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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초등학교 3학년인 지민이는 태어나자마자 척추에 생긴 소아암으로 하반신마비로 휠체어를 타지만 언제나 씩씩한 아이입니다. 지민이는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이지만 집과 학교 울타리를 넘는 순간 사회는 지민이의 휠체어를 막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지민이가 지하철이 닿는 곳을 다니면서 교통약자와 휠체어 탄 사람들에게 불편한 곳이 있다면 가감 없이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뜨길 희망합니다.

이 기사는 EBS육아학교와 공동 기획한 연재물입니다. 지민이가 지하철로 가볼 만한 곳을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지민이가 추천받은 장소를 대중교통으로 가 본 후 가감 없는 소감을 전달 드리겠습니다.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프로젝트는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펀딩기금은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만드는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필자)

  1. 엄마는 지민이 덕분에 남들보다 눈을 두 개 더 갖게 됐어
  2. “엘리베이터는 내 다리야”
  3. 삼성역의 수퍼맨을 찾습니다
  4. “엄마, 휠체어 리프트는 불편해”
  5. 현장학습이 불편한 이유
  6. 휠체어 타고 제주올레길 가다
  7. “휠체어 위한 지하철 지도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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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아, 너한테 엘리베이터는 뭐야?”

“엘리베이터는 내 다리야. 이거 타면 백화점도 학교도 병원도 갈 수 있어.”

지민이와 함께 가는 걸 ‘포기’한 곳들 

휠체어를 타는 지민이와 어딘가를 갈 때는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필수입니다. 놀러 갈 때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펜션이나 캠프장은 가지 못합니다. 초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알아보고 왔습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싶어 했던 피아노 학원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어차피 학원 셔틀버스엔 휠체어를 실을 수가 없어서 학원은 다닐 수가 없긴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없어서 아이를 안고 올라갔던 곳은 적지 않았어요.

  • 동네 소아과(2층)
  • 선거 투표하러 갔던 동사무소(2층)
  • 여의도에 위치한 모 방송국 어린이 방송체험 학습장(5층)

그래서 지민이와 주말 나들이할 때는 엘리베이터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마트나 백화점을 가끔 찾습니다. 엘리베이터 이외에도 마트, 백화점에는 수유실이 있어 편리합니다. 지민이는 배뇨 장애가 있어서 일반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도뇨(소변을 빼 주는 것)를 해줘야 합니다.

백화점에서 겪은 일 

명동 모 백화점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이날도 용건을 마치고 백화점 수유실을 이용한 후 8층에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습니다. 일요일 오후라 사람이 많아서 두 대를 그냥 보냈습니다. 세 대째부터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아빠와 만날 약속을 해서 빨리 내려갔어야 했거든요.

그동안, 옆에서 같이 기다리셨던 분들은 모두 타고 내려갔습니다. 맨 오른쪽 엘리베이터에는 유모차 휠체어 전용’이라고 쓰여 있었는데도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만 유모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려달라고 말해볼까?’

그렇게 생각했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또 그분들도 나름 바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말함으로 인해서 타인에게 뭔가 불편을 줄 수도 있다는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 순간 지민이가 말을 이었습니다.

“엄마,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못 타잖아.”

백화점의 근사한 에스켈레이터도 지민이에겐 무용지물입니다.
백화점의 근사한 에스켈레이터도 지민이에겐 무용지물입니다.

먼저 ‘용기’ 내기 어려운 사람들 

10여 분이 지나고, 4대째인가 간신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습니다. 6층에서 젊은 커플이 타면서 말합니다.

“사람 너무 많다. 에스컬레이터 탈 걸 그랬어.”

4층에서 유모차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서 5층에서 탄 여성분들이 유모차를 보고 “내릴까? 내릴까?” 하시더니 내리지 않았습니다. 양보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용기 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도 아이와 함께 나들이하기 전에는 엘리베이터 밖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휠체어를 밖에서 자주 볼 수 없는 환경이니, 더욱 양보해 줄만한 기회가 많지 않지요.

유모차만 하더라도 몇 년 쓰면 아이가 걷기 때문에, 몇 년 동안 겪는 불편은 그냥 감수하겠노라고 생각하면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양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드물 거라고 봅니다.

유모차

아시안 보스와 함께: 백화점 엘리베이터 체험  

그날의 기억이, 유튜버인 아시안 보스(Asian Boss)와 동영상을 기획한 계기였습니다([장애인을 대하는 한국사람들의 태도]). 아시안 보스는 [동양청년들이 꿈을 잃는 이유] 등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한 터치의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명해진 유튜버입니다.

장소는 백화점으로 결정했습니다. 지하철에서는 어르신들이 휠체어 탄 지민이에게 먼저 가라며 엘리베이터를 양보해 주신 경우도 있었는데 왜 유독 백화점에서 다른 경험을 하게 됐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스티븐(아시안 보스)과 만난 곳은 반포의 모 커피숍이었습니다. 2층짜리 커피숍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지민이랑 함께 자리하기 위해 스티븐이 1층 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손님들에게 정중히 부탁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휠체어를 탄 친구가 있어서 1층에 앉아야 하는데요. 2층 자리가 비어 있는 것 같은데, 2층 빈자리로 옮겨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가 돈 내고 먹는 건데 왜 옮겨야 하나요?”

하는 수 없이 한 명이 지민이를 안고, 다른 한 명이 휠체어를 들고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 스티븐이 그렇게 부탁할 수 있었다는 데에 매우 놀랐습니다. 외국 생활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당사자가 아니어서 오히려 더 당당하게 부탁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 같으면 어땠을까요.

  •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어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 포기하고 다른 커피숍을 찾아 바깥으로 나오거나
  • 직원에게 부탁하여 2층으로 갈 테니 도와 달라고 했을 것 같았거든요.

아무튼, 우리끼리는 “아마 스티븐의 한국말이 좀 어눌해서 그분들이 그렇게 답했나 보다”는 말을 주고받았지요.

아시안 보스

“죄송한데 좀 내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러나 이 경험을 통해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왜 양보받지 못했는지 약간 감이 잡혔습니다. 어찌 보면 ‘내가 손님으로 대접받아야 할 곳’에서는, 어떤 분들은 ‘굳이 내가 양보할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오랜만에 백화점에 가면 ‘손님 대접’ 받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고층에 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쉽게 이용하는 반면,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이란 생각이 있어서 아무리 편리하다고 하더라도 평상시에는 전혀 이용하지 않으니까요.

스티븐과 함께 바로 옆 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난번이랑 마찬가지로 중간층 엘리베이터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곳 엘리베이터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유모차, 휠체어가 먼저 이용할 수 있도록 고객 여러분께서는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여기에도 맨 오른쪽 엘리베이터는 ‘유모차 우선 탑승’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역시나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스티븐이 지민이 휠체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죄송한데 좀 내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가 좀 오래 기다려서요.”

아시안보스

엘리베이터 안 10여 명의 눈이 지민이에게 꽂혔습니다. 아, 아무도 양보 안 해주시면 정말 민망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뭇거리던 두 분이 감사하게도 양보해주셨습니다. 한 분이 내리니, 그 옆에 계시던 분도 따라서 내려주셨죠.

아시안 보스

“미안해하는 것 아니야”

제 입에서 자동으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이건 동영상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때 지민이를 안을 때마다 지민이가 “엄마 미안해”라고 하는 말에 “미안해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던 제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아이가 원해서 장애를 갖게 된 것도 아니고, 이 아이에겐 엘리베이터 말고는 다른 이동수단이 없어서, 다른 수단을 사용 가능한 분들이 양보해 주시면 감사할 수는 있어도 미안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아마 오랜 제 습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안하다고 하는. 저야 미안할 수 있어도, 지민이가 불편을 끼치기 싫어서, 남에게 미안하기 싫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되면 안 되는데…

지민이에게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까요? 

지민이에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려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라고 가르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부탁하기보다는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들이 내려 주기를 기대하게끔 가르쳐야 할까요?

어떤 것이 맞을지는 여전히 잘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단 하나, 지민이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엄마, 지난번 거기 엘리베이터에서 양보 못 받아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속상했잖아. 거기 가기 싫어.”

지민이의 이번 체험은 백화점 엘리베이터 타기였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지민이가 갈 수 있는 곳을 추천해 주세요. 휠체어를 타고 있어 지민이는 많은 곳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곳’에 가는 길을 가감 없이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https://youtu.be/51zUKR0c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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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눈물이나네요 전 현재 지체장애로 3년이 다 되어가도록 휠체어 생활을 하면서 말 못할 서러움이 가득하지만
    아이도 저런 경우를 느끼는 것을 보니
    가슴한켠이 먹먹하네요…..
    장애를 입지 않아보신 분들의 시선은 참 무시할 수 없는부분이네요
    입장을 달리 보시면 분명 생각도 행동도 달라지실 수 있으실텐데
    비장애인분들이 마음의 문을 조금 열고 장애를 가지고 계시는 타인의 삶을 이해해주셨으면 하네요
    장애를 가진 사람은 시설을 이용하기에도 불편함이 많습니다 행여나 대.소변의 실수라면 겪지 않으신 분은 마냥 더럽다 하실지라도 장애를 가지고 계신분들도 당황스러운건 마찬가지이니까요
    서로서로 이해하며 공존 할 수 있는 세상의 발판이 앞당겨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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