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초등학교 3학년인 지민이는 태어나자마자 척추에 생긴 소아암으로 하반신마비로 휠체어를 타지만 언제나 씩씩한 아이입니다. 지민이는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이지만 집과 학교 울타리를 넘는 순간 사회는 지민이의 휠체어를 막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지민이가 지하철이 닿는 곳을 다니면서 교통약자와 휠체어 탄 사람들에게 불편한 곳이 있다면 가감 없이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뜨길 희망합니다.
이 기사는 EBS육아학교와 공동 기획한 연재물입니다. 지민이가 지하철로 가볼 만한 곳을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지민이가 추천받은 장소를 대중교통으로 가 본 후 가감 없는 소감을 전달 드리겠습니다.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프로젝트는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펀딩기금은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만드는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필자)
- 엄마는 지민이 덕분에 남들보다 눈을 두 개 더 갖게 됐어
- “엘리베이터는 내 다리야”
- 삼성역의 수퍼맨을 찾습니다
- “엄마, 휠체어 리프트는 불편해”
- → 현장학습이 불편한 이유
- 휠체어 타고 제주올레길 가다
- “휠체어 위한 지하철 지도가 필요해”
[/box]
지민: “엄마, 현장학습 안 가고 싶어.”
엄마: “왜?”
지민: “그날 나 따라간 할머니가 비 맞아서 감기 들었잖아. 다른 반은 미술관 4개인가 갔는데 우리 반은 2개밖에 못갔구.”
엄마: “그래서 미안했던 거야?”
지민: “응.”
엄마: “…… 지민아, 그래도 갈 수 있는 한 가야지…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라고?”
지민: “포기하는 거… ”
엄마: “가는 걸 포기하지 말고,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보자. 알겠지?”
지민이 학교생활에서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현장학습입니다. 휠체어를 밀어주고 지민이 도뇨를 해 줄 활동보조인이 항상 필요하죠. 그 외에도 가는 길이나 현장학습 장소에서 휠체어 경로를 가기 전에 미리 알아봐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지난 11월, 인사동 미술관으로 지민이 학교 현장학습이 잡혔다는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어떻게 거기에 가지?’란 걱정이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상일동역에서 지하철을 탄다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어쩌나 싶은 마음…
동행하는 특수교사 선생님도 지하철을 권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번에도 휠체어 탄 아이와 다른 아이들이 같이 움직였는데 탈 때나 환승할 때 30분씩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저 스스로 움츠러들었습니다. 4개 반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데, 지민이 반만 30분 먼저 출발할 수도 없는 법이고요.
엄마: “지민아, 장애인 콜택시 타고 오가는 건 어때?”
지민: “싫어! 안 갈 거야! 나도 지하철에서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싶은데…(울먹울먹)”
결국 담임선생님, 특수반 선생님과 몇 번을 통화한 끝에, 갈 때는 장애인 콜택시로, 올 때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저상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비 예보가 있는 날이라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면 하염없이 1~2시간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지하철은 도착역인 상일역 엘리베이터가 없어 어차피 함께 움직이기 힘든지라 버스가 낫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선생님: “아, 어머니. 그리고 집에서 한 분 따라오셔야 하는데요.”
엄마: “활동보조 선생님이 따라가시지 않나요?”
선생님: “네, 그렇긴 한데 장소 답사를 해 보니 군데군데 계단이 좀 있어서요. 어른 두 분이 필요하겠더라고요.”
#1 현장학습 가는 길: 장애인 콜택시 타고 종로 3가로
엄마도 아빠도 시간을 낼 수 없는 날이라…마음은 아팠지만 결국 할머니를 함께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현장학습 때는 장애아 보호자가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 맞벌이 부부는 아주 힘듭니다.
초겨울비가 추적추적 제법 많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할머니와 활동보조 선생님이 12시에 학교에서 지민이를 데리고 장애인 콜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는 다행히도 제시간에 왔습니다.
아이들이랑 만나기로 한 종로3가역 5번 출구에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데 너무 춥습니다. 근처 카페로 이동합니다. 지민이는 우산을 쓰고, 할머니는 준비해 온 우비를 입으시고 선생님에게 우산 씌워주며 이동하십니다.
비가 오는 날 휠체어가 외출하려면 도와줄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비를 피해 근처 카페로 갑니다. 종로는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인지 휠체어 진입로가 잘 갖춰진 곳이 드문 편입니다. 경사로가 없어서 할머니와 선생님이 지민이 휠체어를 들어 카페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입니다.
5번 출구에는 엘리베이터도 휠체어 리프트도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는 다른 쪽 출구에 있는데 그 거리가 만만치 않네요. 추가로 엘리베이터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이 그나마 위안입니다.
[box type=”info”]
얼마 전 서울시에서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2020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설치도 중요하지만, 현재 엘리베이터 위치가 장애인들이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곳곳에 잘 표기되어 부디 휠체어 장애인도 혼자서 지하철을 힘 덜 들이고 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box]
#2 첫 번째 갤러리: 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지만, 할머니랑 선생님이 힘든 건 싫어요
원래 이번 현장학습에서는 인사동 4개 갤러리를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지민이 반은 휠체어가 그나마 가장 다니기 쉬운 두 곳만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방문한 갤러리에는 군데군데 두 세 개씩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이 적은 경우에는 지민이와 휠체어를 할머니와 선생님이 각각 나눠 안고 들어 이동했습니다. 계단이 많은 곳이 나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2층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지민이가 시무룩해집니다.
선생님: “지민아, 2층으로 갈래?”
지민: “아뇨. 안 갈래요. 할머니도 선생님도 힘들잖아요. 그렇게 보고 싶지도 않아요.”
경사로가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시멘트를 대강 발라 만들어서 올라가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요.
휠체어나 유모차가 잘 안 오는 곳임에는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경사로 길목에 화환을 세워 놨거든요. 화환 위치를 바꾸고 조심하여 내려왔습니다.
계단을 여러 개 오가다 보니 다른 아이들이 앞으로 빨리 이동할 때 지민이는 뒤처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 친구들이 듣는 설명을 함께 못 듣고 혼자 보게 되었지요.
#3 아트센터: 도움받는 걸 친구들 앞에서 보이는 게 부끄러워요
아트센터에는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민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친구들은 번개처럼 계단을 타고 오르내리네요.
입구에 경사로가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2-3층 정도 되는 계단이 두세 개 정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른들이 지민이와 휠체어를 나눠 들고 또 움직였습니다.
지민: “그래도 그 아트센터 1층이 그럭저럭 재미있었어. 1층에 페인트회사에서 창립기념 전시를 했는데 페인트 만드는 과정이 있었거든.”
엄마: “그랬구나. 다른 데는?”
지민: “그뒤론 기분이 안 좋았어. 계단이 군데군데 있어서 어른들이 날 안고 올라가야 하는데, 친구들 앞에서 도움받는 걸 보여줘야 해서…”
내려올 때쯤에는 선생님도 할머니도 많이 지치셨습니다. 비 맞을까 봐 계단을 내려오면서 안고 내려오지 못하고 휠체어를 쿵쿵거리며 덜컹거리며 내려왔습니다. 한 명은 앞에서, 다른 한명은 뒤에서 잡아야 하니 두 사람의 힘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오는 바깥에서는 한 사람은 우산을 씌우고 다른 사람은 휠체어를 잡고 내려옵니다.
지민: “아참. 4층은 좋았어.”
엄마: “4층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데?”
지민: “다들 간식으로 빵을 먹었는데, 다른 애들은 바닥에 빵가루 흘릴까 봐 신경 쓰는데 나는 휠체어에 앉아있어서 빵가루가 떨어져도 무릎에 떨어지니까 치우기가 쉬웠거든. 맛있는 초코 소라빵이었어.^^”
#4 현장학습 마친 후, 저상버스 타고 집으로
현장학습을 마치고 다른 친구들을 종로3가역에서 지하철로 보내고 지민이, 할머니, 선생님, 그리고 지민이와 함께 집에 가기로 한 친구 두 명이 저상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합니다. 비가 그쳐주면 좋으련만…
이날 가장 운 좋았던 코스는 바로 저상버스였습니다. 보통 어플로 저상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움직이는데, 종로에는 전광판이 있어서 집 앞까지 가는 버스 시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저상버스가 금세 도착하네요.
지민: “엄마, 근데 난 저상버스가 바로 올 줄 알았다.”
엄마: “어떻게?”
지민: “걸어오면서 보니까, 내가 탈 버스인데 일반버스 두 대가 앞에 지나가더라구. 두대 지나갔으니 그다음은 저상버스 일 거 아냐. 운이 좋았어!”
저상버스 비중이 더 높아져서, 지민이가 운이 있고 없고를 안 따지게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날 진짜 운이 좋았던 것은 친절한 기사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휠체어를 탄다고 하니 인도에 바짝 붙여 주차를 하신 후 기사님이 직접 의자를 접어 지민이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를 확보해 주셨네요. 지난 번에는 휠체어 고정을 못했는데 버스가 출발해서 당황했거든요.
지민: “엄마,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후 슬픈 전설이 있어.”
엄마: “뭔데?”
지민: “난 앞쪽의 휠체어 전용좌석에만 앉을 수 있잖아. 친구들이랑 함께 수다 떨려고 함께 버스를 탔는데, 승객이 많으니까 친구들은 뒷좌석에 둘이 같이 앉았거든. 결론적으로는 1시간 동안 걔네 둘만 얘기하고 나는 그냥 핸드폰 보면서 자면서 혼자 왔다는 슬픈 전설~”
엄마: “… 그랬구나… 엄마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
지민: “그래도 괜찮아. 나랑 버스 같이 타고 갈 사람 신청을 받았을 때 반 아이들이 많이 신청했거든!”
아차… 지민이가 외로워 할까 봐 담임선생님께 지민이랑 버스로 같이 올 친구들을 좀 붙여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어차피 같이 앉기가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네요. 그나마 지민이가 밝게 받아들이니 다행입니다.
지민: “엄마, 내가 총평을 해볼게. 재미가 별로 없었어. 우선 할머니가 비 맞으셔서 감기 걸리셔서 미안했고, 계단이 너무 많아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관람할 수가 없어서 안 좋았어. 계단 대신 경사로가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 지난번에 갔던 큰 박물관은 경사로가 많이 있었잖아. 작은 데는 경사로가 별로 없어서 안 좋아.
지하철 안 탄 건 잘한 것 같아. 왜냐면 내가 리프트 타면 우선 친구들이 기다려야 하잖아. 나 때문에 다들 기다리는 건 싫어. 그리고 리프트를 타면 동물원 원숭이가 된 민망한 기분이거든. 친구들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기가 싫었어.”
엄마: “그랬구나, 지민아. 그래도 서울시에서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놓고 저상버스도 확대하고 장애인 콜택시 대수를 더 늘린대.”
지민: “응, 나한테는 좋아지는 거지만, 서울만 더 혜택받는 건 맘이 안 좋아. 시골 외딴 데에도 장애인이 있을 텐데…”
지민이의 프로젝트가 막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아주신 소중한 펀딩기금을 기반으로, 지민이와 제가 다니면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었던 휠체어·유모차도 쉽게 이용 가능한 지하철 환승 경로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가급적이면 지도 형태로 만들기 위해 조력자분들을 만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추진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 지하철 구내 지도를 비롯해 공공정보 확보의 문제
- 역마다 휠체어가 편리한 경로를 어떻게 확보할지
- 해당 경로를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할지
- 그것을 어떤 플랫폼을 통해 보여줄지
- 업데이트는 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실로 다양한 문제가 산재해 있네요. 그동안 펀딩을 통해 도와주시는 조력자분들도 많이 만나 여러 각도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만, 글을 보시는 분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