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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학폭’: 주장 vs. 사실(이재영·이다영 자매)

한 가수가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이하 ‘학폭’) 가해자였다는 주장이 ‘네이트 판’에 올라왔다. 그 일방적인 주장을 전하는 언론사의 풍경은 대략 이렇다. (이하 기사 제목에서 가해자로 주장된 모 연예인은 @@@으로, 그 가수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은 ####으로 수정한다.)

항상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 질문보다 문제의식이 중요하다. 문제의식보다는 모든 것의 기초인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이하 생각나는대로 정리해 본다.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기사의 전형. (출처: 스포츠서울, 매경닷컴 캡처)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소위 ‘기레기’ 기사.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표현은 지웠다. (출처: 스포츠서울, 매경닷컴 캡처)

@@@의 ‘학폭’ 주장 경우 

문제의 게시물은 연예인 @@@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글이다. 이를 ‘1차 게시물’이라고 하자. 1차 게시물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은 소위 ‘일진’ 출신이다.
  • @@@은 과거에 학교폭력을 저질렀다.
  • 폭행의 피해자는 자신의 동창이다. (→ 주장자 ≠ 피해자)
  • 그 동창은 XXX에게 폭행을 당해 눈, 입, 광대까지 멍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 피해를 직접 본 것도 아님. 들은 이야기. )
  • 주장자는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 앨범 사진을 첨부.
  • 그 동창과는 연락되지 않는 상태.

1차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정확히는 해당 사이트의 서비스 운영정책 위반(‘개인정보 침해’)으로 게재중단된 상태다. 구체적인 삭제 이유는 글에 ‘실명'(가해자라고 주장되는 XXX의 법적 이름) 담긴 사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2021년 2월 10일 오후 4:53 현재 위 주장을 입증할 직간접 증거는 전혀 제시된 바 없다.

아무런 근거도 제시된 건 없다. 있는 건 그저 '들은 말'뿐이다.

아무런 근거도 제시된 건 없다. 있는 건 그저 ‘들은 말’뿐이다.

주장자는 1차 게시물이 삭제되자 이에 관해 다시 글을 쓴다. 이를 ‘2차 게시물’이라고 하자. 2차 게시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주장자는 “정말 겪어보지 않으셨으면 그런말 하지마세요”라고 쓰고 있지만, 정작 1차 게시물에도 2차 게시물에도 @@@의 폭행을 증명할 어떤 직간접 증거, 경험자의 증언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시 강조하는 바, 주장자는 그 폭행을 직접 눈으로 확인(관찰)한 것도 아니고, 유일하게 주장하는 ‘근거'(아닌 근거)는 폭행 피해자에게 ‘들은 말’이 전부다.
  • 즉, “제 동창친구는 정말많이 맞았었어요 맞은 이유를 물어봤었는데 그걸 제가 기억이 안난다고 썼던 거구요.”라고 적고 있지만, 맞은 이유는 별론으로, 폭행을 직접 관찰한 것도 아니고, “동창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마저도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
  • 피해자인 그 동창친구와는 앞서 1차 게시물에서도 말한 것 처럼 연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찾고 있다.
  • 결과적으로 2차 게시물에도 @@@의 폭행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길게 정리했지만, 위 1차, 2차 게시물에서 얻어낼 수 있는 사실은 전혀 없다. 게시물에서 추출할 수 있는 ‘내용’은 ‘@@@이 학폭 가해자라는 이야기를 학폭 피해자였던 동창친구에게 들었다.’ 이 뿐이다.

이토록 무거운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는 아주아주 오래 친구에게 '들은 말'이 전부다. Brian Smithson, "The Whisper", CC BY https://flic.kr/p/6G4U6i

이토록 무거운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는 아주아주 오래 친구에게 ‘들은 말’이 전부다.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Brian Smithson, “The Whisper”, CC BY)

정리하자.

아주 오래된,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도 않았고, 일상적으로(= 반복적으로) 관찰한 것도 아니며, 일회적 사건에 불과한 어떤 사건을(일회적 사건이라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 전혀 아니다), 그 사건의 당사자(라고 주장되는) 동창친구로부터 ‘들은 말’에 불과하다. 이 부실한 재료(‘사실’)로 만들 수 있는 요리(‘주장’)은 없다. 하지만 주장자는 이 요리는 누구나 맛볼 수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요리(‘검증’)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요리의 맛(‘평가’, ‘가치판단’)이 어떤지는 차치하고, 그 요리는커녕 그 재료마저 세상에 존재하는조차 의문이다.

비범한 천재들을 평범한 둔재로 보이게 했다는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주장자에게 남길 전언은 이것뿐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트겐슈타인)  1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폭’ 사건 경우 

나는 학폭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폭로’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직접 당한 피해를 공론화할지 말지는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생각한다. 용서가 피해자에게만 속한 권리인 것과 마찬가지로 폭로 역시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국가의 공적 복수가 불가능할 때(‘공소시효’), 폭로는 그 공적 복수와 금지된 사적 복수의 중간에 위치한 어떤 것처럼 느껴진다.

마침 오늘 새벽(10일 새벽 1시 경) 위 @@@의 학폭 의혹 주장과는 선명히 대비되는 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의 ‘학폭’ 폭로 게시물이 올라오자,  학폭 가해자인 이다영, 이재영 자매는 물론이고, 소속 팀인 흥국생명도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처럼 무거운 주장은 그 무게에 비례하는 구체적인 사실과 근거에 바탕해야 한다. 이건 너무 자명하지 않나.

피해자는 이미 8월에 다른 사이트(디시인사이드 배구 갤러리)에 자매의 학폭 주장 게시물을 올렸지만, 해당 게시물은 그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주작’ 논란까지 생기며 그대로 지나갔다. 하지만 오늘(10일) 새벽에 쓴 글은 즉각적인 파장을 몰고 왔다. 참고로 아카이브에  존재하는 ‘폭로’ 내용이 담긴 게시물의 조회 수는 27만으로 확인되고, 피해자가 가해자와 흥국생명 측의 사과문을 접하고 본문을 지운 뒤 간단하게 “허무하네요”라고 제목을 바꾼 뒤에 그 소회를 간단히 올린 ‘수정된 게시물’의 조회 수는 현재 시각 10일 7시 14분 현재 41만 정도다.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학폭을 폭로한 게시물, 현재 시각(2021년 2월 10일 오후 7:43) 기준 최종 수정본으로 보임. (출처: 네이트 판) https://pann.nate.com/talk/357578271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학폭을 폭로한 게시물, 현재 시각(2021년 2월 10일 오후 7:43) 기준 최종 수정본으로 보임. (출처: 네이트 판)

초·중학교 시절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폭 사실을 폭로한 ‘수정되기 전’의 게시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은 수정되어 원 게시물에서는 사라진 상태지만, 이미 세상에 공개된 글이고, 그 게시물의 내용은 사적이되, 그 취지와 의미는 공적이므로 여기에 옮겨도 무방할 것으로 판단해 전문을 옮긴다. (아래 ‘원 게시물 전문’을 클릭하면 내용이 열림.)

원 게시물 전문

참고로 제목은 3차례에 거쳐 바뀐 것으로 보인다.

  • 원 제목: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
  • 중간 수정 제목: 가해자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최종 수정 제목: 허무하네요 

이하 원 게시물 전문 (줄바꿈 등은 정리) 

일단 먼저 배구갤러리에 글을 올렸는데 ‘주작이다’라는 글과 판으로가서 써봐라 라는 말들이 많으셔서 판에 글을 써보려 합니다. 10년이나 지난 일이라 잊고 살까도 생각해봤지만 가해자가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은 생각하지 못하고 sns로 올린 게시물을 보고 그 때의 기억이 스치면서 자신을 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지금 쓰는 피해자들은 총 4명이고, 이 사람들 제외 더 있습니다 나이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신상이 드러날 거 같아 포괄적으로 적겠습니다.

  1. 피해자와 가해자는 숙소에서 같은방이었는데 소등한 뒤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뭘 시켰고, 피해자는 피곤해서 좋은 어투로 거부했으나 몇 번 하라고 하라고 했는데도 피해자가 계속 거절하자 이에 가해자는 칼을 가져와 협박을 함.
  2. 집안 사정으로 인해 학교 앞에 잠시 집을 얻어놓고 있었고, 부모님이 아무도 데려오지 말라고 하셨는데 애들 다 데리고 무작정 와놓고 나중에 부모님께 피해자가 데려갔다고 거짓말한 것.
  3.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옆에 오지 말라고 한 것.
  4. 학부모가 간식 사주신다고 하셨는데 귓속말로 조용히 쳐먹지 말라고 먹으면 뒤진다고 한 것.
  5. 시합장 가서 지고 왔을 때 방에 집합시켜서 오토바이 자세 시킨 것.
  6. 툭하면 돈 걷고 배 꼬집고 입 때리고 집합시켜서 주먹으로 머리 때린 것.
  7. 강제로 걷은 돈으로 휴게소에서 자기들만 사먹은 것.
  8. 우리가 무서워하는 걸 본인들도 알아서 불러놓고 “내가 왜 부른 것 같아?” 하고 거짓말이라고 놀린 것.
  9. 둘 중 한명이라도 기분 안좋을때 앞에 서있으면 “나와 x발” 하고 치고 간 것.
  10. 매일 본인들 맘에 안들면 항상 욕하고 부모님을 “니네 애미,애비”라 칭하며 욕한 것.
  11. 말 시켰을 때 대답 똑바로 안하거나 개기면 뱃살 꼬집으면서 피해자가 하지말라고 하면 더 꼬집으면서 울게 만든 것.
  12. 피해자가 바지 새로 산거 맨날 빌려가고 피해자가 입어야할때나 빌려주기 싫을때 있으면 선배들에게 맡겨두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욕하면서 찾아오라고 한 것.
  13. 아침밥 먹을 때 가해자가 밥먹기 싫어서 피해자 국에 본인 밥을 말았는데 피해자가 먹기 싫어서 한숨 쉬었다고 물티슈로 얼굴 때린 것.
  14. 차에서 장난치다가 모르고 가해자 어깨를 쳐버렸는데 꿀밤을 엄청 세게 때리고, 주먹으로 가슴 때린 것.
  15. 미팅할 때 가해자가 피해자들이 운동할 때 기합을 안 넣는다며 전체 다 때린 것.
  16. 부모님들 숙소에 한번씩 오실 때 가해자들은 계속 옆에 붙어있는 반면 피해자들이 부모님들 옆에 붙어 있으면 혼내고 때린 것.
  17. 운동이 끝나고 가해자들의 보호대나 렌즈통 같은거를 피해자들 중 누군가 챙겨야했는데 까먹고 놓고 오기라도 하면 “지금 찾을건데 안 나오면 뒤진다 xxx아” 라고 한 것.
  18. 피해자들 여러 명에게 하루 하루 돌아가면서 마사지시킨 것.
  19. 고등학교 선배들이 벌금을 걷는다고 우리도 걷자 해서 다 동의했는데 알고보니 그건 팀 회비로 쓰려고 모으는 돈이였고 그걸 빌미로 피해자들 돈을 걷어간 것. 기합 안넣는다고 걷고 운동 제대로 안한다고 걷고 꼬투리 잡아서 돈 걷음.
  20. 체육관 안 탈의실에서 피해자만 밖에 놔두고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다른 아이들 다 데리고 들어가서 스케치북에 피해자 욕과 가족 욕 적어놓고 당당하게 보여준 것.
  21. 가해자들이 본인들만 가해자 되기싫어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나쁜 행동을 시킨 것.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가해자들로 인해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해자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여러 TV프로그램에도 나옵니다.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싶다. 라고 이 글을 가해자가 올렸더라구요. 본인이 했던 행동들은 새까맣게 잊었나 봅니다.

본인도 하나의 사건의 가해자 이면서 저희에게 어떠한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고 도망치듯이 다른 학교로 가버렸으면서 저런 글을 올렸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나면서 황당합니다. 가해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을까요? 미안한 마음이 있기나 한걸까요 ?

가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사진 첨부합니다 초등학교때와 중학교때 사진입니다. (이하 사진은 생략)

이 사건은 @@@ ‘학폭’ 주장이 담고 있지 않은 핵심 내용 요소를 담고 있다.

  • 체험의 진실성과 직접성, 직접 현장에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진술 (↔ 간접성)
  • 학폭 행위의 구체성 (↔ 추상성) 
  • 학폭 행위의 반복성과 일상성  (↔ 일회성)

이것이 @@@ 학폭 ‘주장’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폭’ 사건(사실)의 차이다. 이러니 학폭 당사자인 자매는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이다영의 자필 사과문 (2021년 2월 10일)

이재영의 자필 사과문 (2021년 2월 10일)

이재영의 자필 사과문 (2021년 2월 10일)

이다영의 자필 사과문 (2021년 2월 10일)

기레기 월드의 ‘클릭 기계’   

하나 더 생각해볼 문제.

@@@ 학폭 주장을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옮긴 김명진, 이용수, 김나영 기자는 정말 언론인으로서 최소한도 존재하지 않는 ‘네추럴 본 기레기’일까. 그래서 저런 근거 없는 주장에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무책임하게 보도한 걸까? 그걸 의욕한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장담한다. 하루에 수십, 수백 개씩 ‘미끼 기사’를 쓰는 ‘위탁업체’ 알바 기자들까지 포함해서, 저런 후진 제목으로 저런 후진 기사를 쓰고 싶은 기자는 세상에 없다. 

나는 저 세 명의 기자들이 정직원인지 수습인지 계약직인지 위탁업체 직원인지 알 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중요한 건 “일등신문”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조선일보와 최대 규모 경제지라는 매경(닷컴),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전문지인 스포츠서울이 저 후진 제목으로, 저런 무책임한 기사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씩 쏟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들 언론사의 체계적이고 계획적이며 구조적인 악질성은 해당 기사들을 포털에 송고함에 있어서 ‘댓글’을 쓸 수 없는 ‘연예’ 섹션이 아니라, 댓글로 이슈 확대 연계 재생산이 가능한 ‘사회’ 섹션으로 기사를 송고한 사실에서 재확인된다.

"일등신문" 조선일보의 섬세함. 굳이 '연예' 섹션이 아니라 '사회' 섹션으로 기사를 배치했다.

“일등신문” 조선일보의 섬세함. ‘연예’ 섹션으로 포털에 송고하지 않고(그러면 댓글을 달 수 없으니까), ‘사회’ 섹션으로 기사를 배치했다.

그러니까 저 무책임한 저질 기사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저 잔인함과 천박함과 무책임은 구조적이고, 조직적이며,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다. 그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미끼 기사 생산 시스템이 인간의 의지, 어떤 결심, 어떤 계몽적 운동으로 바뀔 것 같진 않다. 왜냐하면 그게 그들의 ‘밥벌이’니까. 그 밥벌이는 자신이 가장 존중해야 하는 상대방(‘독자’)를 비인격적인 ‘클릭 기계’로 만들고, 그 자신마저 아무런 문제의식도 할 수 없는, 해선 안 되는 미끼글 생산 기계로 만든다.

나라고 다를까. 나 역시 이 미칠 듯이 잔인하고, 천박한 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다. 내가 무슨 고상하고 고고하다는 취지로 이런 글을 쓰는 게 전혀 아니다. 다만, 그래도 내가 사람인 척은 해야 인간으로 조금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쓴다.

클릭 저널리즘은 가짜뉴스뿐 아니라 차별과 혐오 표현을 조장하는 가장 비옥한 환경이기도 하다.

클릭 저널리즘은 가짜뉴스뿐 아니라 차별과 혐오 표현을 조장하는 가장 비옥한 환경이기도 하다.

남겨진 질문 몇 가지

@@@이 학폭 가해자라는 현재로선 전혀 무책임하고 일방적인 주장이 추후에 ‘사실’로 밝혀진다면, 결국 주장자의 게시물과 그 주장이 옳은 것이 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뭐랬어!’라거나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처럼 무책임하고 방관적인 것도 없지만,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어떤 구체적인 인격을 공격하는 행태를 조건부로 승인하거나 유보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고, 용납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미래의 진실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영영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의 피해, 구체적인 어떤 인간의 피해와 고통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막연한 정의를 위해 현재의 확정된 부정의를 용인해선 안 된다. 그건 정의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로또식 정의’는 모든 부당한 수단과 폭력을 정당화한다.

정의를 추구하는 방식이 '주사위 던지기'가 되어선 안 된다. (출처: Daniel Dionne, CC BY SA) https://flic.kr/p/97ZWaM

정의를 추구하는 방식이 ‘주사위 던지기’가 되어선 안 된다. (출처: Daniel Dionne, CC BY SA)

@@@이 유력한 정치인이거나 유력한 기업인이었다면 저런 ‘쓰레기 기사’가 쓰여졌을까? 통상의 경우라면 당연히 저런 기사들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언론 당파성으로 인해 적대하는 정치인을 공격하거나 ‘광고비’를 위해 ‘조져야 하는’ 기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경우에라도 저런 ‘저질’스러운 제목을 붙일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유독 연예인에게 특히 더 잔인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고, 누구든 공인이든 연예인이든 그 ‘유명세’를 지불하는 게 세상의 이치겠지만, 최소한 인간적인 예의는 지키면 좋겠다.


  1. ‘논리-철학수고’ 제7항의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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