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촬영으로 직위해제 된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동료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차 피해를 우려해 언론 보도를 원치 않는다는 유가족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고, 선정적이고 부적절한 기사도 많았다. ‘클릭 수’만 노린 기사는 고인이 된 피해자와 슬픔에 잠긴 유족을 위한 배려는커녕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으로 클릭질 장사에 몰두했다.
여성 피해자 강조, 선정적 제목 난무
9월 15일 사건 직후부터 언론은 앞다퉈 신당역 역무원 사망 사건을 보도했다.
- 서울신문, [신당역 여 역무원 살해 30대…‘흉기 들고, 샤워캡 쓰고’ 1시간 기다렸다]
- 머니투데이, [신당역 여 역무원 살해범, 위생모 쓰고 범행…“보복살해 한 듯”]
- 인사이트, [‘신당역’ 여자화장실서 끔찍한 사건 발생…20대 여성 역무원이 살해됐습니다]
이들 기사는 ‘여성’ 피해자를 강조하고, 구체적인 범죄행위 묘사에 나선 제목이 이어졌다. 범죄 도구를 언급하거나 ‘끔찍한’ 같은 자극적인 단어 사용도 멈추지 않았다.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선정적인 제목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기사들도 난무했다.
- 위키트리, [신당역 여자화장실서 살해 당한 20대 역무원, 가해 남성과 ‘뜻밖의 관계’ 드러났다]
- 위키트리, [머리에 ‘이것’ 쓰고 신당역 20대 여성 역무원 살해…충격적이다]
- 인사이트, [신당역 역무원 살해한 30대 남성, ‘완전범죄’ 위해 이것까지 몸에 착용했다]
- YTN, [자막뉴스/늦은 밤 울린 비상벨…여자화장실서 벌어진 일]
이들 기사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으로 중대한 범죄를 흥밋거리로 전락시키는 ‘부끄러운’ 보도였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4항 (선정보도의 금지)는 “성범죄, 폭력 등 기타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음란하거나 잔인한 내용을 포함하는 등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되며 또한 저속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피해자 성별이나 피해 상황을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언론의 행태는 반복되고 있다.
‘몰카’ ‘원한 관계’ 등 잘못된 표현
불법 촬영 혐의로 직위해제 된 가해자의 상황을 전하면서 ‘몰카’라는 부적절한 표현도 사용됐다.
- 국제뉴스, [신당역 역무원 살인 용의자 ‘전 직장동료·화장실 몰카·스토킹’ 충격]
- 머니투데이, [단독/역무원 살해범, 전 서울교통공사 동료…화장실 몰카로 직위해제]
- 시사매거진, 여성조선, 조선일보, 문화일보는 ‘불법 촬영’ 대신 ‘몰카’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가 2021년 11월 22일 발표한 『성폭력·성희롱 간행물 제작 가이드라인 마련』 권고안은 ‘몰카’를 “이벤트나 장난 등 유희적 의미를 내포하여 범죄의식 약화를 초래”하는 잘못된 표현으로 지적했다.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 역시 “가해행위를 미화하거나 모호하게 표현(‘몹쓸 짓’, ‘나쁜 손’, ‘몰카’, ‘성 추문’ 등)하여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게 하거나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다.
- 국제뉴스, [신당역서 女역무원 살해한 남성 체포…원한관계 있었다]
- 뉴스1, [‘신당역 살인 사건’ 전말, 재판 과정서 원한 “오래전 계획, 70분 기다려”]
위 기사들을 비롯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원한 관계’라고 보도한 언론도 상당수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다툼 내지는 나쁜 사이로 표현하는 듯한 ‘원한 관계’라는 표현도 부적절하다. 불법 촬영에 스토킹까지 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원한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온당치 않으며,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잘못된 보도다.
이번 사건을 보복 범죄로 규정하는 보도도 본질을 흐리는 잘못된 행태다. ‘남에게 당한 만큼 그대로 갚아준다’는 뜻의 보복이란 표현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며 강력범죄 전조가 되는 스토킹 행위의 심각성을 가릴 우려가 크다. 언론은 스토킹 범죄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범죄 보도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과 실천 요강, 권고안이 있지만, 기자들은 모르는 체하는 듯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이 범죄 보도를 할 때 구체적 내용이나 불필요한 피해자 관련 정보, 자극적이며 흥밋거리 위주로 소비하는 비윤리적 보도를 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보도 윤리를 저버린 돈벌이 기사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잘못된 보도는 피해자에게 상처를 남기는 2차 가해이자 인권침해라며 언론의 절제된 태도를 촉구했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언론은 말로만 2차 가해를 떠들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게 보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