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

이 글에서는 제주도에 개원한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병원 관련 판결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녹지병원의 개업 허가를 취소한 제주시를 상대로 녹지병원 측이 소송을 걸었는데, 1심 법원은 제주시의 손을 들었고, 2심 법원은 병원 측의 손을 들었습니다. 이 글의 필자는 황영민 변호사(법무법인 이공)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box]

 

지하철을 타고 문득 반대편에 앉아 있는 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다시 누군가의 ‘생’얼굴을 보는 생경함을 떨치고 이내 익숙해 질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끝이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종식’이란 것이 된다면 그 이후의 사회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것 같다고 할까.

코로나19가 새삼 일깨운 ‘공공의료 중요성’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도 변화된(혹은 변화되는) 것 중 하나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초기 2020. 6. 실시한 여론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여론조사는 다음과 같이 코로나19 발생 전후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 의료서비스가 공적자원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비율:
    코로나19 발생 전 22.2%이후 67.4%
  • 병원이 영리산업이라는 응답:
    코로나19 발생 전  47.7% 이후 7.3% (국립중앙의료원 2020. 6. 18.자 보도자료)

경기도가 2020. 9.~10.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공공병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하고, 서울시공공보건의료재단이 2021. 2.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4.1%가 공공병원이나 공공병상 수를 현재보다 늘려야 한다고 응답했다. 조사 시기와 질문, 대상에 따라 편차를 보이겠지만, ‘의료의 공공성 확대’는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19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 계기가 됐다.

분쟁의 씨앗, 제주지사의 영리병원 허가

2018년 12월 5일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이하 ‘제주도지사’)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307조에 따라 국내 최초의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허가했다.

이에 앞서 제주도가 도민 3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숙의형 공론조사의 결과는 ‘녹지국제병원 개원 불허가 58.9%였고(vs 허가 38.9%), 이를 근거로 공론조사위원회는 제주도지사에게 ‘개설 불허’를 권고했다. 지금 같은 취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면 불허 의견이 더 높게 나올 것임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그럼에도 제주도지사는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허가하여, 불필요한, 그러나 충분히 예상되는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단, ‘진료 대상자는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고 ‘내국인 진료는 제한’한다는 조건을 부가하였다. 이후 사건 진행 경과는 다음과 같다.

  1.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하려는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법인’)는 2019년 2월 14일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이하 ‘관련사건’).
  2. 위 관련 사건 진행 중, 제주도지사는 2019년 4월 17일 녹지법인이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후 3개월 내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취소 처분’을 하였다.
  3. 이에 녹지법인은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허가 처분을 취소한 처분’을 다시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이하 ‘본 사건’, 관련 사건은 본 사건 확정 때까지 연기되었음).
중국의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전액 투자해 2014년 11월 설립한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 법인의 병원. 실제 주인은 서울의 성형외과. (해설 출처: 위키백과, 이미지 출처: 녹지국제병원)
녹지국제병원. 중국의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전액 투자해 2014년 11월 설립한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 법인의 병원. 실제 주인은 서울의 성형외과. (해설 출처: 위키백과, 이미지 출처: 녹지국제병원)

본 사건에서 제주도지사의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취소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내 최초의 영리병원의 허가가 취소됨으로써 이후 영리병원을 다시 개설하려는 시도가 힘을 잃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든 ‘영리병원’을 둘러싼 논란에 일단락을 지을 수 있었던 셈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법 개정을 통해 의료법의 원칙대로 ‘영리병원’ 설립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적어도 ‘내국인 상대 진료’는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1심, 개설 허가 취소는 적법하다 

본 사건의 1심 법원(제주지방법원 2019구합5483 사건,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은 제주도지사가 허가 당시 부가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업무 시작에 대한 불가항력적 외부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녹지법인이 개설허가 후 3개월 내 업무를 시작하지 않은 데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 녹지법인이 사업 계획 당시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주요 이용객으로 상정하였고,
  • 공공의료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명시하거나
  •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어 내국인이 이용하지 않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즉, 녹지법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3개월 내 업무를 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의료법 제64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녹지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를 취소한 제주도지사의 처분은 적법하다는 것이 1심 법원의 판단이었다.

1심 법원은 제주도지사의 병원 허가 취소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1심 법원은 제주도지사의 병원 허가 취소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2심, 개원 지연에 정당성 부여한 ‘시대착오적’ 항소심

그러나 본 사건의 항소심 법원은 녹지국제병원이 3개월 내 개원하지 못한 데는 다음과 같이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1심 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녹지법인의 손을 들었다.

  •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부터 허가까지의 경과에 의할 때 ‘외국인+내국인’ 대상으로 개설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제주도지사가 예상과 달리 ‘내국인 진료 제외(조건부)’로 허가하였으므로 ‘주된 허가사항이 변경’된 점.
  • 허가 절차가 15개월 소요되며 인력이 과반수 이상이 이탈하였으며, 따라서 ‘주된 허가사항 변경’ 및 ‘인력 상황 변동’에 따라 개원 준비 계획의 변경이 불가피하고, 계획 변경과 이에 따른 개원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점.
  • 녹지법인이 계획 재수립 의사를 밝히는 등 개원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

[box type=”info”]

참고: 개설 허가 취소 처분 (두 가지 사유) 

제주도지사가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하는 처분을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A. 녹지법인은 개설허가로부터 3개월 이내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아니함(의료법 제64조 제1항 제1호)
B. 녹지법인은 2회의 현지 점검에 응하지 않아 관계 공무원의 직무 수행을 기피 또는 방해함(의료법 제64조 제1항 제3호).

1심은 위 처분 사유 A에 따른 처분이 적법하므로, 처분 사유 B에 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고, 항소심은 처분사유A와 B 모두 부적법하다고 보았다. 처분 사유 B는 절차적 부분(현장 점검 전 7일 전에 사전통지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관한 것으로, 영리의료병원 허가 여부에 관한 사회적 쟁점과는 직접 관련은 없으므로, 이 글에서는 처분 사유 A에 관한 판단 부분 위주로 설명하였다.

[/box]

항소심 법원의 판단에 여러 가지 사실적, 법리적 문제를 지적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녹지법인이 사업 계획 단계부터 ‘내국인 이용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여, ‘내국인 배제 허가 조건 부가’를 예상할 수 없었다고 판단한 부분은 의문이다.

실제로 제주도가 공개한 녹지법인의 사업 계획서에 의하면, “녹지국제병원은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성형미용·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의료기관”이고,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대상이므로 공공의료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명확히 기재하고 있다. 즉, 녹지법인 스스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겠다고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음에도, ‘내국인 배제 허가 조건’을 예상할 수 없었다거나 ‘주된 허가사항이 변경’되었다고 본 항소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업계획서에는 "외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
사업계획서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대상이므로 공공의료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명확히 기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항소심 법원이 ‘내국인 배제 허가 조건 부가’를 예상할 수 없었다고 판단한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항소심 법원은 ‘녹지법인이 개설 허가일로부터 3개월 내에 추가적인 인력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등 개원 준비에 필요한 구체적인 행위에 착수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실제로 녹지법인이 이미 제주도지사의 허가처분 취소 2개월 전에 ‘내국인진료 배제 조건’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므로, 녹지법인은 조건부 허가가 취소되지 않는 한 병원 개원의 의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녹지법인 스스로 본 소송에서, 개원 지연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의 위법 내지 부당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고 하며, 관련사건에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에 대한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미루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더불어 채용 공고 등 기본적인 절차에조차 ‘착수하지 않은 행위’에 의할 때도 녹지법인은 조건부 허가가 변경되기 전에는 개원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항소심 법원은 ‘3개월의 짧은 기간’ 내에 ‘내국인 진료 배제 조건’에 맞춰 개원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에 나아갈 것까지 요구하기는 어려우므로, 녹지법인에게 개원을 하지 않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항소심 법원은 녹지법인이 조건 취소를 구하는 ‘관련 사건을 제기’하거나 개원 준비계획을 다시 수립할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만으로도 녹지법인이 병원 업무 개시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하였다고 인정하였다(!)

영리병원, 코로나19 시국에 어울리지 않는 소모적 논쟁

항소심 법원의 판단 대상이 ‘영리법원의 적법 여부’나 ‘제주도지사의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의 적법 여부’(이 부분은 관련사건의 판단대상임)는 아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이 ‘제주도지사의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취소 처분이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자연스레 영리병원을 설립하려는 동력은 힘을 잃고, 영리병원에 대한 소모적이고 해묵은 논쟁이 다시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 국내 1호 영리병원을 허가하여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제주도지사는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고, 제주도는 2021. 9. 6.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제 대법원에서 기나긴 판단의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대법원이 항소심 법원의 잘못을 바로잡고, 그 결과로 ‘영리병원’ 논란이 마무리되며, ‘공공의료 확충’의 생산적인 논의가 본격화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리병원의 허가 여부는 시대 변화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 논의에 불과하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