법한 것들과 내가 학부생 시절 어렵게 여겼던 것들을 모은 것이다.
예컨대 “밥먹은지한시간이지났다”하고 말하면 “밥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났다”하고 받아쓰게 했다. 대학생이 되어 받아쓰기한다는 이질감에 키득키득 웃던 학생들이, 문장이 거듭될수록 어두운 표정으로 변해갔다.
갈수록 난도를 높였는데, 후반부에는 “저친구는날씨도좋은‘데’어디좋은‘데’놀러가‘데’거기가그렇게좋‘대’”와 같은 문장을 들려줬다. 여기에서는 ‘데/대’의 몇 가지 용법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답은 “저 친구는 날씨도 좋은데 어디 좋은 데 놀러 가데, 거기가 그렇게 좋대”다. 사실 많은 웹툰이 인용으로서의 ‘대’와 경험으로서의 ‘데’를 대개 구분하지 못 한다.
마지막 20번째 문장은 “내일봬요”하는 것이었다, 퀴즈 전날 반장이 내게 “내일 뵈요”하고 문자를 보냈기에 편입시켰다. 채점해 보니 30명 중 10명이 채 안 되는 학생이 “봬요”라고 맞는 답을 썼다. 사실 이 맞춤법은 국문학과 학생들도 잘 모른다. 고백하자면 나도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누군가의 핀잔에 따라 알게 되었다.
받아쓰기의 평균 점수는 30점대 중반이었고, 60점을 넘긴 학생이 드물었다. 성적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자신의 점수를 보고 모두가 민망해 했다. 동기부여가 확실히 된 셈이어서 그것도 그런대로 좋았다. 채점한 답안지를 나누어주고 스무 개의 문장을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내일 뵈요”(X) “내일 봬요”(O)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은 ‘내일뵈요’였다. 기본형이 ‘뵈다’이고, ‘-어요’가 결합하며 ‘뵈어요’가 되고, 그것을 줄이면 ‘봬요’가 된다. 그런데 결합식을 강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꼭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있었다.
“여러분은 국문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결합식을 외울 필요는 없고 원리만 간단히 이해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저는 카톡을 보내거나 할 때 ‘봬요’라고 하지 않고 ‘뵈어요’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뵈요’가 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소통하려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대학에서 더욱 중요한 지식을 계속 배워나갈 것입니다. 점점 부모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질 테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곧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봬요’를 ‘뵈어요’로 풀어쓰는 것처럼, 배운 것을 활용해 모두와 소통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 주변에서 시작하는 인문학입니다.”
뭔가 무척 억지스럽지만, 이것이 내가 학생들에게 제시한 첫 번째 인문학이다. 그들이 어디에서든 ‘내일 뵈어요’ 하고 쓰며, 겸손히 배우고 성장해나갈 수 있길 바란다. 그러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업이라고, 믿는다.
학기가 끝나고 반장에게 카톡이 왔다.
“방학 잘 보내시고, 다음 학기에 뵈어요!”
“그래야 내 제자답지, 고맙다.”
그저 흔한 한 학기 인문학 교양 수업일 뿐이지만, 함께 사유하는 제자가 생긴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