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이른바 ‘언론개혁법’, ‘언론민생법’이라는 부르는 6개 법안의 2월 임시국회 처리를 예고했다.
- ‘3배 징벌법’: 인터넷에서 허위사실유포나 기타 불법정보로 명예훼손 등의 손해를 입힌 경우 피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윤영찬 의원안)
- ‘기사 차단법’: 인터넷 기사로 피해를 본 경우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신현영 의원안)
- ‘악플 게시판 중단법’: 악성 댓글 피해자가 신고하면 게시판 운영 제한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양기대 의원안) 등이다(참고로 각 법안의 약칭은 편집자가 임의로 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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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언론민생법안’의 제안 이유와 주요 내용
‘3배 징벌법’ (윤영찬 등 34인)
- 현행법은 불법정보 및 거짓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 유통 등에 따른 이용자의 피해에 대하여 불법정보 삭제조치 등 다양한 이용자 보호규정을 마련하고 있음.
- 하지만 이용자의 위법행위 및 고의적 반복성 허위사실 유포로 다른 이용자에게 큰 손해가 발생하여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미흡하여 이용자의 손해에 대한 피해구제가 어려운 실정임.
- 이에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의 위반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여 이용자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 건전한 정보통신망 이용을 장려하려는 것임(안 제44조의11 신설).
기사 차단법 (신현영 등 10인)
- 현행법에 따르면 언론 등의 보도 또는 매개(이하 “언론보도등”이라 함)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자(이하 “피해자”라 함)는 언론사,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 및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자에게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음.
- 최근 3년 동안 언론보도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 언론중재위원회에 신고한 사례 중 70% 이상이 인터넷신문이나 인터넷뉴스서비스 등 인터넷 매체 사건으로 나타났음. 하지만 기존 뉴스 플랫폼과 달리 언론보도 등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급속히 전파됨에 따라 기존의 정정보도 등의 청구권만으로는 신속하고 실효성 있게 피해구제를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음.
- 이에 인터넷신문이나 인터넷뉴스서비스를 통한 언론보도 등으로 인한 피해자는 해당 언론사에 기사의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는 것임. (이상 ‘제안 이유)
- 기사의 열람차단에 대한 정의를 신설함(안 제2조제17호의2 신설).
- 인터넷신문이나 인터넷뉴스서비스의 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하거나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등 그 피해를 입은 자는 해당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함(안 제17조의2 신설).
- 기사의 열람차단 청구와 관련하여 분쟁이 있는 경우에는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정이 가능하도록 함(안 제18조제3항, 이상 ‘주요 내용’)
악플 게시판 중단법 (양기대 등 14인)
- 악성 댓글로 인하여 고통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프로 운동선수 사망사건을 계기로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스포츠뉴스에 대한 댓글 서비스를 연예인 뉴스의 경우처럼 잠정 중단하였음.
-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고, 사후약방문 차원의 임시적 조치에 불과한 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으면서 악성 댓글로부터 당사자를 심리적으로 보호할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음.
- 현행법에서는 댓글의 개념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고, 당사자에게 심리적으로 중대한 침해를 가져온 댓글에 대해서 삭제 또는 반박 내용 게재를 요청하려면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여 각각의 댓글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침해를 받은 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데 매우 미흡함.
- 이에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에 부가적으로 게시된 댓글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중대한 침해를 받은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 사실을 소명하여 해당 댓글이 게재된 게시판의 운영 중단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이하 “게시판 운영 제한조치”라 한다)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도 임의로 같은 조치를 임시적으로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임.
- 또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게시판 운영 제한조치 요청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중대한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에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임시적으로 게시판 운영 제한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해당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현저히 위축시키지 않도록 함(안 제44조의2 및 제44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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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의 비례와 명확성 문제
위 법안들은 모두 ‘가짜뉴스’, ‘악플’ 등으로 인한 피해를 억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손해액을 넘는 배상액을 부담시키도록 함으로써 징벌하거나, 사법기관의 판단 전에 기사 자체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악플 피해자의 신고만으로 게시판 전체를 폐쇄시킨다는 과도한 규제를 예정하고 있다.
한 명제 내에서 ‘사실의 적시’와 ‘의견’, ‘평가’, ‘추론’ 등을 명백히 구별하는 것은 어렵고, ‘진실’과 ‘허위’ 역시 시간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당시까지 진실임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위로 분류되거나, 법원의 판결 역시 유죄의 증명이 없어 무죄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표현의 ‘허위성’만을 이유로 표현자를 엄하게 징벌하거나 사법기관의 판단 전에 정보 자체를 차단하여 공적 사안을 둘러싼 의혹의 역사가 함부로 차단되어선 안 된다.
누구를 위한 ‘민생법안’인가?
민주당은 ‘언론민생법안’이라고 하지만, 이 법안들이 보호하는 것은 결국 ‘언론 기사’의 주요 대상이 되는 정치적·사회적 권력자인 ‘공인’이나 ‘기업’들의 법익이 될 것이다. 일방이 한 명제를 ‘허위사실’, ‘가짜뉴스’로 주장하는 것은 매우 쉽기 때문에, 공인이나 기업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에 대해 고액의 배상금을 청구하여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남발할 수 있고,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액을 부담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기자들로서는 명백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게 될 것이고, 공인이나 기업에 대한 자유롭고 신속한 의혹 제기의 환경은 크게 위축될 것이 자명하다.
나아가 기사 열람 차단권을 규정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사실 유포의 경우뿐만 아니라,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거나’, ‘그 밖에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에도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렇듯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기준으로 기사에 대한 열람 차단 청구를 허용하고 언론중재위원회의 기사의 열람 차단 결정이 내려질 수 있게 되면, 공인이나 기업들이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나 비판적 내용의 보도에 대하여 열람 차단 청구를 남발하여 언론중재법상 절차에 대응할 의무가 있는 언론사와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보도활동을 심대하게 저해·위축시키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높다.
심리적으로 중대한 침해를 발생시킨 댓글이 게재될 경우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게시판 운영 제한조치’를 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역시 ‘심리적으로 중대한 침해’라는 개인의 내심의 의사에 의존한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을 기준으로 하여 문제 댓글뿐만 아니라 전체 게시판의 운영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성이 심대한 법안이다.
멀리 갈 것 없다, BBK와 최순실을 보라
이렇듯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높은 법안들을 여당은 ‘언론개혁’을 위한 필수 법안이라며 중점 처리를 예고했다. 징벌적 손배제를 규정한 윤영찬 의원안에 대해서는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한 1인 미디어만이 대상이며 ‘언론사’는 제외된다는 등 여당 내에서도 해석이 어긋났었는데, 이렇듯 적용 대상조차 합의되지 못했던 상황은 곧 여당이 심도있는 논의 없이 여론을 최대한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방향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언론사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고려하여 무책임한 보도에 대해 경제적 타격을 주겠다던 ‘징벌적 손해배상’이 일반 국민의 표현물에까지 적용되고, 일부 댓글에 악플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다수의 선한 일반 이용자가 게시판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당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목적이 과연 진정 ‘언론개혁’, ‘민생’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명박의 BBK 실소유주설을 주장한 정봉주 전 의원, 최태민-최순실 부녀와 박근혜의 유착관계에 의혹을 제기했던 김해호 목사 모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위반 판결을 받고 처벌받았다. 당시 이 법안들이 시행되었다면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액도 지급하여 경제적 빈곤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고, 관련 기사와 게시물들도 모두 차단되어 이 사건들에 대한 검증, 단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제도는 최악의 지도자가 등장하여 남용하는 경우를 상정하여 설계되고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법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력자가 비판적 목소리를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남용하기 쉽기 때문에 특히 그 도입을 경계해야 한다. 언론의 정치 권력에 대한 의혹 제기 활동이 성공하여 탄생하게 된 현 정부와 여당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억압하는 법안 및 정책 추진을 중단할 것을 다시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