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헌법재판소는 지난해(2020년) 12월 23일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을 의도적으로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박근혜 정부의 조처는 헌법에 위반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헌재는 “목적의 정당성도 인정할 여지가 없는,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공권력 행사“라고 규정하고, 전원일치로 위헌임을 확인했습니다.
- 심판 대상: 정부 지원사업에서 특정 문화예술인을 배제한 행위(공권력 행사)
- 사건 번호: 헌재 2020. 12. 23. 2017헌마416
이장희 창원대 법학과 교수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헌재 판결을 비평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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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0월 12일, 박근혜 대통령 당시에 청와대가 작성하였다고 알려진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자 9,473명의 명단이 공개되어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 불린 이 명단에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선언에 참여했던 문학인,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당시 청와대는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는 탄핵재판이 한창이던 2017년 1월 경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 행위를 이유로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기소하였고, 마침내 2020. 1. 30.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2018도2236)을 통해 피고인들의 유죄가 대부분 인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12월 23일에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이러한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지원 배제행위로 인해 청구인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정치적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평등권이 침해되어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2017헌마416).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철두철미한 ‘지원 배제’
도대체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9월 30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반정부·반국가적인 성향의 문화예술 단체들에게 현 정부가 지원하는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정부수석비서관과 소통비서관 등은 ‘야당 후보자 지지선언 또는 정권반대운동 등에 참여하거나 좌파성향의 개인·단체 등에게 지원된 정부예산을 선별하여 향후 이를 축소·배제하고, 좌파단체 및 좌편향인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지속적으로 보완하며, 좌편향 인사를 정부 공모사업 심사위원 및 정부위원회에서 배제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이후 좌편향 문화예술인사 등에 대한 지원배제 조치는 지속적으로 관리·수행되었으며, 문체부와 그 산하기관의 지원 사업이라 할 수 있는 각종 기금·예산지원, 공연장·상영관·대관 업무, 기관장이나 임원이나 심사위원 등의 인선 업무, 각종 훈·포장의 수혜대상자 선정 등에서 위 명단을 기준으로 삼아 그 사람들이 최대한 선정되지 않도록 조치하였음이 확인되었다.
그들은 지원배제 방침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공모사업 진행 절차를 중단하기도 하고,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원 배제 방침을 심의위원들에게 전달하여 지원배제 대상자의 탈락을 종용하거나 또 지원 배제 대상자에게 불리한 사정을 심의위원들에게 부각되도록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야당 후보자를 지지한 사람이나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속칭 ‘좌파인사’나 ‘좌편향 문화예술인’이라 부르면서 단지 자기들과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지원 배제라는 불이익을 주기 위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였고, 그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은 정부의 각종 지원사업에서 조직적으로 배제되었던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헌법적 의미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헌법적으로 볼 때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위헌 결정은 그러한 블랙리스트와 불이익 조치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받은 문화예술인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면서 이루어졌다. 헌법재판소에서 심판 대상으로 삼은 행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청구인인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정보를 수집·이용한 행위와
- 그렇게 수집한 정보로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따라 지원 배제를 지시한 행위 및 이로 인해 지원이 배제된 문화예술인들에게 야기된 불합리한 차별 행위가 그것이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5″]첫째,[/dropcap] 헌법재판소는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정보를 수집·이용한 행위는 청구인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떠한 정치적 견해를 가졌는지는 그 사람의 인격주체성을 특징짓는 개인정보, 그 중에서도 특히 ‘민감정보’에 해당하고, 설령 그것이 공개적인 지지 선언과 같은 방법으로 외부에 알려진 것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이용하는 행위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 정당한 제한이 되려면 일단 ‘개인정보 보호법’ 같은 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의 요구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문체부가 문화예술인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면서 어떠한 동의를 받은 적도 없고 또 법령상 이를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근거도 없었다는 점에서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반하여 청구인 문화예술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가진다는 것은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어떤 사람이 정부와 대통령을 지지하든 야당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정치적 견해의 자유로 인정해야 것이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이다.
또 국가가 개인 정보를 수집·이용하려면 정당한 목적에 따라 법령상의 근거와 절차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수집하여야 하는데, 어떤 특정 정치적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에서 그를 차별적으로 취급하여 불이익을 가하려는 목적에서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그 자체로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목적인 것이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5″]둘째,[/dropcap] 헌법재판소는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를 이용하여 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도록 한 것은 청구인인 문화예술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고, 또 이를 통해 헌법의 문화국가원리에도 반하여 청구인들에게 불합리한 차별행위가 이루어진 것이므로 청구인들의 평등권까지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문화 활동과 예술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요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예술 창작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문화적 여건을 마련하는 헌법적인 과제와 책임이 인정되는데, 헌법적 표현으로는 이러한 국가를 ‘문화국가’라고 부른다.
따라서 정부의 문화정책이나 문화예술 지원사업은 모두 헌법상 ‘문화국가의 원리’에 기초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부가 문화국가적 지원을 빌미로 문화예술의 내용에 간섭하거나 정권에 호의적인 문화예술행위만을 지원하는 편파적인 모습을 보일 위험도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의 상영을 둘러싼 부산국제영화제 파행 사건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적절하게 언급하였듯이, “헌법상 문화국가원리는 견해와 사상의 다양성을 그 본질로 하며, 이를 실현하는 국가의 문화정책은 국가가 어떠한 문화현상에 대해 선호하거나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 의미에서 ‘불편부당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특히 이러한 위험성을 감안하여, “정부는 문화국가실현에 관한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과거 문화간섭정책에서 벗어나 문화적 다양성, 자율성, 창조성이 조화롭게 실현될 수 있도록 중립성을 지키면서 문화에 대한 지원 및 육성을 하도록 유의하여야” 하는 것이다.
‘문화헌법적 원칙’ 확인
물론 헌법재판소도 잘 지적하였듯이,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사업은 일종의 수혜적 행정행위에 해당하며, 아무래도 국가지원에는 재정상의 한계가 있다 보니 일정한 기준에 따른 대상자의 선별과 분배의 과정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 또 문화예술에 대한 심의과정에서 전문성과 주관성이 불가피하므로 분배기준을 설정하거나 적용함에 있어서 상당한 행정재량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처럼,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에서 혹은 야당 정치인을 지지하였다는 이유에서 속칭 ‘좌파 인사’라고 부르면서 조직적이고 은밀한 방법으로 공정한 심사기회까지 박탈하면서 심의에서 일체 배제되도록 하는 것은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아님은 물론이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매우 자의적인 차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문화예술적 성과는 전 세계를 호령하는 소프트 파워로 성장하고 있다. 신명나게 놀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우리 민족의 오랜 문화적 DNA와 문화적 창의성에서 나온 성과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융성의 토대를 마련하고 여건을 조성하는 문화정책과 지원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문화예술의 저변을 확대하고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헌법상 문화국가원리가 요구하는 국가의 문화정책적 과제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정부는 어느 특정 문화예술을 자신의 선호에 따라 선별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단지 국가는 문화가 더 다양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향유될 수 있는 문화적 풍토를 조성해야 할 뿐이다. 즉, 국가는 문화현상에 대해 단지 지원을 할 뿐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이러한 문화헌법적 원칙을 새삼 확인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위헌성을 판단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진보와 보수? ‘편가르기’를 미화하는 건 아닐까?
더 나아가 헌재 결정에서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블랙리스트 사건은 특정 정치권력자들이 국민에게 자신들의 정치이념적 성향을 강요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교묘하게 탄압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을 추가로 언급하고자 한다. 지금도 우리의 정치 지형은 흔히 보수와 진보의 구도로 설명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일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보수와 진보에 진정한 이념적 구별이 있는가? 오히려 단지 ‘이쪽’과 ‘저쪽’을 구별하고 ‘편가르기’를 미화하는 용어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우리 편이 아닌 자들을 배제하고, 그런 정치적 반대자들이 다시 재기하지 못하도록 그 뿌리를 흔들기 위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는지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정치 풍토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우리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를 기본원리로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 그리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이념적 토대로 함은 물론이고,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대표들에게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설령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거나 반대했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대표가 된 이후부터는 그들까지 함께 포용하면서 국민 전체의 대표자로서 국정을 수행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지지하는 국민만을 위하여 나랏일을 수행할 수는 없다. 여당은 야당 지지자를 향하여, 야당은 여당 지지자를 향하여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야 진정 전체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지지하도록 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를 것을 강요하기 위해 반대자들에 대한 지원을 끊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유념해야 할 민주적 국정 운영 태도에 관한 헌법적 기준을 확인해 주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