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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선동: ‘위장 용어’와 ‘나치 비유’의 범람

명백한 ‘나치 용어’는 금지된다. 하지만 위장된 형태로 화자의 숨겨진 의도를 드러내는 ‘위장 용어’들이 존재한다. 특히 극우 정치인들은 그 위장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위험한 사상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또 확대하며 재생산한다.

나치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는 '대체 역사'를 배경으로 한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높은 성의 사나이'(The Man in the High Castle, 2015, 아마존) 중에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면?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높은 성의 사나이'(The Man in the High Castle, 2015, 아마존) 중에서 한 장면

논란 중인 표현들 

독일의 극우 정치인들은 ‘구 동독'(Ostdeutschland)을 지칭할 때, ‘중부 독일’(Mitteldeutschland)이라고 언급하는 걸 선호한다. 이는 폴란드를 독일의 동쪽 영토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소해보일지 모르지만,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전쟁 범죄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인식론으로 보통 문제가 아니다.

지도에서 진한 녹색이 과거의 '구동독' 지역

지도에서 진한 녹색이 과거의 ‘구 동독’ 지역

포로수용소의 가스 살포를 뜻하던 ‘샤워'(Brausebad)라는 단어는 패전 직후 사전에서 제거되고, 우리가 익히 아는 ‘샤워'(Dusche)로 대체 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Fremdarbeiter)라는 단어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파독된 노동자들을 위해 ‘게스트워커'(Gastarbeiter)로 바뀌었다.

나치가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한 단어 ‘선택'(Selektion)‘캠프'(수용소; Lager), 그리고 ‘소녀'(Madel)라는 단어는 소녀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성인 여성에게도 폭넓게 사용해왔으며, 나치가 장악한 독일여성연맹을 상기하게 한다. ‘라거'(Lager)는 강제수용소(Konzentrationslager)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맥주) 창고를 의미한다.

따라서 현대 독일어의 부정적인 연관성을 고려해 조심해야 한다. 독일의 ‘난민수용소'(Fluchtlingslager)라고 불리는 것에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상술한 단어들은 오늘에 이르러 조금 넓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용가능하긴 하지만, 여전히 첨예한 논란 중에 있다.

문화적 이해 부족으로 오해를 낳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외래어나 약어 사용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북미 사람들은 과학저널 [Surface Science]를 실수로 ‘SS’라고 축약하는 경우가 있는데, SS(Schutzstaffel; SS, 슈츠슈타펠; 에스에스)는 나치친위대로 전쟁 범죄를 주도했던 준군사조직이다.

나치친위대( 로고

나치친위대(슈츠슈타펠, 일명 ‘에스에스’)의 로고

톰 크루즈와 ‘사이언톨로지’ 사례

또 다른 문제는 독일 정치인들이 유사 단어로 서로를 모욕하는 일이 늘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네오 나치가  가장 원하는 언어의 인플레이션이다. 이런 식으로 금지어 소비를 부추기면서 그 금지의 의미를 퇴색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예컨데 역사학자 파룩 센 귀도 크놉은 2008년 톰 크루즈의 사이언톨로지 선동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사이언톨로지는 정신의 통치자”)을 비판하기 위해 톰 크루즈를 괴벨스에 비교했다. 당시 톰 크루즈는 이렇게 발언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마약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기관입니다. 우리는 영의 통치자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가져오고 문화를 통합할 수 있습니다.” (톰 크루즈)

사이언톨로지는 톰 크루주의 발언으로 ‘전체주의적이고, 반헌법적인 조직’으로 고소를 당했고, 문제 영상을 삭제해야 했다.

2007년 12월 연방 및 주 내무부 장관사이언톨로지가 독일 헌법과 양립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선언했으며, 헌법 보호 기관의 협회법에 따라 가능한 조사 절차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도록 했다. 독일은 사이비 종교에 대해 한국보다는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 많은 사이비 종교가 존재하고, 헌법에 의해 금지 당하는 종교는 극소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언’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왜 독일 연방과 내무부 장관은 사이언톨로지를 헌법과 양립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선언했을까. 사이언톨로지가 독일에서 논란이 됐던 이유는 세계적인 스타 톰 크루즈 때문이었다. 톰 크루즈는 영화 [작전명 발키리] (2008)에서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의 주동자인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1의 배역으로 연기했다. 역사적 인물과 배우 그리고 그 배우가 선동하는 종교가 만들어낸 모호한 정치적 상황이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고 독일 정부가 염려했기 때문이다.

영화 [발키리] (2008, 브라이언 싱어)

영화 [발키리] (2008, 브라이언 싱어)

위장 용어와 나치 비유의 범람 

대체된 위장 용어의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예를 들어 역사 부정으로 금지된 ‘아우슈비츠의 거짓말’(Auschwitz lie;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 등을 날조나 과장,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우슈비츠의 신화’(Auschwitz Myth)로 대체되고 있다(참고로 독일은 1994년 이후 ‘아우슈비츠의 거짓말’을 하면 최대 3년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참조 기사).

여전히 특정한 목적을 가진 정치세력과 사회세력들은 ‘모호하게 하기’(Obfuscate; 난독화), ‘숨기기’(Gloss over; 얼버무리기), ‘하찮게 만들기’(Trivialize)를 통해 자신들만의 ‘선동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언어는 유기적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성장한다. 그리고 여러 문화, 정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특정한 세력과 권력을 위해 이용된다.

낙태와 관련된 카톨릭 교회들, 프로라이프 단체들은 낙태를 ‘아기학살(Babycaust)’에 비유하고, 낙태약을 나치독일이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아우슈비츠와 므다네크(Majdanek) 루블린(Lublin) 수용소에서 110만 명을 학살하는데 사용된 사용된 청산가리 기반의 가스살충제 지크론 베(‘Zyklon B’)에 비유한다. 나치는 ‘특별치료'( Sonderbehandlung)와 같은 단어로 ‘인간이 아닌'(Untermensch) 사람과 ‘반사회적'(Asozialer) 사람을 비인간화했다.

2019년 대한민국 헌재는 여성과 태아를 '상호 존재'로 바라보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해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정립했다.

2019년 헌재는 여성과 태아를 ‘상호 존재’로 바라보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해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정립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이든 독일이든 낙태를 ‘극단적인 비유’를 사용해 공격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런 위장 용어 사용의 범람과 반대 세력이나 비판 세력을 공격하고 모욕하기 위한 극단적인 나치 비유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히틀러에 비유되어 비난 받는다면, 히틀러는 결국 악한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독일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 한국에서 진영간, 젠더간, 세대간 벌어지는 갈등을 넘어선 심각한 모욕들도 다시 고려해봐야할 지점이다. 갈등과 비판은 드러날수록 서로의 입장이 분명해지고, 타협할 지점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저 모욕뿐인 비난들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뿐이고, 극단주의 세력이 사회로 파고들 기회를 제공한다.

언론도 우익 포퓰리스트의 ‘호전성'(Upswing)전략에 말려들고 있다. 예컨데 언론들은 극우정당인 AfD가 난민들이 물밀듯이 밀고 들어온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난민 물결’(Fluchtlingswelle) 같은 혐오적 가십 용어를 허용할 공간을 주었고, 극우정당 AfD는 이를 하나의 이론과 정책으로 채택해 자신(극우정당)을 정당화하고, 강화시키는 도구로 활용한다.

우리는 모든 교육 수준의 모든 사람에게 이런 파시즘 언어의 뉘앙스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숙지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전문가일 수도 없다. 따라서 금지어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피해야 한다. 결국 언론인, 정치인 및 언어를 전문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은 자신의 언어 이미지의 기원과 배경, 문화적 전유에 대해 살펴보고, 문제가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 문제 제기를 통해 바꾸어 나가야 한다.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1945년 1월 찍음) (위키미디어 공용)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1945년 1월 찍음)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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